정세운은 더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정세운은 나를 떠났다.
왈칵, 눈물이 쏟아져 흘러내렸다. 등을 토닥거리는 수정이의 손길에 이제는 아예 목놓아 소리내어 울었다. 보고싶다. 정세운이. 이제는 날 달래어주던 그 다정한 손길을 느낄 수 없다. 이렇게 울 때면 어쩔 줄 몰라 하며 차분한 평소 모습과 달리 안절부절하던 네 모습을 나는 이제 볼 수가 없다.
미련이 남았다. 뒤늦게 네 소중함을 깨달은 등신같은 나였다.
" 이제 좀 괜찮아? "
" ...... "
그제야 잦아든 내 울음소리에 머뭇거리던 수정이가 눈을 맞추며 물었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속이 울렁거린다. 미안.. 많이 놀랬지. 웅얼거리는 내 목소리에 수정이는 고개를 절레 저었다. 대충 예상은 했었어. 수정이의 말에 다시 울컥, 차오르는 감정을 겨우 꾹 눌러냈다. 남들은 다 눈치 채고 있던 네 변화를 나만 몰랐던 거다.
" 집에 가야지. 수정아. "
" .. 너 혼자 괜찮겠어? "
" 괜찮아. "
걱정하는 얼굴의 수정이에게 애써 웃어보였다. 진짜 괜찮아. 나.
" 그래, 푹 쉬어. 차라리 혼자 있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
이만 가볼게. 여주야. 밥은 챙겨 먹고. 어깨를 토닥이는 손길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손을 흔들어보였다. 철컥, 문이 닫히는 소리에 다시 힘없이 아래로 고개를 떨궜다. 문 틈 사이로 새어 들어온 바람에 바닥에 아무렇게나 내려놨던 빈 맥주캔이 굴러와 발 끝에 닿았다. 정세운이 보고싶어 미칠 것 같다. 왼쪽 약지에는 아직도 니가 선물해줬던 반지가 끼워져 있다. 괜히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퍽이나 어울리지 않는 얼굴로 귀를 붉히던 네가 떠올랐다. 여주야.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오던 그 목소리가 귀에 울린다.
결국 난 또 후회할 짓을 저지르고 만다. 고작 맥주 한 캔에 의지해 술기운이라는 핑계로 정세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해서는 안될 짓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움직임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결국 몇 번의 수화음 끝에 정세운은 전화를 받았다.
" ...... "
수화기 너머로는 고요한 숨소리만 이어졌다.
..세운아. 얼마 지나지않아 흐느끼는 내 울음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울려 퍼졌다. 이내 작은 한숨 소리가 넘어온다.
[ ... 넌, 대체─ ]
잔뜩 억누른 듯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정확히는 말을 잇지 못했다. 대충 네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지 머릿 속에 그려졌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다. ..난 또 너한테 잔인한 짓을 저지르고 말았구나. 고작 그 이기심에 나는 또 이렇게. 충분히 힘들었을 너한테 기대려하고 있음을.
" 보고싶어. 세운아. "
[ ..... ]
" 너무.. 보고싶어. "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었다. 너에게 있어 난 항상 이기적이고 나쁜 년이었으니, 나는 더이상 나락으로 떨어질 곳도 없는 몸이었다. 당장의 내가, 너를 보고싶다는 사실 하나가 눈을 멀게 만들었다.
[ 다시는, ]
" ...... "
[ .. 연락하지마. ]
그리고 정세운은 마침내 나를 밀어냈다.
熱病 (열병) w.리틀걸
- 쉬어가는 단편, 정세운 ver -
정세운과 헤어졌던 첫 날엔 그저 멍하니 쇼파에 앉아 티비만 봤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얼떨떨한 감정 속에 약간은 후련한 거 같기도 한 착각이 일었다. 그렇게 몇 차례의 자기 합리화 끝에 차라리 잘된 일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 결론이 틀렸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건 얼마 지나지 않은 후였다. 우리 집에는 여전히 네 흔적들로 가득했다. 배가 고파 냉장고를 열어 보면, 매번 끼니를 거르는 게 습관이 되어버린 나를 위해 만들어 넣어두곤 했던 반찬들이 눈에 들어왔다.
─ 오늘은 계란말이. 아침 꼭 챙겨 먹기.! ─
늘 빼먹지 않고 붙여두던 작은 포스트잇도.
양치를 하려 들어간 화장실에는 아직 버리지 못한 네 칫솔이 남아있었다. 물기를 닦으려 수납장을 열면 이렇게 접어야 예쁘다고 뿌듯하게 미소 지으며 네가 개어뒀던 수건들이 또 나를 울렸다. 밥 먹을 때 식탁 위에 늘 수저를 두개씩 준비하던 습관도 여전히 버리지 못했다. 그제서야 나는, 소중함을 깨달았다.
" 오늘은 밥 챙겨 먹었어? "
" ... (절레).. "
" 으이구, 그럴 줄 알았다니까. "
" ...... "
" 먹을 거 사다놨으니까 오늘은 꼭 챙겨 먹어. 자꾸 거르지 말구. 알겠어? "
" .. 고마워. 수정아. "
" 됐어, 기운이나 차려. "
그 후로도 매일매일을 폐인처럼 살았다. 난 다시 널 만나기 전으로 돌아가있었다. 끼니를 챙기지 않았고, 밖을 잘 돌아다니질 않았다. 익숙한 생활인데도 전처럼 익숙해지질 않았다. 덕분에 수정이는 그런 날 챙기느라 진을 뺐다.
" 너 근데, 얼굴이 왜이렇게. "
" ..... "
" .. 열나잖아. 여주야. "
" .. 아. "
" 내가 너때문에 미쳐. 진짜. "
점점 몸이 상해져갔다. 무더운 이 날씨에 감기에 걸린 것도 아닐 터인데 심한 열병을 앓았다. 어딘가 닿기만 해도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수정이가 쥐어주고 간 약봉지를 아무렇게나 탁자 위에 올려뒀다.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았다. 며칠을 그렇게 침대에 누워 혼자 끙끙 앓았다. 학교에도 나가지 않았다. 이렇게 아프고 나면 조금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때문이었다. 정세운은 열병보다 더한 것이었는데.
5일쯤 되었을까. 그런 내 소식이 닿은 건지 정세운이 날 찾아왔다. 오랜만에 본 모습에 부서질 거 같은 몸과 달리 마음이 설레었다. 네 표정은 어김없이 어두웠다. 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야윈 내 모습이 괜히 초라하게 느껴졌다.
" ...... "
" .. 보고싶었어. "
아무말 하지 않고 그저 까만 눈동자에 내 모습을 담아내고 서 있는 모습에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보고싶었어. 꾹꾹 마음 속에 눌러 담았던 말이었다.
여전히 넌 말이 없었다. 짧은 정적 끝에 세운이는 작게 제 아랫 입술을 짓이겼다. 곤란한 상황일 때 나오던 습관이었다.
" .. 진짜였네. "
" ...... "
" 나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다는 거. "
한 자 한 자 뱉어낸 그 말 끝에 세운이의 표정엔 심란함이 서렸다. 이어진 깊은 한숨 소리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 솔직히 조금은, "
" ...... "
" 힘들어 하길 바랬어. "
온 몸에 또 열이 올랐다. 너는 내가 힘들어 하길 바랐다. 나의 불행을 바랐다. 한없이 착해 빠지기만 한 네가. 맑기만 하던 네 속에 그런 먹구름이 찾아오게 만든 건 온전히 내 탓이었다. 그런 생각까지 들게 한 그 과정 속에 난 얼마나 널 힘들게 했던 건지 감도 오질 않았다. 미안해.. 작게 그 말을 웅얼거렸다. 어느새 그 얼굴엔 잔뜩 슬픔이 꼈다.
" 근데 이렇게. "
녀석이 입술을 더 세게 짓이겼다. 이어 세운이의 손에 쥐어진 내 손목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 이렇게 무너지는 걸, "
" ...... "
" 바라진 않았어. 여주야. "
너는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고개를 숙인 채 울음을 참아내는 듯한 모습에 결국 그 자리에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헤어지고 난 후에도 아무렇지않게 보고싶다는 말로 널 괴롭혔던 내가 떠올랐다. 헤어짐이라는 그 결정이 너에게도 분명 가볍지 않은, 힘든 것이었을 거란 걸 모르고 있었다. 이제야 우리 이별이 실감났다.
길었던 열병의 끝에 아픔이 사라질 거라, 힘들어하지 않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무너져 내린 건 또 너였다. 기어코 그 모습을 보고서야 나는 우리의 이별을 인정한 셈이었다.
우리는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없는 거였다.
에필로그 (ver.세운) |
" .. 그만하자. " 그 말을 끝으로 길었던 연애의 마침표를 찍었다. 2년. 자그마치 2년이었다. 그 긴 시간동안 세운은 하루도 닳지 않고 마음을 이어왔다. 여주를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변한 적 없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이제는 닳고 닳아 너덜너덜해져버렸다. 단순히 감정이 식은 것은 아니었다. 세운은 많이 지쳐있었다. 오랜 기간의 연애, 그리고 여주에게 찾아온 권태기. 금방 지나가리라 생각했던 그 감정은 생각보다 오래도록 세운을 괴롭혔다. " 지금 너 그 말.. 진심이야? " 그럼에도 여전히 여주를 좋아했다. 지쳐있는 감정들 속에서도 세운은 여주를 제게서 떼어내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마침표를 찍어야할 때가 왔음을 느꼈다. 어쩌면 세운에게는 더 이상 제 감정을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한 자기 방어인 셈이었다. " 진심이야. " 그렇게 겨우 냉정하게 관계를 끊어내었는데. " 여주 진짜 많이 힘들어 해. " " 너한테 이런 말까지 하고 싶지는 않은데, 친구로서 상태가 걱정 되서. " " ...... " " 미안해. 괜한 말 전해서. " 결국엔 또 여주의 소식에 흔들려버리고 말았다. 수정으로부터 전해 들은 여주의 소식은 세운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었다. 그리고 긴 고민 끝에 그 앞에 찾아갔을 때는, 여주의 모습을 보자마자 머리가 멍해진 세운이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여주는 더 말라 있었고, 야위어 있었다. 밥을 한 끼라도 먹기는 한 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 이렇게 무너지기를, 바라진 않았어. " 힘겹게 꺼낸 제 말에 여주는 주저 앉아 눈물을 쏟아냈다. 그 모습에 세운은 차오르는 감정을 겨우 억눌렀다. 위로를 해줄 수 없었다. 예전처럼 달래줄 수 없었다. 그때처럼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감정을 반복하지 않을 자신이 없었다. 아프지마. 이제. 결국 입 안에서만 멤돌던 말을 겨우 뱉어내고 차갑게 뒤돌아섰다. 그제서야 저도 이별이 실감이 났다. 우리 관계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것이고 여기서 돌아가 좋아질 수 있는 사이는 이미 지나버렸다고. 자꾸만 과거에 얽메어 있는 이 감정을 완전히 끊어내야만 한다고. 세운은 그렇게 생각했다. |
작가의 말 |
하하.. 안녕하세요 리틀걸입니다 오늘 세운이 보고 왔어요..ㅎㅎ 아 어제네요! (넘 잘생긴 세우니,,,,ㅠㅠㅠ포뇨야ㅠㅠㅠ) 괜히 덕심도 차오르고 이전에 쬐끔 써놨던 소재로 글을 쓰게 되었어요 슬프고 아련한 그런 이별 설정으로 쓰고 싶었는데 어쩐지 어정쩡하게 끝난 거 같네요 ㅠㅡㅠ 끝맺음이 항상 어려운 거 같아요 ㅎㅎ..
아, 그리고 얼마 전에 썼던 조각글은 투표 결과에 따라 영민이 글로 열심히 끄적이고 있습니다. 평일엔 역시 혐생때문에 연재가 힘드네요 ㅠㅠ 음슴체로 쓸 때는 진도를 잘 뺐는데 막상 연재하려니까 잘 안써져서 골머리 앓고 있어요(눈물).. 많은 분들이 소재 3개 다 연재를 원하셨는데 연재할 의향은 많지만 능력치가 부족해서 차근차근 연재 후에 글이 완성되면 다듬어서 올리도록할게요. 영민이 글은 이번 주에 들고 올 수 있음 들고 올게요..! 전교회장 정세운도 가져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당 물론 장담은 못해요 ㅠㅠ 이번 주말은 바쁘게 보낼 예정이라.. 그래두 노력해볼게요 독자님들 (광광) 그럼, 요즘 세운이 떡밥이 많아서 행복한데 모두 세운이 꿈 꾸길 바래요 ㅎㅎ 안녕히 주무세운♡ |
♡ 독자님들 암호닉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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