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4
“ 다들 진짜 고생 많았다. ”
새벽 4시까지 이어진 주점이 드디어 끝났다.
이 짓을 내일 또 해야 한다니.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절대 못 되는 걸 너무 뼛속까지 깨달았다.
다들 녹초가 되어 손님들이 다 나간 주점 쇼파 위에 뻗어 누워 앓는 소리만 끙끙 내고 있었다.
“ 진짜 이거 너무 극한 노동 아니에요? ”
“ 내가 술집 알바 이래서 안 하는데 학교에서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
박지훈과 민현선배가 차례대로 속에 쌓여있던 불만을 툭툭 내뱉자 다들 동의는 하는지 고개만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날 생각을 안 한다.
집에는 언제 가고, 언제 다시 학교로 오냐.
지하철에서 죽치고 앉아있을 생각을 하니 다시 머리가 아파와 옆에서 벽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있던 박우진의 등에 머리를 기댔다.
“ 뭐야, 김여주냐. ”
고개를 살짝 틀어 저를 한 번 쳐다보곤 다시 벽에 머리를 기대는 박우진을 팔꿈치로 툭툭 쳤다.
“ 야, 너 집에 언제 갈 거야? ”
“ 안 가. ”
“ 안 간다고? ”
“ 어. 너도 가지마. ”
박우진과 집이 근처라 둘이 등하교를 같이 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오늘도 같이 가려고 물었더니 당연히 안 간다는 식의 대답이 들려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럼 여기서 밤을 새?
“ 안 가면 여기 계속 있게? ”
“ 아니. 근처에 찜질방 있더라. 거기서 자려고. ”
“ 아… ”
“ 그리고 가려면 첫차까지 기다려야 되잖아. 너도 그냥 찜질방에서 자. ”
꽤 솔깃한 제안을 하는 박우진의 말에 잠시 생각을 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찜질방 마지막으로 갔던 게 3년 전인 것 같은데.
“ 야, 돈은 니가 내주냐? ”
“ 꺼져. ”
단호하게 말하는 박우진 등을 아프지 않게 퍽퍽 때리곤 자리에서 일어나 구석에 있던 제 짐을 챙겼다.
찜질방 갈 거면 빨리 가서 빨리 쉬어야지.
제 짐 옆에 있던 박우진의 가방도 같이 챙기고 앉아있는 박우진을 향해 까딱까딱 손짓했다.
“ 뭐야, 여주 지금 가게? ”
“ 아, 네. 저 그냥 우진이랑 찜질방에서 자려고요. ”
“ 둘이? ”
“ 오오, 둘이 뭐냐. ”
저를 발견한 지성선배의 물음에 답하자 옆에 있던 민현선배가 의심의 눈초리로 저와 박우진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자 누워있던 박지훈도 합세하여 저와 박우진을 흘겨보더니 이내 민현선배의 옆으로 다가가 귓속말로 뭐라뭐라 속닥였다.
아, 진짜 그런 거 아니라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박우진은 진짜 말도 안 되잖아.
제가 그런 거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자 원래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며 또 자기들끼리 속닥이는 민현선배와 박지훈을 보고 있자 다시 열이 오르는 기분이다.
근데 왜 박우진은 아무 말도 안 하는데.
박우진을 째려보자 저를 빤히 바라보더니 어깨 한 번 으쓱이고 마는 게 얄미워보여 입술을 삐죽였다.
“ 1절만 해라, 얘들아. ”
낄낄거리는 민현선배와 박지훈의 뒤로 간 지성선배가 머리를 한 번씩 툭툭 쳤다.
그리곤 임영민이 있는 쪽을 턱으로 슬쩍 가리키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제야 사태파악을 한 민현선배와 박지훈이 멋쩍은 듯 웃더니 잠이나 자야겠다며 다시 자리에 눕고 주점 안은 정적이 흘렀다.
언제까지 임영민과 이런 식으로 엮여야하는 건지 정말 불편하고 어색했다.
의식적으로 임영민이 있는 쪽을 쳐다보지 않으려 고개를 돌리곤 가방을 들고 박우진의 옆으로 가서 앉았다.
빨리 나가자.
“ 그럼 저희 갈게요. ”
박우진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저도 뒤따라 일어나 출구 쪽을 향하며 선배들에게 고개를 꾸벅였다.
이 어색한 공기에서 얼른 나가고 싶다.
오기 싫지만 내일 다시 올게요.
저희가 있는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누워 팔만 들어서 손을 흔들거리는 선배들과 애들을 보다 주점에서 나와 밖으로 올라갔다.
지금 가면 그래도 5시간 정도는 잘 수 있겠네.
“ 돈은 오빠가 내줄 테니까 내일 치킨 쏴라. ”
“ 오빠는 무슨, 세상에 오빠 다 뒤졌냐? ”
제가 퉁명스럽게 받아치자 박우진이 제 머리 위에 손을 턱 올려놓곤 한숨을 내쉬었다.
아마 오늘 계속 일하느라 쉬지도 못 하고 여기저기 불려다녔을 텐데.
“ 가서 후딱 씻고 자. 내일 또 일해야 되잖아. ”
“ 그래야지. 아, 진짜 존나 피곤하다. 뒤질 것 같아. ”
“ 엄살은. ”
“ 밴드 붙였네. 또 다치지 말고. ”
제 팔을 쳐다보며 얘기하는 박우진에 제가 다쳤던 것이 이제야 다시 생각이 났다.
그러고 보니까 고맙다는 말도 못 했네.
겉으론 무심한 것 같아도 항상 이렇게 뒤에서 저를 챙겨주는 박우진이 어쩐지 듬직하게 느껴졌다.
“ 야, 박우진. ”
“ 왜. ”
“ 넌 연애 안 해? ”
“ 그건 왜 물어봐. ”
“ 그냥 궁금하잖아. 너 여자친구 있는 거 한 번도 못 봤어. ”
제가 박우진을 알고 지낸 기간 동안 박우진이 연애를 하는 걸 정말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대학 들어오기 직전에 헤어졌다고 말했던 전여친 1명 이후로는 그냥 아예 여자 얘기를 잘 꺼내지 않아서 저도 딱히 신경을 쓰고 있진 않았다.
설마, 혹시… 뭐, 전여친을 못 잊어서. 이런 건 아니겠지?
“ 나도 연애 좀 하고 싶다. ”
“ 하면 되잖아. ”
“ 상대방은 나랑 연애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
“ 뭐야, 너 좋아하는 사람 있어? ”
“ 어. ”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박우진에 충격을 먹어 가던 길을 멈추고 우뚝 섰다.
뭐야, 그동안 나한테 그런 말 안 했잖아.
제가 멈춘 탓에 같이 멈춘 박우진이 제 표정을 한 번 쳐다보곤 작게 웃었다.
아니, 나는 웃을 기분이 아니라고. 와, 좀… 좀, 배신감 들어.
말은 안 했지만 제 생각을 읽고 있는 것 같은 박우진이 제 이마를 손끝으로 톡톡 두드렸다.
“ 너 지금 표정 완전 빙구야. ”
“ 아니, 왜 나한텐 말 안 했어? ”
“ 니가 안 물어봤잖아. ”
“ …… ”
너무 당연한 대답에 순간 말을 잃어 입만 벌린 채로 벙쪄있자 박우진이 제 어깨를 끌어당겨 저를 끌고 다시 길을 걸어갔다.
안 물어봐서 말을 안 했다는 박우진의 말이 너무 당연해서 어이가 없어 계속 헛웃음만 나왔다.
그래, 내가 안 물어보긴 했는데 그래도 먼저 말해줘야 되는 거 아니야?
“ 와, 배신감 쩐다. ”
“ 뭘 이런 걸로 배신감이 들어. ”
“ 누군데, 누구야. 박우진 마음 훔쳐간 거 누구야. ”
“ 시끄럽다. ”
말해줄 생각이 없는지 앞만 보며 길을 걷는 박우진이 얄미워 팔꿈치로 옆구리를 세게 툭 건드렸다.
아- 비명소리와 함께 저를 쳐다보는 박우진을 잔뜩 흘겨보곤 발걸음 속도를 올려 박우진보다 빨리 걷자 제 속도를 맞춰 박우진이 옆에 붙었다.
진짜 나는 임영민이랑 썸탈 때부터 비밀 안 만들고 다 말해줬는데, 치사하게.
“ 치사하다, 치사해. 안 궁금하니까 앞으로 말하지마. ”
“ 뭐야, 삐쳤냐. ”
“ 안 삐쳤어. ”
“ 기다려. 조만간 말해줄 테니까 궁금해도 조금만 참아. ”
“ 안 궁금하다니까? ”
“ 지금 얼굴에 완전 궁금해요, 써있다. ”
“ 웃기시네. ”
입을 삐죽이며 휙 고개를 돌리자 박우진이 웃으며 제 볼을 툭툭 건드렸다.
아니, 궁금하긴 한데… 아, 자존심 상해. 안 궁금하고 싶은데 안 궁금할 수가 없잖아.
떨어지라며 박우진을 밀어내자 일부러 더 가깝게 붙어오는 박우진 어깨를 퍽퍽 주먹으로 내리쳤다.
진짜 얄미운 새끼.
“ 잘 쉬었어? ”
“ 네, 선배는요? ”
“ 잘 쉬었을 것 같니. ”
찜질방에서 잔 다음 날, 점심시간에 맞춰 박우진과 주점으로 돌아가자 아직도 널부러져 있는 몇몇 선배들과 애들이 보였다.
그나마 멀쩡하게 살아있던 지성선배가 저희를 반겼지만 선배도 그닥 상태가 좋아보이진 않았다.
축제 2번 했다간 사람 다 죽겠네.
들고 왔던 가방을 한 쪽에 내려놓고 미처 다 못한 화장을 하려 파우치를 들고 빈 방을 들어갔는데,
쇼파에 앉아 핸드폰을 하고 있던 임영민과 마주치고 말았다.
2초간의 정적 후, 고개를 꾸벅 숙였다가 다시 나오려 몸을 트는데 저를 붙잡는 임영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 여주야, 잠깐만. ”
“ …네? ”
“ 잘 잤어? ”
“ 아, 네… ”
“ …우진이랑 둘이서 잔 거야? ”
머뭇거리며 물어보는 임영민의 눈을 피해 테이블만 빤히 쳐다보았다.
대체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뭘까.
“ 연락을 하고 싶었는데 니가 싫어할 것 같아서. ”
“ …… ”
“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우진이도 남자니까 어쨌든. ”
“ …… ”
“ 아, 그러니까 내 말은… ”
“ 선배. ”
“ 어? ”
“ 이제 선배가 신경쓰고 그럴 일 아니잖아요. ”
“ …… ”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잔뜩 횡설수설 거리는 임영민에게 선을 긋자 입술을 깨물고 저를 빤히 바라보는 게 느껴졌다.
지금 정리하고 있는데 대체 왜 이렇게 자꾸 거슬리게 만드는 거야, 왜.
주먹을 꽉 쥐고 가만히 서있자 자리에서 일어나 임영민이 제 쪽으로 걸어왔다.
머리 속에선 얼른 발을 돌려 나가야한다는 생각이 잔뜩 차올랐지만 막상 제 발은 떨어지지 않고 임영민이 제게 가까워지는 만큼 더 굳는 것 같았다.
“ 내가 이제와서 이러는 거 진짜 웃긴 거 알아. ”
“ …… ”
“ 너에 대한 마음이 처음이랑 달라서 나도 내가 마음이 변했구나, 싶었어. ”
“ …… ”
“ 그래서 나 편하자고 너랑 헤어진 거잖아. ”
“ …… ”
“ 근데. ”
“ …… ”
“ 너랑 헤어지고 하나도 안 편했어. ”
“ …… ”
“ 니가 나 피했던 2주동안 무슨 생각을 했냐면. ”
“ …… ”
“ 진짜 내가 개새끼인 거 아는데. ”
“ …… ”
“ 그냥 니가 너무 보고 싶었어. ”
“ 그만해요. ”
한 마디만 더 들으면 당장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았다.
지금 임영민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볼 자신이 없어 고개를 푹 숙이고 제 발끝만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가슴이 미친듯이 뛰고, 손이 떨리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렇게 빨리 후회할 거면 왜 헤어지자고 그랬는데.
숨이 턱 막히는 기분에 그대로 뒤를 돌아 방에서 나와 화장실로 곧장 향했다.
임영민은 저를 붙잡지 않았고 덕분에 화장실로 들어오자마자 눈물을 참느라 일그러진 얼굴을 맘편히 들 수 있었다.
그냥 니가 너무 보고 싶었어.
귀에서 맴도는 임영민의 말과 목소리가 더욱 저를 괴롭게 옥죄어왔다.
그렇게 잊을 거라고 장담을 했으면서 임영민의 말 한 마디에 바로 무너지는 제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멍청하게 느껴졌다.
제일 답답했던 건 임영민을 피했던 지난 2주간, 사실은 저도 임영민이 보고 싶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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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또 금방 글을 들고 왔습니다 ^.^
근데 제가 사정이 생겨서 다음편은 아마 이번주 주말쯤에나 들고 올 것 같아요 ㅠㅠ
그래도 잘 기다려주실 거라고 믿습니다!
이번 편은 뭔가 정말 본격적인 러브라인 신호탄을 빵- 쏜 것 같은 그런 편이에요.
이야기를 잘 풀고 싶었는데 제 글솜씨의 한계가 여기까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래도 많이 좋아해주시는 독자님들 덕분에 글을 쓸 맛이 납니다 ㅠ.ㅠ
정말 다들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그래서 이번화부터 암호닉을 받을 생각입니다.
신청하신 암호닉은 나중에 한번에 정리해서 확인차 올려드릴 예정입니다.
댓글에 암호닉 신청해주세요!
그리고 소감도 같이 써주셨으면 좋겠어요 ㅠ.ㅠ
제 글이 독자님들한테 어떻게 느껴지고 있는지 참 많이 궁금하답니다.
글을 딱 읽고 드는 생각 아무렇게나 적어주셔도 감사해요!
제가 앞으로 글을 쓸 때 많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항상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