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어쩌면 생각보다 많이 06월 의도치 않게 저번 주에 있었던 너와의 약속을 오늘로 미루게 되었다. 토요일 저녁, 뜬금없이 잡힌 가족 스케줄을 피할 방도가 없어 미안한 마음에 네게 전화를 걸자 너는 괜찮다며 대신 조건 하나를 더 붙여 오늘 만나자고 했다. 사람 설레게 말이야. 선물부터 사고 저녁을 먹기로 한 우리는 시내 여기저기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사촌동생 나이랑 성별은?" "아, 열여섯에다 여자애요." "근데 되게 친한가보다. 사촌 생일선물도 챙기고." "그것도 그렇지만 동생이 작년 제 생일날 선물을 사 줘가지고." 네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넌 생일이 언제야?" "7월 21일이요. 챙겨주게요?" 웃으며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로 묻는 네가 그저 귀여웠다. "그래, 챙겨줄게." 뭐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손목시계로 결정했다. 화장품을 사 주자니 너무 모험이고, 다른 악세사리를 사 주자니 가격이 너무 극과 극이어서. 마침 주변에 딱 손목시계만 파는 가게가 있어 들어가 이것저것 살펴보던 중, 유난히도 내 눈에 들어오는 시계가 하나 있어 그걸 빤히 탐구하는(?) 중이었다. "누나, 이런 건 어때요?" "예쁘네. 괜찮은데?" 네가 가리킨 시계는 무난하면서도 예뻤다. 아 표현하자니 어려운데, 그냥 평범한 듯 예뻤다고. "뭐 도와드릴까요?" 들리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어느샌가 직원 분이 앞에 서 계셨고, 네가 가리킨 시계에 대해 질문하기도 전에 직원 분이 먼저 말을 가로챘다. "커플 시계로는 이게 요즘 학생들 사이에서 잘 나가요." "...네? 아..." 상상조차 못 했던 그 멘트에 너와 나는 순간 당황했고, 나보다 먼저 정신을 차린 네가 우리는 커플이 아니라며 해명했다. 뭔가, 좀. 묘했다. 겨우 시계를 다 골랐다. 뭐 먹을래? 라고 물으니 돈까스가 먹고 싶대서 돈까스 집에 와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람이 많은 주말 저녁 치고는 가게 안은 한산했다. 아마도 이제 여름이라 더워서 그런가 봐. 그래도 앞에 사람이 있는데 휴대폰만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 너와 대화를 시작했다. 이제는 너에게 말을 거는 게 좀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 "너네 학교는 어때?" 애초에 최민기 일당은 나랑은 다른 학교라 솔직히 좀 궁금했다. 최민기는 학교 얘기 잘 안 하니까. "솔직히 이 학교 좀 이상해요. 안 그래도 누적벌점제인데 교내 연애 발각에 벌점 5점이 말이 돼요?" "오, 괜찮은데? 우리 학교는 커플이 너무 많아서 문제더만." "에이, 그거야 누나가 남자친구 없어서 그렇게 느끼는 거죠." "...^-^" "...죄송합니다." 아무 말 없이 입술을 꾹 다물고 억지웃음을 지어보이자 눈치를 살살 보더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사과하는 너였다. "아무렴, 그래야지. 너는 애인 있어?" "음." 내 질문이 그렇게 어려웠나? 한창 네가 답을 고르는 사이에 식탁 위로 돈까스가 올라왔고, 그 고기를 썰며 네가 말했다.
"그래서 강동호가 제시한 그 조건이 뭔데?" "사촌동생 생일선물 좀 골라달라던데?" 6월이면 더위는 슬슬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다. 내가 너와의 약속을 저녁으로 잡은 것도 그 더위 때문이었다. "야, 나 그냥 깔끔하게 청바지에 티 입을까?" 암만 봐도 나 오늘 좀 안 예쁜 것 같아. 현관 쪽의 전신거울 앞에 서서 원피스를 입은 내 모습을 이리저리 둘러보다 민기에게 말했다. "너 지금 나랑 장난하냐? 아까 청바지 마음에 안 든다고 갈아입은 거잖아." "(무시) 아 진짜 뭐 입지?" "적당히 좀 해라 제발. (짜증)" 미안한데 동생, 누나 지금 매우 진지해. 정말로 뭘 입어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민기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하더라. "저번에 그 치마 입어. 내가 예쁘다고 했던 거." 아, 그게 있었지. 고맙다고 말하며 다시 옷을 갈아입으러 방으로 향하는데, "참 요란하다. 누가 보면 남자친구 만나러 가는 줄." "......" 최민기의 말에 발걸음이 멈췄다. "뭐냐. 옷 안 갈아입어?" "진짜로 그래 보여?" "갑자기 뭔 소리야." "남자친구 만나러 가는 것처럼 보이냐고." "아. 그거 물은 거였냐." 근데 나 왜 멈췄지. 나 이거 왜 물어봤지. 최민기가 뭐라고 대답하든,
"어. 진짜로 그래 보여." 그게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이지? "이거 저번에 그 옷이네요?" 맞다. 그때 너도 이 옷 입은 내가 예쁘다고 했었지. "오, 어떻게 알았어?" 그래도 네가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어떻게 알았냐며 묻자 너는 입꼬리를 올려 웃더니,
"그날 우주 누나가 너무 예뻤거든요." 그렇게 대답하더라. "......" 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누나?" "야, 너는..." "네?" "아니야, 아무것도." 너 이렇게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기 있냐, 정말로.
"없는데,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요." "아 진짜?" 솔직히 조금 놀랐다. 다만 어느 대목에서 놀랐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애인이 없다는 것에 놀랐는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랐는지, 혹은 둘 다였는지. "그 사람은 좋겠네."
"...왜 그렇게 생각해요?" 깊은 생각 없이 내뱉은 내 말을 너는 꽤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깊지 않은 그 생각들로 대답했다. "네가 좋은 사람이니까." 근데 그 사람 좀 많이 부럽다. 너같은 애가 좋아해준다니. "맛있게 잘 먹었어요. 감사합니다." 어차피 같은 방향이기도 하고 먹은 걸 소화도 시킬 겸 집으로 같이 걸어가는 중이었다. 여름이라 그런지, 여덟 시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어둡지 않더라. "네가 해준 게 있는데 뭘." 다시 한 번 느끼는 거지만 너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사소한 것도 챙겨주고, 누군가와 편하게 대화하는 법을 알고, 작은 것이라도 받은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그런 사람. 갈라져야 할 타이밍이었다. 그때의 그 우리집 앞 버스정류장이었던 것이다. 솔직히 조금 아쉬웠다. 투닥대며 친하게 지내는 민기와는 다른 조금 느낌으로 네가 편해서, 더 같이 있고 싶었다. "아 맞다, 이거." 네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어라, 이거. 아까 내가 뚫어져라 보고 있던 그 시계. 정리되지 않은 의문들이 뒤엉켰다.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는 내 손을 잡아들어 시계를 쥐어준 너는 날 보며 웃었다.
"누나랑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제 선물." 아 뭐야, 이건 너무 뜬금없잖아. 근데 기분은 좋네. 이유모를 웃음이 터져나와 널 바라보며 웃자 네가 한마디 더 덧붙이더라. "사실 선물이라기보다는 앞으로도 저랑 친하게 지내달라는 일종의 뇌물이죠." 근데 있잖아, "왜, 내가 그렇게 좋아?" 내 질문은 장난이었는데 "네. 저는 누나 좋아해요." 네 대답이 장난인지는 잘 모르겠어.
너의 일기 마지막 줄 |
늦어서 죄송합니다 이번엔 파일을 날려먹었어요 ㅎㅎ... 전부 다시 쓰려니 예전에 어떻게 썼었는지 생각이 잘 안ㄴ 아무튼 오랜만입니다 그 더욱 죄송하지만 연재 주기도 조금 길어질 것 같아요 아무래도 다시 쓰는 데 시간이 걸려서 PS1. 암호닉은 따로 정리해서 간직하고 있습니다! PS2. 오늘 부제 '어쩌면 생각보다 많이' 뒤에 생략된 단어는 바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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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Awesome Day ㅡ생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