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 - 아카시아 (밑에 브금 또 있어서 반복 아니에요~)
특별편 ; 시한부 (1)
(특별편 3,4와 이어집니다.)
"두 달 남짓입니다."
"네?"
"너무 빠르게 전이가 됐어요. 이미 암세포가 온 몸으로 퍼져서 손을 쓸 수가 없습니다."
"그게 무슨...아니...하.....아 지금 제가....아......"
"......죄송합니다. 빨리 준비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몇 달째 정말 바빴다. 대학은 대학대로, 영애에 맞는 스케줄은 스케줄대로 정말 몸이 10개라도 모자랄 정도로 바쁘게 지냈다.
그래서 단 1%도 의심하지 않았다. 이상하리만큼 살이 빠지고, 피곤하고, 한 번 잠에 들면 쉽게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도.
그런데 오늘 갑자기 피를 토했다.
그것도 엄청 많이.
무서웠다. 너무 무서웠다.
"매미야. 화장실에 있어? 거울보러 간댔으면서 왜 이렇게 안 나와! 나 들어간..."
"들어오지마!"
잠깐이면 된다고, 거울 좀 보고 온다고 들어온 화장실에서 20분을 버텼으니, 엑소가 날 찾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들에게는 알리면 안 될 것 같아서 문을 잠그려하는데 그 때 찬열이가 들어왔다.
피범벅이 된 변기와 타일, 그리고 내 얼굴과 손을 얼빠진 얼굴로 보면서.
"....오징어. 너 이게 지금 무슨 일이야."
놀란 찬열이 내 어깨를 잡으면서 물었다. 그의 물음에 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도 무슨 일인지 파악이 안 됐으니까.
아무 말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는 나를 그가 꽉 안았다.
"병원 가자."
뒤에 잡혀있던 수많은 스케줄이 모두 취소되고, 난 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간단한 문진에 이어 수많은 주사바늘들이 내 몸을 몇 번 오가더니 의사선생님이 나를 앉혀놓고 심각하게 말했다.
혈액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라고. 암세포가 이미 너무 많은 기관으로 전이되서 방도가 없다고. 항암치료도 아무런 가망이 없다고.
"어지럽거나 두통이 심하거나 속이 메스껍거나 이런 증세가 전에 없었습니까?"
"....제가 요새 워낙 바빠서..바쁜 일 때문에 몸이 힘들어서 그런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정말 바보같다."
"많이 힘드실겁니다."
".....많이 아픈가요?"
"아마 앞으로 고통이 엄청 심해지실 겁니다. 진통제가 워낙 쎈 것이라서 어느정도는 커버하겠지만 그래도 장담은 못합니다."
"....선생님 제가 올해로 스물 다섯이거든요? 아직 안 해본 것도, 못해본 것도 너무 많은데...하고 싶은 건 더 많은데....그런데..."
"..........."
"하다못해...하다못해 1년이면...아니 6개월이라도 되면....버틸 수 있는데...두 달이라니요? 두 달이 말이..말이 되요?"
"......죄송합니다. 도리가 없네요."
그렇게 한참을 의사선생님 앞에 앉아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내뱉는지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하면서.
진료실을 나오는데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내가 나오는 걸 본 찬열이 놀라서 내게 달려온다.
"괜찮아?"
찬열의 눈이 빨개져 있었다. 내 진단 결과를 들은 것 같았다. 하긴. 영애가 아픈거니까. 청와대에서 바로 파악했겠지.
그를 보고 있으니 나머지 엑소멤버들이 생각났다. 아빠의 미국순방에 맞춰서 찬열이를 제외한 11명이 모두 미국으로 떠났다.
내일이 돌아오는 날이었는데, 정말 미친듯이 보고 싶었다. 나머지 멤버들도 그리고 내가 너무 사랑하는 변백현도.
".....보고싶어."
"응?"
"......변백현...백현이 보고싶어."
"........"
백현이 보고 싶다는 내 말에 그의 눈이 흔들린다. 그러더니 나를 일으켜 돌아가자고 말한다.
내일 오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
딱 두 달치 약을 받아오고 침대에 누웠는데 두고 간 핸드폰에 부재중 전화가 30통이 넘게 찍혀있다.
백현이다. 카톡도 200개가 넘었다. 떨어져 있는 일주일동안 틈틈히 계속 연락을 해오다가 갑자기 5시간동안이나 연락이 안 되니 놀란 모양이었다.
무심코 통화버튼을 누르려는데 문득, 내가 떠나고 난 후에 남겨질 백현이가 너무 걱정됐다.
정말 바보같이 나 하나만 바라보는 아이다.
뭘 하든, 어디 있든, 언제든 모든 것의 중심이 나인 아이다.
그런 남자가, 내가 없이, 이 세상을 잘 살아갈 수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한참을 망설이고 있는데 백현이한테 전화가 왔다.
받지 않았다. 아니 받지 못했다.
전화가 길게 울리다가 끊기더니 이내 카톡이 왔다.
'카톡 읽었네? 너 어디야? 왜 전화 안 받아? 어?'
'왜 박찬열도 연락이 안 돼? 진짜 무슨 일 있어?'
다시 전화가 울렸다. 이제는 내가 버티지 못할 것 같아서,
그의 목소리가 너무 듣고 싶어서,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오징어 너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줄 알아? 왜 전화를 안 받아!"
"....미안. 핸드폰을 놓고 가서."
".....너 울었어?"
"...아니, 그냥 많이 피곤해서."
".....정말?"
"정말이지 그럼. 그냥...몸이 좀 힘든가봐."
"....그럼 빨리 누워서 자. 에효. 내가 옆에서 자장가 불러줘야되는데.."
"......백현아."
"왜? 우리 자기?"
".....보고싶다."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더 미어졌다.
목소리만 들어도 설레고, 가슴이 뛰고, 입이 귀에 걸리고, 세상이 내 것인마냥 이렇게 설레는데
이런 그의 달콤한 목소리도 두 달 후에는 들을 수 없다.
"나도 자기 엄청 보고싶어."
"........."
"나 기다리느라 힘드니까 내가 한국가서 엄청 좋은 거 선물해주려고!"
".....몇 시에 와?"
"곧 떠나니까 내일 아침이면 도착할거야. 아무 걱정하지말고 딱 기다리고 있어. 알겠지?"
"........빨리 와."
"알겠어. 얼른 슝슝 날아갈게."
".......사랑해. 정말 많이."
"나도 많이 사랑해."
그가 남긴 '사랑해' 라는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돈다.
매일매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매일매일 그의 얼굴을 보고, 그를 생각하고, 그를 위해 옷을 입고, 그를 위해 머리를 만지고, 그를 위해 웃고.
그렇게 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괜찮아?"
노크 소리와 함께 찬열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까보다 눈이 더 빨갛다. 또 운 모양이었다.
많이 힘들어하는 찬열이를 보니, 백현이가 더 걱정됐다.
옆에 있는 찬열이도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그는 얼마나 더 힘들어하고, 아파할지.
"...고목나무."
"왜 우리 매미."
"백현이한테는....말하지 말아줘."
"........"
"내가...직접 말하고 싶어."
*.....
".....백현아."
"굿모닝."
눈을 떠 보니 내 옆에 백현이 누워있었다. 내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그를 보자마자 눈물이 차올랐다. 그런 모습을 보이기 싫어 백현이를 꼭 껴안았다.
그 넓은 품에 폭 안겨 있으니 내가 아프다는 것도,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도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루 종일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
백현이가 손을 쓴건지, 찬열이가 내 상태를 나머지 멤버들한테 말하고 있는건지 오늘만큼은 그 누구도 내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자 이렇게 꼭 안겨있었으니까 이제 나가자."
"어딜?"
"내가 선물 준다고 했던거 기억 안 나?"
"여기서 주면 안 돼?"
"안 돼. 30분까지 나와! 1층에서 기다릴게."
"....치이."
"예쁘게 하고 나와라~"
그에게 더 안겨있고 싶어서 그의 품에 파고 들었는데, 그는 웃으면서 나를 떼어놓고 1층에서 기다린다며 내 방을 나섰다.
예쁘게 하고 오란 그의 말이 걸려서 옷장에 있는 옷들을 다 꺼내 고르고 또 고르고, 화장도 어느 때보다 신경썼다.
그에게 더 예쁜 모습으로, 더 환한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그의 앞에서까지 아파보이고 싶지 않았다.
*....
"꼭 이렇게 눈 가리고 가야 돼?"
"응! 이제 다 왔어. 준비됐어?"
"궁금해! 빨리 보여줘!"
"짜잔~"
내 눈을 가리고 있던 백현의 손이 사라지자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예쁜 음식들로 채워져있는 테이블이 있었다.
촛불에 와인에 테이블 옆에 있는 피아노에
너무 예뻐서 아무말도 안 나오는 서울의 야경까지.
보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차오르는 곳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예쁘지? 나 신경 많이 썼다~"
"....너무, 너무 예쁘다 정말."
"앉으실까요, 아가씨?"
백현이 장난스레 웃으며 테이블의 의자를 빼줬다.
그런 그가 귀여워서 나도 활짝 웃으면서 의자에 앉았다.
전부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가득 채워져있었다.
그냥 무심코 흘렸던 메뉴들인데 그는 그걸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이걸 다 기억하고 있었어?"
"응. 나 예쁘지?"
"예뻐. 너무 예뻐서 눈물 날 정도로 예뻐."
내 말에 그가 아이처럼 환하게 웃는다. 세상을 다 가진 아이처럼.
"그러고보니까 너 나한테 아가씨라고 불렀었네!"
"그럼 경호원이 영애한테 처음부터 이름 부르냐~"
"아 맞다! 너 그거 생각나? 내가 호신술 배운다고 난리 치다가 내가 네 위로 엎어진거?"
"그걸 어떻게 까먹냐? 나 그 때 진짜 심장 터지는 줄 알았다고."
"아~말 안 하려고 그랬는데...사실 나도 좀 떨렸어 그 때."
"조오옴?"
".....많이."
"너 그건 생각 안 나? 너 우리 다 속이고 클럽행사가서 화장실 앞...."
"쉿!!!!그거 흑역사야 흑역사! 잊어! 잊으라고!"
"그게 벌써 3년 전이다."
그와 마주앉아 이런저런 추억들을 꺼내다 보니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열 둘. 처음 본 나를 지켜주겠다며 강아지를 쫓아내고, 내게 프리지아를 건네던 수줍은 소년을 만나고,
스물 둘. 청와대에 들어와 남자가 된 그 소년을 다시 만났고,
스물 셋. 이 남자를 미친듯이 사랑하게 되었고,
스물 다섯. 사랑하는 이 남자를 혼자 남겨두게 되었다.
신나게 하하호호 웃다가 갑자기 아련해진 내가 신경쓰였는지 그가 나이프를 내려놓고 내 손을 잡는다.
그런 그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환하게 웃어주었다.
언젠가는 이 식사가, 지금 이 식당 옥상이, 이 분위기가, 그리고 지금 내 모습이
내가 사랑하는 이 남자의 가장 소중한 추억의 한 조각이 되기를 바라면서.
"흠흠. 밥도 다 먹었으니까 이제 선물 줘야지."
"선물? 이게 선물 아니었어? 난 이걸로도 충분히 고마운데..."
"에이~이런걸로 만족하면 안 되지!"
백현이 특유의 그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으며 옆에 있는 피아노로 다가갔다.
"잘 들어. 한 마디 한 마디가 진심이야."
아까 그 능글거림은 어디간 건지, 누구보다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고는 피아노 앞에 앉아 노래를 시작했다.
Ra.D - I'm in Love (재생 눌러줘요!)
"사실은 첨봤을 때 부터
그댈 좋아했다고 말하기가 내겐 참 어려웠던거죠
먼저 다가서지 않으면 그댈 놓칠까봐
편지를 쓰고 또 작은 선물을 준비했죠
깊어지면 상처뿐일거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앞선건 사실이지만
간절한 맘으로
기도하고 바랬던 사람이
그대라고 난 믿어요
Ah~I'm in love
Ah~I'm fall in love
어쩔 수 없네요
내 맘을 숨기기엔
그대는 너무 아름답죠
I though I never gonna fall in love
But I'm in love
Cuz I wanna love you baby
사실은 처음 봤을 때 부터
내 맘 속 으로부터 그댄 파도처럼 밀려들어
온통 하루종일 그대만 떠올라
I can be a good lover
wanna be a 네잎클로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 줄게요
그댄 gotta believe me
make have gonna leave me
약속따윈 안 할래요
그냥 보여줄게요
Ah~I'm in love, with you my baby
Ah~I'm fall in love
어쩔 수 없네요
내 맘을 숨기기엔
그대는 너무 아름답죠
Ah~I'm in love, I'm so deep in love
Ah~I'm fall in love
어쩔수가 없네요
내 맘을 숨기기엔
그대는 너무 아름답죠
그대는 너무 아름답죠"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그가 너무 멋있어서 멍하니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귓가로 들려오는 그 가사가 그의 진심이라는 말에 마음이 먹먹해졌다.
노래를 마치고 나에게 다가오는 그를 껴안으려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면서 그에게 다가가는데,
그가 내 두 손을 꼭 잡았다.
"나도 알아. 요즘 시대에 우리 나이에 이런 얘기하는거 엄청 빠르다는거."
"........"
그의 첫마디를 들었을 때, 진심으로 아니기를 바랐다. 내가 예상하고 있는 그 말이 아니기를 정말 진심으로 바랐다.
나도, 나도 매일같이 상상했다.
그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그를 닮은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검은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그렇게 예쁘게,
힘든 일이 있어도 같이 손잡고 걸어가면서, 그렇게 살아가는 상상을 매일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두 달. 아니 어쩌면 그것보다 더 짧은 시간 밖에는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정말 신중하게, 정말 많이 생각했어. 내가 순간의 감정에 치우친 것 아닌지, 내가 이런 결정을 내려서 너한테 해가 되는 건 없는지."
"........."
"근데 결론은 하나더라. 13년 전 처음 만났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내 인생의 중심은 너였어."
"........"
"너랑 있을 때 가장 행복하고, 너 우는 거 보면 미치겠고, 너 아프면 가슴이 미어지고, 너와 관련된 것들이 가장 소중하고."
"........."
"너랑 매일같이 같은 침대에서 아침을 맞이하고, 너 닮은 아이, 나 닮은 아이 낳아서 예쁘게 살고 싶고."
".........."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주고 싶고."
"..........."
"그러니까 그럴 기회를 나한테 줄래요? 13년 전에 했던 그 약속처럼, 평생을 당신 옆에서, 당신만 바라보면서 당신만 지키면서 살아갈 그 기회를 나한테 줄래요?"
"............"
"저와...결혼해 주시겠습니까?"
그가 한 쪽 무릎을 꿇고 너무나도 예쁜 반지를 내밀었다.
그의 청혼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 누구보다 행복한 여자가 된 이 순간에
나에게 그 큰 행복을 안겨준 이 남자에게 난 그 누구보다 잔인한 여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
떨리는 마음을 겨우 숨기고 있는,
나와의 핑크빛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이 남자에게,
난 대답 대신에
".....현아."
".....응?"
".......나 죽어."
"......."
".......나 백혈병이래. 딱...딱 두 달 남았대."
이런 말 밖에는 할 수 없었으니까.
내사랑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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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어 냥냥 모카 햇살 소희 몬스터U 송이 낄룩이 키드오빚쟁빚쟁 유자차 가글 프라다 매미
갑자기 시한부에 관한 이야기가 너무 쓰고 싶어서 데려왔어요~
이걸로 2~3편 정도 이어질 것 같습니다! 특별 번외편이랄까?ㅎㅎㅎㅎㅎ
신혼부부썰은 써 놨는데 일단 이것부터 진행하고 올릴게요!
늘 댓글 감사합니다! 여러분이 사랑이에요♥♥♥♥♥♥♥♥♥♥♥♥♥♥♥♥♥♥♥♥♥♥♥♥♥♥♥♥♥♥
일요일에 만나요 내 사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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