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상으로 수정된 것 없습니다! 오타가 있어서 수정했어요 #6. 특별함이란 08월 “아, 진짜 제발 누나. 앞으로 백 일 동안 입 닫고 살게.” “......” 내가 널 어쩌면 좋을까 정말.
“진짜, 진짜로 오늘 딱 하루만. 어?” “......” 최민기가 왜 저러냐고? 다름이 아니라 오늘 부모님께서 두 분 다 출장을 가신 터라 나와 둘이 집에 남아있는데, 이 망할 동생께서 친구들을 또 부르겠단다. 딱 3월 그때처럼 말이다. 아니, 부르는 거 좋지. 좋은데. 나 수능 백 일도 채 안 남았단 말이야. “어차피 곧 학원 갈 거잖아. 진짜 조용히 놀게. 어? 어?” “네 마음대로 해...” 아, 졌다 졌어. 내 팔을 잡고 붕붕 흔드는 덕분에 팔이 빠질 것만 같았다. 도무지 이 녀석은 이길 수가 없다. “아싸!” ...난 학원이나 가야지. 아, 방학에도 하루종일 학원에 있어야 하는 고삼이란 참. ㅡ 뭐, 그래서 학원도 끝났는데 집에도 못 들어가고 밖에 있을 거다? “응 뭐 그런 셈... 사실 독서실 가도 되는데 뭔가 오늘은 가기가 싫어가지고.” 학원을 마치고, 가 봤자 시끄러울 집에 딱히 들어가고 싶지가 않아 거울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니까 나랑 조금만 통화하자 거울아. ㅡ 야 잘됐다. 그럼 나랑 영화 볼래? “엥? 지금 밤 열한 신데?” ㅡ 심야로 보면 되지. 나 보고 싶은 거 있었는데 학원에 치여서 못 봤다. 같이 보자. “이따 집엔 어떻게 가려고?” ㅡ 오빠 알바 마칠 시간이라 데리러 오라 하면 됨. 너도 동생 불러. "그럴까..." 사실 이미 한 90%는 넘어갔다. 곧 있으면 정말로 자소서 넣고 면접에 수능 준비하느라 바쁠텐데. ㅡ 내가 방금 봤는데 30분 뒤에 하는 거 하나 있다. 너 돈 있지? "있어. 영화관 앞으로 갈게." "나 이거 진짜 보고 싶었다고 완전." '애프터 첫사랑'. 팜플렛을 집어든 거울이가 흥분해서는 속사포처럼 말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꿈이 대중문화 방면인 녀석이라 그런지, 참. 영화는 줄거리 빼고 다 꿰고 있는 것 같다. 100분을 조금 넘는 로맨스 영화. 거울이 말로는 본 사람들이 말하기를, 엄청 슬프다고 했다고 한다. 눈물이 많은 내가 펑펑 울 거라면서. 비록 내가 그 영화에 관한 건 모르지만, 거울이의 말 중 틀린 말은 없었다. 나는 눈물이 많았다. 거울이의 말에 지레 겁을 먹고 길거리에서 받았던 휴지를 손에 꼭 쥐고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다행인 건, 시간이 시간인지라 사람이 별로 없었다. 울어도 덜 쪽팔리겠네. 사실 이미 울 준비를 마친 나였다. "너 동생한테 얘기 했어? 이따 데리러 오라고?" "카톡은 넣어놨는데, 글쎄 잘 모르겠다. 이따 전화하지 뭐." 아직 광고 중, 영화를 보면서 뭔가를 잘 먹는 편은 아니라 그냥 요 밑 편의점에서 산 음료수통에 빨대를 꽂으며 작은 목소리로 대화했다. "아 근데 우리 빼고 다 커플이야 왜." "심야잖아. 심야 영화." "어어, 시작한다." 탁, 조명이 꺼졌다. 화면에 집중했다. "너 눈 완전 빨개졌다." 그리고 거울이의 말처럼 나는 아주 펑펑 울었다. 영화가 너무 슬퍼서. 휴지로 눈물 자국을 닦아내고 영화관 화장실에서 세수를 해도 운 흔적은 지워지지가 않더라. 그나저나 최민기 얘는 내 카톡을 읽지도 않았다. 대체 뭘 하길래 싶어 전화를 걸자 한참동안 신호음이 울리다가 끊기더니, ㅡ 여보세요. "...동호?" 들려오는 건 다름아닌 네 목소리였다. ㅡ 네, 지금 최민기 자요. "아... 그래?" 하긴, 걘 잠들면 업어가도 모를 애니까. 민기 뿐만이 아니라 너 또한 잠에 취해 있는 듯 했다.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네 목소리가 조금 많이 가라앉아 있었거든. ㅡ 근데 누나 어디에요? 집 안 오고. "나 지금 영화관... 지금 집 갈 거야." 별 수 있나, 깨운다고 일어나지도 않을 최민기인데. 혼자 가야지. "너 설마 혼자 가려고? 최우주 미쳤어? 지금 시간이 몇 신데 혼자 가." 옆에서 가만히 내가 통화하는 걸 기다리던 거울이가 더 난리다. 야 조용히 좀 해. 내가 말했지만 이미 네가 다 들은 듯 했다. ㅡ ...제가 갈게요 누나. "어? 아니 안 그래도," ㅡ 닭갈비 집 있는 그 건물 맞죠? 지금 나가요. 네가 귀찮으니까. 내가 뭐라고 이 새벽에 자고 있는 너를 불러내. 그런 생각으로 안 그래도 된다 말하려는 순간 너는 내 위치를 확인하더니 그냥 전화를 끊어버리더라. 끊긴 전화기를 귀에서 떼자마자 거울이의 잔소리 폭탄이 날아왔다. 네가 제정신이냐, 동생이 못 오면 나한테 같이 가자고 얘기하면 되는 거 아니냐, 내가 영화 보자고 끌고 나왔는데 네가 이러면 내가 미안해지는 거 알긴 하냐, 넌 생각이 있긴 한 거ㄴ, "아 잔소리 그만 좀 해. 아는 애 오기로 했어." "...그럼 말고." 너보다는 거울이의 오빠가 먼저 왔지만 거울이는 한사코 나를 혼자 둘 수 없다며 네가 올 때까지 셋이서 기다렸다. 시야에 네가 들어찬 순간, 거울이가 나를 툭툭 치며 '믿어도 되는 애야?'라 물었고, 나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며 그 애와 그 애의 오빠에게 인사를 건네고는 네게로 다가갔다. "아, 친구랑 영화 본 거에요?" "그럼 내가 누구랑 봐." "하긴." "...하긴? 너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에이, 그럴 리가요 기분 탓." 너와 사소한 말장난을 치며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붉어진 눈시울이 쪽팔리기도 했고, 못나 보일까 시선을 피하며 걷자 너는 뭔가 이상함을 눈치챘는지 멈춰서서는 "누나, 잠시 저 좀 봐봐요." 하더라. 그 말에도 차마 내가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자 너는 조심스레 네 몸을 숙여 나를 올려다보며 눈을 맞췄었지.
"...울었어요?" 그러고는 찌푸려지는 네 표정. "아니 그게... 영화가 너무 슬퍼서..." 처음 보는 네 표정에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만 같아서 사실대로 얘기했더니 아, 전 또. 라며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더라. "어떤 거 봤는데요?" "애프터 첫사랑." "로맨스?" "응. 미워할수도 좋아할수도 없는 첫사랑 얘기." "재밌었어요?" "완전. 근데 마지막이 너무 슬펐어." 내가 부담되지 않게 차근차근 하나씩 질문을 던지는 네게 나는 신이 나서 대답했다. "다음에 꼭 봐야겠네요. 재밌다고 하니까." 그렇게 한참을 걸으며 이야기하다가 문득 내 눈에 네 옷차림이 들어왔다. 누가 봐도 잠옷으로 보이는 후줄근한 트레이닝복. 아, 내가 괜히 네 잠을 깨웠고 또 귀찮게 했구나. 그 생각이 들자마자 나는 네게 사과를 건넸다. "미안해." "갑자기 뭐가요?" "너 귀찮게 한 것 같아서." 괜찮은데. 그 말과 함께 너는 웃어보였지만 그래도 내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 "그래도, 잘 자고 있는 널 내가 깨워서 밖으로 불러낸 거잖아." "...누나." 돌연 네가 걸음을 멈췄다. 네 표정에서 웃음기는 사라지고 없었다.
"제가 원해서 나온 거에요. 누나 보고 싶어서. 데리러 가고 싶어서." "...어?" "그러니까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 말을 하는 네 표정 역시, 내게는 초면이었다. 너는 진심으로 속상해하고 있었다. 내가 멍청했다. 바보같이 너의 마음은 알지도 못한 채 내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네가 받지 않을 사과를 억지로 건넨 거였다. "자꾸 미안해하니까 기분이 좀, 네, 그래요." 순식간에 분위기가 무거워졌다. 네가 고개를 돌렸다. "아..., 나는." 일부러 그랬던 게 아냐. 뒷말을 꺼내기도 전에 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알잖아요." 너는 돌렸던 고개를 되돌려 날 바라봤고, 그 순간 눈이 마주쳤다. 차마 먼저 시선을 돌릴 생각을 하지 못한 채 나는 어둠 속에서 너의 눈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숨을 고르고 고르다가 네가 입을 열었다. "...제가 누나 좋아하는 거, 이미 알고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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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일기 마지막 줄 |
동호랑 심야영화 보는 거 아닙니다 네 ㅎㅎ 본의아니게 많은 분들을 속였을 것 같아요 죄송했습니다 앗 그리고 동호 움짤 준 독방 랑들 사랑합니다 ❤ PS. 애프터 첫사랑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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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별 거 없는 하루 ㅡ인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