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상적 남사친들
02. 일상은
*
밀린 드라마를 몰아서 본다고 이른 아침이 다되어서야 무거운 눈꺼풀을 붙인 탓에 밖이 어스름해지고 나서야 침대에서 늘어져 있던 몸을 일으켰다. 손을 더듬어 찾은 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하자, 6:17이라는 숫자가 나타났다. 푹 잤다는 생각 뒤에 황금같은 토요일이 벌써 지나갔다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그냥 이렇게 된거 내일 아침까지 더 잘까, 조금 더 잘 수 있을거 같은데. 폰을 옆으로 내려놓으며 다시 침대로 몸을 뉘였다.
-꼬르륵. 하지만 이내 시끄럽게 요동치는 배꼽시계소리에 다시 눈을 떴다. 배고프다.. 집에 먹을 것도 없는데, 편의점이라도 갔다와야하나. 입고 잔 후드티의 모자를 꾹 잡아당긴뒤, 책상위의 지갑을 손에 들고 방문을 열고 나왔다.
“너 또 새벽까지 드라마 보다가 잤지, 쯧 일찍일찍 좀 자라니까”
“여주야, 냉장고에 먹을게 너무 없는거 아니야, 좀 채워놔”
“..어, 지수야 아니, 어 오빠친구가 병원에 입원해서.....”
문을 열고 나온 거실에서 마주한 풍경은 그야 말로 개판이었다. 제집 쇼파인양 길게 늘어져서 기계적으로 채널을 돌리고 있는 김재환, 냉장고를 뒤적이다가 발견한 포도주스를 하나 따면서 내게 자신이 좋아하는 과일을 좀 많이 채워놓으라고 말을 하는 하성운, 그리고 식탁에 앉아서 여자친구와 통화를 하는 강다니엘까지. 허 참, 기가막혀서.
“와....권여주 지금 얼굴 실화임?.......개못생겼다....”
“....”
“여주야 지금 나갈거면 가서 장도 좀 봐서와, 먹을게 너무 없어”
“오 그럼 난 올 때 메로나”
“.....아오 올 때 메로나는 무슨 메로나처럼 시퍼렇게 만들어줘?!”
아무말도 안하고 있으니, 눈치도없이 한술 더 뜨는 답도 없는 놈들이었다. 지금이라도 그 입을 다물면 약간의 자비를 베풀어주겠다는 뜻을 담아서 어금니를 꽉 깨물며 웃어보였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권여주 급하면 화장실을 가’라는 말뿐이었다.
내가 너무 참아줬지. 김재환이 들고 있는 리모컨을 뺏어서 머리를 살짝 때려주자, 머리를 부여잡으며 쇼파에서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왜!!! 너 변비......하하 tv소리가 많이 시끄러웠지..’ 소리를 치다가 이제야 폭발직전의 상태에 놓여있는 나를 확인하고는 목소리 데시벨을 낮추며 tv앞으로 다가가 전원버튼을 눌렀다.
“여주야 아직도 안나갔어? 빨리 나갔다가와 조금 있으면 저녁시간이야”
김재환이 하성운을 향해서 열심히 눈짓을 보냈지만, 성운이의 시선은 오로지 포도주스병에 고정되어있었다.
“하하.....여주야 내가 나갔다가 올..”
“이 자식들이!!!!! 여기가 니네 집이냐 니 집이야!!! 어디서 남에 집에 몰래들어와서 주인행세야, 왔으면 조용히나있다갈것이지!! 어? 여자집에 몰래 들어와서 뭐? 개못생겨? 먹을게 없어!!!!! 다시는 밥 못먹게 만들어줘?!!!!!”
하성운은 들고 있던 포도주스를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뜨렸고, 김재환은 눈치를 보더니 쇼파위에 걸쳐놓은 겉옷을 주섬주섬 챙겨입었다.
“어? 왜 이렇게 시끄럽냐고? 잠깐만, 권여주 목소리 좀 낮춰줄래? 우리 애기가 시끄럽다잖아.”
“...아 많이 시끄러웠구나,,,그랬구나”
“알았으면, 좀 조용히 해주”
“다니엘아 통화하려면 내가 닥치는것보다 니가 나가는게 더 좋다고 생각하지않니? 이런 예의도없는 시키야, 거기 김재환 옷 다시 벗고 앉고, 하성운 넌 10초안에 바닥 해결해라”
그나마 정상적이었던 강다니엘마저 물들어서 속을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여친이랑 그렇게 통화를 하고 싶으면 우리집말고 데이트나 하러갈것이지, 왜 우리집에 눌러붙어가지고 사람 혈압은 오르게 하고 난리야.
눈치를 보며 과자봉지를 치우던 김재환은 바닥에 그대로 부스러기를 흘러버렸고, 하성운은 어디서 발견한건지 아직 뜯지도 않은 새수건을 들고와서 바닥을 닫고 있었다.
그냥 눈 뜨지 말걸 그랬다.
“자, 여주야 니가 좋아하는 다리 너 다 먹어”
“먹겠지만, 그렇다고 화가 다 풀린건 아니야
“그거 ##김여주 너 다먹게..?.......나 하나만......아니야 .여주 너 다 먹어..”
“너 이거 다 먹으면 살찌니까 내가 먹을게”
성운이가 치킨상자에서 다리만 쏙쏙 골라내서 내 앞 접시에 쌓아주었다. 3마리에서 다리를 모두 골라내니 제법 양이 많았다. 내가 치킨다리로 화가 다 풀릴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다리를 하나 들어서 먹는데, 옆에서 자꾸 눈치를 보던 재환이가 웃으며 내가 이미 찜해놓은 가장 통통하고 먹음직스러운 다리쪽으로 손을 향하며 하나만 먹을게라고 말을 하였다. 이 시키가 아직도 반성을 못하고 제일 탐스러운 다리를 노리다니. 건들면 사망이야라는 뜻을 가득 담어서 쳐다봐주니, 손을 덜덜 떨면서 앞에 놓인 콜라만 벌컥벌컥 마시는 김재환이었다.
감히 내 치킨을 탐내다니, 내일이 없나봐. 그래도 내일을 살고 싶은건지 치킨을 향한 시선을 거둔 재환이에 눈에 힘을 풀며 들고 있던 다리를 다시 맛있게 뜯는데, 이번에는 반대쪽에서 손이 와서 다리를 낚아채갔다. 옆으로 고개를 돌리면 여유롭게 치킨을 뜯으며, 내가 살찔까봐 대신 먹어주는 거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짓껄이며 웃는 강다니엘의 얼굴이 보였다.
“아, 맞다 나 과제가 있었는데!...깜빡했다...하하....여주야 월요일에 봐”
“어...난 엄마가 불러서..”
조용히 먹던 치킨을 내려놓고 주먹에 힘을 주는 나를 본 재환이와 성운이는 다급하게 짐을 챙겨서 집을 나갔다. 나가기전에 양손에 치킨을 챙겨가는 것을 잊지않고.
이 눈치도없이 뻔뻔한 친구를 어떡해하면 좋지
“그래 다니엘 오늘 친구대신 니가 입원해보자, 이 시키야 병문안은 가줄게”
**
한정수량으로 나온 돈까스를 받아서 뿌듯한 마음으로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혼자 먹으니, 내 돈까스를 탐을 낼 사람이 없다는 사실에 천천히 돈까스를 미리 다 썰어두었다. 옆에 김재환이라던가 김재환이라던가 김재환이 있었더라면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강다니엘 때문에 떠나간 친구들, 김재환 때문에 멀어진 친구들, 하성운 때문에 못사귄 친구들...덕분에 일학년 학기초가 얼마지나지않아서 몇없던 여자친구들을 모두 잃었다지. 유일하게 내 옆에 남아준 지은이는 4학년이라서 얼굴을 보기도 어려웠고...그 덕에 혼밥고수가 되었고...이걸 고마워해야할지....
바삭하게 튀겨진 돈까스를 입속으로 넣으며 화면에 띄워진 창을 확인하였다.
[오늘 나랑 같이 밥 먹을 영광을 잡을 사람?]
나는 못잡겠다....ㅠㅜ 오늘 혜은이랑 점심약속 있어-하구름이
오빠는 데이트있다-김째니
나 지수랑 점심같이 먹기로 했는데, 같이 먹을래?-다니엘
성운이 여자친구 이름이 혜은이인가보네, 재환이는 언제 또 사귀었데 나랑 밥 먹기 싫어서 거짓말 하는거 아니야?.... 다니엘, 내가 눈치없이 데이트에 끼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혼자 돈가스를 다 먹을 수 있어서 좋았는데, 막상 입에 넣고 씹으니 기대했던 맛이 아니었다. 그냥 퍽퍽하다는 느낌뿐이었다. 복학을 하고 돌아와도 옛날만큼 자주 보지 못한다는게 아쉬웠다. 옆에 있으면 혈압만 올리는데, 옆에 없으니 또 막상 허전했다.
“와 권여주 인성, 혼자 먹으려는 거 봐.”
“니들이 빨리 안와서 그렇잖아, 늦게 오면 돈가스 다 팔리고 없단말이야”
식당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내가 먹을 수 있는 돈가스가 하나씩 사라진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죽겠는데 식당 앞이라는 애들은 보이지도 않았다.
그냥 먼저 받고 있을까하는 마음에 식당으로 들어서려고 하면 뒤에서 기다리던 목소리들이 들렸다. 늦은 주제에 걸음은 겁나 느리네. 느긋하게 걸어들어오는 애들의 손을 잡고 줄을 섰다. 오늘 돈가스를 못먹게 된다면 기필코 오늘 이 애들을 죽이고 말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천원을 들고 발을 동동 굴렸다
“아까 권여주 얼굴 본 사람, 돈가스 다 팔릴까봐 식겁했네”
“마자,,,아까 여주 얼굴 좀,,,많이 무서웠어”
“돈가스가 그렇게 목숨까지 걸 일인가...”
“조용히해, 오늘 돈가스 덕분에 너네 생명줄 연장한 줄 알아, 그리고 다니엘 너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돈가스를 목숨만큼 중요한거야. 돈가스를 폄하하지말아줘.”
돈가스를 큼직하게 썰어놓고는 ‘너네 내꺼 탐내지마.’ 라고 나이프를 들고 으름장을 놓은 후에 포크를 들어 돈가스를 찍어 입에 넣었다. 진짜 맛있어
“내가 아까 안준다고 말 했다. 그렇게 쳐다보지마 안줄거야”
돈가스를 입에 넣고 행복을 느끼고 있는데, 얼굴이 뚫어질 듯한 느낌에 고개를 들어올리니 벌써 식사를 마친건지 일제히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식판을 손으로 가리고 입이 터질 듯이 돈가스를 밀어넣으며 내 남은 돈가스를 보호했다.
“ㅋㅋㅋㅋ 권여주 볼봐 ㅋㅋㅋㅋ니가 다람쥐냐”
“귀여워, 여주야 천천히 먹어 안뺏어먹어”
“ㅋㅋㅋㅋ그렇게 맛있냐, 귀엽게도 먹네”
돈가스를 노리지 않는다는 말에 안심을 하고 손을 내려놓는 순간, 먹이를 낚아채는 매의 발놀림과 같이 빠른 손도로 가장 큰 돈가스를 낚아채가는 손이 보였다. ‘아 내 돈가스!! 김재환!! 내 놓으라고 안 먹는다면서’ 대각선에 앉아있던 재환이에게 팔을 뻗으며 내놓으라고 소리치자, ‘난 안 뺏어먹는다고 말안했는데’라고 얄밉게 말을 하며 그대로 들고 있던 돈가스를 입안으로 쏙 집어넣었다. ‘아,,안돼 내 돈가스ㅠㅜ’ 수명을 다한 돈가스에 절망스런 표정을 지으면, 볼이 미어터지게 돈가스를 집어넣은 김재환이 신이 난 듯 연신 박수를 쳐댔다. 내 돈가스를 저 개새끼가...
당장 김재환의 머리채를 잡으려는 나를 다시 앉히며 성운이가 ‘돈가스 하나 사줄게, 앉아서 마저 먹어.’라며 달랬다. ‘이제 돈가스 다 팔렸단 말이야, 저기 글자 안보여? sold out 이라잖아ㅠㅜㅠ 개새끼야 일로와 너 가만 안둘거야’ 하지만 이미 다 팔린 돈가스를 하나 더 먹을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다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에도 김재환의 머리채를 잡지 못했다. 또다시 나를 자리에 앉힌 손길에 의해서. ‘다니엘, 지금은 너라도 안봐줘. 지금 좋다고 웃고 있는 저 자식의 머리를 다 뽑아놔야지 기분이 풀릴 것 같다고.’ 다니엘을 똑바로 쳐다보며 의사를 명확하게 전달하며 포크를 들다가 ‘학교 앞에 돈가스 가게 새로 생겼다던데, 거기서 사줄게, 여주 너만, 2개 사줄게.’ 이어지는 다니엘의 말에 도로 포크를 제자리에 두었다. ‘진짜 2개 사줄거야?’ 확인하려고 손가락 2개를 들며 되묻자, 똑같이 2개를 펴보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다니엘이었다.
‘김재환 너 운 좋은지 알아, 다니엘 아니었으면 너 지금쯤 머리 나한테 다 뽑혔어.’ 남은 돈가스를 찍어 입에 넣으며 재환이에게 말을 하였다. ‘그럼 하나만 더 먹을래!’ 눈치도 없이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돈가스를 훔쳐가는 김재환의 팔을 저지한건 성운이었다.
‘너 여주꺼 뺏어먹지마, 우리 여주 말라서 많이 먹어야 돼.’라고 말을 한 성운이가 김재환이 찍었던 포크를 다시 내 접시에 놓아주었다.
혈투로 끝날 뻔한 점심식사가 다니엘과 성운이 덕분에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무사히 끝이났다.
---------
다행히 이번글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서 행복하네요 ㅎ♥ㅎ
너무 무겁지고 가볍지도 않게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아직 럽라 생각을 없어요..!
회색으로 된 부분은 과거이야기에요. 종종 이런 형식으로 글을 쓰게 될거 같아요. 오래 기다리시게 한만큼 최선을 다해서 쓰겠습니다!!
예쁜 댓글 정말 감사합니다.
(암호닉 분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 오래 보면 좋겠어요!!♡)
♥암호닉♥
[돌하르방], [군밤], [정태풍], [파랑토끼], [하짼녤],
[J에게], [숮어], [@불가사리], [마카롱], [카와임],
[강캉캉], [옴뇸뇸], [해령], [알빱], [하마하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