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애프터 첫사랑 (完) 너는 날 좋아해. 나는 너를 좋아하고. 그렇지? 아, 네가 내 첫사랑이라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민기의 말로는 난리가 났다고 그랬다. 민기가 다니는 학교의 민기네 학년이. "왜?" "일요일에 강동호가 어떤 여자랑 안고 있는 걸 본 녀석 하나가 그걸 핫이슈로 만들어서." "...아." 이거 좀 쑥쓰러운데. "그 여자 이제 큰일났다." 늘 그랬듯 소파에서 휴대폰을 두들기며 녀석이 말했다. "그건 또 왜?" 내 질문에 고개를 들어 빤히 날 바라보더니, "누나 니 남친이 우리 학교 슈퍼스타거든." 그렇게 대답하고는 다시 휴대폰을 만지더라. 그 모습에 웃음이 터지고야 말았다. "뭐가 웃긴데." "그냥 니 말투가 오늘따라 웃겨." "......" 녀석이 날 노려봤다. 평소라면 눈 좀 깔라고 했겠지만 기분이 좋으니 그냥 넘어가지 뭐. "수능도 끝났는데 연애나 해 볼까?" "꿈 깨라 거울아." 학교, 얼굴은 비추고 가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에 느긋하게 학교에 와서 떠들고 있는 친구들 틈에 꼈다. "뭐야, 거울이 연애 해?" "최우주 얜 또 무슨 헛소리래. 쟤가 연애할 수 있을 것 같냐?" "아 하긴." "뒤질래?" 내가 안 하는 거 아니고 못 하는 거거든! 즉시 반응이 나타나는 모습에 애들이랑 같이 웃었다. 근데 거울아. 말이 좀 이상해. 나 말고는 아무도 알아채지 못한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야지 뭐. "근데 너는 어떻게 됐어?" 옆에 앉은 친구가 내게 질문을 날렸다. 그 덕에 시선이 내게로 꽂혔다. 9월, 그 고민 상담 이후의 일을 물어본 거겠지. "나? 나는 뭐..." 대답도 안 했는데 입가에서 비식비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에라이. 그런 내 표정을 본 친구들이 뱉은 말이었다. 커플 망했으면. 아 나 진짜 어떡해? 별 거 아닌 거에도 자꾸 웃음이 나와. 이게 다 너 때문인 것 같아. "와, 진짜 겨울이야." "그러네요. 벌써 겨울이라니 뭔가 새롭다." 처음 누나랑 친해진 게 엊그제 같은데. 네가 말을 덧붙였다. 그때가 떠올랐다. 그저 낯설기만 했던, '친구 동생' 이라는 말이 너를 설명하는 전부였던 네가, 그런 너와 함께 말없이 걷던 내가. 참 많이 변한 것 같아. 그 때는 너와 내가 이런 사이가 될 줄은 몰랐는데. 역시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근데 있잖아." "뭔데요?" "너는 날 언제부터 좋아했어?" "으음..." 잘 모르겠어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이내 웃으며 대답하더라. "생각하기 귀찮아서 그러는 거 아니지?" 물론 아니라는 걸 나는 잘 알아. 네가 언제 나와 관련된 일을 귀찮아했었니. 그냥 물어본 거야. 잘 모르겠다는 너의 그 대답을 모르겠어서. "진짜로 몰라요. 그냥 어쩌다 보니까 좋아하고 있었는데." 두 눈이 마주쳤다. 네가 나를 빤히 바라봄으로 인해서. 누가 봐도 의도적인 마주침이었다. "아, 좋아하고 있구나." "......" 내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네가 뱉는 멘트는 충분히 날 설레게 했고, "ㅡ를 알게 된 건 5월." 그 말을 하며 웃는 너는 충분히 심장에 해로웠다. 5월, 5월이 언제지. 무슨 일이 있었더라? 잘 떠오르지 않는 기억에 혼자 속으로 끙끙거리고 있는데, 얼굴에 다 티가 나는지 네가 소리내어 웃으며 말하더라. "저한테 남친이랑 데이트 했다고 거짓말했었잖아요." "아. 네가 나 예쁘다고 했던 그 날?" "네. 그러는 누나는요?" 네가 되물었다. 네 질문에 대한 대답을 생각할 시간조차 내게는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나도 너랑 똑같아. 어쩌다 보니까 좋아하고 있더라." 너와 다를 게 없었거든. "우리 이거 볼래?" '애프터 첫사랑.' 영화관이 있는 건물 입구에 크게 붙어 있는 포스터의 제목이었다. 개봉 당시, 반응이 너무 좋았던 나머지, 결국 재상영을 시작한 영화. "누나 이거 봤던 거 아니에요?" "그랬었지. 근데 뭔가 너랑 같이 보면 또 느낌이 새로울 것 같아서." 이 영화를 처음 봤던 날은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특별했던 날이었다. 네 마음을, 네 입을 통해 들었던 날이었으니까. "그럼 같이 봐요. 사실 저 이거 아직 못 봤거든요." 성큼성큼 건물 안으로 들어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는 너를 따라 네 옆에 섰다. 엘리베이터 표면으로 비춰지는 너와 내 모습은 신기하게도 많이 닮아 있었다. "손 잡아도 돼요?" 상영관에 들어와 자리에 앉자마자 네가 내게 한 말이었다. 말없이 손을 내밀자 한 번 웃더니 손가락 마디 사이로 제 손을 포개더라. 덕분에 잡은 손이 풀리지 않게 깍지를 껴 버린 셈이었다. 맞닿은 손에서는 따듯함이 넘쳤다. 갑자기 손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열을 적응하지 못하는지, 심장이 크게 울렸다. 그렇게 한참을 있는데, 네가 입을 열었다. "그냥 영화 제목이 애프터 첫사랑이라서 말하는 건데요." "뭔데?" 아무 생각 없이 너와 맞잡지 않은 손에 음료수를 들고 스크린에 띄워지는 광고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최우주." 제 첫사랑 이름이에요. 고개를 돌리자 너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던 광고가 멈추고 영화의 시작을 알리는 웅장한 효과음이 들려왔다. '애프터 첫사랑.' 첫사랑은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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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도 제 글 읽어주시고 사랑해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애프터 첫사랑 본편은 여기서 마칩니다.
2017. 10. 09 START
~ 2017. 12. 12 END
너의 일기 마지막 줄 |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나요? 저는 그냥 그저 그렇게... |
#Epilogue |
ㅡ 영화가 끝난 뒤 "그거 알아?" "뭐가요?" "첫사랑에는 끝이 없다고 영화에서 그랬잖아." "그랬죠. 주인공 대사 진짜 멋있던데." "내 첫사랑도 끝이 없었으면 좋겠어." "......" "강동호." "인생에 딱 한 번 존재하는 내 첫사랑 이름이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