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사랑.
그거 해본 사람은 조금이라도 내 이야기에 공감해줄 수 있지 않을까.
경력은 겨우 1년 차.
이루어지지 않고, 이루어질 가망 없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나는
전정국을 짝사랑 중이다.
1
만남의 시작
"에이 씨, 다 묻었네."
비가 더럽게도, 그칠 기미가 안 보이는 날이었다. 매점 건물은 왜 때문인지, 건물 밖에 있었는데 그 때문에 당연히 낭패는 우리 몫이었다.
염병할 날씨에 무슨 매점 쏘기를 한다는 건지 또 가위바위보는 더럽게 못하던 내가 결국엔 걸리고 말았고, 2교시가 끝나자마자 매점으로 달려갔다.
초코 빵, 크림빵, 아 맞다 딸기우유.
잔돈까지 꼼꼼히 확인하고선 그렇게 매점을 나왔는데 아까보다 더 굵어진 빗줄기였다.
진짜ㅡ 비 올 때 망할 학교를 안 오든가 해야지.라고 투덜거리며 우산을 폈는데, 그때 내 우산 안으로 누군가가 비집고 들어온 게
"좀 빌려도 되지?"
"어? 아, 어…."
전정국 일 줄은ㅡ 정말 꿈에도 몰랐다. 평소 남자애들 같았으면 그저 넘겼을 텐데 아마 전정국이라서 더 놀랐던 것 같다.
사실 소문으로만 들어봤던 애였기에. 전정국은 입학 초부터 이미 유명인사였다.
'이번 1학년 중에 존나 잘생긴 애 있대.' 이건 1학년 때의 내가 지나가던 3학년 여자 선배들에게 흘려들은 말.
또, 한 번이라도 보겠다며 전정국네 반 앞에서 서성거리기까지 하다니. 그야말로 인기스타였다.
근데, 지금 나랑 이러고 있는 게 실화냐고.
"너는… 아, 같은 학년이네. 이름이 김여주야?"
"응?"
"비좁을 텐데 미안. 담에 만나면 아는척해!"
전정국은 문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손을 흔들어 보이며 먼저 학교로 뛰어 들어갔다.
급하게 뛰어들어가는 뒷모습을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막연히 바라봤고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이 자식이 수업종이 쳤으면 알려줘야지...
2
우연인가요
물론 전정국과의 만남도 없었고 그날만큼의 비가 다시 내리지도 않았다.
"야, 진짜 너네만 믿는다."
"걸리지나 마라."
대신 바람이 거세게 부는 날이었다. 왜 하필 날 선정을 해도 이따군지. 이미 반 친구와는 입을 맞춘 상태.
복도가 왜 이렇게 조용하나 싶었는데, 하필이면 부장쌤이 교문을 지키고 있다니.
그럼 뭐 해, 담이 있는데! 역시 진부한 학교 방식은 여전하군... 놀라워.
가방을 앞으로 다시 매고는 학교 뒤쪽으로 후다닥 뛰어갔다.
엿 됐구나. 그저 조용히 숨죽인 체 공수자세로 죽음을 맞이하려는데
"… …."
"어, 뭐야. 쌤 인줄 알았네 쫄아라."
한껏 긴장한 표정을 짓던 전정국이 이내 배시시 웃으며 나의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너도 째게?"
"당연하지."
전정국이 나의 물음과 동시에 담에 손을 짚고 매달리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담장 위로 올라섰다.
전정국이 넘어가고 나서, 이제 내 타이밍인가 싶어 담으로 뛰어올랐다.
점점 어두워진 주위에 눈에 뵈는 건 점점 없어지고 여기서 뛰어내리고 발목 아작나는거 아닌가, 국민체조라도 할걸 그랬다며 밀려오는 후회가 막심했다.
"의외로 높지?"
"어…, 좀 많이?"
밑에서 웃으면서 물어오는 전정국이 약간 얄미웠다.
"잡아줄게."
"…어? 너 팔 아작나,"
"그럼 나 먼저 간다?"
아니 잠깐 이 자식아.
뛰려고 하는 순간, 전정국이 쓸데없는 말을 해버린 탓에 더욱 뛰어내릴 수 없었다.
잡기는 개뿔 그냥 안기는 거잖아...
전정국의 말에 즉각 대답하자 미련 없이 제 가방을 들기 시작하는 전정국을 애처롭게 바라봤다.
그러고 곧,
"거기 누구야! 안 내려와?!"
"아 미친."
"야, 빨리!"
뒤에선 학년부장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전정국은 내게 팔을 뻗었다.
"…김여주 무거워."
"…아, 미안"
철퍼덕 하는 소리와 동시에 힐끔 눈을 떴는데 전정국에게 영락없이 안겨있는 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