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빅- 성덕입니다
B
“그럼 첼로는? 하지말까?”
대본리딩은 순조롭게 진행됐다. 다들 캐릭터가 찰떡인 것 같아서 뿌듯한 마음으로 옆에 앉은 옹성우를 바라봤는데 진지한 표정으로 계속 뭔가를 쓰고 있길래 그냥 시선을 돌리려하자 옹성우는 여전히 대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아냐, 하고 다시 대본을 바라봤다. 옹성우는 요즘 들어 예민해진 건지. 하루 종일 말도 몇 마디 안하고 웃는 걸 본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인 것 같다.
성운이 만난다고 방방 뛰면서 귀찮게 했던 일들이 스쳐지나가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잠깐만요, 성운 씨 거기 다시 한 번만 해줄래요?”
“거기 대사 칠 때, 감정 좀만 더 살려줘요. 울먹이는 거 참는 듯이 호흡 끊기게.”
“넵, 다시 해보겠습니다. ··· 나 처음에, 미국 갔을 때-”
또, 성운이에게 유독 예민한 것 같다. 내가 괜히 신경 쓰는 건가 싶기도 한데, 안절부절 눈치 보는 최애를 보고만 있는 게 마음이 편할 순 없으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첫 대본리딩이 무사히 끝나고, 배우 분들과 인사를 나눈 뒤 정리를 하고 나가려고 하자 작가님!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성운이, 아니 성운 씨가 해맑은 표정으로 웃으며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머리가 멍해져 눈만 깜빡이고 있었는데 어느새 전방 1m까지 다가온 하성운.
보고 있기만 해도 해피바이러스에 전염되게 만드는 이 사람을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무슨 기사···? 하고 물으니 작가님이 저 남자주인공으로 추천해주셨다고··· 아닌가요···? 라고 약간은 작아진 목소리로 쫑알쫑알 말한다. 아, 그 기사 봤구나.
“아, 제가 성운 씨 되게··· 팬이라서···. 프듀 하실 때부터···.”
내 나름대로 용기내서 말하니 정말이냐며 약간 놀란 표정으로 헤실헤실 웃는다. 그렇게 화기애애하고 있는데 산통을 깨는 말 한마디.
“성이름, 가자.”
“어딜?”
“··· 일하러. 조심히 들어가세요.”
“네! 안녕히 가세요!”
어딜 가는 지, 앞만 보고 긴 다리로 휘적휘적 빠르게 걸어가는 옹성우를 열심히 따라갔지만 내 짧은 다리로는 속도가 역부족이어서 거의 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옹성우를 잡고 좀 천천히 가라고, 어딜 가는데 그렇게 급하냐고 묻자 나를 홱 돌아본다.
“뭐가?”
“··· 됐다. 가서 대본이나 써.”
“너 왜 그러냐? 불만 있어?”
아니. 짜증이 가득한 표정으로 짧게 말하고는 다시 제 갈 길을 가는 옹성우에 뛰어가 앞을 막고 따지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아니꼬운데, 왜. 내가 뭐 잘못 했어?”
“··· 아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황급히 자리를 뜨는 옹성우를 그렇게 보내고 마음이 편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대로, 옹성우는 옹성우대로 바쁜 나날을 보냈기에 사사로운 감정들에 휘말릴 틈조차 없었다.
옹성우와의 접점은 문자로 하는 딱딱한 일 얘기뿐이었고, 얼굴을 다시 보게 된 것은 첫 촬영이 시작 되고 나서였다.
“안녕.”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인사를 건네는 옹성우의 얼굴이 꽤나 수척해보였다. 피곤할 만하지. 생각하며 그냥 건들지 않기로 혼자 결정하고는 그대로 서있었다.
얘는 할 일도 없나. 어색한 공기만이 흘러 슬슬 자리를 뜨려고 하던 차에, 배우들이 속속히 도착했고, 거기엔 물론.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하성운이 있었다.
삐빅- 성덕입니다
“컷, 오케이-”
첫 촬영이라 그런지 NG도 꽤 났지만 나름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잘 진행되는 촬영에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보다 나는, 첫 촬영 기념 회식에 더 마음이 쏠리고 있었다. 성운이와의 회식이라니··· 진짜 이게 꿈이 아닐까.
촬영이 막바지로 향할수록 떨리는 마음이 주체가 되지 않았고 타들어가는 목에 생수만 벌컥벌컥 들이키는 중이었다.
“느에!”
갑자기 다가와 부르는 성운이, 성운 씨.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암튼 하성운에 놀라서 마시던 물을 뿜을 뻔 한 것을 입을 틀어막고 겨우 넘기며 대답했다.
으으, 추한 꼴 보이는 거 싫은데.
“앗, 죄송해요.”
“아, 아뇨! 괜찮아요!”
“네, 당연히! 첫 회식이니까.”
마지막 씬 들어가겠습니다- 촬영장에 울리는 막내 스탭의 목소리에 그럼 이따 보자며 떠난다. 심장에 무리가 오는 것 같아···.
옹성우의 말로 오늘 촬영이 끝났고, 카메라와 음향 스탭들은 분주히 뒷정리를 시작했다.
배우들에게는 패딩과 옷을 바리바리 싸들고 달려온 코디가 붙었다.
“성이름.”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옹성우가 말을 걸어왔다. 안녕 이후로 처음 한 말이었다. 자기 차를 타고 가자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따라가 조수석에 탔다.
한참을 말없이 운전하다 건넨 말이었다. 뭐가 미안하냐고 묻는 나의 말에 짜증내서. 라고 대답한다.
하여튼 미안하단 말 못하고, 오글거리는 말 못하고. 그런 성격을 나 아니면 누가 알아주겠는가. 생각하며 내가 이해하기로 했다.
“오늘 너무너무 고생 많으셨구··· 지금 이대로··· 대박 납시다! 어··· 파이팅!”
“파이팅!!”
옹성우의 부추김으로 내가 건배사를 하게 되어 전체 스탭들 앞에 서서 횡설수설 하다가 파이팅을 외쳤고 본격적인 회식이 시작됐다.
가장 끄트머리인 우리 테이블엔 박보영 씨와 옹성우, 나 그리고 성운이가 앉았고 옆 테이블은 조연 배우들, 그다음은 스태프들. 이렇게 식당 한 쪽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성운이가 내 맞은편에 앉았다는 것이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는데 성운이가 먼저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역시 예상대로 성운이는 술자리를 주도하는 편이었다. 핵인싸야 우리 성운이···. 수줍은 얼굴을 하고 술잔을 내밀자 그 해맑은 표정으로 술을 따라준다.
“우와··· 너무 감사해요.”
보영 씨가 내 소설을 봤다니··· 하루에도 꿈같은 일들이 몇 번 펼쳐지는지 모르겠다. 기분이 하이텐션이라 술발이 섰는지 주는 족족 잘 들어간다.
이러다가 맛이라도 가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지만 일단 마시고 보자는 생각으로 계속 들이부었다.
“괜찮아, 아직 멀쩡함.”
성운이가 던진 말에 동시에 쳐다보니 당황했는지 눈을 깜빡거리며 친해보이시길래···! 한다.
“아, 그냥 중학교 때부터 친구에요!”
“아아- 저도 실은 어떻게 친하신가 궁금했는데.”
옹성우가 성운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 쪽 입꼬리가 약간 올라간 듯 했는데··· 내가 잘 못 본거겠지.
오오, 되게 멋있다. 하는 보영 씨가 언니지만, 너무 귀여워서 금방 잊고 다시 마시기 시작했다.
“뭔 상관이세요.”
“성운아, 너가 내 최애여도 날 막을 순 없어.”
“야야, 너 취했다. 일어나.”
“싫어엌!! 싸인 받을랭··· 사진 한 장만 찍으면 안 되나?”
그 이후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그냥 눈을 떴는데 내 방이었고, 폰을 보자 옹성우에게 와있는 부재중 전화 한 통.
“어어- 당장 갈게.”
옹성우와 통화를 마치고 대충 세수만 하고, 모자를 눌러쓴 후 택시를 잡아 촬영장으로 향했다.
천천히 와도 된다는 옹성우였지만, 명색이 작간데 이튿날부터 지각이나 하고··· 진짜 쪽팔린다. 이와중에 성운이한테 온 카톡에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하성운
[작가님 괜찮아요?]
[왜 안 오시지]
[어디 아픈가]오전 8:12
혼잣말을 보내 놓은 것 같은 카톡이 웃기기도 하고, 내가 안 온다고 걱정해주니 설레서 광대가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그런 내 광대를 내려가게 해준 것은 갤러리를 확인하고 나서였다.
무슨 정신 나간 술꾼 마냥 헤벌레 웃으며 성운이와 한껏 붙어(성운이에게 달라붙어) 찍은 셀카가 보였다.
나 무슨 짓을 한 걸까···.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들어가 앉았다. 내가 없어도 촬영장에는 큰 문제가 생기지 않지만, 배우들 연기를 보고 대본에 수정할 사항이 생길 수도 있고, 실질적인 대본은 거의 다 써진 상태라 대본 마무리가 급하진 않아서 (성운이 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내가 먼저 있겠다고 한 건데. 괜히 그런 말을 했나 민망해졌다.
“이동하겠습니다-”
세트장에서의 촬영이 끝나고, 첫 야외 촬영이 되겠다.
인파가 몰릴 것을 대비해서 경호 팀들이 먼저 대기하고 촬영 세팅이 모두 끝난 뒤 배우들이 이동하기로 해서 나와 옹성우는 배우 팀과 이동하기로 했다.
“어, 멀쩡.”
“하여튼 술은 잘해요. 주정도 잘하고.”
순간 헉 해서 나 어제 뭐 실수 했냐, 하고 물어본 찰나에 성운이가 다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아픈 줄 알고 걱정했어요.”
“아, 괜찮아요!”
" ···."
둘 사이에 묘한 스파크가 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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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성운이와 성우중에 누가 더 좋으신가요--??? 저어는 비밀
여러분 죵마르 감사해요ㅠㅠ 초록글엔 비록 잠깐 올라갔을 뿐이지만 감동입니다 ,,ㅠㅠ
글구 독방에 추천글도 올라왔더라구요,, 정말 감사하고 댓글 하나하나 읽는 게 넘 뿌듯해요! 그러니까 많이많이 달아주세요 ㅎㅎㅎ
글쓰는 거 너무너무 재밌는데 현생도 챙겨야하고 ㅠㅠ 마음이 되게 복잡하네요
글들 모아놓은 폴더에는 소재들이 넘치고 있는데ㅠㅠㅠ 누가 제 소재 좀 가져가서 글 좀 써주셨으면 좋겠어요ㅠㅜㅠㅜ
암호닉은 자유롭게 신청해서 사용해주세욤
그럼 성덕이 되는 그날까지 파이팅-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