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덕, 성공한 덕후. 대한민국, 아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덕후라면 누구나 꿈꾼다. ‘성덕’이 되기를.
나는 자부한다, 그 누구도 나만큼의 성덕이 될 순 없을 것이라고.
삐빅- 성덕입니다
01
“아니, 너 이거 진짜 기회라니까.”
“아 그니까, 니가 잘 섭외해봐.”
나는 소설 작가이자 드라마 작가. 하지만 드라마는 아직 해본 적이 없어 아직은 소설 작가.
얼마 전 출간 했던 ‘지금 이대로’가 대박(!)을 쳐서 여기저기서 드라마화 요청이 들어오는데, 내가 제시한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다들 발뺌 중이다.
지금 앉아있는 장소가 카페인 것도 인지 못하는지,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를 빽 지르는 옹성우. 얘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는데, 낙하산 드라마 PD이다.
대학생 때 기획, 촬영, 편집 모두 도맡아서 찍은 드라마가 인터넷에서 유명해져서 드라마 제작사로 캐스팅 됐는데 2년 동안 일을 배우다가 첫 작품을 할 기회가 주어졌다.
중학생 때부터 우리는 드라마 PD, 작가가 꿈이었고 우린 약속했다. 서로의 첫 작품을 맡아주자고. 그런데 그 일이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이야.
그래서 내가 제시한 터무니없는 조건이 뭐냐고? 내 생각엔 터무니없지도 않다. 그냥, 남자주인공은 무조건 하성운으로 해달라고.
네 맞아요, 워너원 하성운, 핫샷 하성운이요.
“성운이가 아니면 의미가 없어.”
“연기 경험 한 번 없는 사람을 어떻게 주연으로 써.”
“우리 성운이 무대 표현력 몰라? 봐봐봐, 표정연기 봐.”
워너원 활동이 끝나고, 핫샷으로 열일 중인 우리의 성운이.
나이는 나보다 많지만 프듀 때부터 내 새끼, 우리 성운이 하다 보니 울 오빠 같은 낯간지러운 소리 보다는 성운이라고 부른다.
아무튼 성운이를 생각하며 소설을 썼는데 다른 사람을 남자주인공으로 세우기는 싫어 떼를 쓰는 것도 있고.
어차피 다른 데에서 같이 하자고 해도 나는 옹성우와의 약속을 지켜야하니까, [남자주인공은 무조건 하성운]이라는 조건을 걸었더니 다들 못하겠단다.
“오디션 제의라도 해봐.”
“··· 그럼 안 되면 바로 다른 배우로 가는 거다.”
“오케-”
그런데 기대조차 안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성운이가.. 오디션을 보러 오겠대요....
“미쳤어 미쳤어!!!!!”
“니가 미쳤어, 이 미친아.”
“아니아니, 나 어떡해? 나 못 봐. 나 못 만나.”
“아 그럼 나 혼자 만나고.”
아니 그건 안 돼. 하며 정색하자 환멸난다는 표정으로 나를 보는 옹성우다.
나는... 성운이가 내 대본 시안을 보는 것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그렇게 방방 뜬 마음으로 며칠을 보냈을까, 드디어 성운이와 만나는 날... 아니 성운이가 오디션을 보러오는 날이 됐다.
너무 꾸미고 가면 안 돼, 난 그냥 덕후일 뿐이고, 아니 드라마 작가일 뿐이고. 아니, 근데 드라마 작가가 꾸밀 수도 있지 왜?
이런 생각들과 함께 떨림, 긴장, 설렘의 감정들이 내 머릿속을 휘저어 놓았다.
“오늘 죽어도 좋아.”
“그럼 내가 죽여준다.”
“뭐 개새야?”
회의실에 앉아서 설치되는 카메라들을 보며 실감이 안나 허벅지를 주먹으로 퍽퍽 치고 있으니 옹성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지금 주차장이시래요.”
흐에에에에엑 벌써?!?!?!?!? 막내 스탭의 말에 너무 놀라서 테이블을 팍 치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며 소리를 질렀는데... 그랬는데...
주차장이라며, 이 못된 자식아.
덜덜 떨리는 손을 엉거주춤 옆으로 붙이고 아, 안녕하세요.. 하며 인사를 하고 얼굴을 봤는데 잘생겼다. 의자에 앉는데 잘생겼다.
27살 아니에요.. 진짜 피부 너무 좋다. 스탭들 한 명씩 다 인사하는데 귀엽다.
내가 지금 겪고 있는 상황이 현실이 아닌 것 같아 옹성우의 팔을 꽉 잡았다.
“아, 아퍼. 왜이래.”
바로 내 손을 철썩 때린다. 매정한 놈.
“저는 옹성우 PD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하성운입니다.”
가볍게 악수를 하는 옹성우와 성운이... 아니 성운씨.............
“저, 저는 성이름 작가라고 합니다아아...”
잘 부탁드려요! 하며 손을 내미는 성운.. 씨에 손을 덜덜 떨며 살짝 잡았다. 하얀 손에서 온기가 느껴왔다.
주님, 저 이대로 죽어도 좋아요. 그 뒤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냥 성운이 얼굴만 계속 쳐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성운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살짝 풀린 눈에서 보이는 겉쌍 같은 속쌍과 꼬물거리며 말하는 입(부리), 민망한 듯 귀를 만지는데 손등에 선명한 핏줄까지.. 완벽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나갈 때까지 한 명, 한 명 인사하며 떠나는 뒷모습. 와- 진짜 죽어야 돼..
“야, 야.”
또 넋을 놓고 있었는지 옹성우는 내 어깨를 잡고 흔들며 정신 좀 차리라고 말한다.
“괜찮은데, 나는. 연기도 배웠다니까.”
“영상있지, 영상 좀 보자.”
“또 덕질 할라고.”
“아니.. 얼굴 보느라 내용이 기억이 안나.”
결국 영상을 받아내서 보는데, 괜히 무대장인이 아니다.
정말, 진짜, 내 새끼라서가 아니라 눈빛이 사람을 끌어들인다고 해야 되나.
연기 학원 다녔었던 건 처음 알았네. 가끔 느끼는 게, 팬이라고 내 가수에 대해 다 아는 건 절대 아니라는 거.
리얼리티나 예능 나갈 때면 느꼈는데, 오늘 느낄 줄은 몰랐다.
“너 보는 눈 있다.”
“그치? 괜찮지?”
“남자주인공은 이대로 가도 될 것 같고, 여자주인공은.”
“우리의 뽀블리. 박보영님.”
넌 매번 나를 힘들게 하니. 풀썩 테이블 위에 엎어지더니 내일 얘기하자. 라며 일어나 자리를 뜨는 옹성우를 바라보며 빠빠이- 하자 뒤도 안돌아보고 손을 몇 번 휙휙 흔들더니 갈 길을 간다.
저것도 친구라고.
삐빅- 성덕입니다
“박보영씨는 소속사로 시안 보냈고, 일단 조연 배우들부터.”
“이쪽도 우리가 먼저 물어봐야 돼?”
“아니, 벌써 소속사 몇 개에서 오디션 보고싶다고 연락 왔어.”
옹성우 캐릭터 생각하면서 쓴 차성우랑, 성우 친구 이진형. 이렇게만 확실히 해두자고 얘기한 뒤 소속사에서 보내온 배우들 프로필을 훑어봤다.
꽤 익숙한 얼굴의 배우들도 보이고, 나는 되게 신기한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진지하게 살펴보는 옹성우.
“이쪽으로 일단 연락하라고 할게.”
“오케- 아 힘들어···.”
“벌써 힘들면 어떡하냐. 앞으로 힘들 날이 훨씬 많은데.”
얘는 가끔 쓸데없이 진지해질 때가 있어. 라고 그 땐 생각했는데, 그 말을 이렇게나 뼈저리게 느낄 줄은 몰랐다.
-
[소설 ’지금 이대로‘ 드라마화··· 남자 주인공은 핫샷 하성운?]
[박보영 차기작, 파트너는 워너원·핫샷 하성운]
[서브남주는 김민규, 남주는 하성운?]
“난리 났다, 난리 났어.”
옹성우는 곧 불이라도 붙을 듯 울려대는 핸드폰을 뒤집어 놓고 마른세수를 했다. 기사 댓글을 보니 나도 일할 마음이 안 생겼다.
‘드라마에 아이돌 좀 넣지 마라’
‘하성운이 배우상은 아니지 않음?’
‘연기 한번 안해본애가 주연이라니;; 그것도 뽀블리 파트너;’
[지금 이대로 작가, 하성운 아니면 안하겠다]
착잡한 마음으로 반응을 보는데, 나와 관련된 기사가 보였다. 누르면 안 되는데, 마음속으로는 생각하면서도 손은 이끌리 듯 기사를 클릭했다.
드라마 제작 맡고 싶다니 내건 터무니없는 조건이 ‘남자주인공은 하성운’
“아, 응.”
“인물이, 2화 중반부터 민현 들어가니까 리딩은 일단 3화까지로 잡자.”
“응. 박보영씨랑 김민규씨, 첼로랑 피아노 얘기는 된 거지.”
“소속사 측에 전달했어. 대본리딩은 김보리, 임지원, 차성우, 이진형 이렇게 네 사람하고 대사 있는 엑스트라들한테 연락 돌려서 스케줄 잡을게.”
“오케, 연락줘. 난 대본 마저 써야될 듯.”
옹성우는 그래, 하고 회의실을 나가면서 막내 PD를 불렀다.
후배도 생기고, 짜식. 하며 입꼬리 한 쪽을 올려 웃음 짓고 다시 노트북으로 시선을 돌려 대본을 쓰려고 파일을 여는데, 아까 그 기사가 떠올랐다.
마우스에서 손을 떼 핸드폰 홈 버튼으로 옮겼다.
“원 제작사인가.”
하성운을 주인공으로 내걸었을 때 끝까지 하고싶다며 남자주인공은 천천히 생각해보자는 곳이 하나 있었는데, 거기서 제보를 했나보다.
댓글은 ‘작가가 하고 싶대잖아’ 라며 성운이를 옹호하는 내용이 많았고, 나는 그제야 마음을 놓고 다시 키보드를 두드렸다.
띠디딩-
얼마 있지 않아 울리는 핸드폰에 기자 아니면 옹성우겠지, 하고 문자를 열었다. 뜻밖의 인물에 손이 덜덜 떨렸고 벌어진 입은 다물어질 줄 몰랐다. 하성운이었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하성운입니다. 더 일찍 연락 드렸어야 되는데, 죄송해요. 제가 많이 부족하지만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와.. 와..”
혼자 넋이 나가 중얼대는 내 모습을 보고 누군가 미쳤다고 말해도 지금은 그것을 신경 쓸 수 없었다.
이게 성운이 번호...? 내 번호는 어떻게 안거지. [번호를 연락처에 저장]하는데 까지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렸다.
저장하자마자 카톡을 들어가서 친구 목록 새로고침을 누르고 친구 목록을 확인했다.
‘하성운’. 한 번도 못 봤던 사진이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돼있었다.
홀린 듯이 프로필 사진을 옆으로 넘기며 구경하다가 답장을 보내야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안녕하세요. 너무 딱딱해. 안녕하세요~ 이건 아니다. 안녕하세요! 너무 방정맞은데.
한참을 고민한 후 결국 [안녕하세요, 성이름 작가에요.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평범하디 평범한 답장을 보냈다.
[넵ㅎㅎ]
1분도 있지 않아 답장이 왔다. 귀여워!!!!하며 한 손으로는 핸드폰을 꽉 쥐고, 한 손으로는 심장(정확히는 왼쪽 쇄골 밑)을 부여잡았다.
이 모든 게 꿈만 같았다. 나는 내 최애와 함께 내 꿈을 이뤘다.
-
지금 이대로 인물정보 |
여주 김보리(박보영) -첼리스트, 대학생활 중 사고로 청력을 잃음. -미국으로 떠나 지원의 집에서 홈스테이 남주 임지원(하성운) -중학생 때 미국으로 이민 -실내디자이너 여주 친구 차성우(안우연) -첼리스트-보리 대학 친구 서브남주 이진형(김민규) -피아노과 미국 유학생 -차성우 친구 |
전에 써놨던 1편 먼저 업로드할게요 ! 빨리 다시 만날 수 있어서 좋습니당
전 작 '지금 이대로' 보신 분들은 이해가 조오금 더 쉬우실 수 있는데 안 읽고 보셔도 상관 없습니다 !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