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녹차하임
"어이~ 김민석, 여기여기~~!!"
딸랑이는 경쾌한 종소리와 함께 문을 열고 들어선 민석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람들로 북적북적한 패스트푸드점에서 겨우 몇번 본 얼굴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안그래도 사고 이후 사람 얼굴을 기억하는 데 꽤 애를 먹던 민석은 더욱 난감했다.
그 때 구석에서 손을 좌우로 흔들면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백현을 발견하고 웃음을 지었다.
백현에게 다가간 민석은 이미 햄버거를 한보따리 쌓아두고 우걱우걱 먹고있는 다른 한사람을 발견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백현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일단 앉으라며 민석의 어깨를 누르며 앞자리에 앉혔다.
민석은 자신은 관심도 없는지 햄버거를 먹는데 초집중하던 새로운 얼굴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백현이 민석의 시선에 웃으며 몇개 쌓여있는 햄버거들 중 하나를 집어건넸다.
"아, 고마워."
민석은 포장을 벗겨 입에 햄버거를 가득 베어물고 우물거리며 씹으면서도 앞에 앉은 잘생긴 청년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몇개를 먹었을까 드디어 배가 부른지 만족스럽게 배를 쓰다듬으며 콜라를 시원하게 마셔 목을 축인 찬열이 눈앞의 민석을 보며 인사를 건넨다.
"안녕? 난 요기 멍뭉이 애인, 박찬열이야... !"
"푸읍!!! 켁..켁..."
"..."
찬열의 소개에 민석은 그대로 입안에 있던 모든 것을 쏘아버렸다.
민석의 입에서 나온 것이 그대로 앞에 앉은 찬열의 얼굴에 덕지덕지 붙어버린 상황에 찬열의 옆에 앉은 백현이 입을 막고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민석이 그대로 굳어 멍하니 찬열의 얼굴을 바라보고 찬열은 모든걸 체념한 듯이 눈을 감고 천천히 얼굴에 붙은 것들을 떼어내었다.
큭... 크큭... 옆에서 새어나오는 웃음소리에 민석이 겨우 정신차리고 자신의 실수를 인식했다.
경악하며 벌떡 일어나 손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안절부절 못하는 민석을 보며 백현은 그냥 앉아있으라는 손짓을 보냈다.
"괜찮아괜찮아. 이 멍청이는 신경쓸거 없어."
"하지만, 그래도..."
"그래그래, 난 괜찮으니까 다시 앉아.. 하하"
찬열이 어색하게나마 웃어보이자 민석은 그제야 다시 자리에 앉았다.
쭈뼛쭈뼛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어 찬열에게 건네자 백현이 받아 찬열의 얼굴을 닦아준다.
결코 부드럽지 않은 손길이었지만 찬열의 처음 소개가 장난은 아니었구나 생각하는 민석이다.
멍하니 두사람을 주시하는 민석에 백현이 찬열의 얼굴을 얼른 대충 닦아주고는 민석에게로 다시 집중했다.
"급하게 불러내서 놀랐어?"
"아, 아니... 응.. 마침 이 근처였고..."
"사실 이 앞을 지나가는 거 보고 연락한거야."
횡설수설하는 민석의 대답에도 백현은 씨익 웃고는 뻔뻔스럽게 불러낸 경위를 말했다.
벙찐 민석이지만 아까의 충격보다는 덜했는지 금새 정신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얼굴을 닦고있는 찬열을 미안하게 바라보는 민석을 백현이 불렀다.
민석아, 하고 부를 때마다 민석은 움찔움찔했지만 백현은 기분탓이겠거니 넘겨왔다.
어색하게 대답하는 민석의 모습이 아직도 마음을 열지 않은건가하는 생각에 약간 시무룩해지기까지 했다.
"민석아, 나 솔직히 너한테 반했음."
"... 어?"
뜬금없는 백현의 말에 민석이 화들짝 놀라더니 찬열의 눈치를 본다.
찬백이 그 모습에 소리없이 웃었다.
애인이라면서 다른 사람에게 반했다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백현에게도 놀랐지만 그 소리를 옆에서 듣고도 너무 태연한 찬열의 반응에 더 놀란 민석이 두사람 사이에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할지 몰라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릴 뿐이었다.
다행히도 백현이 덧붙여 설명을 해주었기에 망정이지 안그랬으면 피말려 죽을지도 몰랐다.
민석은 오티갔을 때 선배들의 강요에 못이겨 아주 짧게 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
백현이 민석을 주시하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 이후부터였다.
단 두소절의 짧은 노랫소리였지만 어렸을 때부터 음악에 관련되면 꽤 까다로워지는 백현의 귀를 한순간에 사로잡은 인물은 종대 이후로 처음이었다.
너무 오랜만에 마음에 쏙 드는 목소리를 만난 백현은 바로 그와 함께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고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민석과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오티에서 민석과 가장 많은 말을 나누었고 유일하게 그의 번호까지 딴 백현이었다.
오티에서 돌아와 찬열에게 신이나서 민석에 대해 구구절절 얘기를 한 것도 그만큼 민석이 백현의 맘에 완전히 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항상 폰을 만지작거리며 어떻게 연락하지 고민하던 차에 데이트 겸 나온 패스트푸드점에서 지나가는 민석을 발견하고 바로 통화버튼을 누른 것이다.
그가 흔쾌히 자리에 나와줄지는 몰랐지만 어쨌든 앞에 앉아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백현의 입이 귀에 걸릴 지경이다.
반했다는 것이 목소리에 대한 얘기였음을 안 민석은 찬열의 눈치를 보지않아도 되었지만 괜히 더 부끄러워졌다.
붉어진 듯한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지만 빨게진 귀를 발견한 찬열이 기어코 민석을 놀려댔다.
부채질을 해가며 달아오른 얼굴을 식히던 민석은 괜히 앞에 놓인 음료를 쪽쪽 빨았다.
안에 음료가 없는지 빨대를 빨아들이는 소리가 시원치않자 더 얼굴이 붉어지는 민석에 결국 찬백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기를 뺀 백현이 슬슬 본격적으로 하려는지 민석을 보며 눈을 빛냈다.
"김민석, 우리랑 밴드 안해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