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녹차하임
백현이 야,하고 부르니 찬열은 응,하고 얼른 대답했다.
계속 박찬열, 도비야, 차녀라, 각종 호칭을 찾아가며 불러대어도 찬열은 고분고분하게 대답한다.
왠일로 분위기를 다 읽고 다른때와는 달리 차분한 찬열에 백현이 속으로 놀라며 미소를 지었다.
그만큼 중요한 거겠지, 내 말이... 내 대답이... 내가...
백현이 찬열에게 좀 더 다가가 앉았다.
찬열이 순간 움찔하긴 했지만 뒤로 물러나진 않았다.
백현은 찬열의 얼굴을 덥썩 잡고 물었다.
"후회... 안할거지?"
"... 응?"
찬열의 백현의 행동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자 들려오는 물음에 잠시 넋을 놓고 코앞에 놓인 얼굴을 바라보았다.
백현이 멍한 찬열의 모습을 보며 짖궂게 웃어보였다.
좀처럼 정신을 못차리고 제얼굴만 바라보고 있는 찬열에 백현은 다시 물었다.
"나랑 사귀면 후회하지 않을 자신있냐고."
"어... 어?"
"세번까지만이다. 나랑 사귈래, 맞을래?"
"..."
찬열이 백현의 말에 눈을 꿈벅거린다.
백현이 멍청한 표정을 짓고 대답않는 찬열에 열이 받았는지 이마에 힘줄이 하나둘 튀어나왔다.
결국 좀 맞자, 하며 손을 든 백현이다.
그제야 마비가 풀린 듯 움직인 찬열이 백현의 손을 덥썩 잡고 끌어안았다.
백현이 순식간에 찬열품으로 파묻히자 벗어나려 찬열을 밀어냈지만 찬열은 더 꽉 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야, 너 맞기싫어서 이러는거지. 놔라. 대답도 안한 놈이 어딜 손대?"
"절대 후회 안해. 사귀자. 진짜 잘해줄게. 아니다, 변백현 나한테 시집올래?"
"이 미친놈이?"
처음 찬열이 입을 열어 말한 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안겨있던 백현이 마지막말에 발끈하며 찬열을 강하게 밀어내었다.
백현이 품에서 벗어나자 찬열은 아쉬웠는지 제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 그래도 남잔데 시집은 무슨 시집이야. 우린 그냥 엔조이. 오케이?"
"헐... 넌 무슨 말을 해도..."
"왜? 맘에안들어? 그럼 말ㄷ..."
"아니, 넌 무슨 말을 해도 이쁘다고.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보라는 말 모름?"
백현의 정색에 찬열이 금새 표정을 바꾸며 능청을 떨었다.
백현이 눈을 흘기다 결국 피식 웃어버리자 찬열도 금새 실실 쪼개며 웃는다.
찬열은 백현의 눈치를 보며 안절부절못하다가 참지못하고 다시 백현을 꽉 안았다.
항상 자신을 멍뭉이라고 놀리면서도 이럴땐 누구보다 강아지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찬열에 백현은 가만히 안겨 등을 토닥였다.
자신을 붙잡은 손이 긴장을 여과없이 드러내니 어떻게 떨쳐낼 수 있을까?
꿈이 아니라는 것은 느끼고 싶은 찬열을 누구보다 이해하고 그가 완전히 받아들일 때까지 차분히 기다려주는 백현이다.
다음날, 같은고 학생들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선사했던 찬백은 보란듯이 손을 잡고 등교를 했다.
또다른 의미로 충격에 빠진 학생들이었다.
"야, 이거 안놔?! 이 요다새끼야. 손 좀 놓으라고. 징그럽게 뭐냐고?!"
"아, 왜~ 좋잖아. 나 이거 꼭 해보고 싶었다."
"아씨, 그럼 혼자 쎄쎄쎄하면서 걷든가. 왜 나를 개처럼 끌고가는데?"
"진짜 좀 조용히 가면 안되냐? 다들 쳐다보네."
"누구때문인데?!"
얼핏 보면 싫어하는 백현을 억지로 찬열이 끌고오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을 몇년동안 봐왔던 스엠고 학생들이다.
잠시 당황했지만 백현의 츤츤한 표정과 말투에서 섞여나오는 데레데레함을 캐치한 모두가 엄마같은 미소를 지었다.
비록 두사람이 진짜 사귄다는 것까지는 알아차리지 못한 그들이지만,
찬백의 싸움이 오래가지 않고 주말사이에 풀어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해했다.
서로 붙어있으면 잡아죽일 듯이 으르렁거리며 시끄럽게 구는 찬백이 조금은 조용해졌으면 하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진짜 싸우고 와서 쥐죽은 듯이 있는 찬백을 겪으면서 모두의 생각은 뒤집어졌다.
아무리 시끄럽고 정신없는 둘이라지만 두사람에게는 그때가 가장 어울렸고 행복해보였다.
또 그것이 익숙해진 학생들은 어느새 그 모습을 보지 않으면 그날 하루가 무사히 넘어간 것 같지 않은 것 같이 그들에게 물들어져 있었나보다.
여전히 그림자가 간혹 보이긴 했지만 사건 이후 빛이 워낙 강해지고 화려해지더니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그림자는 두사람의 꽁무니만 하염없이 쫓아다닐 뿐 직접적으로 그들 앞에 나와 해를 입힐 정도로 나서지는 못했다.
졸업하는 날에도 계속된 두사람의 비글화는
짧게 끝날 수 있을 교장선생님의 훈화를 잔소리로 길게 만들어 많은 학생들의 원성을 사기도 하고,
헤어짐에 콧물 질질 흘리고 울던 학생들을 크게 웃게 만들기도 하고,
그들의 옆에서 하하호호 웃던 학생들도 이젠 그모습을 볼 수 없는거냐며 펑펑 울게 만들기도 했으며,
같은 대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얼굴에 잔뜩 먹구름을 끼고선 저 진상들을 대체 몇년동안 봐야하는거냐며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뭐가 그리 신났는지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던 찬백은 지나치는 학생들마다 일일히 안아주고 인사하면서 학생들을 울컥하게 만들기도 했다.
인사를 모두 끝내고 옥상에 올라간 찬백은 바닥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을 향해 팔을 들어올린 백현과 그의 손에 가까이 역시 팔을 올린 찬열이다.
비록 종대의 빈자리가 느껴지긴 했지만 두사람은 종대가 왠지 가까이 있음을 느끼며 피식 웃었다.
"벌써 두번째인가..."
"시간 참 빠르다."
"언제올까?"
"글쎄... 개새끼, 어쩜 연락도 한번 없냐. 돌아오기만 해봐, 절대 가만두지 않겠어."
주먹을 꽉 쥐며 이를 가는 백현에 찬열이 조용히 웃더니 일어나 앉았다.
백현이 따라 일어나 앉자 찬열은 가만히 백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김종대가 알면 어떨까? 찬열의 중얼거림에 백현이 눈알을 또르르 굴리더니 눈꼬리를 말아올리며 웃었다.
"축하해주겠지."
"... 충격받진 않을까?"
"별로..."
"?"
"김종대는 알고있었어."
"뭐를?"
"내가 너 좋아하는거."
백현의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지 찬열은 손가락으로 날짜를 세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문이 가득한 찬열의 눈동자에 백현이 괜히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한참 뒤에 백현의 말 뜻을 이해한 찬열은 백현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이런... 앙큼한 걸 봤나... 자신보다 먼저 자신을 좋아해놓고 저렇게 츤츤거리는 백현의 모습이 귀여워 찬열이 킥킥 웃는다.
웃음소리를 듣고 웃지말라고 소리칠 심산으로 백현이 고개를 돌렸지만 입을 열 수 없었다.
백현이 고개를 돌리자마자 찬열은 기다린 듯 그의 입술에 제 입술을 맞추었다.
갑작스레 겹쳐진 두 입술에 백현의 눈동자가 잠시 커졌다가 금새라도 몸이 녹아내릴 듯이 부드러운 키스때문에 눈이 풀려 서서히 감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