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녹차하임
찬열은 아무도 없는 백현의 방에서 뚱하니 앉아있었다.
곧 열릴 문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찬열의 표정은 아주 사나웠다.
금새라도 폭발할 것처럼 보이는 찬열은 콧바람을 씩씩거리며 겨우 화를 참고있었다.
잠시 후 예상대로 문이 열렸고 조심스레 방안으로 들어서던 백현은 화들짝 놀라며 가방까지 떨어뜨렸다.
"아씨, 깜짝이야! 너 주인도 없는 방에서 뭐하냐?!"
"..."
"엄마! 박찬열한테 덥썩덥썩 문열어주지 말랬잖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아래층에 있는 엄마에게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백현이다.
찬열은 그런 백현에도 꿈쩍않고 팔짱을 낀 채 굳은 표정을 풀지 않았다.
따가운 눈초리를 문에서 그대로 백현에게 옮겼다.
찬열의 시선을 느낀 백현이 괜히 툴툴거리며 겉옷을 벗고는 찬열의 옆에 앉았다.
그때까지도 한마디 없는 찬열을 힐끔거리며 눈치보는 백현이 무언가 의심스럽다.
찬열이 끝까지 말을 먼저 하지 않자 백현은 결국 먼저 말을 꺼냈다.
"화났어...?"
"재밌었냐?"
"응... 아, 아니. 하나도 재미없었어!"
찬열의 물음에 저도모르게 본심이 나와버렸다.
더욱 험악해진 찬열의 표정에 금새 말을 바꾸기는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내가 가지말랬잖아."
"그래도 오티인데 어떻게 안가냐..."
"내가 싫다는데도 굳이 갔어야했냐?"
"..."
그렇다. 백현은 지금 2박 3일의 오티를 갔다 돌아온 것이었다.
왜때문인지 오티에 잔뜩 들뜬 백현에게 찬열은 자꾸 가지말라고 떼를 쓰고 명령에, 협박까지 하면서 백현을 귀찮게 했다.
오티가기 전날까지 신신당부하는 찬열에 질려 포기할까 했지만 입학하고 처음있는 모임에 자신 혼자 빠지기 싫었다.
하는 수 없이 찬열에게 말도 없이 새벽에 빠져나와 오티에 간 백현이다.
아침이 되자마자 불나게 울리는 벨소리에 나중에는 폰까지 꺼버린 백현은 어느새 찬열을 까맣게 잊고 신나게 놀다가 돌아온 참이다.
잘못한게 있으니 그저 고개 숙이고 반성하던 백현은 문득 찬열 역시 오티를 갔다왔음을 떠올렸다.
그가 오티에서의 일을 얘기한 적이 없어 잊고있었지만 그도 분명 오티를 다녀왔음을 떠올린 백현이 울컥하며 고개를 빳빳하게 쳐올렸다.
"너도 오티 다녀왔잖아! 왜 나한테만 그래?"
"그러니까 못가게 한거 아니야?!"
"?"
"악의 구렁텅이에서 구해주려는 나를 무시하고 제발로 걸어가다니... 그래... 신나게 가서 무슨 꼴을 당하고 왔냐?"
"... 이게 무슨 찐빵 터지는 소리야? 악의 구렁텅이? 무슨 꼴을 당하다니?"
찬열이 초점을 잃은 채 중얼거리는 소리에 백현이 알아듣지 못하고 찬열을 이상하게 바라보았다.
이미 딴세계로 접어든 찬열에 도대체 저녀석의 오티는 어땠는지 궁금해진다.
계속해서 입을 움직이는 찬열을 숨죽이고 주시하며 그의 중얼거림을 듣는 백현의 입술이 점차 씰룩거리며 위로 올라갔다.
"... 온갖 짐을 떠맡기질않나 밤에는 여장을 시키더니 성희롱을 하고... 밤에는 토할때까지 술을 먹이고 쓰러지면 발로 차고 다시 깨워 술... 술... 술..."
"너희 과 오티 얘기냐, 그거?"
"꼭 다른사람 얘기인 마냥 묻는다?"
미친... 꼭 지같은 과로 들어갔어요... 혀를 차는 백현에 찬열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백현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너네 과는 안그래? 우리 과만... 나만 그꼴을 당한거였어?
백현의 긍정을 하는 순간 하얗게 재로 변해버릴 것만 같은 찬열이 안쓰러웠지만 백현은 입술을 꾹 깨물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크흡, 병신...하며 찬열의 마음에 더 큰 상처를 준다.
옆으로 털썩 쓰러져 흐느끼는 찬열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백현은 그가 마음을 모두 다스리기도 전에 툭툭 치며 재밌었던 오티 얘기를 풀어놓았다.
듣는둥 마는둥 하는 찬열을 끝까지 퍽퍽 때리면서 이야기를 들려준 백현이 마지막으로 손뼉을 마주치며 해맑게 웃었다.
"그리고 디게 귀엽고 맘에 드는 애 있었어."
"뭐?"
그동안 넋이나가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리던 찬열이 마지막 말에 귀가 번쩍 뜨여 반응했다.
듣고싶은 말만 듣는 모습이 얄밉기도 하고 한편으로 질투하는 찬열이 귀엽기도 해 백현은 씨익 웃었다.
일부러 찬열의 귀에 거슬리는 단어들만 쏙쏙 뽑아 설명하는 백현이다.
백현이 오티에서 만난 작고 귀여웠던 동기를 떠올리며 미소를 지으니 찬열이 애가 탔는지 백현을 보채기 시작했다.
"그래서 번호따온건 아니지? 걔랑 친해졌어? 내내 같이 붙어있었던건 아니지?"
"당연히 따왔지. 내내 같이 얘기하고 놀았거든. 내가 엄청 챙겨줬는데?"
"야, 변백!"
"왜?"
"너... 너... 어떻게 그래... 그래도 내가 니 남친인데.. 어디서 당당하게 바람을 펴?!"
도가 지나친 상상에 결국 백현은 손을 들더니 찬열의 뒷통수를 팍,하고 가격했다.
가만보면 의처증있는 찬열에 벌써부터 대학생활이 걱정이다.
새로운 친구들이 가득할 캠퍼스가 저새끼때문에 똥밭이 될까 두려운 백현이었다.
뒷통수를 잡고 끙끙대는 찬열을 보며 혀를 차던 백현이 다시 자신이 만난 작은 참새에 대해 얘기를 꺼냈다.
너무나도 벅찼던 첫만남부터 꽤 애먹었던 말트임과 그를 보며 떠올렸던 재밌는 생각까지...
그에 대해 신나게 떠드는 백현이 맘에 안들어 인상을 찡그리며 듣고있던 찬열도 한마디한마디 지날때마다 입가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