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첸민] 싸이코 03
w. 김민석(1,만두)
세훈이 저를 그가 있는 곳으로 이끌어 주며 따라오라는 듯 앞서 가는 형사의 걸음에 따라 뚜벅뚜벅, 움직이고 있었다. 살짝 거친 호흡을 내뱉으며 뚜벅뚜벅, 무겁게 힘이 실린 걸음걸이가 세훈이 긴장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세훈은 종대가 저에게 속삭였던 순간이 어느새 머릿속에서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그저 세훈의 머릿속에는 이름도 모르는 남자의 형상만 두둥실 떠다닐 뿐이었다. 긴장이 역력한 세훈의 모습을 힐끗, 쳐다본 민석이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경력 없는 초임이 강력계 순경으로 발령났다. 것도 간부의 예고 없는 지시였기에 민석은 그 누구보다 가장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사실상, 도시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민석의 근무지는 눈코 뜰 새 없이 항상 바쁘기 일쑤였고, 민석의 부서를 통솔하는 자는 김민석 팀장, 즉 자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상부의 지시를 처음엔 거부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총장의 지시라는 말을 들었을 때엔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다. 민석은 나름 저의 직업에 자부를 가지고 하는 사람이었기에 상부를 무시하기는커녕, 오히려 존경하고 우러러보고 있었다. 한마디로, '총장의 지시' 라는 말은 즉 민석을 굴복시킬 수밖에 없는 단어였다고 할 수 있었다. 민석이 별안간 바삐 움직이던 걸음을 우뚝, 멈춰버렸다. 복잡한 머릿속을 애써 정리하며 걷던 세훈이 민석이 멈추자 깜짝 놀라며 황급히 걸음을 멈췄다. 민석이 몸을 틀어 세훈을 바라봤다. 저를 내려다보는 세훈이 기분 나쁠 법도 한데 민석은 개의치 않고 세훈에게 말을 건넸다.
" 이름이 뭐라고? "
" 네, 네. 세, 세훈이요. 오세훈. "
민석의 미심쩍은 표정이 한층 더 깊어져 가는 걸 느낀 세훈이 문득 종대가 자신에게 한 말을 기억해냈다. 형사의 곁에 있는, 네가 사랑에 빠진 그를 어떻게든 유혹해서 형사와 가까워지지 못하게 해놔. 업무 외에는 절대 붙어있을 수 없도록.
' 뭐? 형 지금... '
' 오세훈, 나 너 도와주고 있는 거야. '
' 형. '
' 너는 네가 그토록 되고 싶었던 경찰이 되는 거고, 그냥 내 작은 부탁 하나 들어주고 경찰 생활 열심히 해나가면 끝인데, 뭘 망설여? '
' ... '
' 세훈아, 너는 그냥 저 순경 새끼랑 알콩달콩 연애하면서 하고 싶었던 경찰일 열심히 하면 돼. 우리 아빠 아니었으면, 어떻게 여기에, 것도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곳에 꽂혔겠어? '
아니지, 합격하기도 힘들었을걸? 종대가 비아냥거리는 어투로 세훈에게 일침을 가격했다. 세훈은 화가 치밀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맞는 말이었기 때문에 차마 부정을 할 수가 없었다. 나약한 자신의 탓에 더더욱 화가 치밀어오름을 느끼는 세훈이었다. 종대는 분명, 아버지를 구실로 저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그래,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나 눈치챌 수 있는 거겠지. 그런데, 저를 이용하려는 그의 말이, 그토록 달콤하게 느껴졌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악마와 계약하는 기분, 세훈은 딱 그런 기분이었다. 이윽고 세훈이 종대의 마지막 말을 기억해냈다. 종대는 발령받은 당일, 짐을 싸는 세훈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 세훈아, 너는 그냥, 일을 즐기기만 하면 돼. 대신에, 내가 하는 부탁이 무엇이든 간에, 꼭 들어줘야 해. 만일 그렇지 않으면...
" 듣고 있어? "
" ...네? "
번쩍. 순간 정신이 퍼뜩, 돌아온 세훈이 이내 안절부절못하며 저에게 얼굴을 내민 민석에게 조심스레 반문하였다. 민석은 그런 세훈의 눈을 가만히 쳐다봤다. 뚫어지라 쳐다보는 민석의 눈빛에 세훈이 슬쩍, 시선을 다른 곳으로 피해버렸다. 하아, 정말. 민석이 작은 손으로 이마를 턱, 짚으며 큰 한숨을 내쉬었다. 받아들이는 게 아니었어, 지금 인력도 충분해도 너무 충분해서 문제였는데. 중얼거리던 민석이 이내 심호흡을 짧게 하고선 무미건조한, 그러나 조금은 강압적인 어투로 세훈에게 말을 하였다.
" 너 그렇게 잔뜩 긴장하고 초짜티 내면, "
" ... "
" 강력계 애들이 다 너 깔봐. "
상대도 안 할걸? 민석의 흔들림 없는 눈빛에 세훈이 꼴깍, 침을 삼켰다. 그동안 공부를 하며 숱한 경찰과 형사들을 봐왔지만, 민석은 유독 다른 느낌이었다. 차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그런 대단함을 지니고 있는 민석이었기에ㅡ 세훈은 이내 곧 만나게 될 그를 생각하며 떨리던 손에 한껏, 힘을 주었다. 그리고 민석을 향해 씨익, 웃어 보였다.
" 들어가요, 형사님. "
*
" 상부 쪽 지시야, 이쪽은 오늘부터 같이 일하게 될 오세훈. "
" ...안녕하세요. "
" 종인이도 이쪽으로 발령난 지는 얼마 안 됐으니까 세훈이 이해할 수 있겠지? 네가 얘 옆에서 잘 가르쳐줘. "
세훈은 또다시 바보처럼 말을 더듬을 뻔한 것을 겨우겨우 억눌렀다. 이 정도면 잘한 거야, 오세훈. 세훈은 자신이 차마 이런 식으로 경찰의 의무를 다하게 될 줄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친했던 형의 아버지를 빽으로 삼아, 것도 저의 모든 의지가 반영된 것이 아닌, 종대의 부탁으로 들어오게 된 경찰. 그게 바로 오세훈이었다. 민석의 짧은 소개가 끝나자 자리에 모였던 경찰들은 설렁설렁 인사를 하고선 다시 저의 일을 하러 바삐 움직였다. 조금은 이질적인 느낌에 세훈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 누군가 저의 옆에 슬쩍 다가와 어깨에 팔을 걸쳤다. 아, 잊을 수 없는 이 손 모양은.
" 반가워, 세훈아. "
" 김종인이야. "
김종인, 저의 이름을 말하는 종인의 입 모양이 슬로우 모션으로 보여지는 것 같았다. 두근두근, 또다시 심장이 터질 듯 세차게 뛰었다. 어느새 세훈의 얼굴은 발갛게 익어 귀 끝까지 열기가 달아올라 있었다. 대답 없는 세훈을 살피던 종인이 세훈의 그런 모습을 발견한 것인지, 아하하, 간드러진 웃음을 터뜨렸다. 세훈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꾹꾹 집어삼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웃음소리마저 예쁘구나, 넌.
" 낯을 많이 가리나 보네. "
" 아... "
"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같이 일하다 보면 금방 친해지게 돼 있어. "
오히려 지겨워서 진저리날걸? 종인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리며 씨익, 웃음을 내보였다. 세훈은 종인의 웃음을 보며 간질거리는 가슴께를 그저 느끼는 수밖에 없었다.
" 아, 차가! "
모니터에 시선을 꽂은 채 업무에 열중하던 세훈이 갑작스레 볼에 느껴지는 소름 돋는 차가움에 벌떡, 일어나며 페이스를 잃고 버둥버둥 거렸다. 그 모양새가 퍽 웃겼던 것인지, 종인이 푸하하, 하며 큰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너! 세훈의 말투는 가시가 돋쳐 있었지만, 그것은 외형에 불과했다. 세훈은 종인이 온 것이 내심, 아니 매우 반가웠다.
" 그렇게 일만 하다간 병나요, 아가씨. "
" 누가 아가씨야, 아가씨는. "
항상 세훈의 옆에서 보조를 자처하던 종인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세훈에게 하루하루가 웃음을 멎을 수 없는 날이 되게 해주었다. 물론 거기엔 세훈의 사심이 또 한몫했겠지만. 종인과 눈에 띄게 가까워진 세훈은 생각했다. 이 평화가 오랫동안, 평생 유지되면 좋겠다고. 설령 종대, 그가 무슨 일을 꾸미더라도. 세훈이 종인의 옆을 지켜온 탓인지 종인과 민석이 함께 있는 일은 눈에 띄게 줄었다. 물론, 업무 수행을 할 때에는 현장 출동을 하는 경찰이 대부분 정해져 있었고, 거기엔 종인도 속해있었기 때문에 그 순간만큼은 붙어있을 수밖에 없었지만, 그 외에는 어쩌다 한 번 스쳐 가며 건네는 말 빼고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둘은 붙어있지 않았다. 그리고 종대의 소식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종대가 또 무슨 부탁을 할까, 하는 두려움에 세훈은 휴대폰이 울릴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곤 했었는데, 이상하리라 느껴질 만큼 종대에게선 연락이 오지 않았다. 저가 맨 처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근무할 때에는 가끔 길거리 시비로 서에 들어오는 종대를 볼 수가 있었다. 종대는 저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시선을 무섭다고 해도 될 만큼 민석에게로만 고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한 달이 지났을 무렵에는 종대의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가끔 일이 조금 줄어든 날에는 드문드문 종대의 얘기가 들려오곤 했었다. 매번 시비 걸면서 꼭 서에 출근 도장 찍으시던 놈이, 요새는 코빼기도 안 보이네. 걔네 아버지가 검찰총장이라며? 그놈이 그러고 다니는데, 검찰총장님은 오죽하겠어? 지 이름에 먹칠하고 다니는데, 진저리 날만도 하지. 이런저런 추측을 하며 시시콜콜 종대를 주제로 한 대화를 주고받던 경찰들도 요새는 종대의 존재를 까맣게 잊은 듯, 그 누구도 종대의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민석은 워낙에 바쁜 지라 어쩌다 한 번 열리는 회의 때 빼고는 얼굴 마주하기가 꽤 힘들었다. 세훈은 또 한 번 생각했다. 이 평화로움이, 오래 지속되기를.
" 무슨 생각을 그렇게 열심히 하는 거야. "
" 어? 아니, 아냐. "
" 세훈아. "
종인이 준 캔커피를 이리저리 만지던 세훈이 진지하게 저를 불러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홱, 들었다. 그리고 종인의 얼굴이 숨소리도 들릴 만큼 가까워져 있었다. 기, 김종인. 멍청하게 부풀어진 눈을 고쳐잡을 수도 없이 놀란 세훈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런 세훈의 모양새를 지그시 쳐다보는 종인의 눈빛이 너무나도, 뜨거웠다. 세훈은 종인의 부담스러운 눈길을 피하고 싶었으나, 눈까지 굳어버린 듯 뻣뻣해진 고개로 종인을 마주하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몇 초간의 정적이 흘렀을까, 이윽고 종인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리고...
" 사, 살려주세요ㅡ!! "
고요했던 바깥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서의 문이 벌컥, 열렸을 땐, 피투성이를 한 여자가 쉴 새 없이 눈물을 쏟으며 다급하게 뛰쳐 들어왔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세훈의 뇌리를 스쳤다.
' 만일 그렇지 않으면... '
너도, 김종인도, 다, 죽을 테니까.
그날은, 서늘한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날은, 세훈이 종대의 달콤한 미사여구에 넘어가 근무를 시작한 지 일 년이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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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완결나면 카세 외전은 무조건 써야겠어요. 세후나.. 종이나.. 애들아.... 못된 징어라 미안해....... 눈물 난다.
참고로 세훈이가 근무를 시작한 지 일 년이 지난 날은 프롤 내용에서는 이년 전의 일이에요! 즉, 2편에서 언급했던 장기 프로젝트가 이 때부터 진행 되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프롤 내용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직 이 년이나 남았어요. 하하하. 오래 안 걸리니까 기다려 주세요.... 취조실 썰 풀고 싶어서 눈물 납니다.
항상 봐주시는 여러분께 감사의 인사를. 꾸벅. 엑독방에서 브금 추천해준 징어들아... 사랑해.. 하트.
+ 글씨색 디테일하게 부분부분 바꿨었는데 다 흰색으로 덮어버려서 다시 수정했어요ㅜㅜㅜ
하트 암호닉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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