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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세종] 차가운 숨 10

 

w. 발발

 

 

 

 

눈을 뜬 세훈은 밝은 불빛에 인상을 찡그리며 도로 눈을 감았다.
눈알이 빠질 듯 아파왔다.
한참동안 눈을 감고 있다가 갑자기 눈을 뜨니 눈이 부시기도 했고, 어제 하도 울어 눈물샘이 말라버린 듯 눈이 빡빡했다.
한참만에 다시 천천히 눈을 떴다.
병원이었다.
익숙한 풍경.
시선을 내려 제 오른팔을 보니 주삿바늘이 꽃혀 있었다.
다시 위를 올려다보니 제일 커다란 포도당 주머니가 약물이 다 투입됬는지 투명한 비닐만이 힘없이 매달려 있었다.
자신이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결국 난 이 정도밖에 안되는 구나 싶은 패배감도 온 몸을 감쌌다.
마음껏 자책할 겨를도 없이 간호사가 다가와 주삿바늘을 빼주며 귀가조치를 내렸다.
끙- 하며 몸을 일으켜 침대에 걸터앉으니, 약간 어지럽다가 이내 맑은 정신이 들었다.
세훈은 발치에는 제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발을 내려 신발을 신고 일어났다.

 

"괜찮아?"
"...어."
"다행이네, 가자 그럼."
"진료비 좀 내고,"
"계산 다 했어."
"뭐하러.."
"누가 내든 냈음됬지 뭐, 가자."

 

어느새 조용히 다가온 종인이 잠긴 목소리로 물어왔다.
병원에서 이것저것 주사한 저는 멀끔했지만, 종인의 얼굴이 말이 아니였다.
세훈은 종인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시선을 딴 곳으로 옮겼다.
종인은 그런 세훈을 잠시 쳐다보다가 먼저 뚜벅뚜벅 걸어나갔다.
세훈은 종인이 다섯걸음 정도 앞선 후에야 뒤를 따랐다.
종인이 머물렀던 자리를 지나니, 익숙하지 않은 옅은 담배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입이 깔깔할테니 죽으로 입맛 좀 돌리자고 한 종인이 세훈의 의견은 상관없다는 듯 병원 정문 앞 죽집으로 바로 들어갔다.
세훈이 깨어나기 전에 이미 주문을 해놨었는지, 주인이 바로 포장된 비닐봉지를 내어주었다.
가득 찬 두 봉지를 건네받길래 속을 들여다보니 4그릇이나 포장되어 있었다.
아까 카드랑 니 신발챙기러 갔을 때 보니까 쌀 다 떨어졌더라.
종인은 부러 가볍게 말하며 세훈에게 봉지를 흔들어보였다.
한 봉지는 제가 들겠다고 손을 내민 세훈을 다시 한 번 무시한 종인이 무겁지 않다는 듯 한 손에 두 봉지를 다 들고 남은 한 손은 주머니에 꾸겨 넣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둘은 아무 말도 없었다.
병원에서 집은 정말로 가까운 거리였는데, 아무 말도 안하며 걸으니 굉장히 멀게 느껴졌다.
집 앞에 다다른 종인이 잠시 머뭇거리며 걸음을 멈추었다.
보통 종인이 도어락을 풀었는데, 오늘은 그저 세훈이 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사소한 상황이 익숙치 못해 멀뚱하게 종인을 기다리던 세훈이, 이내 생각났다는 듯 민망한 표정으로 도어락을 풀었다.

 

"너가 어제 비밀번호 바꿨잖아-"
"아.."
"바보..."

 

종인은 옅게 웃으며 문을 활짝 열며 앞서 들어갔다.
그 웃음이 힘겨워보였다.
세훈은 그 씁쓸한 웃음을 되새기며 머뭇머뭇 종인의 뒤를 따라들어갔다.
하루만에 들어온 집인데 이상하게 낯설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어제의 소음과는 달리 고요했다.
제가 엉망으로 해놨던 식탁은 말끔하게 치워져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정돈된 것을 보기만해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평소의 기분을 찾아가는 느낌이였다.
세훈은 집에 들어서자마자 화장실로 가 찬 물로 세수를 했다.
다른 때보다 얼굴을 벅벅 문질러서 세수를 한 것은 세훈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 사이, 깨끗한 식탁 위에 포장된 죽을 뜯어놓고 그릇 안에 양껏 덜어넣은 종인이 스푼을 챙기며 세훈을 불렀다.

 

"세훈아- 아침먹자."

 

세수를 하고 나온 세훈의 표정은 내심 평온한 상태로 돌아와있었다.
힐끔 세훈을 살피던 종인은 그런 세훈을 캐치하고는 저도 편안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 고삼인데 어제 공부 안했다?"
"그러게,"
"오늘도 못 할거 같고.."
".."

 

일부러 건성으로 대답하며 억지로 떠 넣은 죽을 우물거리던 세훈이 입운동을 늦추더니 채 씹지도 않은 내용물을 꿀꺽 삼켰다.
죽이라서 그냥 삼켜도 문제될 건 없었지만, 그 죽은 갓 만들어진 뜨거운 죽이였다.
하지만 세훈은 그 뜨거움조차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겉모습은 태연했지만, 속은 아니였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 없이 몇 번 죽만 휘젓은 세훈이 일어나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병 째 들이키고는 다시 종인의 맞은편에 앉았다.
종인의 눈을 바라보는 세훈의 눈은 예의 진지함이 서려있었다.
종인은 못 본 척 죽을 떠 입에 쑤셔 넣고 있었지만, 곧 세훈의 입에서 나올 말에 긴장했다.

 

"종인아,"
"다.. 먹고 말하지."
"..응"
"..."

 

종인은 세훈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고개를 박고 숟가락질만 했다.
세훈도 종인을 따라 아직 반도 못 비운 죽을 마저 먹기 시작했다.

 

"...이제 말해, 들을 준비.. 충분히 해뒀어."
"그래..."

 

사형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떨림을 감추려 애쓰는 종인이 못내 안쓰러웠다.
긴장을 떨쳐 내려는 듯, 종인은 두어 번 헛기침을 했다.
세훈은 입을 달싹이다가 결심한 듯, 들고 있던 스푼을 소리나지 않게 조심히 내려놓았다.
떨고 있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이는데도, 내색하지 않으려는 종인을 차마 마주할 수 없었다.
종인이 하고 있는 것처럼, 세훈도 살짝 고개를 내리깔았다.
폭풍 전야는 항상 고요했다.

 

"엄마가 출국하기 전 날 아빠랑 통화하는 걸 들었어.
싸우는 걸 듣긴 처음이였는데, 내용이 웃기더라고... 마치 내게 잃어버린 형제가 있다는 투로 말하더라.
엄마가 그 애 이름을 부르며 흐느끼는 걸 듣고 문을 닫았는데, 그 이름이 준이였어."
"..."

 

세훈은 잠시 말을 멈췄다.
정리가 필요한 듯 보였다.
숨을 고르는 소리마저 떨림을 안고 있었다.
남 일 말하듯 차분하게 말하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종인도 숨소리를 죽여가며 세훈을 기다렸다.

 

"그래서 어제, 엄마가 떠나자마자 내가 태어났다는 산부인과 찾아갔어.
나.. 쌍둥이더라.."
"..."
"오세준이더라고, 내 형이란 사람.
니 생각났어. 흔치 않은 혈액형, 니가 입양아란 것, 너네 엄마가 주신 손싸개, 니가 언젠가 내게 말했던 니 진짜 생일도..."
"..."
"우연이라기엔 정황이 너무 딱 들어맞았어."
"잠-"
"종인아,"
"..."
"니가 내 형...인거 같아.."
"..."
"필요하다면 유전자 감식이라도 해보자.."
"..."
"...솔직한 말로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어."
"..."

 

세훈은 천장을 바라보았다.
지독한 말이었다.
제가 참 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애를 앉혀두고 이런 말을 하는 것도.

 

"그럴 필요없어."
"..."
"난 김종인이야."
"종인아-"
"그냥... 김종인이야.. 난 김종인이야,, 김종인일 뿐이야.."

 

상황이 역전됬다.
지난 밤 정신병자같던 저는 고요했고, 담담한 듯 하던 종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가지런히 식탁 위에 올려져있던 종인의 손이 안마의자에 놓인 것처럼 떨리고 있었다.
세훈은 가만히 그 손을 지켜보면서 잠시 입을 닫았다.
차마 그 손을 잡아줄 용기는 없었다.
그럴 자격이나 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종인이는 어지러운 머릿속을 정리해서 말을 하려는 듯, 눈을 굴리며 입을 달싹거렸다.
떨리는 양 손을 깍지를 껴 잡아보기도 하고, 차가워지는 손을 매만지기도 했다.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살면 안될까?"
"..."
"그냥 아무것도 몰랐던 어제로 돌아가서- "
"안된다는 거 우리가 제일 잘 알잖아."

 

세훈의 대답을 빠르고 간결했다.
냉정하게 자르는 세훈이 야속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종인이 얼마나 친부모를 보고싶어했는지 아는 세훈이였다.
그런 제가 누구때문에 그걸 포기하려고 하는지 세훈은 모르는 것 같았다.

 

"..난 너만 있으면 돼, 세훈아. 그냥-"
"..."
"난 그냥 널 사랑하는 김종인이고 싶어.."

 

사랑,
세훈은 당황했다.
저를 사랑한다는 종인의 말에 목이 메어왔다.
물론 자신도 종인을 사랑하지만 입 밖을 꺼낼 수 없던 단어였다.
사랑은 아프려고 하는거라는 노랫말이 떠올랐다.
맞는 것 같다.
지금 이렇게 가슴이 찢어질듯한 순간이 사랑이라면, 사랑은 아프려고 하는 거다.

 

"우리..사랑하면 안되잖아... 그러면 안되잖아, 김종인.."
"...나만 그대로면 변하는 건 없어, 세훈아. 그냥..너도 날-"
"이미 너무 많이 왔어, 애초에 남자 둘이 이러는 것부터가 상식적이지 못했어."
"..상식이라니?"
"인정할 건 인정하자."
"..."
"감정적으로라면 끝이 없어."
"..."
"..."
"난 널 좋아했어."
".."
"이제는 사랑하고."
"알아.."
"사랑에 상식은 필요하지 않아."
"종인아.."
"상식따질 것 같았으면 시작을 말았어야지.."
"..."

 

다 맞는 말이다.
세훈은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제가 하는 말은 다 변명일 뿐이였다.

 

"내가 너 사랑한다고, 김종인이 오세훈을 사랑한다고..! 그게 뭐 어쨌다는거야, 왜, 뭐가...!"
"김종인,"
"내 상식으로는 지금의 니가 이해가 안 가..."
"..."
"나 사랑하긴 해?"
"야-"
"날 좋아하기는 한거야?"
"너...정말 몰라서 그러는거야...?!"
"뭘 더 알아야 돼? 뭐가 더 부족한데! 내가 너 사랑한다는 것 말고 뭐가 더 필요한데!"
"우리가 마음만 나눴어? 그냥 플라토닉한 사랑만 했냐고!
우리 잤어, 종인아.. 우리가 한거.. 그거.."

 

근친상간이라고...
입 밖으로 꺼내니 더 이상 무를 수 없었다.
법적으로 금지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사회통념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행위.
항상 더럽고 반인륜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간혹가다 뉴스에서 그런 기삿거리를 읽으면 별 미친새끼들이 다 있네, 하며 욕하던 저였다.
그 파렴치한 것을 제가 했다.
결과만 놓고 보자면 그랬다.
세훈을 사랑했다.
사랑해서 몸을 나눴다.
사랑해서 한 행동이, 천벌을 받을 '짓거리'가 되버렸다.

 

"하-"

 

세훈의 말에 종인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의자가 마루와 마찰하는 듣기 싫은 소리와 함께 종인이 큰 보폭으로 부엌을 나갔다.
그런 종인에 세훈은 허탈한 웃음을 내뱉다가 애꿓은 식탁만 팍- 내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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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질끌기 싫은데 어쩔수 없네요. 전 초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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