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야동] 츤데레ツンデレ 18 | 인스티즈](http://img836.imageshack.us/img836/8832/15143278.jpg)
[인피니트/야동] 츤데레ツンデレ 18 |
요새 들어 호원이 참 이상했다. 하루종일 자기만의 상념에 잠겨서 바보처럼 멍을 때린다던가, 이리저리 맥을 못 추리고 휘청이다 누군가와 부딪힌다던가. 지난 1년 간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던 호원이 이런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 우현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정신을 땅에 묻어두고 나왔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와 함께 동반되는 우현의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물론 여자도 마찬가지였지만 특히나 남자에게는 눈길 하나 주지 않았던 이호원이, 게이라면 치를 떨고 이를 부득부득 갈았던 그 '궁극적 호모 포비아 이호원'이 도대체 누구 때문에 이렇게 변해버린 건지. 또한 그 분은 어찌 해서 천하의 이호원을 휘어잡는 힘을 소유하게 된 건지 그 발단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게다가 선배라고 함은 분명 우리 학교 학생 중 하나일 텐데, 아무리 발 넓은 우현이라지만 누구인지 통 짐작이 가질 않았다.
설마 이호원이 김성규같은 피곤한 스타일을 좋아할 리는 없고. 당연하다는 듯 우현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심지어 자신도 김성규 앞에선 꼼짝을 못 하는데 아무렴 이호원이라고 다를 리가 없지. 그럼 진짜 누구지? 암만 생각해도 이호원 성격에 딱 들어맞는 선배가 머릿속에 그려지질 않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그 순간까지도 우현은 호원이 말했던 그 '선배'의 중추가 누구인지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얼른 문아 열려라. 열심히 중얼거리던 찰나 경쾌한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분명 진찰이랬으니까 1층 어딘가엔 있을 것이다. 우현은 접수처 앞 의자에 옹기종기 모여 앉은 환자들을 열심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올.. 새끼."
생각보다 호원을 찾기는 쉬웠다. 마치 나 커플이요, 하고 증언이라도 하듯 맨 앞줄에 딱 붙어 앉아있는 사내 둘의 뒷모습이 우현의 앞에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딱 봐도 불편해 보이는 자세로 꼿꼿이 앉아있는 호원과 그런 호원의 무릎에 머리를 기댄 채 누워있는 누군가의 뒷통수. 이호원이 누군가에게 무릎을 내어 주는 모습은 살아생전 처음이였기 때문에 우현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얼마 전까지 게이 냄새 난다고 비키라고 하더니만. 우현은 내심 호원의 포커페이스에 감탄하면서도 호원의 무릎에 뉘인 뒷통수의 주인공이 더더욱 궁금해졌다. 하필이면 누워 있는 바람에 얼굴이 잘 보이질 않는다. 분명 익숙한 뒷통수 같긴 한데….
보아하니 아직 진찰 대기 중인 것 같다. 언젠간 일어나겠지 하는 생각에 우현이 병원 옆 기둥 뒤에 숨어 둘의 모습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걸리면 호원에게 맞아 죽을 것임이 분명했지만 궁금증이 극도로 달한 우현에게 그런 것 따위가 중요할 리 없었다. 저 뒷통수가 누구인지는 꼭 알아야겠다, 싶어진 우현이였다. 때마침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나는 둘의 모습에 우현은 게슴츠레 떴던 눈을 똑바로 뜨곤 둘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호원에게 환히 웃어 보이는 그 뒷통수의 주인공. 그리고….
… 장동우?
이윽고 제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녀석의 모습에 우현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도 제가 궁금해 했던 그 뒷통수의 주인공이 다름아닌 장동우였다니. 하필이면 장동우라니. 맥아리가 탁 하고 풀리는 기분에 몇 번 휘청이다 급히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호원의 손을 꼭 잡고 있던 동우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려졌다. 이럴 수가.. 말도 안 된다는 말만 몇 번이고 중얼거리며 우현은 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아냐, 어떻게 이호원이 장동우랑.. 제발. 우현은 방금 제가 본 것들과 그간 자신의 기억들을 조합해보려 무던히도 애를 썼다. 장동우가 제게 무슨 존재이며, 또 내가 장동우에게 무슨 짓을 했었던 거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서 통 진정되질 않았다. 분명 좋은 일은 아니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좋게 말하면 룸메이트, 나쁘게 말하면…. 아아. 우현이 짧게 탄식을 뱉었다. 그래. 그제서야 어렴풋이 펼쳐지는 기억에 우현의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기 시작했다. 행여 제가 동우에게 했던 것들이 후에 호원에게 밝혀지게 된다면.. 그 후의 일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분명 목숨이 남아나질 않겠지. 우현은 애써 제 자신을 다독이며 달뜬 숨을 골랐다. 침착하자 남우현.
"…그래, 씨발 장동우랑 나랑 무슨 상관이냐."
다소 이기적이게 우현은 제 자신을 합리화시켰다. 자신은 그저 김성규를 대신할 것들을 찾고 있었을 뿐이고, 그 날 하필이면 제 눈에 장동우가 담겼었던 것 뿐이다. 장동우와는 그 이상의 그 이하의 관계도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마음이 어느정도 편해진 것 같았다. 우현은 동우에 관한 자신의 불안감을 애써 지워냈다.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일 아닌가. 엘리베이터를 나서는 우현의 발걸음이 조금은 편해진 것 같았다.
**
"선배." "으응…헉!"
한참을 누워 있던 동우가 위에서 들려오는 호원의 목소리에 잔뜩 놀라 벌떡 일어났다. 분명 제 자신은 의자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던 것 같은데 일어나 보니 호원의 품 안에 웅크리고 있는 것이 당황스럽기 그지없었다. 지금까지 호원이 무릎에 기대서 자고 있었다니. 동우가 잔뜩 미안한 표정으로 호원을 향해 울먹거렸다. 미안해 호야….
"뭐가 미안해요?" "나 머리 짱 무거운데. 내가 호야 무릎에서 자가지고.." "앉아서 자면 목 다쳐요."
그리곤 벙 찐 동우를 향해 씩 웃어 보이는 호원이였다. 그리고 제가 한 일인데 왜 형이 미안해해요. 자꾸만 이 말이 맴돌았지만 결국 호원은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사실은 호원 스스로가 꾸벅꾸벅 졸고 있는 동우를 제 무릎에 뉘였다는 사실을, 눈치라고는 눈곱도 보이지 않는 동우가 알아챌 리 없었다. 어쩌다가 고개가 그리로 갔지.. 미안해 정말. 얼굴이 잔뜩 벌게져선 제게 미안하다 중얼거리는 동우를 바라보며 호원은 아쉬움에 입술을 축였다. 형이 한 게 아니라 제가 한 거에요…. 여전히 맴돌기만 하는 말.
"호 해줄게…. 많이 무거웠지."
동우는 호원의 무릎께에 제 얼굴을 갖다대더니 이내 호 하고 불기 시작했다. 정말로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이 맞는 걸까. 늘상 통 종잡을 수 없는 동우의 행동을 내려다보며 호원은 알 수 없단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자꾸만 제 무릎에 닿는 동우의 입김과 손이 조금은.. 조금은 기분이 이상해졌다. 결국 호원은 제 무릎 쪽으로 향해 있는 동우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슬쩍 밀어내다가, 어깻죽지는 건들이지 말라던 동우의 말이 생각나 급히 손을 내렸다.
"이, 이런 거.. 안 해 줘도 좋을 것 같아요."
갑자기 왜 떼어내냐는 표정을 지어 보이는 동우를 바라보자니 자꾸만 말이 더듬어졌다. 동우의 하얀 손이 제 바지춤에 닿을 때마다 기분이 자꾸만 이상야릇해지는 것이 참을 수가 없었던 호원이였다. 그런 호원을 정녕 모르는 건지 알면서도 모른 체 하는 건지. 다행이도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이던 동우가, 이내 전광판 위로 뜨는 제 이름에 반가운 표정을 해 보였다. 어, 내 이름이다!
"같이 들어갈까요?" "응!"
호원의 손을 맞잡은 동우가 진찰실 안으로 터벅터벅 들어갔다. 마치 소아과 진찰 온 아버지와 철없는 일곱 살 아들과도 같은 풍경이다. 뭐야, 그럼 내가 아버지라는 건가. 문득 제가 생각해 놓고도 어이가 없어져 호원이 피식 웃었다. 의사선생님, 안녕하세요ㅡ 진찰실에 앉아 계신 의사 선생님께 꾸벅 인사를 한 동우가 활짝 웃어 보였다. 덩달아 웃어 주시는 의사 선생님 앞에 마주 앉은 동우를 바라보다가 호원은 그 옆 위치한 소파 위에 털썩 걸터 앉았다. 어디가 아프냐는 질문에 갑자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어깨요, 라고 말 하는데 문득 그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깨 뒤에가요. 막 근질거리기도 했다가 아프기도 했다가.. 자꾸만 괴롭혀요" "좀 자세히 볼 수 있을까?" "네에…."
동우가 제 교복 셔츠 단추를 하나둘씩 풀어 내리곤 하얀 티셔츠를 쭉 올려 의사 선생님께 등을 보였다. 선배는 등마저도 하얗구나. 얼굴만큼이나 하얀 동우의 등과 꼭 아기 같은 동우의 배를 호원이 지그시 쳐다보다가, 문득 갑자기 또 치밀어 오르는 이상야릇한 기분에 고개를 슬그머니 돌렸다. 아까 전부터 자꾸 왜 이러지. 동우만 보면 움찔해지는 것 같아 기분이 그다지 좋지만은 않았다. 붉게 물든 제 볼을 애써 손으로 꾹꾹 누르며 또다시 입술을 축이는 호원. 한편 동우는 의사 선생님의 말을 다소 진지하게 귀담아 듣곤 고개를 끄덕였다. 진찰이 다 끝났다는 말에 꾸벅 인사를 하곤 진찰실을 나오는 둘. 별 일 없어서 다행이라며 헤실거리는 동우에 호원이 다 풀어 헤쳐진 동우의 단추를 위서부터 꼼꼼하게 채워 주었다. 아까 전 동우가 제 셔츠를 채워 주는 모습을 묵묵히 지켜 보더니만, 금세 곧잘 따라하는 호원이였다. 자기가 하겠다며 동우가 계속해서 호원을 말렸지만, 결국 호원은 단추를 모두 채우곤 뿌듯한 표정으로 동우를 내려다 보았다.
"곧잘 하네?" "선배가 해 준 대로."
응, 잘했어 잘했어. 동우가 환히 웃어 보이며 호원의 손을 꼭 잡았다. 교복 입은 남정네 둘이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에 주위 시선들이 제 쪽으로 쏠리는 것이 느껴졌지만 호원은 아랑곳 않고 빼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제 자신도 동우 때문에 많이 변하긴 변한 것 같다. 아마 우현이 보면 기절초풍할 광경일지도 모른다. 호원이 피식 웃으며 동우와 함께 병원을 나왔다.
"결과는 어때요?" "전혀 이상이 없대. 그러면서 막 나한테 장난도 치셨다? 어깨에 때가 많아서 간질거리는 거래." "그래요?" "응. 킁, 혹시 진짜는 아닐랑가 몰라. 호야. 나중에 우리 목욕탕이라도 같이 가자"
목욕탕?.. 또다시 붉어지는 호원의 얼굴을 동우가 알아챌 리 없었다. 그래요 그럼. 맞잡은 둘의 손이 바람결을 따라 살랑살랑 흔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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