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 |
"선생님! 저 질문할 거 있어요!" "선생님! 이거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 이건 왜 이렇게 되는 거에요?"
저에게 발표라도 시킬까 입을 다물고 선생님의 시선을 피하거나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잠을 자던 다른 수업과는 달리 영어 시간만 되면 모든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수업에 집중하기 바쁘다. 딱히 모범생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아이들이 질문을 할 때마다 사탕이나 초콜릿을 주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수업에 집중하는 이유는 매우 단순했다. 선생님 때문에. 평균 키지만 남자치고는 좁은 어깨 때문에 왜소해 보이는 체격과 작은 얼굴에 오밀조밀하게 들어가 있는 뚜렷한 이목구비, 유독 흰자가 많이 보이는 커다란 눈과 웃을 때면 하트모양이 되는 입술, 부드러운 목소리와 다정한 말투. 이런 수많은 매력 중에도 최고로 꼽히는 그만의 매력은.
"선생님..." "응?" "너무 귀여워요..."
생각이 뇌를 거치기 전에 입 밖으로 튀어나오게 하는 귀여움. 나이는 거꾸로 먹은 것인지 유치원생보다 더 어려 보이게 만드는 귀여움. 의도한 귀여움이 아닌 자신도 모르게 행해지는 귀여움. 말 한마디,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에서도 뚝뚝 흘러넘치는 귀여움. 머리부터 발끝까지 그를 지배하고 있는 귀여움이 그를 옴므파탈로 만드는 요소였다. 정작 자신은 모르고 있다는 게 함정이었지만. 사실은 수업보다 선생님에 집중해 있던 아이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업을 듣다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종소리에 단체로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오늘 수업은 여기서 끝! 다음 시간에 단어시험 볼 거니까 다들 공부 열심히 해와~"
책과 분필통을 챙겨 아장아장 걸어나가는 선생님의 뒤를 허겁지겁 가방을 챙겨 맨 아이들이 졸졸 따라나섰다.
"선생님! 초콜릿인데 선생님 드리려고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선생님! 공부하다 모르는 문제 있으면 전화해도 돼요?" "선생님! 주말에 뭐하세요?"
옆 반에서 다른 수업을 듣고 나온 아이들까지 합세해 경수를 둘러싸고 말을 걸어오는 탓에 경수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일일이 대답해주기 바빴고 교무실에 들어가고 나서야 시끄럽다며 아이들을 내쫓는 무섭기로 유명한 수학 선생님 덕분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럼 저는 가보겠습니다! 내일 봬요!"
가방을 챙겨 매고는 웃으며 다른 선생님들한테 인사를 건네는 경수의 모습에 선생님들은 아이들 때문에 받은 스트레스들이 모두 사라지면서 힐링이 됨을 느꼈고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이 맛에 학원에 나오지. 아이들과 똑같은 생각을 하는 선생님들이었다. |
中 |
"왜 이렇게 늦게 나와? 다리 아파 돌아가시겠네." "아 깜짝이야!" "놀라기는.."
학원문을 열고 나오자 문 옆에서 튀어나와 저를 가로막는 큰 물체에 경수는 큰 눈을 동그랗게 뜨며 움찔거렸고 그 모습을 본 사람은 작게 피식 웃으며 경수의 가방을 가져가 한쪽 어깨에 걸쳐 매었다.
"이씨.. 김종인 너 자꾸 나 놀라게 할래?"
김종인이라 하면은 아까 경수의 수업을 듣던 아이들 중 혼자만 표정을 굳히고 경수만 뚫어질 듯 바라보던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과 똑같은 학생의 신분이 아닌 좀 더 특별한 학생. 한마디로 도경수의 애인이라 칭할 수 있겠다.
"근데 진짜 집에 늦게 들어가도 돼?" "그렇다고 몇 번을 말해." "그래도.. 부모님께 허락은 받은 거지?" "네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이 둘이 향하고 있는 곳은 다름 아닌 24시간 운영하는 카페. 곧 있으면 보게 될 중간고사에 공부는 해야겠고 그렇다고 데이트를 안 할 수는 없고. 그래서 정해진 곳이 카페였다. 밤새 종인이 모르는 것도 옆에서 알려줄 겸 데이트도 할 겸. 이게 바로 일석이조 아니겠는가. 갈색 빛이 도는 머리, 스키니라고 해도 될 만큼 줄여진 바지통, 넥타이는 어디에 두고 온 것인지 보이지 않고 윗단추 두어 개가 풀린 채 벌어진 와이셔츠, 바지 주머니에 푹 찔러넣은 한쪽 손까지 노는 아이의 정석인 종인은 외모와는 달리 공부는 열심히 하는 편이라 전교 10등 밖으로 나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성적이 꽤 좋았다. 잘생긴 외모에 놀 건 다 놀면서도 할 건 다 하는 종인은 엄친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고 이런 모습은 경수가 종인의 고백을 받아준 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물론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며 계속 거절을 하는 경수 때문에 종인이 한 달 정도 무한한 애정공세를 해야 했지만.
"아메리카노 한 잔이랑 핫초코 한 잔이요."
주문을 하는 사이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가방에서 책을 꺼내는 종인의 앞에 양손에 커피를 들고 가서 앉아 핫초코를 건네주자 종인이 입을 삐죽이며 투덜거린다.
"아이스 초코라고 했는데 왜 핫초코야." "밤에 차가운 거 먹으면 안 좋아-"
싫은 내색을 하다가도 이내 후후 불면서 핫초코를 홀짝이는 종인의 모습에 경수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어른처럼 행동해도 애는 애라니까..
"아 맞다." "응?" "내가 그렇게 한 치수 큰 가디건 입고 다니지 말랬지." "아.. 그래도 이게 편한 걸 어떡해.."
경수의 사이즈보다 한 치수 큰 가디건의 소매는 경수의 손을 반쯤 덮었고 그것이 귀엽다며 경수의 소매에 대해 얘기하던 아이들 때문에 종인은 오늘 수업 내내 심기가 불편했다.
"하여튼 불안해 죽겠어.." "그러는 너는!" "내가 뭐." "학원에 그렇게 잘생기게 하고 오지 말랬잖아!"
얼굴을 살짝 붉히며 저의 말에 반박하는 경수의 말에 종인은 빵 터져서 크게 웃기 시작했다. 평소랑 똑같이 그냥 교복만 입고 왔는데 뭐라는 거야. 경수가 학원의 선생님들 중에서 꽃이라면 종인은 학원 학생들 중에서의 꽃이었다. 다만 경수는 유한 이미지라 장난도 치고 말도 잘 걸 수 있었지만 종인은 까칠하기로 유명했기에 아이들이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지켜보는 것으로만 만족할 뿐이었다.
"선생님이나 그렇게 귀엽지 좀 마." "내가 귀엽다고 하지 말랬지?" "귀여운 걸 귀엽다고 하지 뭐라고 해." "나 안 귀엽거든?" "귀엽거든?"
경수의 말을 따라 하며 키득거리는 종인의 모습에 경수는 종인을 살짝 째려보고는 투덜거리며 가방에서 오늘 아이들이 본 시험지를 꺼내 채점하기 시작했다.
"내가 도와줄까?" "공부나 열심히 하세요~" "수학 문제 풀라는 거 다 풀었는데?" "벌써?"
고개를 끄덕이고는 시험지를 가져가 채점하는 종인을 보며 경수가 물었다.
"너 답은 알고 채점하는 거야?" "이 정도야 껌이지." "참나.."
씨익 웃어 보이며 대답하는 종인의 모습에 경수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종인의 시험지를 빼내 채점을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동그라미로 가득한 시험지에 종인은 자신만만하게 웃어 보였고 경수는 입맛을 다시며 시험지를 내려놓고 커피만 홀짝였다. 하여튼 잘난 놈.
"채점 다 했으면 얼른 다시 공부해." "지금 쉬는 시간인데?" "누구 마음대로?" "내 맘대로."
테이블 위에 올려진 경수의 손을 잡아다가 깍지를 끼며 경수를 보는 종인의 행동에 경수는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어린놈이 악력은 왜 이렇게 센 것인지 이내 포기하고는 턱을 괴고 종인을 쳐다보았다.
"아까 초콜릿 받았지." "어떻게 알았어?" "먹지 마." "왜? "걔가 거기에 독 탔어." "뭐래." "진짜라니까?"
시덥지 않은 장난을 하면서 질투하는 종인이를 뒤로하고 테이블 위에 엎드리자 종인이 경수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졸리면 갈래?" "안 졸려-" "거짓말." "진짜야. 그냥 머리가 무거워서 그래." "하긴 우리 선생님 머리가 좀 크긴 하지?" "이씨.. 죽을래?" "어이구 무서워라~" "맞기 전에 조용히 하고 영어 공부나 시작하지?" "네네~" "모르는 거 있으면 깨워.." "알겠어."
점점 눈을 깜빡이는 속도가 느려지더니 이내 새근거리며 잠든 경수를 보고는 카운터로 가 담요 하나를 빌려 와서 경수에게 덮어주는 종인이었다. |
下 |
"선생님. 일어나봐-"
저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귓가에 속삭이는 종인에 경수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눈을 비비고는 종인을 보며 물었다. 뭐 모르는 거 있어?
"아니. 나 공부 다 했으니까 집에 가자고." "아.. 몇 신데?" "3시."
기지개를 쭉 피고는 종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우쭈쭈 우리 종인이 오늘도 수고했어~ 라고 말하자 입술을 쭉 내밀며 그럼 뽀뽀. 라고 말하는 종인이의 입술을 밀어내고는 가방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가자 울상을 지으며 그 뒤를 쫄래쫄래 따라나가는 종인이었다. 따뜻한 카페에서 나오자 훅 끼쳐오는 쌀쌀한 새벽 공기에 경수가 몸을 웅크리자 종인이 경수의 옆으로 가 끌어안듯이 어깨를 감쌌다.
"추운데 얼른 집에 가-" "선생님 먼저 데려다 주고." "어차피 우리 집 바로 여기 앞이잖아." "그러니까 선생님 데려다 주고 간다니까? 얼마 걸리지도 않는데."
막무가내인 종인의 행동에 한숨을 푹 쉬고는 은근슬쩍 종인의 옆으로 더 붙자 입꼬리가 슬슬 올라가는 종인이었다. 경수의 집은 왜 이렇게 가까운 것인지. 금세 도착한 경수의 집 앞에서 종인은 괜한 원망을 하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얼른 들어가 봐." "들어가서 카톡 해." "알겠어." "아니, 전화해." "알겠어~" "아 집에 가기 싫다.."
매번 경수를 집에 데려다 줄 때면 이렇게 투정을 부리는 종인에 경수는 종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여주었다. 착하지 우리 종인이- 몇 분을 그러고 있었을까, 한껏 울상을 지은 종인이 살짝 떨어져서 입술을 쭉 내밀었고 그런 종인의 행동에 얼굴이 붉어진 경수는 얼른 종인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굿나잇 뽀뽀해줘야지!" "어,얼른 가기나 해!" "뽀뽀해주면 갈게." "내가 못 살아 진짜.."
우물쭈물 선뜻 고개를 못 드는 경수를 보며 종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도 먼저 뽀뽀 받기는 틀렸구나. 허리를 숙여 경수와 눈높이를 맞추고는 짧게 입을 맞춘 뒤 떨어져 새빨개진 얼굴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경수의 머리를 헝클이며 말했다.
"선생님 잘 자요." |
작가의 말 | ||
고3 종인이와 31살 학원 영어 선생님인 경수... 잘 표현 됐는지 모르겠네요ㅠㅠ 원래는 연애 무경험인 쑥맥 경수로 표현하려고 했으나...실패.... 써놓고보니 달달하진 않고 지루한 일상적인 이야기네요ㅠㅠ 이것은 제 친구의 실화에 픽션을 섞어 쓴 글입니다! 지금은 헤어졌지만 주위의 반대를 무릅쓰고도 엄청 달달하게 사귀던...ㅋㅋㅋㅋ
신알신 해주신 분들, 댓글 써주신 분들, 제 글 읽어주신 모든 분들! 정말 하트 합니다 ㅠㅠ 오타지적과 피드백은 항상 감사히 받고있어요~ (백희 아빠 번외편의 많은 오타들 정말 죄송했습니다 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