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지다
어떻게 하죠
우리는 서로 침묵하네요
멀어지네요
어쩌면 우린 사랑이 아닌 집착이었을까요
어쩌면 우린 사랑이 아닌 욕심이었나 봐요
- 넬, 멀어지다 中
“나 먼저 갈게. 몸 건강하고.”
“여주야.”
“…잘 지내.”
네가 떠나갔다. 잘 지내라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마지막 인사만을 남긴 채. 마지막 인사라도 좀 따뜻하게 해 주면 안 되나. 예를 들면, 그러니까 예를 들면…….
돌이켜 보면 우리의 연애는 참 아름다웠다. 그리고 아름다웠던 만큼 정말 많이도 아팠다. 서로가 서로에게 첫 연애 상대였기 때문이었을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한여름처럼 뜨겁던 우리의 사랑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시리도록 추운 한겨울마냥 차갑게 식어갔다.
그렇게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함께한 우리의 마지막에 남은 건 사랑이 아닌 집착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서로에 대한 관심은 사랑을 거쳐 결국 욕심이라는 결말에 다다르고 말았으니까. 언젠가부터 우리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가두고, 옥죄기 시작했다. 그때 알았어야 했는데. 그건 사랑이 아닌 집착이었다는 것을. 세상에 믿을 사람 하다 없다고들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서로를 의심하지 말자던 처음의 약속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그 약속이 사라진 자리에는 의심과 불신만이 남아있었다. 그것 또한 사랑의 일부라고 생각한 나는 정말 어리석기 그지없었다. 정말 사랑한다면 놓아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왜 그땐 몰랐던 걸까. 그토록 사랑한 너를 왜 그렇게 믿지 못했던 걸까. 나에게 사랑은 너 하나인 것처럼 너에게도 내가 유일한 사랑이라는 사실을 왜 그렇게 믿지 못해 불안해했던 걸까. 하루에도 수십 번도 넘게 후회해 보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변할 대로 변해버린 나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너는 이제 내 곁을 떠날 준비를 모두 마친 것처럼 보였으니까.
내가 너에게 나의 마음을 꺼내 보인 날, 그러니까, 우리가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영원한 사랑을 기약한 바로 그 날, 너는 수줍은 얼굴로 내게 말했다. 우리는 아무래도 운명인 것 같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 모든 게 가능하겠냐면서. 그리고 그때의 난 너의 그 말에 바보처럼 맞장구를 쳤었다. 너를 처음 만난 날부터 나 또한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연인들과도 다른 특별한 사랑을 하게 될 것이라는 걸 확신했었으니까. 변하지 않는 사랑은 없다는 공식을 깨고 영원히 처음의 이 사랑을 지켜낼 대단한 연인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그러나 그 모든 건 나의 자만이었다. 우리의 만남은 세상 모든 연인들의 만남이 그렇듯, 우연적이고 가변적이었다. 특별한 점이라곤 단 하나도 찾아낼 수 없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만나기만 하면 시간이 흘러가는 게 아까울 정도로 재잘대던 우리는 더 이상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서로에 대한 오해가 생겨도 풀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게 편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는 동안 너와 나 사이에 끼어든 검은 침묵은 우리의 사이를 조금씩 갈라놓고 있었다. 서로에 대한 모든 것을 궁금해하던 연애 초반과는 다르게 우리는 서로에게 그 무엇도 묻지 않았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는 대신, 우리는 각자의 목소리를 높이는 데만 급급했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했다. 아니, 세우지 않았다고 하는 쪽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네. 나는 네가 나에게서 멀어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기만 했다. 그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서로가 서로에게서 멀어져가는 걸 지켜만 보던 우리는 결국 이별의 순간을 직면했다. 어쩌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미 가까워지기엔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걸 너도, 그리고 나도 다 알고 있었으니까. 솔직히 이 침묵의 끝이 결국 헤어짐일 거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잖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로 현실이 되어버린 이 순간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이별이 이렇게 아픈 것인 줄 알았더라면 멀어지는 너를 붙잡기 위해 조금 더 노력해 볼걸. 너를 조금 더 믿고, 아끼고, 사랑해 줄걸. 그러나 이미 너무 늦어버린 후였다. 이제 와서 노력해봤자 전부 집착이라는 이름으로 변질될 것이 뻔했다. 하지만 불어오는 바람에 떠내려가는 나뭇잎 같은 너를 잡을 수만 있다면 단 한 번만이라도 잡아보고 싶었다. 이기적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욕심을 내보고 싶었다.
― 우리 참 오래 만났다, 그치?
― …….
― 나는 오빠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 …여주야.
― 응?
― 안 가면 안 돼?
― …….
― 그냥 내 옆에 있어 주면… 안 될까?
끝이 다가오고 나서야 구질구질하게 너를 잡아보려던 나의 말에 터져 나온 너의 눈물은 무얼 의미하고 있었을까. 내가 느끼고 있는 것과 같은 후회였을까, 아니면 곁에 있어 달라는 나의 부탁을 들어줄 수 없는 것에 대한 미안함이었을까.
― 오빠, 알잖아.
― 그래도….
―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 서로 모르는 사람이었잖아. 그냥 그때로 돌아간 거라고 치자. 힘들겠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하자.
― 어떻게 그래. 이미 너를 알아버렸는데. 이미 너와 너무 많은 것들을 함께 해 버렸는데….
― …내가 더 이상 오빠 옆에 남아있을 자신이 없어서 그래.
― …….
― 미안해.
두 눈에 가득 고인 눈물을 애써 참아가며 담담히 이별을 말하는 너에게 끝내 전하지 못한 한 마디.
‘나 없이도 항상 행복해야 해.’
네가 행복하기를 바라면서도 그 옆엔 언제나 내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저버릴 수 없었다. 이것 또한 집착이겠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멀어지는 이 순간까지도 나는 너를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계속해서 멀어지는 너에게서 차마 눈을 떼지 못했으니까.
“고마웠어. 너도 아프지 말고, 잘 지내.”
그렇게 우리는 길었던 5년간의 연애에 마침표를 찍었다. 멀어지다 못해 사라져버린 너를 돌려놓을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네가 나를 한때 정말 사랑했던 옛사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는 헛된 욕심 따위는 부리지 않았다. 나는 마지막까지 너를 힘들게 한 전 남자친구 1에 불과한 사람이니까.
+ 성운아 노래해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