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랩홉]용포
W.홉이 명찰
"입거라."
차가운 용포가 손에 쥐어졌다.아무말 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이 권력에 대한 욕구로 가득찼다는 것을 나는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역모.나는 지금 조선에 엄청난 죄를 범하려 하고 있었다.단지 나의 사랑을 지킨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나는 이나라 관리의 아들중 한명이었다.그리고 내가 몰래 염모하는 그는 영의정의 아들이었다.나는 그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다.모든 인간의 심리가 그러하듯 좋아하는 사람을 더 보고싶고 가까이 하고싶은게 아니겠는가.그래서 나는 괜히 그에게 다가갔다.평소엔 들여다 보지도 않던 책자들을 들고 괜히 모르는것을 물으러 가기도 했었다.그는 평소에도 학문을 가리켜주는것을 좋아했고 사람들 또한 좋아했다.그리고 그것은 나에게도 해당이 되었고 그에게 나는 귀여운 동생으로 남아갔다.나는 그의 머릿속에 내가 있다는것 자체만으로도 기뻤으므로 괜찮았다.
그러던 어느날부터 그는 변했다.학문을 좋아하던 그는 학문을 통해 망가져갔다.이상한 책자들을 권위를 내세워 자신의 손에 들어오게하고 이상한 야망을 가졌다.그리고 그가 유일하게 믿는 동생이었던 나는 그 야망에 자연스레 가담하게되었다.그게 설령 역모일지라도 나는 이 삶의끝에서도 그와 함께하고 싶었다.
지금 용포를 입고 군사를 이끌며 은밀하게 황궁으로 향하는 이순간에도 내앞에 있는 그는 반쯤 정신이 나가있었다.그 모습마저 아름다워 보이는 내 자신이 한심했다.그리고 우리의 큰 야망이자 지금은 결국 실현하게 된 역모와 권력이 눈앞에 있었다.손에 고여오는 땀에 용포속에 감추고 있는 단도를 꼭 감싸쥐었다.
"자객이다!"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우리는 왕의 호위병들에게 들키고 말았다.당황한 듯 흔들리는 그의 동공에 서둘러 그를 내 등뒤에 감추고 소리쳤다.
"겁내지마라!!한놈도 빠짐없이 다 죽여라!안그럼 너희가 죽는다!"
"으아아아!"
챙-.
칼날이 부딫히는 소리가 궁을 울렸다.깊은 밤이라 이곳에 있는 사람들 말고는 눈치채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심장이 터질듯 두근거렸다.마지막을 위해 준비해 놓은 작은 단도를 여전히 숨긴체 등뒤로는 어느 순간부터 덜덜 떨고있는 그를 꼭 붙잡았다.여기서 이렇게 죽을수는 없다.지금 이대로는 위험하다.
"피하셔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목표는 아직…."
"몸을 생각하세요!!!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입니다. 어서 도망쳐야 합니다!"
여전히 입을 달싹이는 그의 손을 꼭 붙잡고 뒤로 뛰었다.자객이 올것을 미리 알고있었는지 군사들이 넘쳐났다.작은 단도하나에 의존하여 그들을 베어냈다.용포를 적셔가는 새빨간 피와 그 역한 냄새에 토악질이 나올것 같았지만 오직 나머지 손에 붙들려있는 온기만을 생각했다.뒤에있던 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볼뿐 무기가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굳건해지세요."
"홉아…. "
"그래야 지금 이순간에서 살아나갈수있습니다."
언제 부터인지 나와 그는 왕의 호위병들에게 고립되어있었다.군사들에게 둘러싸인 우리는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위태로웠다.내가 찰나의 틈을 노려 한명한명 베어내기 시작하자 그것을 시발점으로 모든 군사들이 우리에게 달려들어왔다.그중 살기를 내뿜으며 창을 높이들어 그에게 던지는 한놈을 난 발견해버리고 말았다.
"윽…."
"홉,홉아!"
"괜찮으신,겁니까…."
본능적으로 그에게 몸을 던진 나는 그창을 대신맞고 말았다.그리고 그런 나를 발견한 그가 따뜻한 손으로 내몸을 끌어당겨 자신의 품안에 가두었다.뻥 뚤린 등을 통해 꾸역꾸역 세어나오는 피가 느껴졌다.비린내가 온천지를 뒤덮었다.그리고 내앞에서 처음으로 눈물을 보이는 그를 나는 덜덜 떨리는 손으로 쓰다듬었다.
"남..남준…."
"왜,왜그러느냐….왜 피를 흘리느냐…."
"그런 슬픈 눈을 하지 마세요."
"나는….나는 너를 이렇게…."
"남,남준…형님…."
말을 잇기가 점점 힘겨워왔다.목에서 울컥 차오르는 피를 뱉어냈다.호위병들은 나의 마지막을 안위해주는듯 아무짓도 하지않았다.그리고 나는 지금 평생을 살면서 하지못했던 말을 털어내고 싶어졌다.
"사모했습니다…."
"………."
"앞으로도,그럴까 합니다…."
정신이 아득해졌다.애달프게 외치는 비명소리가 멀어져갔다.어렴풋이 나또한 이라는 말이 들렸던것도 같다.
나는 편히 눈을 감았다.
[뷔홉]김태형
빗소리가 학교현관을 가득 채웠다.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우산이 없었다.비를 맞기만 하면 감기가 걸리는 지라 왠만하면 우산을 챙기고 다녔었는데 하필 어제 가방정리를 한답시고 몇달째 오지않는 비에 무게만 차지했던 우산을 빼버린게 화근이었다.오랜만에 일찍 하교하는 것인데 기분은 전보다 훨씬 못했다.
어??
빗속으로 몸을 던지려던 찰나 저멀리서 익숙한 형체가 달려오고있었다.손에는 우산을 들고 헐레벌떡.나는 그게 누군지 한번에 알아봤고 이해할수 없는 상황에 멍하니 입만벌렸다.빠르게 나에게 다가온 그는 자연스럽게 우산을 나에게 내밀며 웃고있었다.우산을 쓰고 왔지만 달려오는 바람에 그의 앞머리는 다 젖어있었다.
뭐야 아저씨.일은 어쩌고 왔어.
말은 삐딱하게 하면서 머리에 묻은 물기를 털어주었다.그 손길이 싫지 않았는지 푸스스 웃는게 보기좋았다.검은 양복의 팔부분은 급히 뛰어왔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거의 젖어있었다.
아저씨 감기걸릴거같아.빨리집에 가자.
나보다 니가 감기걸리면 안돼니까.내가 모를줄 알았지?
다알아.너 비맞으면 감기걸려서 골골 앓아눕는거.무심한듯 입에서 터져나온 그말이 우중충한 날씨같던 내 기분을 좋게만들었다.마음속에 있는 먹구름이 게이는 기분.딱 그랬다.사랑이라는 것은 정말로 사람을 바뀌게했다.
감기 걸리면 아저씨가 옮겨갈거면서 뭐?
머리에있는 물기를 모두 털어내고 나란히 서서 같이 학교 현관을 벗어났다.집으로 가는 길동안 웃음은 끊이질 않았으며 옆에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주변 공기가 따뜻한것도 같았다.첫사랑을 하는 소녀인것마냥 양볼을 발갛게 물들이고 나는 그와 빗속을 걸어갔다.처음만나서 연애를 시작하게 된 그날처럼.
내 취향대로 써보긴했는데 독자님의 취향엔 맞으려나...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