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대는 연하남과 철벽게임썰 3
고무줄다리기
w. 랑데부
"..저 좋아해요"
"1학기부터 계속 좋아,"
"미안 내는 니 안 좋아한다"
도운은 딱딱하게 답했다. 좋아하는 사람 따로 있어서, 그 말은 물론 삼켰지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이 상황이 언제 끝이 날까만 기다리며 도운은 시선을 무심하게 하늘로 올려다보았다.
"..어? 아니 전화 안 하려고 한 게 아니고 그게"
어 누나다.
"누나!"
11.
"누나"
"누나아"
지금 책 보고 있잖아 도서관에서 계속 부르지 말랬지. ㅇㅇ는 책에서 시선을 꽂고 손만 뻗어 도운의 입을 막았다. 주위 민폐 끼치지 말고 너도 책 읽어 빨리. 알았어요. 도운은 자신의 입을 막은 ㅇㅇ의 손을 쥐고 웃었다.
"안 놔?"
"아 누나아"
내 한번만 봐도. 아 귀찮게 하지 말라고 그랬지. 오늘따라 댕댕 치댐이 심해 ㅇㅇ는 어쩔수 없이 도운을 바라보았다. 왜 뭐 빨리 말해
"내 이따가 축구하는데 오믄 안돼요?"
"응 안돼"
"아 그라믄 내 제형이형한.."'
갈게 간다고. 갈 거야 그러니까 너 입 뻥끗하지마 알았어? 도운은 그제서야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성취하고 맑게 웃었다. 아싸. 하 내가 쟤한테 하필 저런 걸 들켜서, ㅇㅇ는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쟤 앞에서 우는 게 아니었어 진짜 미치겠네. 자책하는 ㅇㅇ를 도운은 그저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다 헝클이진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그럼 이따 봐요"
*
ㅇㅇ는 축구경기가 막 시작되기 전 스탠드에 앉았다. 나 이거 끝날 때까지 안 보면 백퍼센트 윤도운 삐치겠지. 도운은 스탠드에 앉아 경기장을 둘러보는 ㅇㅇ에게 마구 손을 흔들었다. 누나 여기 여기! 알아, 너 봤어. ㅇㅇ는 마지못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이 땡볕에 지치지도 않나, ㅇㅇ는 스탠드에 퍽 가려진 태양을 한 번 바라보고 잠시 지갑을 꺼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이라도 사와야지 뭐,
"같이 보자"
물을 사 다시 스탠드에 앉아 막 시작한 경기를 보려는 순간 퍽 감기는 목에 옆을 돌아보니 제형이었다. 그래. ㅇㅇ는 떨떠름한 입 안에 물 한 모금을 들이키고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 선물 줬냐고 그래서 기뻐했냐고 궁금했지만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물을 넘겼는데도 입 안이 썼다.
"..뭐야 쟤"
윤도운 원래 축구 잘했어? 아마도. 저렇게 잘하는 애였나. 도운은 경기장을 정말 수도 없이 뛰어다녔다, 어어 와. 그리곤 시작 후 금방 골문으로 공을 찼다. 스탠드에서 탄성이 터져나왔다. 순식간으로 터진 골과 함께 도운은 ㅇㅇ가 앉은 스탠드로 달려왔다. 누나 봤어요? 내 골 넣는 거 봤어요? 봤어 잘했어. 막 숨을 몰아쉬며 웃는 도운에 ㅇㅇ는 앞머리를 흩뜨려주었다. 아싸
"계속 봐야 돼요, 알겠죠. 내 지짜 열심히 뛸 거니까"
"알았어 알았어"
도운은 그렇게 다시 필드로 달려갔다. 그냥 앞머리 한 번 쓸어줬는데 저렇게 좋아할 일인가, ㅇㅇ는 근처에 쌓인 수건 중 하나를 집어 옆에 내려놓으며 고개를 갸웃했다.
"많이 좋아하나봐"
"응?"
"쟤, 윤도운이"
제형이 말했다. 너 엄청 좋아하는 거 같은데? 아, 아 어. ㅇㅇ는 그저 그렇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제형의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워 그렇게 시선을 피해 도운을 향했다. 그렇게 울었는데 아직도 떨어져 나가지 않은 제형에 ㅇㅇ는 손톱을 뜯었다. 근데 생각보다 축구 재밌네, 윤도운 쟤가 잘해서 그런가. ㅇㅇ는 어느새 팔을 괴고 경기를 집중했다. 제형과 많은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나을 거 같았다.
"도운아 물"
"뭐고, 누나야 가서 사왔어요?"
"응. 덥잖아"
야야 그거 마시는 거라고 가방에 챙기지 말라고. 제발 그런 거 기념품으로 챙기지마. 도운은 꽤나 감동을 먹은 눈치였다, 결국 ㅇㅇ가 빼앗아 물병을 따준 후에야 그 물은 가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잔뜩 땀을 흘려 더울텐데 ㅇㅇ에게 쉬는 시간 동안 이것저것 묻는 도운의 표정은 퍽 남의 시선으론 귀여웠다.
"도운아 수건. 땀 좀 닦아 너 엄청 덥지"
"그래 덥진 않은데, 와 누나야 지금 내한테 이거 다 챙겨준거가"
"너 그거 또 가방에 넣지마라"
ㅇㅇ는 슬쩍 가방을 집는 도운의 손을 탁 때렸다. 하지마 하지말라고. 알았다 알았다고. 더 함께 있고 싶었으나 다시 휘슬이 불리고 도운은 자리에서 뛰어나갔다.
"있잖아"
"응"
"I don't think her likes me"
(그 사람은 날 안 좋아하는 거 같아)
경기를 함께 지켜보던 제형이 ㅇㅇ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나를 한 번도 안 봐. ㅇㅇ는 제형이 던진 이야기에 순간 모든 것이 멎었다 이내 추락했다. 나만 좋아하는데 아니 그냥 그래. 위로가 필요했다, 위로를 해줘야하는데 #ㅇㅇ은 손을 오므렸다 펴기만 했다. 경기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
"얼마 안 지났잖아"
"...조금만 더 지켜보자"
꼭 너 좋아할 거야. ㅇㅇ는 끝내 완성하지 못한 문장을 삼켜냈다. 여기까지가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의 한계인 거 같아.
"야 윤도운!"
그때였다. 시선이 그 어느 곳도 아닌 땅으로 잠시 쳐져 있던 순간 필드로 달려나가는 몇몇 사람에 ㅇㅇ는 고개를 들었다. 뭐야? 잠깐만 내가 가볼게. 급하게 둘러 쌓이는 인파에 제형은 ㅇㅇ의 어깨를 쥐었다 일어서 뛰어갔다.
"뭐야 무슨 일이야?"
"태클, 넘어졌대"
"야 너 일로, 아니 내가 갈게"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사람들은 헤쳐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얼음팩을 들고 절룩거리는 도운을 보고 ㅇㅇ는 몸을 일으켰다. 우선 앉아, 제형의 부축으로 자리에 앉은 도운은 수건을 목에 걸었다. 그리고 도운의 앞에 ㅇㅇ는 마주 앉아 도운을 살폈다.
"너 괜찮아?"
"으, 괜찮아요"
"아닌 거 같은데 많이 아파?"
그냥 좀 삔 거 같아요. 그냥 좀 삔 게 아닌 거 같은데, ㅇㅇ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리고 입술을 물었다. 어떡해. 그래 걱정 안 해도 되는데 누나야. ㅇㅇ는 도운이 애매하게 들고 있는 얼음팩을 뺏어 도운의 발목에 조심히 갔다 대었다. 아파? 많이?
"그래 아프진 않아요, 아아"
"뭐가 안 아파. 많이 붓겠다"
원래 운동하다보면 쫌씩 다치는 거죠 뭐. 그럼에도 풀어지지 않는 ㅇㅇ의 표정에 도운은 고개를 기울여 ㅇㅇ를 마주 바라보았다.
"내 진짜 괜찮아요"
"인상 쫌 펴요, 안 아프다니까"
안 아픈 게 아닌 거 같으니까 그러지. ㅇㅇ는 얼음팩을 왼손으로 옮겨 쥐고 다시 대주며 답했다. 누나야 손 시리겠다, 이제 내 도요. 괜찮아 내가 할게.
"누나"
"누나아"
"왜"
"그냥"
자꾸 그렇게 싱겁게 부를래? 내 맘이에요. 하 진짜 환자라 뭐라고 할 수도 없고, ㅇㅇ는 그런 도운을 바라보다 시선을 발목쪽으로 내렸다. 그러나 오른손에 닿는 열기에 이내 다시 도운을 올려다 보았다.
"손 시리제"
"..야 아니,"
"누나야 계속 얼음팩 들고 있었어요, 몰랐나"
손 차가워진거 봐라. 도운은 ㅇㅇ의 조막만한 손을 쥐었다펴며 차가운 손을 덥혀 주었다.
"그래도 축구 재밌제"
"어. 그래도 다치지만 마"
"알았어요"
뭐가 그렇게 좋아서 웃어. 이따가 알바는 갈 수 있겠어? 네, 갈 수 있다. 그만 웃으라고. 알았다 알았다고요.
*
"넌 집에서 쉬지 뭐하러 따라와"
"내도 시험 공부 해야죠"
"발목 정말 괜찮아?"
괜찮다니까 몇 번을 말해요. 알바를 마치고 영 하지 못한 시험 준비에 다시 학교 도서관으로 향하는 ㅇㅇ를 따라 도운은 가방을 매고 다시 쫄래쫄래 쫓아 걸었다. 하 진짜. 괜찮아 보이기는 하는데 아무래도 현저히 느려진 도운의 걸음 속도를 ㅇㅇ는 맞춰 걸었다. 집 가서 쉬라고. 넹. 따라오지 말고. 넹. 와 얘 진짜 이제 대답만 해, 죽을래?
"누나아"
"왜"
"근데 그거 맛있나"
한참 책을 파다 찢어서 먹어야하나 고민하던 ㅇㅇ가 사온 아메리카노를 도운이 앉아 빤히 바라봤다. 아 너도 졸리지 좀 마실래?
"함 줘봐요"
"...사약 아이가"
도운의 표정이 깡그리 찌푸려졌다. 아, 도운은 급하게 자신의 카페라떼를 물었다. 아 이것도 써. 야 미안 너 못 마시는 줄 몰랐어. 켈록거리는 도운의 등을 탁탁 두들겨 준 ㅇㅇ는 도운의 찡그린 표정을 살폈다. 죽는 건 아니지? 진짜 저거 사약 아이에요? 누나 사약은 안 먹어 도운아.
"와 저걸 우째 먹노"
"잠 깨려고 먹는 거지 뭐"
그냥 자요 내 깨워주께요. ㅇㅇ는 쓴맛의 여파에 파드득 거리는 도운을 보고 웃음이 터졌다. 아 웃으면 안 되는데. 이게 웃겨요? 어 미안한테 좀. 연신 터지는 웃음을 진정 시키고 ㅇㅇ는 커피잔을 쓰레기통에 버렸다. 다시 공부할 거에요? 시간이 좀 애매해서 나머지는 집에 가서 하려고.
"가자, 데려다 줄게요"
"오늘은 가서 쉬어. 너 발목도 아프잖아"
"내 누나야 데려다 줄 정도는 되거든요"
ㅇㅇ는 가방을 챙기는 내내 느린 도운의 발걸음이 신경에 쓰였다. 너 안 될 거 같은데, ㅇㅇ는 가방을 둘러 매고 도서관을 빠져나오다 문득 걸음을 멈추고 도운을 붙잡았다.
"내가 데려다줄게"
"네?"
"가자"
와 누나 내 데려다 준다고 한 거가. 도운은 작게 벌어진 입을 급히 닫았다. 누나야 방금 내 데려다준다고 한 거 맞나, 응? 맞으니까 조용히 따라와. 저정도 반응이면 괜히 데려다 준다고 한 건가 ㅇㅇ는 빵긋빵긋 웃으며 따라오는 도운을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가는 길 내내 오디오가 비질 않았다. 있잖아요, 누나아. 나한테 할 말이 그렇게 많니. ㅇㅇ는 도운이 시도때도 없이 묻고 말하는 이야기를 조용히 끄덕이며 들었다.
"들어가"
"누나야 가는 거 보고요"
"그럼 갈게"
깜빡거리는 가로등 밑에서 ㅇㅇ는 도운에게 손을 흔들고 뒤로 돌아섰다.
- call me
제형의 문자였다. 아 아직 내가 전화를 안 했구나, ㅇㅇ는 화면에 뜬 제형의 문자를 조금 오랫동안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거 먼저 끊어내야 할 거 같은데. 누나아. 휴대폰을 쥐고 한숨을 쉬려던 찰나 나지막한 도운의 부름에 ㅇㅇ는 뒤를 돌아보았다. 아 깜짝이야 너 왜 여깄어, 왜 따라 내려왔어.
"잘 가요"
인사하려고. 뭐야 빨리 들어가
"그리고"
"잘 자요"
집 가서 전화해요. 내한테 꼭. 그리고 도운은 씩 웃으며 다시 집으로 달려가 버렸다.
"꼭 해야 돼요!"
끝까지 전화기 모양 손을 흔들어 보이는 도운에 ㅇㅇ는 알겠다며 돌아서 걸었다. 이 문자는 조금, 조금 이따가. 휴대폰을 주머니 안에 꾹 쥐고 걷는 ㅇㅇ의 뒤로 ㅇㅇ가 아주 멀리 점이 될 때까지 도운은 문에 기대 그렇게 걸어가는 ㅇㅇ를 웃으며 바라보았다.
12.
"너 이거 고칠 수 있겠어?"
"할 만 할 거 같은데요. 근데 누나야 안 졸리겠어요? 고쳐서 낼 갖다주까요"
사건의 발단이라 해야 할까 꽤 오랫동안 들고 다녀서 그런건지 대체 뭐가 문제인 건지 노트북이 영 말을 듣지 않았다. 그거 고쳐주까요? 그리고 그 노트북은 도운의 손으로 넘어갔다. 너무 능숙하게 노트북을 만지길래 그냥 컴공과 가라고 할 껄. 이것저것 두들겨서 만지고는 있는데 옆에서 공부하며 기다리자니 시간 상 너무 피곤했다.
"오늘 일이 좀 빡셌죠"
"..응"
"아이 진짜 오늘 오신 손님 중에,"
어? 도운은 퍽 떨어지는 고개에 손을 멈추고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누나야 졸렸구나, 어 근데 쫌 있음 가야 될 텐데. 도운은 잠시 노트북을 내려두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어 가야할 거 같은데.
"누나"
"누나아"
마이 피곤한, 도운은 순간 쌔근거리는 숨소리에 어깨를 흠칫 떨었다. 와 이래 빨리 잠들어버리나. 정말 피곤했는지 펜을 고스란히 쥐고 잠들어버린 ㅇㅇ를 보고 도운은 고개를 반대로 휙 돌렸다. 여서 자면 허리 아플 거 같은데. 우선 도운은 매우 조심스럽게 ㅇㅇ의 손에 쥔 펜과 책을 조심히 빼 바닥에 내려두었다. 그리고 ㅇㅇ를 정말 조심히 안아 들었다.
"..흡"
깨지마라 깨지마라. 도운은 그렇게 폭 안아든 ㅇㅇ를 매트리스 위에 올려 눕혔다. 누나야 여 불편할낀데. 침대 대신 메트리스만 두고 자는 도운은 저도 모르게 손을 뜯었다. 누나야 안 불편할까. 으응.. 그리고 이내 잠에 움츠리는 ㅇㅇ에 입을 꼭 막은 도운은 바닥에 떨어져있는 베개를 숨소리도 내지 않고 집었다.
"...와 이거 어떻게 해야 하노"
누나야 깨지 말고 자라, 자도 된다. 도운은 떨떨 떠는 손을 찰싹 때리고 ㅇㅇ에게 베개를 벨 수 있게 넣어주었다. 그리고 다시 살포시 손만 빼어내고 도운은 ㅇㅇ를 바라보았다.
"아 맞다 이불"
조금은 엉성했고 베개가 제대로 ㅇㅇ의 머리를 받쳐 주지도 않았지만 도운은 열심히 이불도 꺼내 덮어주었다. 근데 다 목까지 다 덮어줘야 돼노, 더울낀데. 도운의 끝도 없는 고민이 시작 되었다. 그럼 배까지 덮어주면 추울낀데. 도운은 더우면 혹 추우면 알아서 이불을 차내불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도운은 ㅇㅇ의 목 끝까지 이불을 덮어 주었다.
"감기 걸리는 것보다 낫제 이게"
그리고 도운은 마지막으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누나야 잘자요.
아 근데 내는 어디서 자지?
*
네 말이 맞았어. 조금은 보는 것 같아 나를. 제형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ㅇㅇ의 손을 붙잡았다. 고마워 진짜로, 나간다. ..어? 어 가. 제형은 꽤나 신난 표정으로 ㅇㅇ의 어깨를 짚은 뒤 저멀리 뛰어가버렸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그 빈 자리는 공허함이 아니라 축하여야 한다는 것. 그 빈 자리는 어쩌면 당연한 것.
"가자"
"뭐야?"
"내 데려다 주께요"
그렇게 달려가버린 제형의 잔상을 바라보던 ㅇㅇ의 어깨에 턱하니 팔 하나가 둘러졌다. 집 가는 거죠, 가자. 뭐라고 말릴 새도 없이 걸었다. 도운은 오늘따라 이것저것 말을 걸지 않았다. 배려해주는 건가, ㅇㅇ는 뜸하게 벌어진 제형의 연락을 지우며 한숨을 쉬었다. 그런 ㅇㅇ를 도운은 힐끗힐끗 바라보다 머리를 헝클였다.
"땅 꺼지겠다 누나"
"응?"
"안 되겠네"
야 야 잠깐만, 야 이 새끼야 나 그거 약정 엄청 남았다고 야! 도운은 그렇게 ㅇㅇ의 머리를 헝클이고 심각하게 ㅇㅇ를 바라보는 것 같더니만 불쑥 ㅇㅇ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들고 내달렸다. 야 안 내놔? 누나 운동 부족이에요 싫음 뺏어가든가. 여기서 운동 부족이 왜 나와. 아니 진짜 댕, 강아지가 맞는 건지 빠르기도 겁나 빨랐다.
"야 야 너 죽었어"
"아인데 안 죽을 거 같은데"
"아 빨리 달라고"
어떻게 붙잡긴 했으나 휴대폰을 든 손을 번쩍 올려 도저히 닿지가 않았다. 너 내가 키 가지고 놀리지 말랬지. 누나야가 언제 그랬노 내는 모른다. 야 진짜 너 안 줄 거야? 넹. ㅇㅇ는 한참을 낑낑 거리며 제자리에서 뛰었다. 내놔 내놓으라고. 아니 가져가라니까요. 언제 울쌍이었고 언제 한숨을 내쉬었는지 모르게 이미 두 사람은 웃고 있었다.
"아 빨리 내놔. 죽어 진짜"
대화가 좀 거칠긴 했지만.
13.
"...괜찮아?"
ㅇㅇ는 헐떡이는 숨을 고르고 반쯤 쓰러져 있는 제형의 어깨를 흔들었다. 술을 뭐 이렇게 많이 마셨어, 야 박제형. 제형아 정신 좀 차려봐. ㅇㅇ는 급하게 들고 나온 지갑과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제형의 앞에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왜 무슨 일인데"
"그 사람이랑 다퉜어"
내가 잘못한 일이었는데 내가 큰 소리쳤어. 그래서 다퉜어. 제형이 안경을 잠시 벗고 마른 세수를 하며 조용히 사정을 늘어 뜨렸다. 그렇게 듣는 와중에 젖어가는 제형의 목소리에 ㅇㅇ는 메이는 목을 가다듬었다.
"...please give me comfort"
(...나 위로 좀 해줘)
전화할 사람이 너밖에 없어. 끝내 물기가 맺히는 눈에 ㅇㅇ의 제형을 끌어 안아주었다.
"괜찮아"
"괜찮아 박제형"
ㅇㅇ는 제형의 등을 토닥였다. 그럴수도 있지, 그렇게 싸울 수도 있지. 너 우는 거 너랑 안 맞는 거 알지? 그래도 울고 싶음 울어. 고마워, 제형이 물기 어린 말을 꺼냈다. 뭘 고마워 나한테. 아 빨리 울 거면 울어, 흑역사라고 안 할게. 그리고 ㅇㅇ의 어깨가 조금씩 젖어갔다. 제형의 어깨가 조금씩 흔들렸다. 괜찮아, 그렇게 안 끝나. ㅇㅇ는 눈에 고인 눈물을 애써 천장을 올려다 보아 말렸다.
"괜찮아 제형아"
괜찮아질거야. 내가 도와줄게
*
"오늘은 또 뭔데"
"또 갔네, 맞제"
아이스크림 봉지를 흔들거리며 골목을 내려오던 도운은 맞은편에서 터덜터덜 걸어오는 ㅇㅇ를 마주하고 달려갔다. 내 누나 이럴 줄 알았다, 발 안 아파요? 뭐야 너 어디서 왔어.
"누나야 앞에서요. 신발 쫌 벗어봐요"
에헤이 상처 났다. 거절 쫌 하믄 안 돼요? 지짜. 뭐야 가. 가긴 어딜가요, 업혀라. 뭘 업혀. 누나야 오늘 치마 안 입었으니까 내 업을게요. 참 너는 내 말 그냥 듣고 넘기는 거에 도 텄지? 네. 도운은 막무가내였다. ㅇㅇ를 업고 힐을 든 채 공원으로 걸었다.
"오늘은 어땠는데"
"..같지 뭐"
"지짜 와 거절 안 하고 그래 있어요?"
지짜 내는 안 보여요? 도운은 울컥한 말을 급하게 목으로 넘겼다. 이 말은 넣어두자. ㅇㅇ는 말 없이 도운의 등에 얼굴을 묻었다. 몰라. 도운은 갑갑한 마음이었으나 조금 더 ㅇㅇ를 업고 공원을 걸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ㅇㅇ를 벤치 위에 앉혀주었다.
"...그저 그런 그 거지같은 마음 때문에 거절하기가 힘들어. 나도 내가 진짜 짜증나"
조금의 침묵을 가진 보람이 있었다. 그랬어요? 도운은 ㅇㅇ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ㅇㅇ의 이야기에 눈을 맞춰 주었다.
"나 진짜 바보 같지"
"..진짜 별로,"
"그래도 진심이었는데 어떻게 그저 그런 짝사랑이 될 수 있어요"
누나야가 왜 바보 같은데. ㅇㅇ는 도운의 이야기에 그제야 도운을 바라보았다. 그럴 수 있는 거다, 아까 화낸 거 미안해요. 항상 장난기가 베인 시선이 아닌 진심이었다. 갑자기 홀로 선 ㅇㅇ에게 따뜻하게 얹어진 한 마디 위로에 ㅇㅇ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어어 얼라 같이 또 울믄 내 안 달래줄끼다"
그만 쫌 울어요, 응? ㅇㅇ는 도운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고 눈물을 참았다. 아니 눈물을 말렸다. 매번 이렇게 우는 것도 아니다, 그럴 수 있는 것. 그저 그런 마음이 아니었으니까 이제는 한 번쯤 '거절'해도 될 수 있는 것.
"누나"
"누나아"
"왜"
맛난 거 먹으러가자. 도운이 무언가 결심한마냥 몸을 일으켰다, 아 무릎 아프다.
"내가 쏠게요"
"가자"
14.
- 가지마요
- 가지 말라고 했어요
제형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괜찮다고 언젠가 나도 너처럼 그렇게 좋은 사람을 찾겠다고 말이다. 제형도 알겠다며 끄덕였다. 근데 문제는 그 제형의 목소리가 터무니없이 갈라지다 못해 뚝뚝 끊겨왔다. 너 어디 아파? 그냥 좀, 감기. ㅇㅇ는 어깨에 대충 끼고 있었던 전화를 고쳐잡았다.
"야 박제형"
"..why"
조금만 기다려. ㅇㅇ는 집업을 챙겨들고 몸을 일으켰다. 진짜 넌 속일 걸 속여, ㅇㅇ는 머리를 쓸어올리며 계단을 내려갔다. 플렛폼 앞에서 연신 손톱을 뜯으며 제형과 연락을 주고 받았다. 정확하게 어디 아픈거야? 목. 알겠어. ㅇㅇ는 제형의 집으로 향하며 약국을 들렸다.
"박제형, 제형아"
"here"
(여기)
사람 맞아? 왜 말라 죽어가고 있어. 이불을 꼭 쥐고 침대에 누워 있는 제형의 이마를 짚었다. 내 이럴줄 알았어. 뭘 그럴줄 알아. ㅇㅇ는 몸을 일으켜 부엌으로 향했다. 우선 약 좀 먹이고, ㅇㅇ는 머그컵에 물을 떠 다시 제형의 앞에 앉았다.
"이거 해열제, 그리고 이거 목감기약. 구분해서 먹어 알겠어?"
"..알겠어"
기침도 심했다. 너 이렇게 될 때까지 나 안 부르고 뭐했어? 자고 있었어. ..맞을래? 미안미안. 제형이 그제야 약하게 웃었다. 기침 심한데 정말 괜찮겠어? 응 약 먹었으니까. 더 많은 대화를 나눌 수는 없었다. 중간 중간 기침도 심했고 약기운에 금방 잠에 들어버린 제형에 ㅇㅇ는 수시로 물수건을 바꿔 올려주었다. 그리고 손을 대보며 열을 확인했다.
어느정도 열이 떨어졌음을 확인했을땐 이미 해가 다 지고 밤이 내려 앉아 있었다. 죽을 끓여 놓고 ㅇㅇ는 끝까지 제형을 확인하고 집을 나섰다. 이제는 계속 같이 있어줄 수는 없었다.
*
"...그러게 내 가지 말라고 했나 안 했나"
그리고 고스란히 그 감기를 옮아왔다. 딱 나흘째 되던 날부터 으슬으슬했던 몸이 결국 감기로 찾아왔다. 아 머리 아파. 그래도 오늘 도운이 알바를 빠진 터에 잔소리를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짜 속 상하게 그럴래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도저히 안 되겠어 생수 한 병 사 가로등에 앉아 쉬고 있었는데 너무 익숙한 목소리가 '누나아'하고 불러왔다. 그렇게 걸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도운의 딱딱하게 굳어 있어 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아 머리 깨질 거 같아 진짜. 그와중에 열이 심했다, 도운은 쭈구려 앉아 있는 ㅇㅇ의 앞에 앉아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문자 봤제"
"..."
"봤제"
"..응, 콜록 어"
야 근데 나 지금 죽을 거 같거든? 혼날 거면 이거 좀 먹고 혼나자. ㅇㅇ는 더이상 안 되겠다 싶어 속상하다 못해 조금은 화를 머금은 도운을 올려다보았다.
"이거 좀 먹..,"
그리고 순간이었다. 턱을 살짝 쥐고 입술이 닿았다, 절대 거세지 않았다. 오히려 조심스럽게 입 안을 휘감고 치열을 훑는 도운에 잠시 ㅇㅇ를 얼이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거 내 가져가요"
야 너 지금. 그리고 조심스럽게 떨어진 도운의 눈동자는 깊었다, ..야 너. 그러나 금방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제 손에 들린 감기약을 쏙 빼앗아 뛰어가는 도운에 ㅇㅇ는 이마를 짚었다. 야 너 지금 뭐한거야, 이리 안와? 아, 아! 아파요 누나, 아프다고! 결국 도운은 ㅇㅇ에게 정말 처맞았다. 아! 누나아 아프다꼬! 저멀리 뛰어가는 도운의 등짝을 무자비하게 때렸다.
"너 진짜 죽을래? 어?"
"누나야 손에 죽으믄 그거는..아! 아 누나야"
"야 너 이리 안와?"
아 잘못 했어요. 잘못 했다꼬! 감기약을 쥐고 도망을 가는 도운이 살려달라며 낑낑거렸다. 그렇게 그 밤을 두 사람은 한참동안이나 쫓고 쫓기며 말도 나오지 않는 술래잡기를 계속 하고야 말았다.
*
다시는 누나야 입에 뽀뽀를 하지 않겠습니다.
오늘은 사과문 다섯장이었다. 기어코 마스크를 쓰고 온 ㅇㅇ가 앉은 쪽으로 사과문을 밀어 건네는 도운이었다.
"누나"
"누나아"
"아 누나아, 콜록 누나아.."
삐뚤빼뚤했으나 정말 A4용지를 꽉 채운 사과문에 결국 ㅇㅇ는 마스크를 내리고 입을 뗐다.
"너 다신 나한테 그러면 죽어 진짜. 알았어?"
"알았다 콜록, 알았다. 내 진짜 미안해요.."
알았음 계속 수업이나 들어. 넵. ㅇㅇ는 그렇게 도운이 내민 사과문을 전공책을 끼우고 다시 수업에 집중했다.
"윤도운은 어딨어?"
"응? 모르겠는데"
학식을 먹고 나오는데 동기 하나가 물었다. 그 껌딱지가 웬일이래. 몰라 일 있나보지. ㅇㅇ는 대수롭지 않게 가방을 뒤적였다. 야 나 과방 좀, 너네 먼저 가. 어 알았어. 내가 그 책을 어디다 뒀더라. 과방으로 귀찮은 걸음을 옮겨 문을 열었다. 오늘 사람 진짜 없네, 그래도 매번 시끌하더니. 어 찾았다. ㅇㅇ는 제형의 캐비넷에서 책을 꺼내 가방에 집어 넣고 돌아섰다. 근데 저거 사람이야?
"윤도운?"
도운이 아닌가. 어 맞는데, 너 왜 여기있어. ㅇㅇ는 조금 다가서야 소파에 담요를 덮고 웅크린 형체가 도운임을 알았다. 자는 건가 그냥 가야 하나. 시간이 좀 애매한데, 알바 갈 시간인데.
"도운아 알바 가자, 어?"
야 너 열 있는데? 깨우려 무심코 쥔 손이 뜨거워 혹시나 해 이마를 짚으니 열이 끓었다. 아까 골골 거리더니 너 진짜 옮은 거였어? 도운아 많이 아파? 야 윤도운,
"..."
"도운아, 나 감기약 있을텐데.."
야 너 이렇게 아팠으면 말을 해야지. 가방에서 생수를 우선 꺼내고 좀 더 가방 안을 뒤졌다. 나 해열제는 있을텐데, 기다려봐. 으.. 도운의 앓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더운 숨을 내뱉는 도운에 ㅇㅇ는 좀 더 가까히 다가갔다.
"..야"
"이 멍충아"
너 이렇게 아프면 내가.. 하. 너 약부터 먹어 잠깐만 일어나봐. ㅇㅇ는 겨우 도운을 일으켰다. 이렇게 큰 애가 바들거릴정도면 진짜 제대로 감기에 걸린 게 맞는 거 같은데, ㅇㅇ는 이내 콜록거리며 약을 삼키는 도운을 마주 앉아 바라보았다.
"...미안"
"누나야가 콜록, 와 미안해해요. 아으.."
너 어쨌든 나한테 옮아간 거잖아. 아까 너 좀 볼 껄, 알바는 내가 전화할게. ㅇㅇ는 다시 도운을 눕히고 담요를 하나 더 갖다 덮어주었다. 물수건 올려줄까. 아뇨. 올려야 할 거 같은데.
"안 가믄 안 돼요?"
"안 갈거야, 아"
"알았어 앞에 있을게"
더 힘들면 말해 그때 물수건 아무거나 올리자. ㅇㅇ는 저를 붙잡는 도운의 손에 다시 앞에 쭈구려 앉았다. 너 다신 그러지마. 알겠어요. 아니 왜 얘한테는 이렇게 크게 옮은 거야, 진짜. 좀처럼 펴지지 않는 도운의 표정과 만만찮게 ㅇㅇ의 표정도 많이 좋지 않았다. 조금 움츠리면 바로 이마에 손을 갖다 대 확인했다. 다시 조금 움츠리면 도운이 잡은 손을 뿌리치진 않았다. 아프니까,
"자 도운아. 이따가 늦기 전에 깨워줄게"
도운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졸렸나 그냥 잠들지. 잠에 든 건지 그와중에도 놓지 않고 쥐고 있는 손을 어찌 빼낼 수는 없어 그렇게 계속 도운의 앞에 있었다. 아 근데 무릎 아파, 한참을 쭈그려 앉아 있으니 저리는 다리를 한 손으로 툭툭 치며 미간을 찌푸렸다.
"..누나"
"잠든 거 아니였어? 나 때문에 깬 거야?"
"내 누나"
"진짜 좋아질라카는데"
"우짜지"
15.
도운의 진심이었다. 그 날 들은 도운의 진심에 솔직히 ㅇㅇ의 마음이 잠시 내려 앉았다. 그냥 좋다고 매번 쫓아다닐때랑 다르게 그 날을 그렇게 이야기를 하곤 ㅇㅇ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장난으로, 그 적막을 깨려 이어지지도 않은 채 정말 그렇게 도운은 ㅇㅇ를 바라보았다.
"누나아"
"어디가요?'
"끅, 야 너 어디 있, 끅"
그리고 그 날을 기점으로 내가 피해 다녔다. 제형을 밀어내는 와중에 덜컥 도운이 끼었다, 내 생각으론. 어쩌면 차근차근 자라났을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나 ㅇㅇ는 무턱대고 밀어냈다. 설마가 진심이 되어 좀 더 많이 도망갔다. 누군가를 좋아해본 적은 있어도 사랑을 줘 본 적은 없었다. ㅇㅇ가 사람을 밀어내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저 받기만 하다 그러다 지쳐 떨어질 또 바보 같은 상황.
"와 딸꾹질하는데. 뭐 하고 있었어요?"
"아니 끅, 너 왜 왔어"
"누나야 가는데 내 있는 거지 뭐"
너 되게 당연하다는 듯이 말 한다. 안 가? 네 안 가요. 그리고 도운도 그 기점으로 정말 제대로 들이대기 시작했다. 원래 대놓고 따라 다녔음 더 대놓고 따라 다녔다. 알바하다가 제발 나 좀 쳐다보지마, 손님이 부를 땐 좀 대답하고. 네. 그리고 데려다준다고 따라오지마. 그건 싫어요. 이젠 '네'도 아니고 싫은 건 정말 '싫다'였다.
"누나!"
"아 야!"
"와 또 놀랐나"
놀래키는게 아니 너 나 따라 오는 거 습관 됐지. 네. 씩 웃고 옆에 나란히 걷는 도운에 ㅇㅇ는 착잡한 마음으로 도운을 밀었다.
"오지마. 떨어져 걸어"
"네"
도운은 아무렴 좋았다. 누나야랑 같이 걸으니까. ㅇㅇ는 더이상 누군가를 억지로 만나지 않았고 즉슨 도운이 다가갈 걸음 폭이 더 커진 거나 다름없었다 도운의 입장에선. 오늘은 어디 가요? 몰라 안 알려줄거야. 와 너무하네.
"야"
"네"
"따라오지마"
그리고 팩 뛰어가버렸다. 아 와 지짜 너무하네, 어차피 이따 만날낀데. 도운은 시계를 확인했다. 누나야 오늘 알바 안 올 것도 아니면서 저래 뛰어가다 다치믄 또 아파서 밴드 붙여야 하는 거 아이가. 아! 딱 말만 했는데 금방 앞에서 넘어져버린 ㅇㅇ에 도운은 급하게 달려갔다.
"누나 괘안나"
"아으..아"
"아 진짜 그러게 와 뛰어가는데"
무릎 까졌잖아요. 핏망울이 맺히는 무릎에 도운은 소매를 끌어다 닦았다. 아 진짜, 마이 아프나. 내 지금은 암것도 없는데 우짜지. 일단 업혀요. 뭘 업혀, 야야. 어차피 누나야 무릎 아파서 절룩 거릴 거 잖아요. 어쩌다보니 도운에게 업히는게 습관이 될 거 같았다. 아 내려줘, 내려달라고. 약국까지만 이래 가자 아 지짜 누나.
"하 윤도운"
"하 누나"
"따라하지마라"
"따라하지마, 아! 아프다고요"
누나 말 이제 안 듣기로 작정했지 너, ㅇㅇ의 손에 잡힌 말랑한 볼에 도운은 알았다며 ㅇㅇ를 고쳐업었다. 아 진짜 볼때기 아프잖아요. 하지마라 너 진짜. 그와중에 좋긴 하다 누나야 지금 내 꼬집은거 맞제. 퍽 실실 거리는 도운에 ㅇㅇ는 더 어이없어 할 일도 없었다. 아 피곤해 진짜 너 때문에. 도운의 등에 얼굴을 묻고 ㅇㅇ는 차라리 말을 말자며 입을 꾹 다물었다.
"누나아"
"누나아"
"이렇게 기차역까지 가믄 화낼거죠"
너 잘 아는 상황 만들지 말고 그냥 약국까지 가. 넵.
*
"야 나 안 나가. 안 나간다 했어"
"반박 안 받음. 무조건이야, 아 빨리 와"
"싫어 안 간다고. 아 진짜!"
너만 매번 미팅 쏙 빠졌잖아. 뭘 빠져 저번에도 나가줬잖아. ㅇㅇ는 동기의 손에 질질 끌려 학교를 벗어났다. 그냥 자리 좀 채우다 오면 돼? 아 좀 같이 놀자 응? 아 싫다고. 그렇게 어색하고 재미도 없는 과팅 세상 왜 하는지 일도 이해 안 가는데 나 왜 나가야 하는데. ㅇㅇ는 질질 끌려가며 휴대폰을 켰다. 제발 구제해 줄 사람이, 아.
없구나.
"그냥 어울려 놀다가 인맥이라도 만든다 생각해"
"나 열시 되면 딱 간다. 기차 때문에 안 돼"
"알았어 알았어"
솔직히 이젠 그냥 그 자리에서 몇 시간 대충 웃어주고 술 몇 잔 주고 받고 나오는 일이 익숙하고 빈번했다. 그냥 그렇게 스리슬쩍 빠져 나오는 것도. 근데 오늘따라 불편한 마음에 정말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으나 반강제 아니 강제로 앉은 자리에 ㅇㅇ는 머리를 쓸어 올렸다.
이게 대체 뭐가 재밌는 거야, 대충 아하하 웃어주며 ㅇㅇ는 반복해서 휴대폰을 딸깍거렸다. 곧 열시다 제발, 일분이 한 시간 같은 자리에 ㅇㅇ는 다시끔 제게 물어오는 질문에 예의상 웃으며 답하고 가방을 슬쩍 챙기려 고개를 틀었다.
"어?"
윤도운 닮은, 아니 윤도운이다. 이쪽 자리를 정확히는 ㅇㅇ를 뚫어지게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는 도운에 ㅇㅇ는 잠시 무언가 멎는 느낌이 들었다.
"그쵸 ㅇㅇ씨"
"네? 아 네"
그러나 오래 바라보지는 못했다. 계속 도운의 시선이 신경 쓰였으나 더 옆으로 돌아볼 수가 없었다. 어쩌다보니 술까지 시키고 열시를 넘겼다, 빠져나가려다 딱 잡혀서 울며 겨자먹기로 다시 합석해 잔을 들었다. 그리고 그때쯤 옆테이블이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도운의 시선도 더이상은 없었다. 잠깐 돌아 보니 이미 가방을 매고 가게를 빠져나가는 도운의 뒷모습에 ㅇㅇ는 숨을 뱉었다.
"야 나 이제 정말 가야 돼. 죄송해요, 저 먼저 일어날게요"
그리고 막차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은 시간 때에 결국 일어날 수 있었다. 아쉬운 마음에 붙잡는 동기들에게 손을 대충 흔들어주고 ㅇㅇ는 가방을 들고 가게를 빠져 나왔다. ㅇㅇ는 시계를 확인하고 몇 걸음을 떼자마자 그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너 간 거 아니었어?
"..나 기다린거야?"
도운은 말이 없었다. 네가 말 없음 좀 두렵거든, ㅇㅇ는 시계를 다시 확인하고 도운을 올려다보았다. 도운의 시선이 그리 따뜻하지 않았다 아니 조금은 지친 표정이었다. ..아, 아까 그 자리 때문에.
"진짜 그냥 내가 싫은거가"
"...야"
"누나야랑 있음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이다. 아나"
"것도 모르제"
아니 그게 아니고, ㅇㅇ는 상황을 설명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야 윤도운
"진짜 오르락 내리락"
"아니 윤도운,"
"누나한테 화난 거 아니에요. 근데"
"내 지금은 누나 조금 밉다"
ㅇㅇ는 아예 입술을 깨물었다. 차라리 너 이렇게 돌아설래? 나 진짜 너 받아줄 용기가 없어. 도운은 상황의 설명을 바랐지만 ㅇㅇ는 다문 입술을 열 틈을 주지 않았다.
"그냥 도운아,"
"너 좋아하는 사람 만나"
"누나"
그 말 바란 거 아닌 거 알잖아요. 도운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상처 받은 표정 ㅇㅇ는 머리를 한 번 쓸어올리고 말을 이었다.
"나 너 안 받아줄거야"
그리고 먼저 돌아선 건 다름아닌 도운이었다. 먼저 그렇게 걸어 이 골목을 빠져나갔다. 밤이 깊이 내린 시간에 ㅇㅇ는 시게를 확인하고 주저 앉았다. 매번 쉽던 거절이 힘들게 다가와 저도 감당하기 조금 어렵게 내려 앉았다. 그렇게 무릎을 끌어 안았다.
더 다가오지마, 이제 그만와. 도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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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점점 슬럼프가 오는 거 같네요, 완성도 떨어지는 화 죄송합니다. 몸이 많이 불편해 당분간 조금 더 불안정한 글, 연재 주기가 될 거 같습니다. 그래도 다음은 좀 더 좋은 글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