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ina
w.비얀코
*
시끄럽게 울려대는 알람에 일어나서 손을 뻗어 알람을 끄려고 했는데, 찬열의 눈앞에 바로 백현이 있었다. 곤히 잠들어 있는 백현의 모습은 순하디 순한 애기 같았다. 알람을 조심스레 손을 뻗어 끄고 보니, 자신이 백현을 안은 형태다. 내가 언제 이러고 잤지? 싶어서 놀란 것도 한 순간 일뿐,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서 다시 백현을 껴안고 있다가. 시계를 확인하니 6시다. 그러고보니 백현에게 등교시간을 안 물어봤다. 이른 시간부터 준비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서 한시간만 더 자야지 하고 7시에 시계를 맞추고 다시 잠들었다.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들었을 때 알람이 울리는 익숙한 상황에서도, 조금만 더 자야지하고 다시 잠들면 모순되게도 잘 일어났던 처음과 다르게 일어나기 힘들었다. 그래서 지금 찬열은 7시 알람이 맹렬하게 울려대는데도 일어나지 못했다. 반면 이번에 일어난 백현이, 찬열의 팔을 풀어내고 시계를 확인한다. 아직 7시니까 차분히 준비하면 될 것 같다. 하지만, 백현은 집에 관해서 찬열에게 아무 말도 들은게 없었다.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학교는 가야하고…. 어쩔수 없다. 깨울 수 밖에.
“형, 일어나요. 저 학교가야 되는데…”
“어…, 음…”
벌떡 일어나는 찬열이 일곱 시 넘었어? 하고 물었다. 백현이 아 지금 7시에요 하고 대답해왔다.
“학교 몇 시까지야?”
“여덟시 10분등교요.”
“시간은 있네. 씻고 밥먹고 학교 가자.”
“아, 네.”
찬열이 침실에 딸린 화장실로 들어가고, 백현은 밖의 화장실을 사용했다. 다행히도 어제 빨아놓았던 교복은 다 말라있었다. 여름이여서 그런가보다.
백현이 샤워를 하고 교복을 입으려 생각해보니, 속옷이 그대로 였다. 학교끝나면 원래 살던 집에 들려서, 옷도 가져오고 문제집도 가져오고…,
가져올 건 다 가져와야겠다하고 생각했다.
찝찝하지만. 어차피 오늘 안에 갈아입을 수 있는 속옷 이였다. 안 그래도 월세집 아줌마가, 이번 달 안에는 비워달라고 했던 참이였는데. 잘된 것 같다.
머리도 조금 급하게 감았다. 씻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은 아니지만.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평소 때 일어났던 시간보다는 좀 늦은 시간에 일어났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할 수밖에 없었다.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고 와이셔츠를 입고 단추를 잠궜다. 바지도 입었다. 위, 아래로 교복을 다 갖추어 입은채로. 밖으로 나오니, 언제 다한 건지 찬열이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아침밥준비를 하고 있었다. 의외로 냉장고에 먹을게 있었나보다. 어느 집에나 있는 김치와, 평범한 밑반찬이 있다. 멸치도 있고, 장조림도 있고, 오뎅도 있었다. 이걸 다 찬열이 만들었다고 하기엔 뭔가 이상했다. 집에 우렁각시라도 숨겨뒀나…?
“형, 남자 혼자 산다면서 밑반찬이 빼곡하네요?”
“아, 가끔씩 엄마가 와서 반찬이랑 먹을 거 사놓고 가셔.”
“어쩐지. …형이 이걸 다 만들었을 리가 없죠.”
“…밥이나 먹어. 너 데려다주고 형도 회사가게.”
백현이 아무 말 없이 밥을 먹고, 찬열은 자신의 방의 수납장에 있는 드라이기를 꺼내 콘센트에 꼽았다. 그리고 아직 열려있는 수납장에서 빗도 꺼내어 놓았다.
찬열이 머리가 반쯤 말랐을 때, 백현이 밥을 다 먹었다며 찬열의 방에 들어왔다.
“이리와봐.”
말없이 쪼르르 찬열의 앞으로 걸어간 백현이 찬열의 손에 붙들려 앉았다. 거울앞에 앉은 백현이 머리를 말려주는 찬열의 손길에 그냥 그대로 고분고분 앉아있었다. 드라이기의 바람이 뜨거울까봐 시원한 바람으로 바꿔놓은 찬열이 백현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빗질하 듯이 만졌다.
살짝 젖은 머리를 완벽히 말리고 나서 빗질을 해주는 찬열의 손을 백현이 꼭 잡아왔다.
“나 애기 아닌데…, 저도 머리빗을 수 있는데.”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래.”
그 말에 또 고분고분 찬열의 말을 듣는 백현 이였다. 백현의 머리가 그다지 긴 편이 아니여서 금방 빗었다. 문득 시계를 보니 7시50분이다.
“이제 나가야겠다.”
“아, 네.”
*
백현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순간에 찬열의 집이 16층이라는 걸 파악했다. 그리고 주차장에 와서 찬열의 차를 타는데, 어제는 아무 생각없이 타서 그냥 흰 승용차라는 것 밖에 몰랐는데. 오늘 와서 차종이 벤츠라는 걸 알았다. 차에 타고 나서, 시동을 걸자 그제야 백현이 찬열에게 말을 붙였다.
“근데, 형. 저 집올 때는 어떻게 와요?”
“내가 맨날 태워주면 되는 거 아냐?”
“에이.. 형 회사사장님이잖아요. 바쁠텐데.”
“바쁘면 부려먹으라고 있는 게 밑에 사람들인데.”
찬열이 주차장에서 차를 빼면서 백현의 얘기를 들어보니, 매일매일 학교를 태워주는 건 가능할 것 같은데
매일매일 데리고 오는 건 시간상 안될 것 같아서 그렇네. 하고 말하는 찬열이였다.
“그래서. 저 길 좀 알려줘요. 여기 무슨 구, 무슨 동이에요?”
“종로구, 운현동. 학교랑 가까울걸? 학교 그렇게 안 멀던데.”
“…가까운 거 같아요. 지하철이랑 마을버스 이용하면 될 거 같은데.”
“그래? 오늘은 형이 일 일찍 마치고 데리러 갈 수 있으니까, 괜찮아.”
차를 몰고 거리로 나오자, 백현이 주위의 모습을 보고 깨닫는다. 번화가 근처다. 분명 옆에 명동이 있을 거고, 상점들도 많고 빌딩도 많았다.
생각보다 낯설지만은 않았다. 원래 있던 집에 갔다가도 다시 찾아올수 있을 것 같고.
“아 맞다. 형 집 주소는요? 아파트 몇동 몇호?”
“운현동 똑같고, 타워팰리스 1101동에 1602호”
“아…, 외울거 진짜 많네요.”
백현이 핸드폰을 꺼내어 들고 메모를 했다. 운현동 타워팰리스 1101동, 1602호, 찬열형이 타고 있는 차종은 bmw.
왠지 마지막에 적은 찬열의 차종은 불필요 할 듯 하면서도, 왠지 모르게 드는 불안감에 그냥 적은 백현이, 이제 안심해도 되겠다고 생각하며 저장버튼을 눌렀다.
“아 맞다. 저 살던 집에 가봐야 되요.”
“응? 왜?”
“아 문제집도 있고, 옷도 있고 짐도 가져와야 돼서.”
“그냥 내꺼 아무거나 써도 괜찮은데. 문제집은 새로 사도되고..”
“아니에요. 쓰던 거 꺼 쓰고 싶어서 그래요.”
"형이 태워다 줄게. 다시 형 집 오는 길 모르잖아."
"고마워요, 형."
백현이 창밖을 보며 차분히 눈으로 주변 상가들을 외웠다. 보쌈집도 있고, 세븐일레븐도 있고 던킨 도넛도 있고, 도심가라 그런지 음식점도 많고 옷가게도 종종 보였다. 그냥 신경써서 외울필요 없이 대충 눈으로 거리를 익혔다. 하루만에 본다고 익혀질 거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봐둘 필요성을 느꼈다. 찬열이 데려다 주지 않는 날엔 자신이 대중교통을 이용해야 하니까.
직진, 좌회전, 우회전, 직진. 그다지 가까운 거리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직진하는 곳이 길다는 것을 감지한 백현이, 걸어서 다니기엔 골목이 없어서,
힘들 거라는 걸 깨달았다. 골목이라도 있으면 좀 덜 멀게 느껴지는데. 직선으로 곧게 펼쳐진 길은 짧아도 길게, 길면 더 길게 느껴졌다.
"어디에 내려줘? 정문? 후문?"
"후문이 학교 건물이랑 가까운데, 후문으로 등교하는 애들이 많아서.."
"그럼, 정문에 내려줄게."
"네, 형."
정문에 백현을 내려준 찬열이, 야자 끝나기 한시간전에 문자 좀 해줘. 데리러올게. 하고 말했다. 백현이 네, 형 저 학교 갔다 올게요. 하면서 미소를 띠었다.
"잘 갔다와."
백현이 차문을 닫고 멀어졌다. 백현의 모습이 등교하는 아이들 틈에 가려져 안보일 때까지 백현을 주시하던 찬열이, 차를 돌려서 회사로 갔다. 시계를 보니 8시쯤 이였다. 이렇게 일찍부터 회사에 들릴 일은 없는데. 어제 일도 그렇고, 갑자기 큰돈 들여야 하는 일이니 아버지께 보고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카톡으로 「김비서 자?」하고 보냈더니, 번개같이 답장이 온다. 「저 안잡니다.」 그 말에 「그럼 너 회사로 와.」 하고 간결히 보냈다. 종로 일대는 조금 복잡했다. 신호는 자주 걸리고 교통체증이 심했다. 역시 출근시간과 퇴근시간 때에 종로거리는 차들이 자리에서 우뚝 멈췄다가, 조금씩 움직이는 것을 반복했다. 찬열이 짜증을 내며 조였던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었다.
가까운 거리인데도 불구하고 30분이나 걸려서 회사에 도착한 찬열이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이미 출근길인 사원들이 많아서 엘리베이터를 지금 당장 타는 것은 조금 아슬아슬할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가 엘리베이터 정원에 맞게 딱 타서 올라갔다. 지긋지긋한 도심의 출근길이였다.
"박사장님, 간만이네요. 회사 잘 안나오시더니."
"외근 나가서 바빴어요. 할 일이 많더라구요."
인사를 하며 안부를 묻는 직원들에게 예의상 고개를 끄덕여주며 인사를 했다. 엘리베이터가 8층에서 열리자마자, 찬열을 제외하고 모두 내렸다. 9층을 누른 찬열이, 사무실과 따로 떨어뜨려놓은 사장실과 회장실에 들렸다. 일단 자신의 사무실에 들려서는 여러그룹들의 파일중에서 계약을 했던 신송그룹의 파일을 꺼내어들고서, 회장실로 들어갔다.
"아버지, 저 계약조건 하나 체결했는데."
"무슨 계약?"
"신송그룹이랑 잡은 계약건 인데 말이죠."
파일을 펼쳐든, 찬열이 차분히 신송그룹이 관리중인 유흥가 골목일대가 약도로 프린팅된 페이지를 찾고, 아버지께 보여주며 차분히 설명한다. 마약거래건 입니다. 투자해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아서, 이 일대 사들이기로 계약했구요. 가게에서 나오는 돈도 저희가 일부 가져가기로 했고요. 또 마약밀거래에도 적합한 지역이더군요. 관할구역에서 제외된 곳이라. 꼬리가 밟히긴 쉽지 않을 거 같습니다.
"얼마에 계약했는데?"
"10억에 계약했습니다, 나쁜 계약조건은 아니죠. 원래 그들이 처음에 불렀던 계약금은 20억이니."
"20억? 미친거지, 신송그룹주제에."
"그래서 김비서가 10억으로 합의보고, 부산에 해운대일대 유흥가의 마약유통을 허락했습니다."
"나쁘진 않지만, 신송그룹이 주제파악을 못했다는게 좀 거슬리는 군."
"그래도, 그 일대에 관련된 김준면 일도 있고 해서. 겸사겸사 사들여 논겁니다."
박회장이 실소를 내뱉으며 말한다. 아 그래 거기서 어떤 여자랑 잤는데. 거래건으로 가지고 갔던 밀봉된 세 봉지의 약을 모두 털렸다. 그 사건 말하는 건가? 듣자하니 좀 어이가 없더군. 일만 했던 김준면이 그런 더러운 것들이랑 몸을 섞었다는 것도 그렇고, 핀트가 나갈 정도로 술을 마셨다는 것도 그렇고,
안 믿기지만 김준면이 직접 말한거니까. 그런거겠지 뭐.
"제가 책임지고 찾아보겠습니다. 어차피 금방 못 쓸 양이니, 그 여자가 다른곳에 팔아넘기지 않고 들고 있다면 당분간은 증거가 있지요."
"팔아 넘긴 다면?"
"그 일대는 이미 마약에 찌든 여자들이 바글바글합니다. 제 생각엔, 혼자서 처리할 거 같은데."
"그래? 한번 해봐."
오랜만에 아버지와 만나서 하는 대화라 치고는 지나치게 상투적이고 사무적인 말들만이 오갔다.
아버지도 그 이상의 다른 무언가를 얘기하는 걸 꺼려하셨고, 찬열 역시 아버지와 다른 얘기를 할 마음이 없었다.
"중국 수출 건은 잘 성사되었습니까?"
"그럼, 확실하게 계약해뒀지."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은 뒤로, 제가 별로 하는 일이 없는 것 같아 죄송합니다."
"괜찮아, 지금도 충분히 애쓰고 있잖아. 일을 분배하겠다는 거지, 다 떠맡길 생각은 없어."
"네, 아버지, 감사합니다."
딱딱한 대화를 끝마치고, 찬열이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와 책장에, 파일을 다시 꼽아놓았다. 그리고 김실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바로 받는 종인의 목소리가 굉장히 숨이 차보였다.
"회사, 뛰어오나?"
「네, 조금 늦었습니다. 차가 많이 막히더군요. 그래서 근처에 그냥 대고 뛰어가는 중인데.」
"내 사무실로 오면 되."
「네. 갈게요.」
하면서 간결히 끊는 종인의 전화에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담배나 피울 겸 사무실을 나왔다. 비상구 계단에서 창문을 바깥쪽으로 밀어 열고나서 담배를 물었다. 불을 붙이고 빨아들이자 폐부로 담배연기가 스며들었다가, 한숨과도 같이 내뱉어진다.
머릿속으로 생각을 해본다, 일의 분배. 사업적이고 청량한 일은 모두 평범한 그룹의 회장인 자신의 아버지가 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불법적인 투자와, 마약밀거래는 평범한 그룹의 사장이자, 평범한 그룹 내막속에 숨겨둔 한 조직의 보스인, 자신이 모두 맡고 있다. 이 일을 맡았을 때부터 생각해 왔던 건데. 후계자에게 일을 물려준다면서 자연스럽게 이 자리에서 발을 빼낸 아버지의 술수가 아닌가 싶다. 그럼 잘못해서 일이 그르치면 타격을 받는 건 당연히 자신의 아들이자,
이 그룹의 사장인 찬열이 된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였다.
어느새 짤막해진 담배를 비벼끄고 창가의 재떨이에 놓은 찬열이, 다시 사무실로 돌아가기 위해 비상구문을 열고 복도로 나왔다. 때마침 들려오는 엘리베이터 소리에 혹시 종인인가 싶어 발걸음을 멈췄는데, 엘리베이터에서 나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준면이였다.
"어? 박사장님 오랜만이네요."
가식적인 웃음을 지으며 웃어보이는 준면을 보고 예의상 미소를 띄우며 오랜만이네요 형, 하고 응수해주었다.
"요새 회사 잘 안나오시나봐요. 얼굴 보기 힘들다."
"외근 나가느라 바빠서."
"아, 바쁘시구나."
또 한번으로 가식적으로 웃는 준면에, 왠지 모르게 속이 부글 끓었지만, 티내지 않고 차분히 자신의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준면역시 회장실로, 발걸음을 돌린다. 그리고 준면이, 아무렇지도 않게, 무어라 말을 한다. 조금만 더 사무실문을 일찍 열었으면 못들었을텐데.
"저번 일은 죄송해요. 혼자서 뒤처리하시느라 힘드시겠네요."
개새끼, 누굴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결국 잘못을 해도, 준면 제 자신이 아닌 찬열이 수습을 해야한다는 말이였다. 대체 왜? 나는 준면보다 높은 직급의 사장님이고, 또 회장의 아들인데. 내가 왜 이래야하지? 의문점이 든다. 언제나 들려오는 해답은 같다. 김준면이 자신의 아버지를 꼬셨다. 그래서 아버지의 권력을 손에서 쥐고 겁대가리를 상실했다.생각을 하면 할수록 올라오는 스팀에, 찬열이 자리에 앉아 조용히 복수방법을 모색해본다. 어떻게 해야 저 새끼를 끌어내리고, 내가 저 자식을 부려먹을 수 있을까..?
드륵-사무실 문이 열렸다. 그제서야 종인이 왔나보다, 앞머리가 이마의 땀에 절어있었다. 더운 여름에 뛰어온게 분명해보이는 그의 행태에 찬열이 웃으며 반겼다.
"더울텐데, 물이라도 마셔."
"네, 형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아냐, 계약건은 잘 성사 시켰어. 회장님께도 다 설명드렸고."
"아, 잘됬네요."
"아까, 담배피고 오는데 김준면 봤어. 사고 쳐놓고도 얼굴에 여유가 철철 흐르더라."
"...형님, 어쩔 수 없는 거 같습니다. 기회를 잡아서 자리에서 떨어 뜨려놓는 수밖에는."
"그게 어디 쉽나? 회장님 사랑을 하나밖에 없는 친아들보다 더 독차지 하고 있는데."
사적으로 이런 얘기를 할 수 있는 건 정말이지 종인밖에 없었다. 자신보다 두 살 어리지만, 꽤 오래 봐왔던 불알친구였다. 유학을 갈 때도, 찬열과 제일 친하다는 이유로 같이 미국으로 가서, 룸메이트를 해왔기 때문에. 종인은 찬열이 어떤 사람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고, 찬열 또한 종인이 가장 믿고 있는 사람이였다. 종인 역시 찬열이 한국으로 돌아와서 후계자 자리를 물려받았을 당시에도, 찬열을 사장이라고 불편해 하지 않았다. 단지, 옆에서 힘이 되어주겠다고 말을 했고, 도와줄 때는 말없이 묵묵하게 도와주었을 뿐이였다.
"근데 어제 그 꼬맹이랑은 재미 좀 보셨습니까?"
"재미는 무슨, 내가 뭘 어떻게 했겠어?"
"아, 아무 일도 없었구나, 하긴요 아직 고등학생이니깐 요."
"고등학생도 알 건 다 알아."
"그렇긴 하죠. 그래서 좀 흑심이 들긴해요?"
흑심이라…, 아직은 백현을 아껴주고 싶은 마음이 큰 찬열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꼬맹이는 꼬맹이 답게 아껴줘야지.
"그러면 너야말로, 내 말대로 어젯밤에 도경수한테 갔어?"
"…네 갔죠."
"잤어?"
"네, 한밤 잘 자고 왔습니다."
머쓱하게 웃는 종인을 보면서 솔직히 조금 부러워진 찬열이였다 막상 이른 시간에 회사에 왔는데 할 것도 없고, 종인이랑 대화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볼까 했는데, 신송그룹에서 연락이 왔다고 하며 전화를 받는 종인 때문에 대화가 끊어진다.
"여보세요, 우호그룹 김종인입니다."
「아 네, 거래 건 때문에 그런데 오늘 점심에 시간 괜찮으시면 미팅 한 번 할 수 있을까요?」
"마침 사장님도 계십니다. 오늘은 시간이 여유로우 시니까. 같이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뭐 저희야 사장님이 해외에 계셔서 대신 미팅을 해야 할 거같아서요. 종인씨 혼자도 상관없어요.」
"아뇨, 같이 가시겠답니다. 그 주위 가게에 대한 설명도 좀 듣고 싶고."
「네 그럼 한시에 뵐께요.」
*
1시 정각에 만나자고 했던 카페로 들어오니, 상대방이 이미 두 번 정도 안면을 튼 종인을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자리에 가서 앉자 신송그룹 사람인 듯한 남자가 찬열을 보고 사무적인 웃음을 지은 채로 인사를 해왔다.
"사장님, 반갑습니다. 저는 신송그룹 김종대라고 합니다."
"아, 예. 반갑습니다."
종대의 이름이 종인과 이름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대화를 이어나갔다, 혹시나 하고 친척관계는 아니냐고 물어봤더니, 둘다 웃으며, 자신들도 처음 만났을 때 놀랐다고 말했다. 신송그룹 김비서와, 우호그룹의 김비서가 만나서, 생각외로 대화를 잘 풀어 나갔다고 말하면서, 궁금하신 점 있으십니까? 종인군께 계좌번호는 드렸으니까 계약금은 그리로 보내시면 될 것 같고. 하면서 입을 떼는 종대에게, 그 일대 가게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고 말했더니,
보고 들으신 대로 그냥 마약에 쩔어있는 창녀촌이라고 말을 한다.
더 이상 캐내고 싶어서 자꾸 물었지만, 들려오는건 이미 알고 있던 내용들 뿐이였다.
지루한 대화에 그만 하품을 한 찬열이. 이제 얘기 끝냈으니 가보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사무실에 가서 다시 앉긴 앉았는데, 정말이지 오랜만에 회사에 오니 할게 하나도 없었다. 보통 사장들은 바쁜데 정작 회사일은 회장인 자신의 아버지가 맏고 있으니 바쁠일이 없었다. 혹여나 무슨 일이 있어도, 비서와, 실장을 이용하면 가뿐히 해결되기 때문에 직접 손 쓰는 일은 별로 없었다. 지루함에 결국 책상에 고개를 묻고 엎드려 자는 찬열을 보고 종인 역시 쇼파에 기대어 잠들어 버렸다.
*
핸드폰 벨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인상을 쓰고 핸드폰을 잡은 찬열이 발신인을 보고 전화를 받았다.
"백현아 이 시간에 왠일이야."
「저 오늘, 야자 안하려구요. 집도 들려야하고 정리도 해야되서..」
"아, 그래? 몇시에 끝나?
「어제랑 똑같이 7교시, 4시반이요. 기다릴게요.」
전화를 끊고 휴대폰에 있는 시간을 보니 3시 20분이다, 아마도 청소시간인가보다, 거울을 보고, 엎드려 자서 조금 눌린 머리를 정리하고, 와이셔츠 윗단추를 잠그고 느슨하게 풀어뜨려 놓은 넥타이를 다시 죄이니, 대충 아침에 보았던 모습과 비슷해서 거울앞에서 슬쩍 미소를 지었다.
아직도 쇼파에서 침을 흘리고 자고 있는 종인을 찬열이 발로 툭툭건드리며 , 야 김비서, 차 시동 걸어. 백현이 데리러 가게. 하고 말을 했다. 그 소리에 종인이 벌떡일어나서 쇼파에 앉아 입에 묻은 침을 탁상위에 있는 휴지를 뜯어 북북 닦았다. 그리고 찬열이 쇼파는? 하니까 쇼파도 닦았다.
"아주 사장실이 너네집안방이지?"
"형님도 같이 주무셨으면서 왜 그러십니까."
"내려가서 차 시동이나 걸어."
하지만 오늘은 백현을 업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뛰지않고 느긋하게 찬열의 옆에 서서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는 종인이였다. 그리고 지하 1층에 내렸다. 종인이 차분히 걷고 있다가, 찬열이 리모콘으로 차문을 열자, 그제서야 발걸음이 조금 빨라져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탔다.
*
생각보다 조금 일찍 와서, 담배를 태우던 찬열이 옆에서 멀뚱멀뚱 떨어져 있는 종인을 보고, 어색해서 말을 붙였다.
"너 진짜 담배 끊은거야?"
"아시잖습니까. 경수가 담배를 안펴서."
"살다 보니 별일이 다있네, 김종인이 기집애같은 남자애 때문에 담배도 다 끊고."
같이 호탕하게 막 웃으며, 찬열이 바닥으로 떨어진 담배 세 개피를 보다가 담배갑을 주머니속에 넣어놓고, 학교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았다. 진짜 여름이라 그런지 더웠다. 혼자 음료수를 먹기엔 좀 눈치가 보여서 옆에 있던 종인의 것 역시 뽑아주었다. 더운 탓에 음료수를 를 금세 다 마셨다. 그리고 또 몰려오는 더위에 짜증을 낼 무렵에 학교 종이 울렸다. 자동적으로 다시 학교 정문앞에 가서 섰다. 4시 반이였다.
어제와 다르게 금방 나온 백현이 찬열을 보고 웃었다. 형 진짜 사장님 같다. 아침엔 몰랐는데 멀리서 전체적으로 보니까. 진짜 사장님같다.
"집 부암동이에요. 학교에서 조금만 올라가면 되요."
하면서 조곤조곤 설명해주는 백현의 설명에 따라 차를 움직였다. 우회전이요, 또 우회전 말을 하면서 손가락으로 가르치면서 손짓을 하는 백현을 보고 귀여운지 옆에서 따라하는 찬열이였다. 백현의 동네는 산밑에 있었다. 정말이지, 도심속에 숨어있는 시골같아 보였다. 주택가에서 여기에요 하고 멈춘 백현이, 주택의 지하로 내려간다. 같이 따라간 찬열이 처음보는 풍경에 놀라 입이 벌어진다.
지하라 그런지 빗물이 샌건지 천장에서부터 벽이 누렇게 물들어있다. 또 벽의 밑바닥부분에는 검정색 곰팡이가 슬어있다. 집의 냄새도, 생각했던 것과는 다른 시멘트냄새와 눅눅한 냄새가 났다. 백현이 아…, 창피한데 하면서 찬열을 바닥에 앉히고 분주하게 방에있던, 문제집과 옷을 챙긴다. 보다못한 찬열이 도와주려고 일어서자, 제 집에서는 제가 혼자 하고 싶어요. 괜히 돌아다니지 말고 앉아요. 하면서 책가방에 잔뜩 넣고, 또 먼지쌓인 보조가방을 털어내고, 소지품을 챙기는 백현이였다.
다 챙긴건지, 백현이 나오고 찬열이 머쓱하게 일어서자, 백현이 집 별로죠? 하고 물어왔다.
"아니, 괜찮아. 백현이 너 집인데. 별로일 리가 없잖아."
"치…, 다 알아요. 놀란거."
"그냥 내가 처음 보는 환경이라서."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사람도 있는거에요."
밝게 웃는 백현을 보면서 조금 측은한 마음이 들어 더 이상 얘기를 잇지 않았다. 그냥 편하게 웃어주었다. 백현이 매고 있는 책가방은 그대로 두고, 빵빵하게 가득 들어 있는 보조가방을 대신 들어다주었다. 차에 타니, 종인이 또 졸고 있었다. 짜증나서 운전석 헤드를 흔들었더니 그제야 일어난 종인이 집으로 갈까요? 하고 물어왔다.
*
차에서 내리자마자, 자신이 무릎위에 두었던 가방을 종인에게 맡기고, 백현이 매고 있던 가방마저 종인에게 매게 한 찬열이, 우리 백현이는 다리 다쳐서 이런 무거운거 함부로 들면 안돼. 하고 말을 하며 백현이를 업었다. 그래봤자 고작 아파트 주차장에서 업고 집에 가는게 단데, 백현이 뒤에서, 오늘 하루 종일 걸어다녔는데. 복도도걷고, 등교, 하교 때 도 정문에서 걷고.. 하고 작게 말하자. 평생 업고다녀 줄까? 하고 묻는 찬열에 뒤에서 가방을 들고오던 종인도, 업혀있던 백현도 큰 웃음을 터뜨렸다.
16층에 도착하자마자 종인이 도어락을 열자마자 또 집으로 돌려보내려는 찬열의 말에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아 어떻게 지내는지 진짜 궁금하다….
문을 열고 들어온 찬열이 백현을 내려놓자 백현이 알아서 신발을 벗고 집 내부로 들어왔다. 찬열이 백현의 짐을 종인에게서 건네받고 문을 쿵하고 닫았다.
도어락이 잠겼다. 종인이 아쉬움에 뒤돌아섰다.
"뭘 들고 왔길래 이렇게 많아?"
"옷이랑, 책이랑, 교과서랑, 문제집.. 그리고 앨범이랑 액자요."
"…앨범? 액자?"
"앨범은 학교 졸업앨범밖에 없고 액자는 가족사진이에요."
"가족사진 있었어?"
있으면 진작에 말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며 찬열이 묻자, 가방 앞주머니에서 바로 꺼낸 액자에는, 흑백사진이 꽂혀있었다. 앳된 아기의 모습의 백현의 사진과, 엄마 아빠가 있었다. 받자마자 백현을 자세히 보며 지금이랑 똑같다고 웃다가, 옆으로 시선을 돌려 백현의 부모님을 보았다. 등치있는 다부진 몸의 가진 남자와
깡마르고 눈웃음이 백현과 비슷한 여자는 한눈에 보기도 안 어울리는 조합 이였다. 백현이가 엄마를 닮았나보다.
"형, 뭘그렇게 자세히 봐요?"
"너랑 엄마랑 많이 닮았다."
"그 소리…, 아빠가 맨날 했는데…."
"……형이 왠지 너네 엄마랑 아빠 찾아줄 수 있을 거같아."
"네…?"
"사진도 있고. 아예 승산이 없진 않네."
머릿속으로 정리해보았다. 어차피 신송그룹과 거래를 승산시켜서 그 일대는 어차피 우리 것이 였고,
가게 하나하나 잘 찾아보면, 백현의 엄마는 금세 나올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드는 확신에 찬열이 웃었다. 생각보다 일이 수월해진 느낌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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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4편을 들고오면서도 손이 덜덜 떨리네요.. 생각외로 많은 관심과 댓글에..ㅠㅠ 부담도 되고 기쁘기도 하고..ㅎㅎ.
..그나저나 찬열이 비중이 80이라면 백현이 비중이 20같게 느껴지는 건 왤까요... 백현이 학교를 그만둬야되나... ㅋ...
하지만 그만두는건..현실성이 없기때문에..ㅋㅋ안될듯.. 전 현실성있는거 좋아합니다..ㅠㅠ...
제가 너무 세심히 픽을 연재해서 그런지.. 하루가 일편이네욬ㅋㅋㅋ아 이렇게 써보긴 또 처음인데.. 빨리빨리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맞다.. exo-k픽이라고 명시해두었늗네.. 종대가 나왓음..ㅋ.. 어차피 스쳐지나가니깐요.. 담에 언제 또볼수 있을지도 모르고..ㅋ..
그렇다고 갑자기 exo픽으로 수정하기도 좀 뭐하고..ㅋㅋㅋ exo-m이 나올 수도 있긴 한거 같아요..
조직이라는 스토리상..ㅠ 사업상.. 미팅도 해야하고..ㅋㅋ 그냥둥글게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에도.. 찬열이가 일하느라 폭풍열중해서. .우리 백현이 내용이 없어요..5편에선..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요.. 하하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생각보다 분량이 조금 길어졌어요.. 한글 12페이지.. 거의 꽉채우다 시피해서.. 13페이지 넘어갈뻔..ㅋ..ㅠ.
잘끊은듯.. 안끊었으면 제손도 독자님들 눈도.. 고생.ㅠㅠ 손팅해주시는 분들 정말 사랑입니다.. 제사랑받으시고.. 절 독촉해주세요.
+어제 타오 생파였잖아요.. ㅋ 박찬열이 홈오질 인증 제대로 해줌.. 세루세루!?.. 너란남자.. 너무 좋다..
조물조물에 이은 또다른 홈오인증..ㅋ정말 찬백쓸 맛이 나네요.ㅠㅠㅠ 박찬열이.. 더쿠를 육성시키네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