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 '
꽤나 눈이 나빠진 모양이었다. 이젠 헛게 다 보이는구나. 뻑뻑해진 눈을 손등으로 벅벅 문지르며, 나는 낮게 욕설을 내뱉었다. 한동안 모의고사다 뭐다 별별 시험에 붙들려, 책상앞에 죽치고 있었더니 결국 이 지경에 이르렀다. 평소 시력은 꽤 좋은 편이라 자부하던 나다. 강의실 맨 뒷자리에서도 보드판에 새겨진 깨알같은 글자들을 무난하게 캐치해 내는 나를 보며, 네 친척중엔 몽고혈통이라도 있는 거냐며 동기놈들은 동물원 원숭이 보듯 신기한 눈으로 쳐다보곤 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책을 보는 시간이 두배정도 늘어나자, 눈이 조금씩 건조해지기 시작했다. 결국 어울리지도 않는 안경을 하나 장만하여, 이제 막 새로운 눈에 익숙해져 갈 무렵. 나는 또 시력이 떨어진 듯 했다.
"으아아악!!!!!!......말도 안돼....... "
옆에서 모니터를 응시하던 한상혁이 일순 제 머리를 부여잡고, 침대위로 털썩 쓰러졌다. 뒷머리를 제 손으로 한껏 헤집으며 단발마를 내뱉던 놈은 '그럴리가 없어. 내가 잘못 본걸꺼야..' 라며, 천장에 쌍커풀 없는 긴 눈을 들어올린 채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동질감이 느껴지는 놈의 발언에 나는 이내 코웃음을 쳤다. 동질감. 내가 생각해도 참 가장 터무니 없는 단어였다.
"...내가...유급이라니...."
한참동안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리던 놈은 횡설수설, 제가 뭔 말을 하는 지도 모른채 나불거렸다. 그리곤 이내 체념한 듯, 허탈한 눈으로 나를 곁눈질 하며 말을 걸어온다.
"....넌...좋겠다..."
"뭐가"
"진짜... 유급같은 건 네 인생에서 상상치도 못한 일이겠지...?"
하아. 낮은 한숨을 내쉬며 자괴감에 빠진 놈은 시선을 돌려, 마주본 자리에 위치한 내 모니터 화면을 응시한다. 같은 장소, 같은 화면이지만 내용물은 전혀 딴판이다. 놈은 저런 걸 봐서 뭣해. 하며 중얼중얼거리면서도 꽤나 궁금하긴 했던지, 이젠 대놓고 내 앞으로 불쑥 얼굴을 들이민다. 그리곤 내 모니터를 하나하나 눈으로 훑더니, 이내 내게 헛소리를 지껄인다. 내가 믿을 수 없는 사실을.
"어...? 뭐야. 너 해부학 B 받았어?"
젠장. 내 눈이 잘못된 게 아니었나 보다. 놈에게 말도 안되는 감정이입을 해가며, 나 또한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그러나, 놈 또한 나와 똑같은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다. 이건 분명히 뭔가 잘못된거다.
"......."
동그란 눈으로 멀거니 나를 쳐다보는 한상혁의 시선이 의아함에 휩싸인다. 좀전까지 나 또한 분명 저런 얼굴을 하고 있었을 거다. 지금 나도 이번만은 저 놈과 같은 심정이니까. 일단 나는 해이해진 정신머리를 되돌려야 했다. 끈질긴 놈의 시선을 뒤로 한 채, 나는 곧장 화장실로 들어가 세찬 울림을 내며 쏟아지는 물방울을 거칠게 얼굴위로 쓸어올렸다. 그리고 배수구 팝업을 눌러 몇초간 세면대에 얼굴을 들이 밀고, 물속에서 몇번인가 눈을 꿈뻑거려본다. 시린 눈동자 사이로 차가운 물결이 사르륵 스치는 물 속에서 나는 생각했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그리고 어떻게 해결해 낼지를.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조금씩 이성이 돌아오는 듯, 나는 얼굴을 마저 헹군 뒤 벽걸이에 걸린 수건으로 힘을 주어 벅벅 닦아냈다. 한결 멀끔해진 상태로, 다시 나는 내 방으로 발길을 돌렸다. 그 길목에는 같은 구조의 2층짜리 침대가 빼곡히 놓인 방들이 주욱 늘어서 있다. 지나가는 곳마다 자신의 뒷머리를 손으로 가둔 채, 고개를 푹 숙이고 한탄하는 놈들의 신음소리가 흘러든다. 마치 절규와도 같은.
'병신들'
마치 석고판이라도 찍어낸 듯, 눈앞에 펼쳐진 지루한 광경에 나는 속으로 놈들을 비웃었다. 시선을 내리깐 눈으로 놈들을 쳐다보며 나는 조금 기분이 나아지기 시작했다. 꿈같은 예과 2년, 그리고 본과 2년을 거치면서 나는 참 잘 버텨왔노라 자부한다. 흔히들 말하는 입시지옥의 연장선이라던 의대 본과과정은, 이런 나라도 조금은 벅찰 정도로 빡빡하게 돌아갔다. 으레 선배란 것들은 '예과 때 안 놀면 언제 놀거냐'며 후배놈들에게 저와 같은 하루살이식 인생법을 전수했고 그 결과, 넘쳐나는 건 동기놈들의 유급이요. 탄식이었다. 물론 나는 의대생의 신분으로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자유를 버리고, 묵묵히 내 길을 걸어왔다. 매년 목격하는 이 엿같은 풍경도 벌써 4년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아. 이홍빈. 넌 진짜 내가 봐도 대단한 새끼야. 인정. 이름만큼 익숙해진 과탑이란 호칭은, 내게 유일한 웃음을 가져오는 말이었다.
'달칵'
지긋하게 연출된 복도를 지나, 나는 곧장 방으로 들어와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살포시 쥐어 '2014학년도 1학기' 라고 쓰여진 글자위에 얹고는, 왼쪽커서를 눌렀다.
SV20140808 해부학 담당교수 : 황세준 평가 : B
올해는 유난히 유급인원이 많아, 강의 시작전에 분명히 교수가 A를 받는 건 1명뿐이라고 단단히 언질을 주었었다. 그래, 분명히 그랬었다. 나는 멀쩡한 내 시력을 의심해보기도 했고, 제 정신을 차릴 요량으로 세수도 이미 하고 온 참이었다. 그런데 모니터에 비치는 평가 'B'라는 글자는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씨발. 전산오류라도 났나?"
낮게 중얼거린 욕지기에 놈이 조금 놀랬는지, 토끼눈을 해보인다. 그러나 시기어린 마음은 좀 전과 그대로였던지, '야~ 네가 욕도 다하고... 진짜 내가 별 광경을 다 본다' 하며 빈정거리며 말을 걸어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키보드에 박힌 F5키가 푹 패일정도로 새로고침을 해댔다. 어딘가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화를 억지로 삼켜본다. 그런 나를 탐색하듯 관찰하던 한상혁은 '너 그럼 이번엔 과탑 못하는거야? 어쩌냐' 하며 제 딴엔 너저분한 위로의 말을 건낸다. 울컥, 귓가에 울리는 비아냥거림에 매서운 눈을 해보이다가, 이내 다시 마음을 잡아본다. 정신차리자, 이홍빈. 섣불리 판단하는 건 답지 않은 짓이다. 나는 살포시 눈꺼풀을 감았다가 느린 속도로 들어올렸다. 그래, 아직은 감정적으로 행동해선 안 될 일이다. 일단, 제대로 된 사실 확인부터가 먼저다.
"나 과사 좀"
감정적으로든 이성적으로든,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이었다. 제 놈이 내게 실없는 위로를 건넬 정도로 뭔가가 필히 잘못된 것이겠지. 나는 마우스를 책상위로 내팽개치곤, 빠른 발걸음으로 과사무실로 향했다. 학과생들의 편의를 위한답시고 강의관을 기숙사 근처에 지었다며 동네방네 제 자랑을 해대던 총장에게, 처음으로 인간적인 호의를 느낀 순간이었다. 금새 다다른 문 앞에서 나는 가식을 전면무장하곤, 두어번 헛기침을 하며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
똑똑-
"네~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문고리를 사뿐히 돌려 사무실 안으로 들어서니, 이내 내 얼굴을 알아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어보이는 여조교가 보인다. 아직 진정되지 않은 화를 억지로 눌러삼키며, 나는 입꼬리를 양쪽으로 씨익 올려보인다. 패인 보조개에 힘이 가해진다. 여자도 눈웃음을 치며 빙긋- 웃어보였다.
"어머 ~ 우리 홍빈이 왔구나!! 과사엔 놀러온거야? "
비음이 섞인 교태어린 목소리가 귓가에 닿는다. 여자의 입가에 서린 웃음은 다물어질줄을 모르는 듯. 여자는 항상 나에게 '똑똑하지, 예의바르지, 게다가 외모까지 출중하지. 넌 정말 모자란게 뭐니?' 라며 입버릇처럼 부담스러운 멘트를 날리는 사람이었다.
"뭐...겸사겸사요."
"그래? 아,참. 오늘 성적 나오는 날이지~?"
"네. 근데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굳이 이런 날에 자신을 찾아올리 없는 나를 말간 눈으로 쳐다보는 여자는, 나의 '문제적 발언' 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해보인다. 그리고는 그럴리가 없다는 듯.
"응~? 무슨 문제?"
"학교 전산망에 오류가 난 것 같아요"
"홈페이지가 안 떠?"
"아뇨. 제 성적이 좀 이상해서요"
"그래? 일단 그럼 내가 확인해볼게~"
손에 익은 독수리 타법으로 타닥타닥- 빠르게 자판을 눌러대던 여자가, 살짝 코 끝으로 흘러내린 안경을 중지를 들어 눈 위로 들어올린다. 달칵거리는 소리와 함께 여자의 입에서 연거푸 내 성적이 쏟아내린다. '면역학 A, 심장학 A, 영상의학과학총론 A.....' 눈으로 샅샅히 훑어보이며 미간을 찌푸리는 여자. 그리곤 곧장 시선을 들어 내게 한다는 말이,
"홍빈아. 네 성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네?"
"해부학B. 이거 네 성적 맞아. 이 과목은 교수님이 나한테 직접 채점 맡기신 거거든. 아, 물론 재검토는 교수님이 하셨지만."
"......"
"아, 그러고 보니 이 과목 이수자가 적어서 A는 한명이랬지?"
어딘가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기 시작한 감정은 쉽사리 가라앉을 것 같지 않다. 겹겹이 메어진 이성의 끈이 조금씩 잡아 뜯기는 소리가 들리운다. 그럴리가 없다. 저년이 지금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거다.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보이고 싶지 않아, 주먹을 꽉 쥐곤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내어 '네' 라는 한마디를 뱉어냈다. 순응적인 대답과는 달리 내부에서는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갖가지 감정들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이 상황에서 지금 내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딱 하나였다.
저 골빈새끼들 중엔 있을리가 없다.
그것만은 명백한 사실이었다. 학창시절 의사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난 이후로, 나는 한번도 1등의 자리를 놓쳐본 적이 없다. 원체 기본적인 학습능력이 빠른 편이기도 했지만, 또한 나는 끈질긴 노력파였다. 물론 타고난 천재를 연출하기 위해, 갖은 꾀를 좀 쓰기는 했지만. 동기놈들이 술독에 빠져, 여자에 빠져, 갖가지 온갖 인간군상이 겪을 수 있는 것들에 허우적 댈 때, 나는 머릿속으로 인체모형 속 시신경을 하나하나 상기시키는 상당히 집요한 인간이었다. 때문에, 동기놈들 중에 내 적수가 될만한 놈은 없었다. 아니, 있을 수가 없다. 그런 단어는 내 인생에 있어서 상상치도 못한 일이었다.
"에구~ 어쩌니... 이번에 홍빈이 네가 아닌가보다~"
너저분한 위로를 건네던 동기놈과 같은 어투를 해보이는 여자. 마치 '거긴 네 자리가 아냐' 라고 단단히 일러주듯. 꽉 쥔 손바닥안에 손톱이 파고들기 시작한다. 아, 이건 뭔가가 잘못되었다. 채점과정에 문제가 있거나, 혹은 그 어떤 것이든 문제가 있어야 한다. 나는 지금 당장 행정실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저 빌어먹을 년의 업무처리 능력에 대해 낱낱히 고해바쳐야겠다고 생각하던 찰나. 똑똑-. 데자뷰처럼 들리는 노크소리.
"들어오세요~"
손잡이가 돌아간 문 사이로 스민 햇볕이, 지금 막 손잡이에 손을 얹은 남자의 얼굴 사이로 비친다.
"안녕하세요. 누나"
실핏줄이 드러날 정도로 하얗다 못해 창백한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꽤 사람들의 구설수에 자주 오르내리는 인물이었다. 성별을 막론하고 지금 눈앞으로 걸어오는 남자에 대해서는 모두 한데 입을 모아 얘기한다. 단정한 이목구비와 위로 살짝 올라간 고양이 같은 눈매, 그리고 시원시원한 기럭지. 그야말로 '눈 요깃거리로는 쟤 만한게 없다', '저게 바로 금욕적인 섹시다', '아, 물론 너도 잘 생기긴 했지만-' 과 같은 영양가 없는 발언을. 종족특성도 아니고, 학과특성상 여자의 흔적이 가뭄에 콩나듯 하기때문에 의과대에서 저같은 얼굴은 금지옥엽 모셔줘야 된다는 것이 이들의 지론이었다. 정택운. 일명, 의과대 페로몬.
"어머~ 택운아! 너 얼굴 잊어먹겠다 증말!! 과사좀 자주 놀러오고 그래~"
콧소리를 내며 아양을 떨어보이는 여자의 모습에 나는 낮게 헛웃음을 쳤다. 박쥐같은 년. 이 여자의 립서비스는 나한테만 통용되는 건 아니었던 모양. 여자를 마주한 정택운의 입에서 여린 미성이 흘러나온다.
"잘 지내셨어요?"
"그럼~! 아, 근데 과사엔 볼일 있어서 온거야? "
"네. 황교수님 뵈러왔는데...자리에 안 계셔서...."
"그래? 아, 참. 너 교수님이 칭찬 되게 많이 하시더라~ 해부학 실습때 보니 손이 야무지다고 하시면서. 이번에 성적도 잘 받았다며?"
"아...아니에요"
"어머~ 얘 쑥쓰럼 타는 것 좀 봐~ 아유, 귀여워라~"
여자의 너스레에 민망한 듯,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려다 나와 눈이 마주친 정택운. 당황함이 역력한 얼굴을 마주하자, 나는 내가 이 곳에 오게 된 이유를 찾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멀스멀 표면위로 떠오르는 여자의 발언에 대한 의문. 의과대에 황교수라는 사람이 내가 아는 교수님 말고도 또 있었던가.
"이번에 박빙이던데? 실습에서 1점차이로 평가가 나뉘었더라~"
"....."
"다음학기엔 카데바*로 하는 거 알지? 절대 빠지면 안된다 너~! 교수님이 택운이 챙겨오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시더라~"
그럴리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내 인생에 유일한 오점으로 남을만한 순간이었다. 한번도 느껴본 적 없던 패배감이 한 순간에 내 몸을 감싼다. 그리고 그 근처를 배회하는 나의 짓이겨진 자존심과 치솟아 오르는 치욕감. 분노. 이 모든 것들이 순식간에 내 쪽으로 달려들기 시작했고, 나는 몇 초간 말없이 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구역질나는 얼굴이었다.
"홍빈아, 넌 계속 여기 있을거야?"
내게 자리를 피해달라는 듯, 여자의 비꼬는 말투에도 정작 분노의 화살은 그녀에게로 향하진 않았다.
"아뇨.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여자에게 나는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굳은 발걸음을 뗀다. 그녀 말대로 내가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는 없다. 조교가 나에게 고의로 말을 했건 혹은 그렇지 않건 간에, 그딴
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 분명한 것은 그녀가 내게 알려준 것은 '사실' 이라는 점이었다. 마땅히 문제가 있었어야 할 전산망은 멀쩡했으며, 나는 해부학에서 B를 받았다는 것. 그리고 유일한 A는 정택운이 가져갔다는 것. 씨발. 니까짓게 감히. 내장밖으로 뒤집어지는 속을 가라앉힐 마음도 들지 않는다.
"그럴래~? 그래 그럼. 잘가 빈아~"
내 쪽으론 시선도 두지 않고선 손만 깔딱깔딱 흔들어보이는 여자. 이젠 1등이 아니니 대우할 가치가 없다 이건가. 허탈함이 감돈다. 부모없는 고아새끼라며 발길질을 당했을 때도, 나는 전혀 억울하지도 별로 괘념치도 않았다. 비록 세상엔 나 혼자였지만 외로움 같은 건 느낄 틈도 없었다. 그렇게 오직 홀로 버텨왔다. 다만, 나는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가 필요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나에게 1등이란 자리는 유일한 자부심이자 나 자체였다. 고작 장학금 몇푼 때문에 지금까지 노력해왔던게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굳건히 지켜온 내 자존심이 짓뭉개져버렸다. 너 때문에. 고작 네 까짓놈 때문에.
"저도 이만 가볼게요"
여자를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 반대편으로 돌아서선, 빈 눈동자로 나를 내려다 보는 정택운. 얽힌 시선을 마주하며 나는 생각한다. 반드시 이 치욕을 네게 되갚아줘야겠다고. 구렁텅이에 처박힌 내 자존심 값은 톡톡히 치뤄내야 할 거라고. 네놈은 정말 큰 실수를 저지른 거라고.
"응? 택운이 너도 가는거야~? 에이, 둘다 가버리니까 아쉽네~"
"다음에 뵈요. 누나."
시시각각 울그락붉그락하는 얼굴을 보이기 싫어, 먼저 뒤돌아선 내 뒤로 정택운이 따라 나온다. 빈 복도를 쳐다보며 나는 빠르게 그 장소를 빠져나오려고 했다. 때마침, 등 뒤로 반쯤 열린 문이 채 닫히기 전에 귓가에 울리는 여자의 목소리.
"박교수님이 조만간에 병원 들리신다더라~ 정원장님께 꼭 안부 전해드려!"
한 뼘쯤 차이나는 놈의 얼굴이 금새 내 옆까지 와 있었다. 하얀 인영이 내게 눈 인사를 해온다. 위로 치솟은 눈꼬리가 설핏 비웃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네"
짧은 대답과 함께, 아무런 미동도 없이 굳은 내 얼굴을 바라보던 정택운은 금새 시선을 거두곤 저벅저벅 복도를 거닌다. 놈의 발소리만이 복도를 차지하고, 나는 쥐고 있던 손에 살짝 힘을 풀었다가 도로 주먹을 쥐어본다. 뼈마디가 으드득 소리를 내며, 혈액이 통하지 않는 손이 이내 노란빛에 잠긴다. 고개를 들어 놈의 넓은 어깨를 눈으로 주시하며, 그의 그림자가 사라질 때 까지 나는 그렇게 시선을 떨어뜨리지 않았다.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물며 정택운 같은 부자새끼라면 더더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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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핫바디우닙니다. 같은 회차가 두번이나 올라와서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있으시리라 생각하여, 짧은 알림글을 올립니다. 몇일전, 저는 컴백특전을 써내려가면서 지금까지 올렸던 작품들을 훑어보게 되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처음엔 스스로 만족하면서 올렸던 작품들이었는데, 다시금 살펴보니 저의 부족함이 여실히 드러나더군요.. 그중에서도 유독 Gunner`s Anatomy 1회차가 그랬습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봤을때, 설명자체가 부진한 것도 있고 전혀 공감할 수 없는 부분들도 많았습니다. 때문에 부랴부랴 2회차를 작성하던 도중 문체를 바꾸자는 결정을 내리게 되었습니다...ㅠㅠ 사실 전 새로 글을 써내려가는 것보다, 써진 글을 수정하는 게 더 어려웠어요....흑흑 아무튼! 여전히 부족한 저입니다만....ㅠㅠㅠ 모쪼록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덧글은 저의 힘이 됩니다. 〈간단한 용어설명> * 카데바 : 해부학 실습에 쓰이는 시신 * 의대 = 예과 2년 + 본과 4년 = 총 6년제 과정 * 유급 = 보통 출석일수가 모자라거나, 터무니 없는 성적을 받게 되었을 때 유급을 받게 되는데요. 의과대의 유급은 이런 것과는 달리 한 과목이라도 평가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곧장 유급처리가 된다고 합니다. 또한 의대과정 커리큘럼이 이미 짜여져있기 때문에, 해당학년에서 유급을 하게 되면 1년을 꿇게 되버립니다. 〈장편에 관하여> 회차별 구상을 해본 결과 35+a 정도 분량을 예상하고 있습니다. 주 1,2회 연재를 목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