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찬디/찬백] 장미에 가시가 있는 이유
written by. 돼지저금통
7. 날려버렸어
죽고 싶다. 살기 싫다. 스파게티 집에서 찬열과 백현을 본 이후로 하루도 빠짐 없이 경수가 하고 있는 생각이다. 경수는 그 날 집으로 들어와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이 아프고, 너무 코를 풀어서 코 끝이 헐어 버릴 정도로 울었다. 꺽꺽거리며 오열하는 경수 때문에 부모님은 경수의 방 앞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애타게 문만 두드렸었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울고 나니 정신이 좀 차려지고, 정신이 차려지니 그제서야 현실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찬열이 식었다. 확실히 식었다. 찬열은 거짓말을 하고, 백현을 만났다. 애써 합리화를 해보려 했지만 이제는 먹히지 않았다. 경수는 앓았다. 마음이 아프니 몸도 아파왔다. 밥도 잘 안먹고 매일 책상에 엎드려 있기 일쑤였다. 그런 경수를 가장 걱정하는 것은 종인이었다. 종인은 그런 경수의 곁에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으려고 했다.
“경수야. 오늘은 밥 먹으러 가자. 어?”
벌써 5일째. 경수는 점심을 걸렀다. 종인이 아침에 초코우유를 사서 빨대까지 꽂아 줘야 겨우 마지못해 몇모금 들이켰다. 그마저도 협박을 하지 않으면 잘 먹히지 않았다. 박찬열이랑 싸우기 전에 얼른 먹어. 찬열로 협박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은 무엇보다 경수가 밥을 먹는게 중요했다.
오늘은 먹으러 가자, 는 종인의 애절한 애원과 종대의 칭얼거림으로 경수는 결국 몸을 일으켰다. 밥도 잘 안먹는데다 엎드려서 잠만 잔 탓에 머리가 찡하게 울려왔다. 휘청이는 경수의 몸을 종인이 단단히 붙잡는다. 저도 모르게 종인에게 기대오는데, 그 몸이 너무 가벼워서 마음이 천갈래 만갈래 찢어 진다. 남자가 맞는가. 이렇게 가벼워서야 정말 바람이 불면 똑 꺾이겠다 싶은거다.
“내가 밥 받아줄게. 자리 잡고 앉아 있어.”
급식실에 도착하자마자 권력을 이용해 길다란 줄의 맨 앞에 당당히 끼어 든 종인이, 종대를 향해 눈짓하며 경수를 식탁으로 보냈다. 종인의 눈빛 신호를 신속하게 알아 들은 종대가 굳이 직접 급식을 받아야겠다는 경수의 팔을 질질 끌고 식탁으로 향했다. 내가 장애인이냐! 하는 경수의 부르짖음은 둘 다 가볍게 무시했다. 지금 니 상태가 장애인 뺨친다, 이새꺄.
막강한 권력을 이용한 탓에 남들보다 늦게 왔으면서도 가장 먼저 급식을 받아 온 종인이 자연스레 경수의 앞에 자리를 잡았다. 주머니에서는 폰이 울려댄다. 그때서야 세훈을 놔두고 허겁지겁 경수의 반 앞으로 뛰어 왔다는 사실이 떠올랐지만 어련히 알아서 먹겠지 싶어 가만 놔뒀다. 경수는 앞에 놓인 식판의 음식들이 모두 역겹게 느껴졌다. 아, 또 하필 반찬이 스파게티야 시발. 스파게티만 보면 5일 전의 기억이 떠올라 암담했다. 입술을 꾹 깨문 채 먹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경수를 보며 들리지 않게 한숨을 쉬던 종인이 결국 제 식판은 옆으로 치워 놓고 경수의 식판을 끌어 당겨 숫가락에 밥과 반찬을 얹기 시작했다.
“너 뭐하는거야.”
“이렇게 해서라도 먹어야지.”
“미쳤어? 애들 다 보잖아.”
“내가 이러는게 싫어?”
종인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했다. 경수의 말에 언제나 생글생글 웃으면서 토달지 않던 평소의 모습과는 틀렸다. 화난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경수는 대답을 하기 무서웠지만 종인이 떠먹여 주는 밥을 받아 먹는 다는 건 너무나도 쪽팔렸기에 그래! 하고 대답했다.
“그럼 직접 먹어. 아님 내가 억지로 떠먹여 줄거야.”
이를 악 문 종인이 경수에게 숟가락을 건낸다. 경수는 잠깐 망설이다,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받아 들었다. 얼마만에 만져보는 숟가락인지 모르겠다. 목구멍으로 넘어 가지는 않겠지만 일단은 한 입 밀어 넣어 본다.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까끌하게 씹히는 느낌이 썩 좋지는 않았지만 뱉어 낼 정도로 역하지는 않았다. 경수는 오물 오물 잘도 씹으면서 밥을 천천히 비워가기 시작했다.
그 때서야 종인과 종대는 한시름 놨다. 그리고는 그들도 숫가락을 들고 각자의 식판을 경수의 페이스에 맞춰, 천천히 비워내기 시작했다.
-
석식 꼭 먹어. 나는 잠깐 외출했다 올거야.
언제 일상이 되었는지 종인의 당연한듯한 스케줄 통보에 경수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종인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꾸만 뒤를 돌아 보더니 결국 어쩔 수 없이 경수의 교실을 나갔다. 이제 교실에는 몇몇 공부하는 아이들과 종대, 경수가 남았다. 경수는 한숨을 쉬었다. 종대는 한숨을 쉬는 경수가 불안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대충 종인을 통해 듣기는 했다만, 이정도로 경수에게 타격이 클 줄은 몰랐다. 남자 둘이 사랑한다고 해봤자 얼마나 진지하겠나 했었는데 그들의 연애도 일반적인 남녀 사이의 연애와 다를 바가 없었구나, 종대는 이제서야 깨달았다. 그와 동시에 경수가 더 안쓰러워졌다. 박찬열 그새끼 언젠가 사고 칠 줄 알았어. 원래부터 찬열을 싫어 했던 종대가 찬열을 생각하며 이를 바득 물었다.
“나 좀 잘테니까 야자 끝날때 깨워줘.”
“그, 그래…. 푹 자, 경수야.”
평소에는 경수 놀리는 맛에 살던 종대가 얌전하다. 경수는 책상 위로 엎어졌다. 몸도 몸이었지만 마음이 너무 아팠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그때 이후로 쿵쿵 뛰는 심장이, 깨어 있는 때에는 가라 앉지가 않는다. 경수는 이제 쉬고 싶다고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아이들이 소곤대는 소리와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가 점점 멀게 느껴졌다. 눈을 떴을때는……이 모든게 꿈이었으면 좋겠다.
조용한 주위에 경수가 놀라 잠에서 깼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불은 다 꺼져 있고, 문은 다행히 열려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을 보니 9시 30분, 2학년이 야자 마친지가 30분이 흘렀다. 김종대 개새끼. 깨워 달라니까…. 종대는 의리 없이 먼저 간 듯 싶었다. 조금만 더 있으면 3학년이랑 같이 나갈수도 있겠다 싶어 경수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지금 찬열과 마주쳤다가는 정말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불을 켤 정신도 없이 나가야겠다는 생각에만 휩싸여 가방을 싸기 위해 책상 위를 마구 더듬는데, 경수의 책상 위에 있던 뭔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까만 봉지였다. 주워 들어보니 꽤 묵직했다. 경수는 교실 앞으로 가 불을 켜고 교탁 위에서 까만 봉지를 펼쳤다. 안에는…….
“……이 등신.”
경수가 제일 좋아하는 서울 초코우유 세개랑, 제일 좋아하는 과자랑, 약봉지가 들어 있었다. 경수는 허탈하게 웃었다. 그걸 두고 간 사람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경수는 힘이 쭉 빠져버려 초코우유라도 하나 들이키려고 까만 봉지 안을 더듬었다.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그때서야 어둠속에서 익숙해진 눈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초코우유보다 과자보다 약보다 더 눈에 띄는 것. 까만 봉지 위로 튀어 나온 그건 빨간 장미였다.
새빨간 장미 한 송이는 산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아직 싱그러웠다. 그러고 보니 쪽지가 붙어 있었다. 경수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펼쳐 봤다. 그곳에 쓰여있는 초딩같은 글씨에, 초딩같은 내용은 경수의 눈물을 왈칵 쏟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너 닮았어. 너 처음 본 순간 장미인줄 알았어. 장미보다 더 예뻐. 진짜야.』
이까지 읽어 내렸을 땐 그냥 늘 하는 오글거리는 말인줄로만 알았다.
『좋아해, 경수야.』
그러나 진심을 가득 담아,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쓴 마지막 문장은 찬열이 카톡으로 보냈던 『사랑해』 보다 더욱 진정성있게 경수에게 다가왔다.
종인의 쪽지와 머릿속에 맴도는 찬열의 카톡을 곱씹으며 경수는 한참 눈물을 뚝뚝 흘리다가 장미와 선물들을 모두 가방에 잘 챙겨 넣었다. 그리고는 교실에 불을 끄고, 문을 잠궜다. 얼른 10시가 되기 전에 학교에서 빠져 나가야 겠다. 교문으로 바쁜 발걸음을 옮기는데 익숙한 인영이 교문 앞에 서있었다.
“잘잤어?”
그건 늘 그랬듯 김종인이었다.
***
찬열은 여전히 자주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집갈때도 데려다 주겠다 하지 않았다. 연락도 거의 경수가 먼저 했다. 찬열이 아직 자신을 좋아한다고 조금이나마 생각했을때는 찬열에게 까칠하게 대할 수 있었지만 이제 그게 아니란 걸 확실히 알고 나자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찬열이 자신을 버릴까봐 두려웠다. 까칠하게 대하고, 화를 내면 헤어지자고 하고 백현에게 가버릴까봐 무서웠다. 경수는 찬열에게서 먼저 카톡이 오지 않더라도 사근사근한 말투로 먼저 카톡을 보냈다. 서운해서 가끔 가슴이 먹먹하고 터질 것 같았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카톡은 점점 의무적으로 바뀌었다. 감정이 없이 그저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는 연락이라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다. 잘 만나지도 않고, 연락도 대충하고, 학교에서도 만날 수 있는데 먼저 만나자고 얘기도 안하고. 변백현이랑은 연락을 할까? 자주 만날까? 자꾸 이런 생각만 머리를 점령했다.
그 때 스파게티 집에서 경수 혼자만 마주치고도 8일이 흘렀다. 찬열의 얼굴을 못본지는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사귀고 있는게 맞는지도 헷갈린다. 식욕이 왕성해서 피자 한판은 거뜬하게 해치우는 경수가 한조각도 못먹고 끙끙댈 정도로 힘들어했다. 옆에서 종인과 종대가 힘이 되줘서 어째저째 죽지 않고 견디고 있기는 하다만, 찬열이 너무 보고싶어서 견딜 수 없는 때가 가끔 왔다.
지금이 그 때 였다. 경수는 먼저 만나자고 해보기로 다짐했다. 이렇게 언제까지고 만남을 피했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이, 오히려 더 찝찝하게 헤어지게 될 수도 있을것이다. 그런 애매한 이별은 싫었다. 차라리 만나보자. 싫으면 싫다 하겠지. 도경수가 아는 박찬열은 솔직하니까. 경수는 굳게 다짐하고 찬열에게 카톡을 보냈다. 형, 이번 쉬는 시간에 매점에서 보자.
긍정의 대답이 날아왔다. 그래 경수야.
경수는 중앙 계단에서 위층에서 내려올 찬열을 기다렸다. 길죽한 다리가 보이고, 생글생글 웃고 있는 얼굴이 보인다. 오랜만에 본 찬열의 얼굴은 그 전보다 훨씬 까칠해져 있었다. 그래도 그 웃음만은 여전했다. 경수는 그 수많은 시간 동안의 마음 고생이 무색하게, 찬열을 보자마자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보고싶었어, 경수야. 살이 왜이렇게 많이 빠졌어?”
물론 찬열의 말은 진심이었다. 하나도 거짓인게 없었다. 찬열은 원래 거짓말을 못한다. 특히 경수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찬열은 정말로 단지 「무서워서」 경수에게 먼저 만나자고도 못하고 연락도 못했던 것이지, 경수가 싫고 경수에 대한 마음이 식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찬열은 상대방의 화를 풀어주는 법을 잘 몰랐다. 그냥 먼저 화를 풀고 다가와주기를 기다리는 성격이었던 거다. 그러나 그건 경수도 마찬가지였다. 상대방이 먼저 자신의 기분을 알아채고 달래주길 바랬다. 서로 먼저 다가오기만을 바라고 있었으니 이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오해하고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생각보다 좋은 찬열의 반응에 경수의 어깨가 좀 펴졌다. 찬열은 경수의 기분이 다 풀렸다는 확신이 조금 생겼는지, 전보다는 어색하지만 경수의 어깨에 손을 살짝 올리고 매점 안으로 들어갔다. 초코우유 사줄게. 찬열의 목소리는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다. 경수는 조금 쑥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이라 처음 만난 것 처럼 어색하다. 찬열은 개떼처럼 매점 아줌마를 향해 돌진하고 있는 아이들의 사이를 수월하게 뚫고 들어가 초코우유를 사왔다. 흡사 예수가 일으킨 홍해의 기적과 같았다. 찬열은 친절하게 빨대까지 꽂아 초코우유를 건내주었는데 이럴수가. 아직 몰랐구나, 박찬열.
“응? 왜그래? 니가 좋아하는 초코우유.”
라고 새하얗게 웃는데 어떡하겠는가…. 일단 입에 물기는 물었다. 근데 이게 아니잖아. 또 허쉬 초콜렛! 초코우유는 서울초코우유라고!
그러나 찬열의 마음이 변할까 전전긍긍하고, 오매불망 연락을 기다리던 경수가 그런 말을 할 수 있을리는 없다. 좀 있다 교실에 올라가서 김종인이 사다 놓은 서울초코우유를 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경수는 허쉬 초코렛을 찬찬히 비워갔다.
둘은 학교 운동장 벤치에 앉아 짧게 얘기를 나눴다. 그 날 일을 물어볼까, 하고 몇번이나 생각을 했다. 이유 없이 부르기만 자꾸 불렀다. 형, 하고 불렀지만 뒷말은 삼켜졌다. 나오지가 않았다. 형, 그 날. 나한테 사랑한다고 한 날. 왜 그 애랑 스파게티 집에 갔어? 왜 우리가 자주 가던 거기가서, 걔가 먹여주는 스파게티를 먹고 있었어……내가 늘 먹던 메뉴를 먹으면서. 그러나 말 할 수 없었다. 그랬다간 찬열이 싫어 할 것 같았다. 그냥 친구인데 뭘 그래, 너 원래 이렇게 집착이 심한 애였니? 찬열에게 그렇게 보이는 것은 죽는 것 보다 싫었다. 결국 경수는 입술을 깨물며 고민만 하다가 말을 안하기로 결정했다.
짧은 만남이 끝나고 경수를 교실로 들여 보내고, 찬열은 백현의 카톡에 답장을 했다. 물론 그 전까지의 대화는 시덥잖은 대화들. 게임 얘기도 있고, 어제 했던 예능 프로그램 얘기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찬열이 보내는 카톡은 앞으로의 그들의 관계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킬 아주 중대한 것이었다.
『야 ㅋㅋ나방금 경수만낫는데 옛날보다 좀 어색하고 서먹하긴햇는데 이제 화 많이 수그러든거같더라 용기내서 먼저카톡해봐도 되겟지?』
흥분에 띄어쓰기도, 맞춤법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찬열의 카톡을 받고 자신의 학교 책상 위에 늘어져 있던 백현은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아니, 이런 직격탄에도 극복을 하겠다고? 도경수 얘는 상병신인가? 분명히 먹여 주는 것 까지 확실히 봤으면서! 이 병신같은 박찬열이 카톡도 안하고 만나자는 말도 안하는데도! 생각보다 질긴 상대다. 백현은 이를 뿌득 갈았다. 니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해보자. 오늘 너의 멘탈을 잘게 부숴주겠어. 다짐하며, 찬열에게 보낼 카톡을 입력했다.
『오ㅋㅋ형 축하..근데 오늘 할말잇어여 중간에나오셈ㅎㅎ 9시 형 학교 앞 콜?』
***
“아 씨! 너 자꾸 따라 오지 마!”
종인은 또 위험하다는 되도 않는 말을 씨불이며 경수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는 중이었다. 아까 매점에서 박찬열을 만났다고 하더니 기분이 확실히 나아졌다. 오늘은 석식 한그릇을 다 비웠다. 밥을 일단 먹기 시작하고 애가 좀 정신이 돌아오니까 다행이긴 한데, 그게 박찬열 때문이라는게 영 거슬렸다. 그렇게 경수를 아프게까지 하면서 이를 악물고 떼어 놨는데 다시 붙으려고 들다니. 종인은 이제 찬열과 진지하게 맞짱이라도 떠야하나 생각하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마침 백현이 연락이 왔다. 변백현 이름이 뜨자 마자 너 일은 제대로 하고 있는거냐고 윽박질렀는데 그걸 무시하고 백현은 조곤조곤 제 할말만 했다. 오늘 큰 사건 있을거다. 대박 사건 있을거야. 내가 내 한 몸 희생할게. 너희 학교에서 도경수 집 가는 가운데 공원 하나 있지? 너희 패거리들 담배 피는 곳. 거기로 오늘 9시 반까지 데려와라. 시간 딱 맞추고. 그리고는 끊겨져버린 전화에 종인은 이게 뭐지. 하고 한참 폰을 들고 서있었다.
에라이. 머리 좋은 새끼 어련히 잘 알아서 하시겠지, 싶어서 그냥 믿기로 했다. 그래서 오늘은 부러 늦장 부려서 9시 반에 딱 그 공원 지나가려고 경수를 괴롭히고 또 괴롭혔던 것이다. 야자를 끝마칠때 쯤 찬열에게서 카톡이 왔기 때문에 경수의 기분이 좋은 터라 꼬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간만에 기분 좋아서 장난치는 걸 받아주면서 하트모양 입술로 웃는데 아, 종인은 오랜만에 정말 heart attack 이 올 뻔 했다.
“야. 벌써 중간이나 왔어. 너희 집은 저쪽이잖아.”
“내가 언제 그거 따지고 너 데려다 줬냐?”
“안데려다줘도 되거든!”
“쉬. 알겠어, 알겠어. 절로 가자.”
“…저 공원 앞? 무서운데.”
“나랑 있는데 뭐가 무섭냐.”
그건 그렇긴 하다. 니가 제일 무서운 놈이지……. 경수는 허허. 하고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고는 종인이 이끄는데로 공원 쪽으로 발을 질질 끌며 따라갔다. 사실 공원쪽으로 가기 싫은 이유가 꼭 무서워서만은 아니다. 그 공원은 찬열과 첫키스를 한 장소였다. 그러니까 지금은 그 추억에 별로 젖고 싶지가 않은 것이다. 이제 겨우 찬열이 조금 나아지고 있는데, 혹시라도 그때의 추억을 되살려서 찬열을 저도 모르게 재촉하게 되버릴까봐 두려웠다. 그래서 추억과는 마주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었다. 일단 그쪽 길이 빠르기도 하니까. 종인은 시계를 보면서 자꾸만 경수를 끌었다. 약속이 있는 모양이다.
“아, 씨. 자꾸 끌어 당기지 마. 내 발로 갈 수 있거든?”
교복이 자꾸 늘어지는 통에 경수가 짜증을 내며 종인의 팔을 뿌리친다. 그리고는 그 짧은 다리로 종종걸음을 걸어 빠르게 공원쪽으로 다가가는데, 종인은 그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자꾸 픽픽 웃음이 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는 거다. 그래서 자기도 긴-다리로 걸음을 빨리 해서 경수를 쫓아 가는데, 경수는 무섭다고 또 걸음을 빨리한다. 잡아 먹는 것도 아닌데 도망가는 꼴이 귀엽다. 그런데 공원에 가까워지자 경수가 갑자기 우뚝 멈춰선다.
“…….”
“왜그래 경수야. 무서워?”
“…….”
“경수ㅇ…!”
헐 시발. 저게 뭐야.
경수의 시선이 닿는 곳을 확인한 종인은 황급히 경수의 눈을 가리고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생각 하고 자시고 겨를이 없었다. 아까 대박 사건 어쩌구 하더니 그게…? 종인은 스포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충격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무턱대고 끌어 안고 본 경수의 작은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손 안의 속눈썹이 간질거렸다. 경수는 종인이 받은 충격보다 백배 더 큰 충격을 받은 상태다. 안겨진 종인의 품에서 옅은 향수 냄새가 났다. 너도 향수를 뿌리고 다니는구나. 박찬열도 향수를 썼었는데. 내가 생일날 선물해 준 향수. 그리고 그 향수를 뿌리고 다녔던 박찬열은, 저기, 저기서….
“……씨발.”
허여멀건한 개자식, 변백현이랑 키스를 나누고 있구나….
서로 입을 맞추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이상하게 잘 어울려서 경수의 마음을 더 아프게 했다. 긴 속눈썹에 사르르 눈을 감고 있는 하얀 얼굴의 백현과, 등을 돌리고 있지만 박찬열임이 확실한 듬직한 뒷모습. 얼핏 봐도 진한 키스였다. 경수와도 사귄지 두달이 지나서야 했던 키스. 그 둘의 사이에 경수는 없는 것 같았다. 끼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박찬열은 내 남자친군데, 변백현에게 빼앗기고 만 기분이었다.
그 장면을 확인한 경수는 아찔한 기분을 느꼈다. 하늘이 뱅뱅 도는 것 같다. 금방이라도 다리에 힘이 풀려서 쓰러 질 것 같았다. 처음 봤을 땐 너무 놀라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는데, 종인에 의해서 눈이 막힌 채로 안겨 있으니 눈물이 쉴새 없이 흘렀다. 어떡하지. 지금 이게 무슨 일이지. 그 장면이 자꾸만 눈 앞에 아른거리고……. 지금 피해야 하는데. 지금 박찬열이 변백현이랑 나오다가 혹시 나를 보면 어떡하지? 그럼 이 울고 있는 모습이 너무 비참해지는데……. 그렇지만 한발자국도 뗄 수 없었다. 가슴이 조여 드는 것 같았다. 숨도 쉴 수 없었다.
이 순간만큼은 귀찮았던 종인이 옆에 있어 다행이라고, 경수는 진심으로 생각했다. 이제는 스스로 눈 감을 힘도 없었다. 이제는…… 경수는, 이것이 끝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항상 봐주시고 댓글달아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당 ♡
점점...재미가..없어지는것...같지만...............노력하겠습니다!!!!!!
카디찬백한하루되세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