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보우 - KISS (Acoustic ver.)
종인이의 돌직구에 순식간에 얼굴에 확 열이올라 당황해서 종인이를 밀어내자 순순히 밀려난다. 괜히 딴청을 피우며 손부채질을 하는데 웃던 종인이 내 머리칼을 흩뜨려놓는다. 덕분에 민석이가 묶어줬던 머리가 망가지는 바람에 정리하고 있자 머리는 또 언제 묶었냐며 사랑스럽다는 눈빛을 쏘아댄다. 쟤는 작정한 게 분명하다. 그런 게 아니고선 어떻게 저렇게 사람을 설레게 하지?? 이제부턴 안 설레도록 조심해야겠어.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짐을 하는데 피구공 하나와 축구공 하나를 가져간 종인이는 내게 이따가보자는 말을 남겨놓고 창고를 빠져나갔다. 이제 오분도 채 남지 않은 쉬는시간에 허겁지겁 정리를 마치고 반으로 올라오자 앞반으로 향하는 찬열의 뒷모습이 보인다.
"열아!"
"여깄었네."
"나 찾았어? 왜?"
"...그냥. 오늘따라 안 보이길래."
"선생님 심부름으로 창고정리하고 오느라."
"근데 너 내일 뭐할 거야?"
"나? 음... 그냥 집에 있을 것 같은데."
"그럼 나랑 영화볼래?"
"... ..."
"아니 뭐, 그냥 볼 사람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싫으면 말ㄱ..."
"누가 뭐래? 완전 좋은데. 나 명량 보고싶어!"
"너 하고 싶은대로 해."
"그럼 이따 톡할게."
내 눈치를 보며 머뭇거리는 찬열이를 위해 일부러 더 오바하며 얘기하자 찬열이 환하게 웃는다. 원래부터 그 말이 하고싶어서 온 건지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인 찬열이는 바로 제 반으로 돌아갔다. 찬열이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반으로 들어와서 들떠있자 종대가 다가와서 묻는다.
"무슨 좋은 일 있어?"
"나 영화 보러간다!"
"무슨 영화? 아니, 누구랑?"
"찬열이랑-"
"뭐야, 나도 보고싶은데. 박찬열 나한테는 한 마디도 안하더니."
"나랑 보고싶었나보지 뭐."
"나도 데려가."
"열이한테 물어봐."
간단하고 무미건조한 내 말에 종대가 박찬열 그 새끼는 분명 안 된다고 할 게 뻔하다며 툴툴댄다. 동시에 딱 맞춰서 수업종이 치는 바람에 아직도 박찬열을 까고 있는 종대를 데리고 자리에 앉자 역시나 수업시간을 칼같이 맞추는 한국사쌤이 들어오신다. 한국사가 재밌긴 진짜 엄청 재밌긴한데 자꾸 눈이 감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옆을 슬쩍보니 종대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을 보니 더 졸리다. 결국 수업을 성실히 듣자던 내 결심은 오늘도 fail. 끝끝내 종대와 함께 엎어져서 한국사 시간내내 꿀잠을 자고 말았다.
벌써 쉬는 시간이 된건지 아이들의 시끌벅적한 소리에 살짝 잠에서 깨어났는데 어디에선가 살살 불어오는 바람에 더 나른해진다. 누군가 내 앞머리를 쓸어주는 느낌이 들어서 살며시 눈을 뜨고 상체를 일으키자 종인이가 내 앞에 앉아 부채질을 해주고 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구분이 안 가 멍하게 있으니 종인이가 웃음을 터뜨린다.
"왜 여깄어?"
"너 보러왔지. 잘 잤어?"
"그런 거 묻지마."
멍한 정신에서 깨어나 종인이에게 말하자 다시 강림하신 김다정께서 다정하게 웃으며 내게 묻는다. 창피하게 잘 잤냐고 묻고 난리야....ㅠㅠ 쑥쓰러움에 얼굴을 가리자 종인이가 예쁜 얼굴을 왜 가리냐며 내 손을 내린다. ㅅㅂ!! 얘한테 안 설레기로 한지 두 시간도 안 지났는데 내 심장년ㅠㅠㅠ 종인이의 설렘어택에 괜히 자리에 없는 종대는 어디갔냐고 묻자 자기를 놔두고 딴 남자를 찾는 거냐며 두 번째 설렘어택을 내게 투척했다.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런대. 적응 안 되는 낯선 느낌에 어쩔 줄 몰라하자 그런 나를 보며 종인이는 또 웃는다. 설렘학원이라도 다니는지 알아봐야겠어 정말; 언젠가는 종인이가 나에게 왜 이러는지 꼭 밝혀야겠다고 생각하며 민석이에게 머리끈을 돌려주려 자리에서 일어서자 나를 졸졸 쫓아온다.
"어디 가는 거야?"
"민석이한테."
"왜?"
"머리끈 돌려주려고."
"뭐야, 그게 걔 거였어? 걔 머리끈도 들고 다녀?"
"몰라. 쓸데가 있대."
내 옆에 붙어 캐묻는 종인이에게 어깨를 으쓱해보이자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하긴, 남자애가 머리끈 들고 다니는 게 이상하긴 하지. 민석이네 반에 도착해서 민석이를 찾아 눈으로 쫓는데 아무래도 반에 없는 듯하다. 맨날 없는 사람 찾아다니는 걸 보니 나는 전생에 추노였나보다. 종인이와 함께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도통 보이질 않기에 포기하려는데 종인이가 어딨는지 알 것 같다며 나를 끌고간다. 그래서 도착한 곳은 그 때 내가 종인이를 찾았던 학교 뒤 주차장 겸 화단이었다. 여기랑 나는 운명인가봉가.... 종인이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긴가민가하며 좀 더 구석으로 들어가자 정말로 민석이가 있다. 그것도 찬열이와 함께.
"... ..."
그것도 내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표정으로, 그냥 우두커니 서있다. 옆에 서있는 찬열이는 무어라 얘기하는 것 같긴 한데 찬열이와는 너무 멀어서 안 들릴뿐더러 민석이와 얘기하는 것 같진 않다. 조심히 내 손목을 잡은 종인이가 그냥 가는 게 좋겠다고 하는데도 민석이의 처음보는 표정때문인지, 화가 난듯 빠르게 얘기하는 찬열이의 모습때문인지 발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결국 종인이에게 끌려가다시피 반으로 돌아왔다. 별 일 아닐 거라는 종인이의 말처럼 정말로 그러길 바라면서 자꾸 뇌리에 박히는 찬열이와 민석이의 표정들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학교가 끝날 때까지 무슨 일이냐고 묻진 못했지만 그래도 다행인 건 나에게는 그런 표정을 짓지 않는다는 거였다. 집에 돌아와서도 고민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답이 없어서 포기하고 찬열이와의 약속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이렇게 일찍 자고, 알람까지 맞춰놓고, 레이오빠에게 깨워달라고고까지 했으니 늦을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서서히 잠에 빠져들었다.
* * *
"...헐."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시계를 보는데 약속시간이 채 두 시간도 남지 않았다. 분명 아홉시에 알람을 맞춰놨는데 나는 잠시 잊고 있었다. 맨날 버릇처럼 잠결에 알람을 꺼버려서 학교에도 종종 늦을 뻔한 적이 있다는 걸. 자책의 의미로 머리를 내 스스로 몇 대 쥐어박고는 서둘러 욕실부터 달려갔다. 허겁지겁 씻고 대충 얼굴에 찍어바르고 나니 삼십분이 금방이다. 머리도 고데기로 펴고 미리 봐뒀던 원피스까지 입은 후에 방 밖으로 나와 현관에 걸려있는 거울앞에서 나 혼자 심취해 한 바퀴 돌자 거울에 한 눈에 봐도 힘겨워보이는 레이오빠가 보인다.
"ㅇㅇ. 지금 모하는 고야?"
"뭘 하긴, 아무것도 아니야. 근데 오빠 괜찮아?"
별로 안 좋은 인상에 걱정이 돼서 묻자 고개를 절레절레 젓더니 화장실로 들어간다. 오빠가 오자마자 매일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오빠 환영회 겸해서 술을 먹고 들어오는데 한 두번은 안 나갈법도 한데 착해빠진 오빠는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들이라고 다 만나준다. 저러니 나를 못 깨워줄법도 하지. 마지막으로 거울앞에서 점검하고 거의 좀비화돼가 것 같은 오빠에게 화장실 문 너머로 나가보겠다고 얘기하자 돌아오는 건 속을 게워내는 소리뿐이다. 집을 나서면서 오빠에게 밥 꼭 챙겨먹으라는 문자를 날려주고 아파트 정문에 서있는 찬열이를 부르며 달려갔다.
"열아!"
"왔어?"
나를 웃으며 반겨주다 내 옷차림에 살짝 얼굴이 굳어진 것 같다. 왜 그러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것도 잠시, 버스를 놓칠까 찬열이의 손을 잡고 부랴부랴 뛰었다. 다행히 놓치지 않은 버스에 올라타 이십분여가량을 달리자 얼마만인지 모를 CGV가 보인다. 좋아서 방방 뛰는 나를 그저 웃으며 바라보던 찬열이가 예매해준 덕분에 콜라를 유독 좋아하는 날 아는 찬열이는 콜라 두 개를 사서 영화관에 들어섰다. 영화를 보며 뭘 집어먹는 걸 좋아하지 않는 날 아는 찬열이는 혹시 부족할까봐 내게 제 콜라를 좀 더 부어준다. 광고가 시작할 때부터 콜라를 폭풍흡입하던 것도 그 때뿐, 곧 영화가 시작되고 이어지는 잔혹한 전투장면에 나는 찬열이 손으로 눈을 가려야만 했다. 찬열이가 알아서 가려줄 땐 가려주고 보여줄 땐 보여준 덕분에 콜라를 다 마실 수 있어서 뿌듯했다. 영화관에서 나와 잠시 앉아서 쉬는데 꺼놓았던 휴대폰을 켜니 문자와 부재중이 우수수 쏟아진다. 문자 하나는 고맙다는 레이오빠, 다른 하나는 뭐 하냐는 민석이 문자. 그리고 부재중 모두는 종인이었다. 무슨 일이 있나싶어서 전화를 걸려는데 찬열이가 나를 부른다.
"나 할 말 있어."
"뭔데?"
사뭇 진지해진 찬열을 주시하는데 손 안의 휴대폰이 진동을 울려댄다. 살짝 확인해보니 또 종인이다. 급한 일인가 싶은데 찬열이의 눈빛이 꼭 받지 말라는 듯한 눈빛이다.
"뭔데 그렇게 뜸을 들여?"
"있잖아."
"응."
"나 너 좋아해."
"어?"
간단명료하다못해 짧막한 찬열의 고백은 손 안에서 울리는 진동에 맞춰 심장을 쿵쾅쿵쾅 거리게 만들었다. 그 와중에도 끊임없이 걸려오는 종인이의 전화가 자꾸 신경쓰이는데 내 휴대폰을 뺏어 거절버튼을 누른 찬열이가 다시 한 번 말한다.
"좋아해. 처음 만났었던 그 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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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하남비 완결에 좀 열중할 예정이라서 완결 끝마칠 때까진 일진썰, 메이드 둘 다 당분간은 올라오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하남비 빨리 마칠 테니까 기다려주세요!
여주시점으로 해결되지 않은 궁금증들은 남주시점으로 다 나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