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아."
"어?"
"나 들어갈게."
"아, 응."
"낼 봐."
혹시라도 아파트 밖을 나가는 일진무리들이 날 볼세라 빠른 걸음으로 찬열이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들어오는데 힐끔 뒤돌아본 찬열이는 좀 멍했던 것 같다. 아픈 게 꾀병이 아닌가. 긴가민가하며 집으로 올라왔는데 여전히 그 이름모를 일진님께서 내 옆 동에 산다는 게 신경쓰인다. 잠자리에 들기 전 양치를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그 일진들을 안 마주칠 수 있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지만 결국 나온 결론은 그냥 무작정 피하기뿐이었다. 꿈에서라도 마주치지 않길 바라며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잠에 빠져들었다.
* * *
"ㅇㅇ아-"
"... ..."
"ㅇㅇㅇ-"
어렴풋이 귓가에 들리는 달달한 목소리에 눈을 감은 채 생각에 잠겼다. 백퍼 엄마아빠는 아니고, 박찬열도 아니고. 이 샛기는 누군데 아침부터 깨우고 난리야? 하며 인상을 구긴 채로 몸을 일으켰는데, 웬 엔젤이 나를 반긴다.
"오빠가 왜 여깄어?"
"힝... 벌써 잊어버린고야? 내가 연락 했자나."
"...아아, 맞다."
맞다. 부모님 일 때문에 우리 집에서 지낸다고 그랬었지. 하도 누구때문에 정신없어서 그런지 새까맣게 잊고 있었다. 레이오빠는 아빠 일 때문에 알게 된 거래처 사장 아들인데 하도 오래 만나다보니까 거의 사촌이나 다름없이 지냈다.
"엄마아빠는?"
"출긍? 그런 거 한다고 나가써."
"아아- 출근."
"응. 그거!"
아침부터 레이오빠를 보니까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다. 이제 그 일진들만 안 보면 내 하루는 완벽할 거야!! 라고 간절하게 생각하며 거실로 나왔는데 박찬열이 쇼파에 삐딱하게 앉아서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딱 보니까 나 깨우러왔는데 레이오빠가 있으니까 그냥 앉아있었나보다. 대충 답이 나오기에 씻고, 교복까지 입곤 바싹 구워진 식빵을 입에 물고 씹고 있는데 어느 새 내 앞으로 온 레이오빠가 날 쳐다본다. 박찬열같았으면 뭘 봐, 라고 대꾸해줬겠지만 레이오빠니까 그냥 놔둔다. 식빵을 반쯤 먹었을까, 갑자기 박찬열이 벌떡 일어나더니 내 가방끈을 잡고 현관문으로 향한다.
"야, 나 아직 안 먹었거든?!"
"가면서 먹어."
"어... 우리 ㅇㅇ이 식빵 다 못 먹었눈데..."
"오빠 나 갈게! 집 잘 보고 있어-"
"응응."
막무가내로 날 끌고 나가는 박찬열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끌려나가면서 오빠에게 외치자 고개를 위아래로 힘차게 끄덕인다. 정말 오빠지만 귀여워죽겠다. 근데 이 샛기는 왜 나 아침도 못 먹게하는 거야?
"저 새끼는 왜 자꾸 너네 집에 오는 거야?"
"새끼라니. 형한테 그게 뭐야."
"...레인가 데인가 아무튼."
"내가 좋은가보지."
"... ..."
"농담이니까 표정 풀어라."
얌전한 강아지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박찬열의 앞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자 또 좋다고 실실댄다. 그런 박찬열을 보며 제발 학교까지만이라도 이렇게 평화로웠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뒤에서 어마무시한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린다. 제발 아니겠지, 하고 빌고 빌었건만.
"ㅇㅇ아-!"
하느님은 날 버렸다.
* * *
"... ..."
"... ..."
"... ..."
이렇게 불편한 등교길은 내 십팔년 인생동안 처음이었다. 이런 십팔. 귀하신 일진님께서 친히 내 옆으로 자진납세해주신 덕분에 찬열이는 그나마 옅게 웃고 있었던 표정을 굳혔고, 일진님께선 개의치 않은 듯 나만 보며 실실거렸다. 이게 쟤가 개발한 신종 괴롭히기 수법 3단계구나. 덤으로 뒷조사까지 해서 내 이름을 알아냈다는 건 숨겨봤자 소용없다는 거겠지. 스케일 보소. 난 저렇게 스케일 큰 일진에게 찍힌 거고. ㅋ..... 학교에 빨리 도착하거나, 집으로 다시 나를 되돌려보내주거나, 나의 엔젤 레이오빠를 불러주든가!!! 하지만 하느님은 무엇 하나 들어주지 않았고, 대신 은혜로운 민석이를 주셨다. 처음으로 하느님께 감사해진 순간이었다.
"민석아아!"
"어, 학교 가는 거야?"
"응."
동네가 떠나가라 민석이의 이름을 불러대는 나였지만 은혜로운 민석이는 나를 반겨줬다. 뭐, 내가 달고 온 생명체들을 보곤 멈칫하는 듯 했지만 개의치 않고 금세 다시 나를 바라보는 민석이었다. 민석이가 합류해서 한결 놓이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재잘재잘 떠들어댔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데 이 놈들은 내 얘기를 경청하면서 흡사 아빠미소를 짓는다. 그냥 박경리랑 나랑 길가다 너무 웃겨서 넘어진 얘기였는데. 그 땐 뭐가 그렇게 웃겼었더라. 갑자기 생각의 나래로 빠져드는데 혼자 생각할동안 학교에 도착했는지 익숙한 교문이 보인다. 무슨 의자왕처럼 당당히 남정네 세 명을 거느리고 교문을 통과하려는데, 선도부가 날 붙잡는다.
"학생증이 없네. 벌점 2점이야. 학번 불러."
ㅇㅇㅇ님께서 당황데미지 10퍼센트를 입으셨습니다. 이건 무슨 학생증어택이지? 분명 학생증이 잘 있다고 자부해마지 않았는데 예쁘게 목에 걸려있어야 할 학생증이 없다. 오늘 레이오빠어택에 정신을 놔서 학생증을 안 메고 왔나보다. 할 수 없이 학번을 부르려고 입을 뗐는데 일진님께서 선수를 친다.
"벌점 주지마. 그냥 오늘만 넘어가."
po일진wer 선도부에게도 개기는 저 용감함! 박수를 치고싶다. 아무리 그래도 쟤가 얼마나 깐깐한데 그걸 봐주겠ㅇ...
"그래."
봐주네. 완전 쉽게 봐주네. 역시 일진님이라 그런가. 클라스가 다르네. 속으로만 감탄의 박수를 치고 있는데 일진님 표정을 보아하니 나 잘했지? 라고 띄우며 칭찬을 바라는 얼굴이다. ...뭐라고 해줘야되지. 고맙습니다? 고마워? 감사해? 땡큐? 시발, 모르겠다.
"고마워."
최대한 광대를 끌어올려 웃으며 말해줬는데 약간 넋이 나간 표정이다. 역시 저 대답은 옳지 못한 대답이었어. 그럼 대체 모범답안은 뭐지?? 혼자 고뇌하고 있을 때 일진님께서 갑자기 나처럼 웃더니 말한다.
"그럼 이따보자!"
Aㅏ......
* * *
드디어 점심시간이다. 지루했던 1교시부터 4교시까지 버텨준 내가 대견스럽다. 오늘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돈가스가 나오는 날이라 더 정신을 못 차리고 전투적으로 급식을 먹으러 뛰어가는데, 앞서가는 뒤통수가 딱 박찬열이다.
"열아!"
박찬열의 팔을 잡자 주변에서 다 쳐다본다. 뭐 시발, 박찬열 부르는 것도 죄야? 아, 이러면 안 돼. 며칠 일진 옆에 붙어다녔다고 내 멘탈은 내가 일진인 줄 아나보다. 정신차리자.
"오늘 돈가스 나와."
"응."
냉담한 박찬열의 팔에 매달려 돈가스를 달라는 무언의 눈빛을 보내봐도 거들떠도 안 본다. 개샛기. 내가 돈가스 좋아하는 거 뻔히 알면서 좀 주면 어때.
"돈가스 줄테니까 입 집어넣어라."
"헐. 사랑해."
"됐어. 이럴 때만."
툴툴대면서도 결국 준다는 박찬열의 말에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꺼내놓자 똑같이 받아친다. 귀가 좀 빨개진 것 같기도 한데, 내 착각이겠지. 급식실에 도착할 때까지만이라도 이렇게 평화로웠으면 좋겠ㄷ... 이거 어디서 많이 본듯한데, 설마..ㅎㅎ
"어, ㅇㅇ아!"
하느님은 또 날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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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 못 하는 척 쓰는 게 너무 어려워서 레이는 그냥 다음 편부터 한국말 잘 하는 걸로.
내가 썼지만 레이 존나 꾸ㅣ여워!!!!!!! 납치하고 싶다;
여주는 기독교인가봉가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자꾸 하느님 찾네여...; 여주와 종인의 관계는 무엇일까요? 되게 간단한데ㅇㅅㅇ
+ 전 앞으로도 계속 완전체로 글 써나갈 예정인데 혹시 싫으신 독자님 계신가요? 혹시라도 그러시다면 제 글을 주기적으로 볼 독자님만 따로 댓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