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끝내 도경수 사장의 마지막 말이 뭘 뜻하는지 알지 못한 채로 돌아온 후부터는 욕 나올만큼 바빴다. 내가 홍길동도 아니고 이리갔다 저리갔다. 불평불만이라도 하면 수정이는 맞장구라도 치듯 모두 파티때문이라며 투덜댔다. 아니 시발. 지들이 파티하는데 왜 내가 바빠야 돼?! 하는 물음도 잠시, 나는 1초만에 답을 찾았다. 나는 알바니까. 씁쓸하게도 시원스럽게 찾은 답에 상심할 겨를도 없이 나는 눈코뜰새없이 바빠서 그마저도 금세 잊어버렸다. 파티에 쓸 장식을 사러 마트에 가고, 파티에 놓여질 음식재료 사러 또 마트에 가고, 청소 안 해도 가뜩이나 깨끗한 집을 또 구석구석 청소하고, 안 쓰는 식기들을 닦고 광내고. 내가 이만큼이나 하는데도 다른 메이드들도 나처럼 바빴다. 대체 일이 얼마나 많은 거고 집은 얼마나 넓은 건지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 그렇게 이틀내리를 바쁘게 써버리고, 우리가 고생한만큼 성대한 파티가 열렸다.
[선진그룹 창립 50주년 기념 파티]
주문한 현수막이 걸리고, 곳곳에 파티 장식이 놓여지고, 음식들이 하나둘씩 테이블 위에 올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은 내 손에서 이뤄졌다. 시발. 존나 힘드네. 파티준비하는 내내 잠을 못 잔 탓도 있지만 부족한 음식재료때문에 장을 보고 돌아가는 것 때문에 내 손에 들려있는 마트봉투는 너무 묵직했다. 그리고 어제부터 오늘까지 도련님들도 많이 바쁜 건지 한 번도 못 봐서, 안 보니까 좀 보고싶긴 하다. 낑낑대며 마트봉투를 들고 가고 있자니 시야 한 켠으로 누군가의 차가 내 속도에 맞춰 따라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서 옆을 바라보자 동시에 도경수 사장이 차에서 내려 내게로 걸어온다.
"타요. 데려다줄게요."
"사장님 어디가시는데요?"
"그 쪽 가는데."
웃으며 내 짐까지 들어주는 사장님 때문에 거절할기도 애매한 상황이라 결국 차에 얻어 타자 아픈 다리가 풀리는 느낌이다. 서로 말도 없이 가다보니 벌써 도착이다. 파티 손님들 모두 마당(-공원)에 있는 차고 대신 공용주차장에 대야했기 때문에 도경수 사장님은 내 감사했다는 인사를 받고 주차장으로 향해야만 했다. 뭐, 공용주차장비도 여기서 다 대주는 거니까 찾아오는 손님으로선 손해볼 건 없었다. 부족한 재료를 채워넣고 다리뻗고 좀 눕고 싶은데 그럴 겨를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몰래라도 쉬고 싶지만 열심히 일하는 다른 메이드들 보기 미안해서라도 그럴 수가 없다.
"안 힘들어?"
손님들에게 내놓기 전, 완성된 요리를 트레이위에 올려놓고 요리리스트들과 비교하고 있는데 도련님이 불쑥 뒤에서 나타나더니 나를 끌어안고선 턱을 내 어깨에 괸다. 고개를 저으며 누가 볼까 싶어서 안은 손을 풀려는데 지금은 아무도 없다며 장난스럽게 얘기한다. 그럼 지금만 아무도 없다는 거지, 누가 더 올 수도 있다는 건데 참 대책없다. 제발 들키면 도련님이 아닌 나에게 불똥이 튄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나 오늘 정장도 입었는데, 어때? 좀 멋있나?"
저러니 미워할 수도 없고.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이자 환하게도 웃는다. 그러다 갑자기 도련님을 찾는 소리에 도련님도 가버리고, 마지막 남은 요리들을 내보내고 나니 그제서야 조금은 쉴 수 있게 됐다. 아까 마트에 갔을 때 몰래 사온 바나나우유를 혼자 쪽쪽 빨아먹으며 주방창문을 처량맞게 바라보고 있는데, 인기척이 나 뒤돌아보니 웬 낯선 남자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혹시 여기 물이 어딨는지 아세요?"
솔직히 수트핏 아니었으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릴 뻔했다. 남자면서 왜 나보다 예쁘고 난리래. 사슴 눈을 하고 나를 계속 바라보는 남자에게 물이 가득 든 컵을 건네주니 벌컥벌컥 잘도 들이켠다. 땀이 머리칼에 살짝 젖어있는 것도 그렇고, 복장도 보아하니 경호원같은데 저 남자도 참 고생이다.
"...저는 레이예요."
"네? 아, 저는 ㅇㅇㅇ이에요."
"물, 감사했어요."
뜬금없는 남자의 통성명에 내 이름을 말하자 언뜻 얼굴에 미소를 띈 것 같았다. 빈 컵을 건네주는 레이씨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자 그대로 뒤돌아 나간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들어온 수정이는 뭐 때문인지 호들갑이다.
"이제 쉬어도 된대."
"아- 이제야 누울 수 있겠네."
"우리 뭐할래?"
"난 그냥 자고 싶은데."
"에이, 처음으로 같이 숙소에서 자유시간 보내는 건데."
"그럼 영화라도 볼까?"
"어, 완전 좋다. 여름엔 당연히 공포영화지. 나 마침 DVD 있어!"
항상 숙소에 돌아오면 서로 피곤한지라 그냥 잠들기 일쑤라서 수정이는 지금 주어진 시간이 저렇게 방방 뛸 정도로 좋은가보다. DVD를 찾아놓겠다며 먼저 뛰어가는 수정이를 뒤따라 가고 있는데 아직도 파티가 계속되고 있는 마당쪽으로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서 계속 보고 있다가 사람들 사이로 눈이 마주쳤다.
그 속에서도 나를 발견했는지 살짝 웃어주는 도련님에게 나도 웃어보이며 숙소 안으로 들어가자 어느 새 옷을 갈아입은 수정이가 비장하게 DVD를 꺼내보인다.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응. 여름엔 한 번씩 이런 걸 봐줘야 돼. 시간도 100분도 안 넘어."
"그래. 보자."
"공포영화 싫어하거나 그런 거 아니지?"
"응. 아니야."
수정이가 DVD를 틀동안 옷을 갈아입고 오자 불까지 전부 꺼놓고 침대에 누워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는 수정이다. 영화가 시작되자 이불을 턱까지 끌어올린 우리 둘은 영화를 몰입해서 보다 영화가 끝난 후 더더욱 몰려오는 피곤에 수정이는 그대로 골아떨어졌고, 나는 무서움에 잠이 오질 않아 밖으로 나와야만 했다. 숙소 앞 계단에 쭈그려앉아 밤바람을 맞으며 앉아있는데 멀리서 이 쪽으로 걸어오는 인영이 보인다.
"...종대 도련님?"
"ㅇㅇ아-"
터덜터덜 걸어와 내게 쓰러지듯 안기는 도련님의 등을 말없이 두드려주자 내 옆에 털썩 앉는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 그냥 힘들어서. 이런 것 좀 안 했으면 좋겠어."
나를 놓칠세라 끌어안은 도련님은 내 마음과 같은 말만 한다. 내 말이 그 말이지. 창립기념행사는 왜 하는 건지.
"ㅇㅇ이 넌 왜 나와있어?"
"공포영화를 보니까 잠이 안 와서요."
"그럼 내가 노래 불러줄까?"
"도련님 노래도 해요?"
"내가 좋아해서 가끔 불러. 진-짜 진짜 가끔. ...네가 내 노래 들어주는 첫번째 사람일지도 몰라."
"그러니까 더 듣고싶어요."
"자, 부른다."
쑥쓰러운 듯 목을 한 두번 풀던 도련님이 나를 안은 손을 푸는 대신 내 손을 잡고 노래를 시작했다.
(여기서 브금을 재생해주세요)
조용히 눈을 감고 노래를 듣고 있자 정말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잠도 오는 것 같고. 효과 하나는 짱이네. 짧막한 노래를 마친 도련님에게 엄지를 들며 치켜세워주자 활짝 웃는다.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사실 내가 노래를 처음 듣는 사람이라는 게 안타까웠고 동시에 무언가가 마음 속에서 간질거렸다. 이 느낌이 뭔지 곰곰히 생각에 잠기는데 무언가가 내 앞으로 슥, 다가왔다 떨어졌다.
아까보다 더 간질거리는 느낌에, 그리고 생소한 촉감에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도련님이 덧붙인다.
"이것도, 네가 처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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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포함 중국멤버들은 오랜 한국생활로 한국말을 잘하게 됐다고 칩시다. (사실 작가가 발음 못하게 쓰기 어려움) 근데 좀 어색하긴 하네요...ㅎ
이제 레이도 등장. 레이가 여주한테 반했나봐요. 묻지도 않은 이름도 가르쳐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