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그냥 날 놓아주면 돼 03
10개월 후
이제 티비를 틀면 그가 나오지 않는 곳이 없다.
라디오 디제이는 물론 광고며 화보 촬영마저도 스케줄이 빡빡해 고사하는 중이다.
그가 첫 주연을 맡은 영화가 조만간 막을 내릴 예정임에 그에게도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는 듯 했다.
나보다 더 바쁜 스케줄에 얼굴보기 힘들던 그가 오늘은 웬일인지 퇴근하는 나를 반겼다.
약속을 하지 않고 이렇게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무슨 바람이 불어서 약속도 없이 이렇게 왔어?"
"혹시 나 잘못했어요?"
"아니, 기특해서."
"누나도 보고 싶고, 마침 저녁 시간이라서?"
"뭐 먹고 싶은데? 너 좋아하는 거 먹으러 갈까?"
"아니, 오늘은 내가 살 거 에요. 나도 이제 돈 많잖아."
스케줄로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을 텐데도 그는 여전히 즐거워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만해도 바람에 곧 꺾어질 갈대 같았던 그가 이제는 크나큰 줄기가 생긴 듯 굳건해 보였다.
슬슬 그와의 인연도 정리 할 때가 온 것 같다.
"나, 지난달에 패션쇼 보러 갔다가 김남준 대표님 만났어요."
"남준씨?"
"나 되게 싫어하는 줄 알았는데 친절하시던데요?"
"응. 남준씨 원래 되게 다정해. 친절하고 멋진 사람이지.“
“나한테만 해주는 말인 줄 알았는데 김대표님도 포함이에요?”
“질투해?”
“아니거든요?”
“질투 맞네.”
"뭐, 대표님이라면 누나랑 결혼해도 저 할 말 없어요. 사실 제가 봐도 김남준 대표님 멋있는 사람 같아요. 성공했잖아요."
"고맙네. 허락해줘서."
그의 입에서 김대표의 이름이 나오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이번에는 무슨 일일까, 무슨 소릴 들었을까 수많은 의문들이 심장 저 깊은 곳을 찔러댔다.
다행스럽게도 또 한 번 그에게 상처를 주는 일은 없었나 보다.
"태형아."
"네, 누나."
"이번 영화 끝나면 좀 쉬려나?“
“아무래도 그렇겠죠?”
“한 달만 나랑 같이 어디 갈래?"
"여행이에요?"
“응.”
“진심이에요? 나 너무 오랜만이라 설레요. 더군다나 누나랑 같이 가는 거라면 더요.”
잔뜩 신이 난 표정으로 나를 보는 그를 보니 마음 한 구석이 저려왔다.
작은 마음에도 쉽게 감정이 변하고 또 숨기지 못하는 저 아이를 보니 그동안 내가 저 아이를 두고 몹쓸 짓을 했던 것은 아닌지.
훗날 나를 떠올리며 나쁜 기억이라 생각하면 어쩌나 하는 생각까지 미쳤다.
“다녀오면 원하는 거 줄게.”
“나 이제 충분히 혼자서도 잘 해요. 더 바라는 거 없어.”
“그래서 하는 말이야. 이제 우리가 더 이상 함께해야 할 이유가 없잖아.”
“처음에는 이유가 그랬을지 몰라도 누나도 나랑 만나는 거 즐거워했잖아요.”
“응, 충분히 즐거워.”
“근데. 진짜 우리 그만해요?”
“난 내가 바라는 만큼 했고 너도 이정도면 성공했고. 이제는 혼자 힘으로 더 멋지고 빛나게 살아. 나한테 그만 매이고.”
“친구하자고 했으면서 이렇게 그만하자고하면 그만둬야 되는 거야?”
내가 그의 진심을 모르는 건 아니다.
나 또한 1년이라는 시간을 스폰서라는 이름으로 그를 붙잡아 둔 채 만나오면서 진심을 다하지 않은 날들이 없다.
하지만 내게는 돌아가야 할 자리가 있고 나를 기다리는 그를 위해 이 관계도 정리를 하는 게 맞는 일이다.
이 관계가 끝남으로서 우리 둘, 모두가 상처가 남을 거라는 걸 알지만 내가 사는 세상은 선택권이 그리 다양하지 못하다.
나는 모두를 위해 결국 그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거 알아. 그런데 태형아. 지금 끝내야 아무도 안 다치는 거야.”
*
떠나기 전, 김대표와의 저녁 약속을 가졌다.
그동안 대면 대면했던 그였기에 이렇게 가까이 마주 앉아있으니 꽤나 낯설다.
"쇼에서 태형이 만났다면서."
"만났지."
“고마워. 친절하게 대해줬다고 엄청 좋아하더라.”
“이제야 웃네.”
“신기하게 그 애 이야기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
“부럽네. 나는 10년을 버티고 있어도 못한 일을 김태형씨는 1년 만에 해내고.”
그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동안 나에게서 사랑 말고 또 무언가를 원했지 않느냐고,
적어도 태형이 그 아이는 숨김없고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나를 나 자체로 대해준다고.
처음의 목적이 무엇이든 내게 진심만을 보여준 건 처음부터 태형이 뿐이라고,
“나 태형이한테 진심이야.”
“알아.”
“억울하지 않아? 오빠와 나 사이에 이런 일방적인 관계.”
“그럼에도, 넌 당연히 나한테 올 테니까.”
그가 씁쓸하게 웃는다.
나는 그에게 언제나 당연한 존재였다.
지금도 이 뭣 같은 상황에서도 그가 웃을 수 있는 이유.
사랑하지 않아도, 간절해도 결국 나는 그에게로 돌아가야만 하니까.
모든 것들을 위해서.
“이제 그만 하려고.”
“잘 생각했어. 1년이면 충분해.”
“마지막으로 같이 여행 다녀오려고.”
“기자들 따라 붙을 텐데. 하... 마지막이니까 그건 내가 어떻게든 해 볼게.”
“고마워... 그 후에 깔끔하게 정리하기로 약속했어. 각자의 자리에서 빛나기로."
"확실히 돌아오는 거지?"
"그렇겠지."
"기다릴게."
무수히 많은 상처들이 그의 마음에 숨어있다.
애석하게도 가해자는 나 하나다.
그는 온전히 내 곁에 서서 피해자를 자처했다.
그러면서도 웃었다.
결국 나를 갖게 되는 건 자신이라는 걸 알았으니까.
하지만, 언제나 나를 향한 그 미소가 내게는 그 어떤 가시보다 아프게 나를 찔러 왔다.
그의 옆자리가 나의 것이라며 당연하다는 듯 그 말과 행동이
내겐 세상 그 무엇보다 무서운 협박이다.
"너 다녀오는 대로 결혼 준비 하자."
그 누구보다 바쁜 주말을 보내고 온 웨이콩 입니다 :-)
본가에 일이있어 금요일부터 오늘까지 정말 일만 하다가 와서 정신이 하나도 없네요 ㅜ
그와중에 글 날릴 뻔 한걸 겨우 다시 찾아와서 이렇게 작가의 주저리를 늘어 놓는 중입니다
이제 한시간 남짓 남은 주말도 잘 마무리하시고 힘겨운 월요일이겠지만
언제나 좋은일만 있기를 기도하겠습니다~
+ 암호닉 +
자색고구마라떼
단무지
여름
이건 덧붙이는 말이지마안....
처음에는 글을 쓴 목적은 자기만족이었습니다 ㅜ
항상 단편의 글이나 문장이 전부인 제 글에 처음부터 끝까지 쓴 글이 언제나 꿈이었고
어디에 내 놓기 부끄러워 이렇게 글잡에 찾아와 많이는 아니라도 누군가가 봐주는게 기쁜일이라 생각하며 글을 쓰지만
처음 생각했던 것 보다 내용이 덧붙여지고 길어지니 역시나 내용이 등산을 시작하네요...!
더욱 길게 오려고 노력했지만 앞으로 두, 세번이면 원래 구상했던 내용은 끝을 볼 것 같아요!
대신 그 외에 숨겨진 이야기나 스핀오프 에필로그 등의 이야기로 뵐 수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