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는 연분홍빛으로 탈색하고 얄쌍한 쌍커풀과 약간은 작은 눈동자, 오똑한 코, 약간 긴 허리만큼 더 긴 다리를 가진 남자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에픽하이의 run을 들으며 신호등 건널목 앞에섰다. 핸드폰만을 향하던 남자의 눈이 정면을 바라보았을 때 똑같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신호등이 초록불로 바뀌자 마자 긴다리로 건널목을 빨리 걸어가 자신을 보던, 자신이 보던 여자에게 다가갔다.
"우리 똑같은 느낌 받은거 맞죠? 우리 운명인것 같아요. 아니, 운명이야"
둘은 원래 연인이였던냥 어색함은 전혀 없이 자연스레 손을 잡고 카페에 갔다.
"난 오세훈이에요. 스무살"
여자는 세훈을 단숨에 알아보았다. 2년전, 자신이 병원에서 봤던 그 남자였기때문이다. 여자는 준면과 함께했던 일들이 자꾸 생각나서 금방이라도 울것같았다. 그래서 화장실로 뛰쳐나갔다. 세훈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뛰어가는 여자를 보고 놀랐고 어쩔 줄 몰라했다.
여자는 화장실 제일 구석에 있는 칸에 들어가서 울음을 억지로 참으며 가방에서 증명사진을 꺼내어보았다. 그 사진은 세훈이 확실했다. 여자는 그 증명사진을 부여잡고 한참을 울다가 세훈에게 어떤 말도 안하고 카페를 나왔다. 세훈은 계속 기다리다가 카페 옆 건널목에 서있는 여자를 발견하고는 당장 여자에게로 뛰어갔다.
"잠시만요! 어디 아파요?"
여자는 자신을 부르는 세훈을 무시하고 어딘가로 뛰어갔다.
다음날, 여자는 도시 변두리에 있는 한 납골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힘 없이 걷다 어느 한 곳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작은 공간안에 故김준면 이라고 적혀있는 납골함과 여자와 준면이 찍은 사진들과 준면이 제일 좋아했던 꽃이 들어있었다. 꽃은 여자처럼 시들어져있었다. 여자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 어제 누구 봤는 줄 알아? 오세훈..오세훈 그사람 만났어. 멀리서 봤을 때 설마..했는데 맞더라. 내가 그 때 의사 몰래 본 장기기증 받은 사람..김준면 심장을 가져간사람..그 사람이 맞았어. 내가 이 사람 잊지 않으려고 사진도 가지고 다녔었거든? 근데 그 사람이 맞는거야... 자꾸 네가 생각나잖아... 그 사람이 나한테 반한것처럼 나도 그 사람한테 반했는지 아니면 네 심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서 너 때문에 좋아하는 건지 진짜 모르겠다...너 왜 먼저 간거야? 안 그랬음 진작에 이런일 없잖아. 질투는 제일 많이 하면서..."
여자는 마지막으로 준면을 위한 기도를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준면이 마지막에 해줬던 말이 생각났다.
'나 때문에 네가 다른 사람.. 안만나고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사랑해'
몇일뒤, 여자는 세훈과 만난 그 때 처럼 옷을 입고 그 건널목에 서있었다. 우연히도 맞은편엔 세훈이 서있었다. 꼭 그때 처럼 둘은 눈이 마주쳤고 신호가 바뀌자마자 길을 건너서 여자가 세훈에게 먼저 말을 했다.
"우리 운명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