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빈이 드디어 눈을 떴다.
한 숨도 못 잔 탓에 꾸벅꾸벅 졸다가 정신이 잠깐 들었을 때 쯔음, 아주 느리게 눈을 뜨는 김한빈을 보고 나도 모르게 한빈아, 하고 불렀다.
내 부름에 살짝 고개를 들어 날 바라보는 한빈이의 눈빛이 늘 또렷하던 평소와는 다르게 아무런 기운이 없다.
" 괜찮아? "
밤새도록 눈만 꼭 감고 있고. 너 위험한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 지 알아?
내 말에도 아무런 미동없이 날 빤히 바라보던 한빈이가 고개를 돌리곤 다시 눈을 감아버린다.
밤새도록 거친 숨소리, 불안정한 숨소리가 자꾸만 신경쓰여서 한 숨도 못 자고 어떻게 해야하나 발만 동동 굴렀다. 강아지도, 고양이도 한 번 키워본 적 없는 내가 늑대를 키워봤을 리가 없었다. 늑대가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나. 내가 한빈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거라고는 온통 피로 물들어있는 털을 닦아 주고, 얼른 깨어나라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할 뿐이었다.
씨이, 늑대여도 내가 하는 말 다 알아듣는다더니 괜찮냐고 물으니까 모른 척 하는 거 봐.
그래도 이제야 눈을 뜬 한빈이가 너무 반갑고 예뻐서 팔을 뻗어 한빈이를 꼭 껴안았다.
기운이 없어서 가만히 안겨 있을 줄 알았는데 품에서 몸을 뒤척이던 한빈이는 내 옷깃을 물고는 제가 누운 침대로 나를 자꾸만 잡아 끌었다.
" 왜, 왜. "
아직 오전이라 늑대인 한빈이는 아무런 대답 없이 자꾸만 내 옷을 물고는 침대쪽으로 제 고개를 당겼다.
그렇게 많이 움직이면 아플 텐데. 걱정되는 마음에 왜 그래, 하면서 침대 쪽으로 따라가 몸을 앉혔더니 침대 위 제 몸을 일으켜 비켜주고는 앞발로 내 어깨를 밀어 침대에 눕게 만든다.
얼레? 뭐 하나 싶어서 몸을 다시 일으키려니까 팔 옆에 곤히 앉아서는 날 지그시 바라본다.
" 날 왜 눕혀. 누워 있어야 할 사람은 넌데. "
" 킁. "
" 아, 지금은 사람이 아니지. 뭐 어쨌든. "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한빈이를 바라보니 왠지 어제보다 더 커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람일 때 키가 좀 더 큰 것 같다고 느끼긴 했는데, 늑대가 되어서도 커졌구나. 예전에는 강아지 같은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제법 늑대같은 덩치와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다. 아이들은 하루 하루가 다르다고 하던데 왠지 남동생이 자라는 걸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물끄러미 한빈이를 바라보고 있으니 군데 군데 보이는 빨간 상처와 이리저리 감긴 붕대들이 눈에 보인다.
간 밤에, 그러니까 아픈 한빈이에게 뭘 해줄 수 있을까 발만 동동 구르던 그 때 아주 우연히도 구세주 한 명이 떠올랐다. 진환 오빠.
전화할 곳이라고는 진환 오빠 밖에 없었다.
새벽이 다 되어서 걸려온 전화에도 오빠는 흔쾌히 전화를 받아줬고, 와달라는 내 부탁에 곧장 달려와 주었다.
오빠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물론 한빈이에 관한 정보는 모두 거짓말이었다. 그냥, 길에서 늑대 한 마리가 쓰러져 있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우리 집에 오게 됐어, 근데 이렇게 많이 다쳤어. 근데 얘 늑대 맞지? 어떡해야 해? 오빠가 치료해 줄 수 있어?
내 말에 수의사인 진환 오빠는 웃으며 말했다. 강아지, 고양이, 하다 못해 고슴도치도 많이 치료 해보긴 했지만 늑대는 정말 처음이라고.
오빠의 손길에 한빈이의 상처가 조금씩 소독되었고, 치료를 마칠 때 즈음 오빠는 내게 그렇게 말했다.
" 근데 그냥 늑대 같지는 않다. "
" 그게 무슨 말이야? "
" 늑대랑은 좀 다른 거 같은데. 뭐가 다른지는 이렇게 봐서는 딱히 알 수가 없긴 하지만. "
" …그런가? "
모르는 척, 어깨를 으쓱이곤 치료가 끝났다는 오빠에게 다음에 밥이라도 꼭 사겠다며 정말 고맙다고 여러 번 인사를 했다.
오빠가 집을 나가자 마자 가슴이 콩닥거렸다.
평범한 늑대는 아니구나, 김한빈.
뭔가 의심스럽지만 딱히 뭐라 의심할 수 없는 듯한 진환 오빠의 표정이 자꾸만 떠오르면서 가슴이 콩닥콩닥 하다가도 괜히 웃음이 나왔다.
그냥 늑대는 아니긴 하지. 한빈이가.
무튼, 새벽의 저런 많은 일들을 뒤로하고 지금 내 옆에 누운 한빈이를 바라보니 눈동자 속에 여러가지가 담겨 있다.
내 모습, 김한빈의 표정, 그리고 피곤함.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 주며 더 자도 돼, 더 잘래? 하고 물었더니 내 품에 더 깊게 파고 든 한빈이가 몸을 조금 더 웅크리는게 느껴졌다.
한빈이의 온도가 닿은 부위들을 타고 전해져 내 몸도 따뜻해지는 느낌이 들면서 밤새 잠을 못 자고 쌓인 피로가 밀려들었다.
흐으, 하고 크게 하품을 한 번 했더니 내 품 속의 한빈이가 눈을 꼭 감아온다.
고른 한빈이의 숨소리가 꼭 자장가 인 것만 같다.
그렇게 한빈이의 숨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잠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거 같다. 슬그머니 눈을 떠보니 보이는 살색에 이게 뭐야, 싶어서 눈을 비비곤 위를 바라보니 익숙한 얼굴 하나가 떡하니 자리잡고 잠들어 있다. 어, 그러니까, 지금 ….
" 김한빈? "
한빈이 뒤쪽의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하니 1시가 조금 넘어 있다. 벌써 오후가 되었고, 아프던 늑대 김한빈은 사람이 되어 있었다.
게다가 분명 잠들 때는 내가 김한빈을 품에 안고 잠들었던 거 같은데 일어나보니 김한빈의 양 팔에 갇힌 채로 잠들어 있는 것은 나였다.
미쳤어. 얼굴이 후끈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눈 뜨니까 바로 앞에 김한빈의 가슴팍이 보인다는 건 ….
내가 얘 품에서 뭐 하는 거야 지금.
확 밀어낼까 싶다가 혹시나 잠에서 깰까 싶어서 조심조심, 아둥바둥 품에서 벗어나려는데 문득 김한빈의 몸에 아무런 붕대가 없는 것이 보인다.
붕대를 다 풀어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이 놈이.
" 김한빈, 너 붕대를 이렇게 다 풀어버림 어떡해. "
" …어? "
" 붕대 다 풀면 어떡하냐고. 아직 다 안 나았잖아, 이렇게 다 풀어버리면 …. "
비몽사몽한 눈으로 내 부름에 잠에서 깬 한빈이가 날 바라보는데, 붕대 왜 풀었냐고 혼내려던 말들이 순간 멈춰졌다.
김한빈의 몸에는 붕대는 필요 없을 정도의 아주 작은 상처들, 그리고 멍 같은 것만 남아있을 뿐 큰 상처들은 어느새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다.
볼에 아주 크게 난 상처만 빼고는.
" 뭐야. "
" 뭐가? "
" 상처는 다 어디갔어? "
" 몰라. "
" 진짜 … 평범한 늑대는 아니구나. "
" 당연하지. "
" 대체 정체가 뭐야, 너. "
멍한 표정으로 제게 물어오는 내 질문에 김한빈이 킥킥 웃으며 팔을 뻗어 내 몸을 더 꼭 껴안아 온다. 뭐긴 뭐야, 김한빈이지.
꼭 껴안아 오는 팔에 당황해서 쭉 밀어냈더니, 대체 뭘 그렇게 보는 건지 또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잘생긴 얼굴에 저런 커다란 상처가 있으니 자꾸만 눈에 밟혀 나도 모르게 씨이, 하고 아픈 소리가 뱉어졌다.
" 왜 하필 볼에 있는 건 안 사라졌지. 이왕 사라질 거면 그거 먼저 사라졌음 좋잖아. "
" 왜? "
" 볼에 그렇게 크게 상처 있음 보기 별로 안 좋으니까. "
" 괜찮아. "
" 보는 나는 별로 안 괜찮아. "
김한빈의 품에서 벗어나서 몸을 일으켜 앉았더니, 그제야 김한빈이 반바지만 덜렁 걸친 채로 이불 속에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너 내가 집에 있을 땐 옷 다 입고 있으라고 했지! 내 말에 김한빈은 모올라, 하며 베개를 제 얼굴에 덮어버린다.
아무래도 저게 김한빈의 버릇 같았다. 회피하고 싶을 땐, 그러니까 잔소리를 듣기 싫을 땐 저렇게 제 얼굴을 가려버리고 뭐든 모른다고 하는 게.
베개를 냅다 치워버리곤 야, 하고 불렀더니 김한빈은 인상을 팍 쓰고는 내 팔을 잡아당겨 앉아 있던 내 몸을 다시 침대로 눕혀버린다.
" 뭐, 뭐야. "
당황한 내 목소리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팔로 나를 제 품에 감싼 김한빈은 아이처럼 날 껴안고는 내 품에 더 파고들었다.
" 잘래. 나 잘래, 더 잘 거야. "
고개를 파묻은 채로 웅얼거리는 한빈이에 순간 몸이 굳어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온 몸이 간지러운 느낌이 들었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간지러운 느낌이 드는 건 마음이었다.
자꾸만 마음이 간질간질 했다.
" 저기, 한빈아 … 너 꼭 이러고 자야해? "
" 그럼 안 돼? "
" 음 …. 나는 다 큰 여잔데 너처럼 다 큰 남자랑 이러고 자는 건 …. "
" 왜? "
" 위험하잖아. "
" 뭐가 위험해. "
" 너. "
내 말에 파묻은 고개를 들어 한쪽 눈썹만 찡그려진 채로 날 바라본다. 뭐가 위험해? 순진하게 되묻는 얼굴에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딱히 뭐가 위험한 지는 모르겠는데, 하여튼, 뭐, 그, 그런게 있어! 다 큰 남자 품에서 이러고 자는 건 이상하잖아. 물론 네가 다 큰 남자는 아닌 거 같긴 한데, 이만하면 다 큰 거 같기도 하고, 근데, 넌 늑대라서 잘 모르나 본데 원래 사람들은 말야, 이렇게 다 큰 남자랑 여자랑 같이 붙어 자면, 어, 그러니까, 음, 그, 그러니까 … 하여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한참을 정리되지 않은 말을하며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나를 꼭 붙잡고는 김한빈이 갑작스럽게 제 얼굴을 내 얼굴 가까이로 쑥 들이밀었다.
순간 반사적으로 숨을 흡 참고는 불과 10cm도 되지 않는 거리, 5cm가 겨우 넘을 듯한 거리에서 한빈이의 눈을 마주보았다.
그 깊고 까만 눈동자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다.
아무 말도 없는 나를 보며 김한빈은 여태 보지 못했던 다정한 웃음을 짓곤 말했다.
" 좀 더 자자, 주인아. 눈 감아. "
아, 미쳤어.
미쳤어!
자꾸만 콩닥대잖아, 자꾸!
♡
오늘은 좀 짧아요 ㅜ.ㅜ
내일 실기 시험이 있어서 오늘은 여기까지만!
한빈이가 다쳤다고 우는 분들이 너무 많으신 거 같아서 울지 않게 능글맞은 한빈이로 데려 왔습니다 크크
저는 슬프고 우울한 글을 별로 안 좋아해요,
고로 될 수 있다면 최대한 달달 (♡) 하고 귀엽 (♡) 고 뭐.. 그런 걸 원해여!
ㅋㅋㅋ물론 그렇게 진짜 써질 지는 미지수지만
뭐, 쨌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번 3화에서 말씀 드리고 싶었던 건데 급하게 올리느라 아무런 말도 못 드렸었네요
저도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어요 ㅜ.ㅜ 암호닉 신청, 또는 암호닉 남겨 주실 수 있다면 남겨주세요 (하트)
아, 또 중간에 사진 넣어달라고 하신 분이 계셨는데
바쁜 일이 끝나면! 중간중간 넣어보도록 할게요!
사실 넣기 좀 애매할 때도 있어요, 한빈이 늑대일 때는.... (늑대 사진을 줍는다)
쨌든 ♡사랑해요 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