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PANDORA)
판도라는 허둥대며 항아리를 닫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모든 해악은 풀려나오고 만 것이다. 다만 유일하게 항아리 안에 들어 있었던 희망을 제외하고는….
인간은 닿지 못하는 하늘의 세계, 그 곳에는 감정의 방이 있다.
사랑, 기쁨, 행복과 같은 긍정의 감정은 하얀 방에.
분노, 증오, 질투와 같은 악한 감정은 검은 방에 쌓인다.
신은 인간의 감정들을 방에 담아두었다 다시 세상에 돌려주려 했다.
방의 감정이 가득 차 더 이상 감정을 담지 못하게 되면, 축적된 감정들은 생명이 되어 세상으로 나간다.
감정이 생명이 되어 세상으로 나가면, 방은 다시 비워지고 새 감정들이 쌓인다.
지금껏 하얀 방에서 새로 태어난 생명의 수는 2000명이 넘었다. 하얗고 예쁜 감정들이 인간으로 세상에 태어나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다.
신은 일부러 검은 방을 하얀 방보다 몇 천배나 큰 크기로 만들었다.
검은 방에서 생명이 태어날 일이 없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최근 몇 년간 검은 방의 감정들은 급속도로 증가했다. 곧 방이 다 찰 모양새였다.
병들고 추악한 세상을 검은 방이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검은 방의 감정이 세상으로 나가게 된다는 것은 곧 세상의 끝을 의미했다.
검은 방이 다 채워질 정도로 사람들이 악한 감정을 많이 느끼며 살아간다면, 그 세상은 더이상 존재가치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신은 검은 방을 판도라라고 불렀다.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는 인간들이 지어낸 신화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이야기였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리고 모든 악재들이 세상으로 쏟아져 나갈 때, 희망은 가장 밑바닥에 웅크리고 있었다.
곧 판도라는 사람이 되어 세상으로 나갈 것이다. 모든 검은 감정을 안고.
그리고 그 감정들의 바닥에, 희망이 있다.
신은 판도라에게 20년의 시간을 주었다.
‘ 세상에 사는 동안 하루하루가 너에게는 지옥이겠지. 미안한 마음이구나.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네가 한 번이라도, 하얀 감정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판도라, 네가 행복해지면 세상은 멸망하지 않을 거야.
가장 추악하고 더러운 곳에서도 꽃이 핀다는 것을 네가 보여준다면.
네가 행복해져 돌아온다면, 검은 방을 더 이상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하마. ’
2014년 3월.
아직 날씨가 춥다. 입학식을 마치고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다녀왔습니다, 하고 듣는 사람 없는 인사를 한다.
나는 부유한 사업가의 외동딸이었다. 엄마는 나를 낳다 돌아가셔서 얼굴 한 번 본적이 없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아가씨, 공주님 소리를 들으며 컸다.
사람들이 내가 예뻐서 공주 대접을 해주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돈 때문이었겠지.
내 비위를 맞춰주려 노력하는 사람들의 눈에서 나는 가식과 탐욕을 보았다.
아빠는 능력 있는 사업가였고 존경받는 리더였다. 하지만 나는 늘 아빠가 무서웠다.
늘 집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내 뒷바라지를 해줬고, 나는 깨있는 시간의 대부분을 혼자 보냈다.
아빠를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아빠는 죽은 엄마를 사랑했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죽게 만든 나를 미워했다.
그리고 일 년 전, 상실감을 견디지 못한 아빠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나는 장례식장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아빠가 있든 없든, 세상에 나 혼자인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삶은 지독히 잔인했지만, 죽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 어렸다.
나는 그 때 고작 16살이었다.
긴 겨울방학이 끝나고 17살, 고등학생이 된 나는 오늘 입학식에 다녀왔다.
아빠 회사의 부사장님이 사립 고등학교에 가자고 설득하는 걸 겨우 뿌리치고 작은 공립학교에 입학했다.
처음부터 내 자리인 마냥, 햇살도 잘 들지 않는 맨 뒷자리에 앉았다.
아이들의 인사소리가 교실을 가득 메웠다.
들려오는 선생님의 목소리, 들뜬 아이들의 목소리도 내게는 그저 소음일 뿐이다.
나는 귀를 닫고 눈을 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짝지야, 하고 말을 걸어오는 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뜨자 옆에 앉은 남자애가 아이 같은 얼굴을 하고 빙긋 웃는다. 나를 쳐다보는 눈이 웃고있다.
“ 왜 계속 눈을 감고 있어? 이제 집에 가도 된댔는데. ”
“ .... ”
“ ...너 말 못하는 거 아니지? 내 이름은 김지원이야. 한 달 동안 짝꿍이야 우리! 내일은 목소리 들려 줄거지? 내일 봐! ”
뭐가 좋은지 계속 웃는 얼굴을 하고선 안녕, 하고 뒷문으로 나가는 너.
어느 새 교실엔 남은 사람이 없다.
나가는 그 아이의 뒷모습이 햇살을 받아 빛났다.
집에 와서 거울을 봤다.
낮에 본 그 애와 다르게 내 얼굴은 밤처럼 어둡기만 하다.
대상이 없는 증오, 원망, 그리고 아픔이 고스란히 담긴 얼굴이 초라하다.
거울 속의 17살 소녀는 불행 그 자체였다.
이불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다.
+) 계절단편 끝내고 하루도 안지났는데
또 왔어요..☞☜
원래는 계절단편 지원이 번외를 쓰려고 했는데
건곤일색의 지원이를 데리고 번외를 쓰기도 뭐해서
(전 순정남캐릭터를 사랑하니까요)
그냥 새 글을 썼습니다..
일단은 5편 내외로 끝낸다는 생각으로 구상을 했는데
막상 쓰다보면 또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요
계절 배경버프가 사라져서 슬프지만 펜을 잡았으니 열심히 써보겠습니다ㅠㅠ
읽어주시는 분들 늘 고마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