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우스를 잡은 손으로 화면 위를 이것 저것 눌러보던 움직임을 멈췄다. 그리곤 책상 위로 쓰러지듯 한쪽 팔을 베고 누웠다.
" 바비 보고 싶다…. "
생각해보면 그 날의 데이트 이후로 바비와 내게는 참 많은 변화가 있었다.
아빠의 경호원이었던, 사실, 말하자면 아빠의 경호원이자 거의 비서에 가깝던 K가 자리에서 물러났다. 전부터 눈이 안 좋았던 K는 결국 자기의 맡은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거라는 판단 하에 일을 관두기로 결정을 내렸다고 했다. 오랜 기간 아빠의 곁을 지킨 K는 경호업체의 사무직을 맡기로 했고, 갑작스럽게 비워진 K의 자리는 다른 사람이 아닌 바비가 대신하게 되었다. K를 이을만한 사람이 없었고, 무엇보다도 아빠가 바비를 원하고 있었다. 바비 또한 아빠와 K의 결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덩달아 비게 된 내 경호원 자리는 다른 사람이 채우게 되었다. 나 이제 애 아니에요. 게다가 밖에 나갈 일도 많이 없을 테고, 요즘엔 혼자 잠도 잘 자고…. 경호원이 없어도 되는 이유에 대해서 줄줄 말하는 내 말에도 바비와 아빠는 완강히 고개를 저었다.
" 안 됩니다. "
바비의 대답은 이 한 마디 뿐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게는 J라는 경호원이 배정되었다. J는 경호원이라는 느낌 보다는 꼭 학교 후배와 같은 느낌이었다. 바비와는 정반대로 웃기도 잘 웃고, 웃을 때면 예쁘게 접히는 눈과 함께 내가 뭐라고 곤란한 말을 하면 크기가 다른 양쪽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안절부절 하는 모습이 꽤나 재미있었다. 성격도 바비보다 훨씬 밝아서 친해지는 것 또한 얼마 걸리지 않았다.
예전에 나비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분명 바비가 제일 막내라고 했었는데…. 아무리 봐도 내 눈에는 J가 바비보다 더 어린 것 같았다. 새로 들어왔다던 바비의 후배인 건가.
책상 위를 뒹굴고 있는 연필을 잡았다. 연필을 꼭 쥐곤 옆에 놓여진 종이 위로 괜히 손을 움직였다. 사각거리는 소리와 함께 종이 위로 검은색 얇은 선들이 그려졌다. 연필을 잡은 손에 조금씩 힘을 줘 누르자 얇게 그려지던 선들이 점점 진해졌다. 몇 번 종이 위를 왔다갔다 움직이던 손을 멈추곤 그 선들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게 일어난 변화는 내가 다시 미술을 시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었다. 이제와서 다시 시작하려는 미술은 준비해야 할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우선은 다니던 학교부터 관둬야 했다. 내가 하고 싶은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과에서 이미 흘러간 시간을 더 낭비할 수는 없었다. 꽤나 오래 망설였지만 다니던 학교를 관두고 나오던 내 기분은 생각보다 후련했다. 이제 정말로 다시 미술을 시작할 수 있겠구나. 왠지 모르게 그런 자신감이 들었다.
종이 위로 그려진 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연필을 다시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하는 건지, 어떻게 시작을 해야하는 걸까 막막한 마음에 우선은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꿈꿀 법한 대학교들을 알아보고 있던 중이었다. 학원을 다시 다녀야할까, 필요한 건 뭐가 있을까, 전공을 뭘 선택해야 하지? 여러가지 생각에 머리가 터질 것 같아서 여전히 팔에 기대 누운 채로 고개를 흔들었다.
" 이렇게 복잡한 내 머리속에 왜 자꾸 나타나고 난리야…. "
그렇게 고민으로 가득해 터질 것만 같은 중에도 떠오르는 바비 생각에 괜히 혼자 중얼거리며 입을 삐죽였다. 보고 싶다. 생각하니 더 보고 싶어지는 기분이었다.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때문에 아빠는 다시 바빠졌고 덕분에 바비 또한 바쁜 건지 요즘은 바비의 얼굴을 보기가 힘들었다. 벌써 몇 본지 몇 일이야….
때 마침 울리는 휴대폰 알람에 멀리 놓여진 휴대폰으로 손을 뻗었다. 화면을 확인하자 익숙한 김동혁의 얼굴과 함께 오라버니 하고 저장된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전화를 받곤 귀에 가져다 대자 동혁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좀 알아보고 있어?
" 응. 근데 대체 뭐부터 손대야 할지 감이 안 와. "
- 학교는?
" 관뒀어. "
- 잘했어.
" 별로 친한 애도 없어서 그런지 되게 홀가분 한 거 있지. "
- 왕따가 자랑은 아닌 거 같은데.
김동혁의 말에 입술을 삐죽였다. 왕따라곤 안 했다, 뭐.
- 너 도와주느라 내 머리가 다 터질 것 같아.
" 난 도와달라고 한 적 없어. 한가하다고 도와준다 한 건 너야. 알지? "
내 말에 김동혁이 피실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어. 네 탓 안 해.
- 아, 맞다. 우리 학교에도 편입생 뽑는 게 있더라.
" 정말? "
- 엉. 네 메일로 관련된 거 보냈으니까 읽어봐. 누나 말로는 괜찮은 거라던데 나야 미술에 대해서 아는 게 없으니까.
동혁이의 말에 응, 하는 짧은 대답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내 얘기로 몇 마디 더 주고받던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눈 후에야 전화를 끊었다. 바비가 보고 싶던 마음이 동혁이에게까지 번진 건지 전화를 끊자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뭐야. 김동혁도 보고 싶잖아.
귀에 대고 있던 휴대폰을 내려 책상 위에 다시 올려두었다. 그리곤 누운 몸을 일으켜 다시 마우스를 움직였다. 메일함에 들어가자 동혁이가 금방 전화로 말한 메일이 도착해있었다. 메일을 열고 안에 첨부된 파일을 모두 바탕화면에 저장했다.
" 파일 이름은 왜 다 영어야…. "
안 봐도 내용까지 영어일 것만 같은 느낌에 볼을 부풀렸다. 그리곤 바람을 쭉 뺐다.
다운로드가 끝나고 파일을 읽기 위해 인터넷 창을 내리려던 그 때, 인기 검색어에서 보이는 익숙한 이름 위로 내 시선을 멈췄다. 빠르게 바뀌는 검색어들 위로 마우스를 올리자 WC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WC? 아빠 회사?
진한 글씨의 WC를 누르자 금방 화면이 바뀌고 쏟아지듯 나온 기사들이 화면을 가득 채웠다. WC그룹, 결국 협상 결렬? 소기업과 WC그룹 간의 입장 정리 시급해…. 기사들의 제목만 쭉 읽어내리던 내 눈동자가 작게 떨렸다.
" 이게 다 뭐지…? "
가장 위에 있는 기사를 하나 눌렀다. 화면을 빼곡히 채운 글을 천천히 읽어 내리는데 대체 이 기사에서 뭘 말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앉은 몸을 일으켜 옆에 놓아두었던 휴대폰을 잡고 방문을 나섰다. 1층으로 빠르게 내려오자 부엌에 있던 나비와 J가 날 바라보았다.
" 아가씨, 그렇게 빠르게 내려오면 다치십니…. "
" 나비. 이거 뭐에요? "
" 예? "
" 이거 말이에요, 기사. 이게 다 뭐에요? "
휴대폰으로 기사를 켜서 나비를 향해 내밀자 나비가 휴대폰을 받아들곤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화면을 보던 시선을 들어 날 바라보던 나비가 제 머리를 긁적였다.
" 나 이거 이해 못 하겠어요. 아빠가 뭘 한다는 거에요? 아빠가… 뭘 잘못했어요? "
" 그런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이게…. "
" 말해줘요. "
" ……. "
" 얼른요. "
내 말에 나비가 잠깐 망설였다. 아무래도 내게 하려는 말을 정리하고 있는 듯 했다.
" 회장님이 지금 하시려는 사업은 꼭 필요한 사업입니다. 그건 WC기업에는 물론이고 다른 민간인들에게도요. "
" 그런데요…? "
" 하지만 소규모 회사들, 소기업에 어쩔 수 없이 피해를 줄 수 밖에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
" ……. "
나비의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슨 상황인지 조금씩 이해가 되어가고 있었다. 옆에 가만히 앉아서 날 바라보던 J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듯 나와 나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 피해자라고 말하긴 좀 그렇지만, 그 사업의 피해자들이 합의를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
" ……. "
" 그래서 이렇게 기자들이 떠들어대는 겁니다. "
" ……. "
" 이렇게 밖에는 아가씨께 설명 못 드리겠네요. "
나비가 말을 끝내고 다시 한 번 제 머리를 긁적였다.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게 아무래도 내 표정을 살피는 듯했다. 뭐라고 구체적으로 말을 하진 않았지만 나비의 말에서 대충의 상황을 이해하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지금의 아빠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조금은 곤란한 상황인 거구나.
그제야 요 몇일 집에서 가끔 마주친 아빠의 얼굴이 조금은 거칠었던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해 보이기도 했고…. 나 되게 무심한 딸이었네, 하는 생각과 함께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빠 생각에 이어서 자연스레 바비도 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아가씨? 하고 나를 불러오는 나비의 목소리에 멍한 표정을 풀곤 나비를 바라보았다.
" 알려줘서 고마워요. "
짧은 인사와 함께 옆에 앉은 J를 바라보았다. 그를 바라보며 살짝 웃곤 몸을 돌려 다시 계단을 올라 내 방으로 향했다. 조금 전 앉아있던 그 의자에 다시 몸을 앉히며 멍하니 화면만 바라보았다. 아빠 걱정, 그리고 함께 있을 바비에 대한 걱정도 잠시,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멍해지고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파도가 밀려오듯 최근 몇일동안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고 또 지나가는 느낌이었다.
머리 아파…. 작게 웅얼거리며 다시 책상 위로 팔을 올렸다. 그리고 그 위로 머리를 기댔다.
* * *
차에서 내리자 차가운 공기가 볼을 스쳤다. 어깨 위에 걸친 코트를 조금 더 여미자 J가 이쪽입니다, 하며 나를 안내했다. J의 뒤를 따라 입구를 지나자 예전 행사에서 봤던 익숙한 얼굴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추운 날씨 탓에 다들 볼이 조금씩 붉어져 있었다.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자 나도 모르게 작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러게 아빤 대체 왜 야외에서 이런 걸 해선….
사업의 시작과 함께 아빠는 늘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 아빠를 도와주는 분들께 감사를 표하는 자리라고 했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몇 걸음 J를 따라 걷던 내 시선에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아빠의 옆에 선 검은 정장의 남자에게로 시선이 멈췄다.
바비다. 늘 입는 그 검은색 정장차림의 바비가 아무런 표정 없이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바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내 시선을 느낀 건지 바비가 이쪽을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음이 새어나왔다. 바비! 입모양으로 부르는 내 말에 바비가 날 바라보곤 피식 웃음을 흘렸다.
안 추워요?
내 물음에 바비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땅이 아닌 바비를 보고 J를 따라 걷던 탓에 순간적으로 스텝이 꼬여 발을 휘청였다. 재빨리 나를 잡아준 J 덕분에 넘어지지 않고 몸을 일으켜 섰다.
" 괜찮으십니까. "
" 네. 괜찮아요. 괜찮아. "
놀란 듯 묻는 J를 향해 괜찮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다시 바비를 바라보자 바비가 살짝 인상을 쓴 채로 우리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심해. 입모양으로 말해오는 바비의 모습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내게 갑작스럽게 무언가가 날아왔다. 둔탁한 것이 목 언저리를 때리는 느낌과 함께 피부 위로 끈적한 느낌이 이어졌다. 손으로 목덜미를 만지자 깨진 계란 껍데기가 잡혔다. 계란…? 너무 갑작스럽게 겪은 일에 멍한 내 앞을 J가 빨리 막아섰다. 그리고 주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내 주위를 둘러쌌다. 내게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어떤 아저씨 한 분이 경호원들에게 양팔을 잡힌 채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 그러지 말어. 너희들 전부 다! "
" ……. "
" 그러면 안 되는 거여. 알어? "
억울한 듯 나를 향해 소리치는 아저씨를 바라보던 내 머리에 전날 밤 나비가 말해준 이야기가 스쳤다. 아빠의 선택.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은 사람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진행할 수 밖에 없는 아빠.
물끄러미 그 아저씨를 바라보는데 경호원들에게 양손을 잡힌 채로 발버둥치던 아저씨는 기어코 한쪽 경호원을 떼어내곤 다시 한 번 내쪽을 향해 계란을 던졌다. 그걸 본 나는 순간적으로 눈을 질끈 감았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아무런 느낌이 없어서 천천히 눈을 뜨자, J가 내게 던져진 계란을 손으로 막아냈다.
순간적으로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저렇게 억울한 듯 소리치는 그들이 이해가 돼서? 아니면, 지금 이런 일을 당하는 게 억울해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차오르려는 눈물을 꾹 참기 위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곤 아저씨를 향해 작게 고개를 숙였다.
" 죄송합니다. "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것과 동시에 또 다른 방향에서 무언가가 우리를 향해 날아왔다. 조금 전과는 다르게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안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내게 날아온 것은 투명한 유리잔이었다. 내 앞을 막고 있던 J가 내게 날아오던 유리잔을 몸으로 막아냈고, 덕분에 J의 목덜미에는 그 조각이 스친 건지 피가 흐르고 있었다.
" J! 지금 목에, 목에…. "
" 전 괜찮습니다. 아가씨는 괜찮으십니까. "
" 네…. "
제 목에만 시선을 고정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J가 살짝 인상을 썼다. 다치셨습니다. J의 말과 함께 그의 시선이 내 볼에 고정되었다. 손을 들어 내 볼을 쓸자 그제서야 따끔하는 느낌과 함께 손에는 피가 조금 묻어나왔다. 아무래도 깨진 유리 조각이 볼을 스친 듯 했다. 주위에 있던 많은 경호원들이 우리를 향해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 틈에 고개를 든 내 시선이 멀리서 움직이던 바비와 마주쳤다.
아빠와 함께 건물 안으로 움직이던 바비는 아빠를 먼저 들여보낸 뒤 고개를 돌려 다시 나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고 일렁이는 바비의 눈을 바라보자 다시금 눈물이 차오를 것만 같았다. 입술을 꾹 깨물곤 눈물을 참아내는데, 금방이라도 이쪽으로 달려올 것만 같은 표정의 바비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떴다.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난 괜찮아요. 내 움직임을 물끄러미 보고 있던 바비가 살짝 인상을 쓰곤 몸을 돌려 아빠와 함께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바비의 뒷모습을 잠깐 보다가 내 앞의 J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J는 우리를 둘러싼 경호원들을 지나쳐 건물 안으로 나를 안내했다.
" 건물 안에 계십시오. 밖은 다른 경호원들이 처리할 겁니다. "
" 목 안 아파요? 피 계속 나는데…. 어떡해요, 진짜로. "
" 괜찮습니다. "
정말 괜찮은 걸 보여주려는 건지 J가 평소와 다름 없이 날 보며 웃어왔다. 그런 J를 향해 코트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손수건을 건넸다. 이걸로 누르고라도 있어요. 걱정을 가득 담은 내 표정을 읽은 J가 내민 손수건을 받아들며 말했다.
" 표정 푸세요. 정말 괜찮습니다. "
" 미안해요… 나 때문에. "
" 이런게 저희 일이잖습니까. "
웃으며 내 손수건을 제 목덜미에 가져다 댄 J가 살짝 인상을 썼다. 그가 인상을 쓰는 걸 보며 나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자 금방 표정을 푼 J가 미안하다는 듯 한 목소리로 내게 말해왔다.
" 죄송합니다. "
" 뭐가요…. "
" 아가씨 볼에 상처나게 해서요. "
J의 말에 얼른 고개를 저었다. 이게 뭐라구…. 잠깐동안 잊고 있었는데 다시금 볼이 따끔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날 바라보는 J의 시선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고개를 떨궈 땅만 바라보았다. 괜히 미안하고 속상한 기분이었다.
* * *
결국 행사는 취소되었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가볍게 긁힌 것 뿐인 내 볼의 상처 위로는 큰 밴드가 하나 붙여졌고, 괜찮다고는 했지만 꽤나 심하게 다친 건지 J는 치료를 받기 위해 곧바로 병원으로 갔다. 집으로 도착한 뒤 힘없이 2층으로 올라와 방문을 열었다. 불을 약하게 켠 뒤 방문을 닫고, 그대로 침대 위에 몸을 앉혔다. 뻗은 다리를 굽혀 팔로 감싸안으며 그 위로 얼굴을 파묻었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방 안에서 혼자 생각에 잠겼다. 참 이상한 기분이었다.
미움을 받는 걸까…. 어쩔 수 없다는 말로는 안 되는 걸까. 이렇게 미움을 받는 건 정말이지 싫었다. 중학생 때, 그리고 고등학생 때. 집이 부유하단 이유로 뜻 모를 미움을 받은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느낌은 정말이지 참 묘한 느낌이었다.
조금 전의 일을 곱씹자 왠지 모르게 작게 몸이 떨렸다. 다친 건 볼 뿐이었지만 정말로 그 유리잔이 내 머리를 명중했다면 더 크게 다쳤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무서운 기분이 들어 웅크린 몸을 조금 더 웅크렸다. 그리고 이어서 짧은 순간 마주쳤던 바비의 모습이 생각났다.
보고 싶다…. 정말로.
팔 위로 파묻은 얼굴을 부볐다. 가까이 있겠지만 바비는 너무나도 멀게 느껴졌다. 전화해도 될까. 전화하면 받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중에 갑작스럽게 방에 켜둔 불이 밝아졌다. 주위가 환해지는 느낌에 천천히 고개를 들자 뛰어온 건지 머리가 잔뜩 헝크러진 바비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 …바비? "
저를 부르는 내 목소리에 침대 위의 빈 자리로 몸을 앉힌 바비가 괜찮아? 하고 내게 물어왔다. 다급한 목소리와는 다르게 나를 향해 뻗는 바비의 손길은 조심스러웠다. 다친 볼 위로 머뭇거리다가 손을 가져다대는 바비의 행동에 다시 울컥했다. 울지 않기 위해 입술을 꾹 깨물며 팔을 뻗어 양팔로 바비의 목을 감싸안았다.
솔직히 힘든 일 투성이었다. 늘 보다가 못 보게 된 바비도 보고 싶었고, 오랜만에 미술을 하는 거라 그림을 그리는 것도, 붓을 잡는 것도, 손을 움직이는 것도 뭐든 다 어렵기만 했다. 어느 것 하나 쉬운 일이 없었다. 이론적 지식도 다 없어진지 오래였다. 게다가 바비도 곁에 없고, 이런 일을 겪고….
꼭 껴안은 바비에게 얼굴을 파묻었다. 바비의 향기에 불안하던 마음이 조금씩 괜찮아지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 말 없이 저를 꼭 껴안은 내 행동에 잠깐 움찔하던 바비가 한쪽 팔로 내 등을 꽉 안아왔다. 그리곤 날 달래는 듯 한 목소리로 나를 향해 작게 속삭였다.
" …죄송합니다. "
" ……. "
" 미안해. "
뭐가 그렇게 미안한 건지 바비는 나를 품에 안은 채로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아마도 바비는, 날 보고서도 곧바로 구하러 오지 못 한 것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 듯 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서운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바비는 아빠의 경호원이었고, 바비가 지켜야 하는 사람은 우리 아빠였으며, 내 주위에는 바비가 아니더라도 많은 경호원들이 있었으니까.
그 품에서 한참을 가만히 안겨 있다가 바비를 조금 더 끌어안았다. 속상한 마음이 조금씩 풀어지고 그제야 내가 바비의 품에 안겨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따뜻한 바비의 몸, 바비의 향기. 진짜 바비구나…. 내 중얼거림에 바비가 제 품에서 날 떨어트렸다. 바비가 내 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 볼의 상처로 시선을 옮겼다.
" 괜찮은 거야? "
" 별로 안 다쳤어요. 나보단 J가 더 많이 다친걸. "
" 정말 괜찮으신 거 맞습니까. "
" 응. "
고개를 끄덕이고 작게 웃자 그제야 바비가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내 볼을 어루만졌다. 볼에 닿은 바비의 손을 양손으로 꼭 잡아 아래로 내렸다. 그리곤 바비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고 싶었던 얼굴. 몇 일 만에 보는 거야, 이게…. 구석구석 저를 빤히 살피는 내 시선에 바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 왜 그렇게 빤히 보십니까. "
" 그야 당연히 보고 싶었으니까…. "
" ……. "
" 일주일은 못 봤잖아요, 우리. "
내 말에 바비가 작게 웃었다. 웃는 바비의 얼굴에 피곤함이 조금 묻어나는 것도 같았다. 뉴스 봤어요, 하는 내 말에 바비가 나와 시선을 맞춰왔다.
" 많이 바빠요? "
" 좀 바쁘긴 합니다. "
" 아빠가 괴롭히진 않구? "
걱정 묻은 내 질문에 바비가 피실 웃으며 내게 잡힌 손이 아닌 다른 손으로 내 앞머리를 쓸어 넘겨주었다.
" 아가씨만큼은 아니야. "
치…. 내가 뭘 그렇게 괴롭혔다구. 바비의 대답에 괜히 입술을 한 번 삐죽이자 바비가 다정한 손길로 다시 한 번 흘러내린 내 앞머리를 넘겼다. 그 손길이 참 오랜만이어서 배시시 웃자 바비가 날 보며 물었다.
" 준비는 잘 돼? "
" 잘 모르겠어요. 손댈 곳이 너무 많은 거 있죠. "
" 아가씨도 바쁘겠네. "
" 그래도 동혁이가 도와주고 있어요. 동혁이네 학교가 예체능으로 좀 유명한데, 그 학교도 괜찮은 거 같아요. 근데…. "
" 그런데? "
" 그럼 일 년은 미국에 가있어야 할 텐데 그건 또 싫고…. "
다닐 수만 있다면 좋은 기회였지만 일 년동안 미국에 있을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내 경호원이 아닌 바비가 날 따라 갈 수는 없을 테니, 바비를 일 년이나 못 보는 건 더더욱 싫었다. 뭐…. 이런저런 핑계가 있긴 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잘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 학교에 붙을 자신도 없었고, 혹시나 붙는다고 해도 잘 해낼 자신이 없었다.
웅얼거리며 답한 내 대답에 바비가 대답 없이 내 볼을 어루만졌다.
" 바비가 다시 내 경호원이었음 좋겠어요. "
" ……. "
" …그럼 혹시나, 멀리 가더라도 바비랑 같이 있을 수 있을 텐데. "
" J도 잘해주지 않습니까. "
" 그래도 바비랑 같나, 뭐. "
내 답에 바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 진짜 아직 덜 컸다, 우리 아가씨. "
" 덜 컸단 말 좀 그만 해요. "
확 잡아먹을 거에요. 내 말에 바비가 어이가 없다는 듯 날 바라보았다. 잡아먹을 순 있으십니까. 바비의 말에 뚱한 표정으로 바비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대로 바비의 입술에 내 입술을 짧게 가져다 댔다. 닿은 듯 안 닿은 듯, 짧게 닿았다 떨어지는 내 모습에 바비가 순간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트렸다.
" 그게 잡아먹은 거야? "
그렇단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바비가 못 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런 바비를 바라보며 나도 덩달아 웃었다. 그리곤 다시 한 번 양팔로 바비의 목을 끌어안았다. 익숙한 듯 나를 품에 안은 바비가 내 뒷머리를 손으로 살살 빗어내렸다.
" 좋다. "
" 뭐가 좋으십니까. "
" 바비 봐서요. "
" ……. "
" 매일 보다가 안 보니까 엄청 보고 싶었던 거 있죠. "
" ……. "
" 이거 봐요. 바비 보자마자 이렇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자꾸 재잘거리고…. "
칭얼거리는 듯한 내 말에 바비가 작게 웃는 것이 느껴졌다. 바비는 나 안 보고 싶었어요? 내 물음에 바비가 날 품에서 떼어냈다. 그리곤 양손으로 내 볼을 잡고 나와 눈을 맞췄다.
" 무슨 대답이 듣고 싶어? "
" 아, 진짜…. "
" ……. "
" 그런 거 묻지 마요. "
저번에도 그런 거 물었으면서. 삐죽이는 내 말에 바비가 그대로 내게 짧게 쪽, 하고 뽀뽀를 하고 떨어졌다. 갑작스러운 뽀뽀에 바비만 물끄러미 바라보자 바비가 눈이 휘어지게 웃으며 말했다.
" 보고 싶었어. 아가씨. "
그런 바비의 말에 괜히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웅얼거렸다. 언제까지 나 아가씨라고 부를 거에요? 내 물음에 바비가 어깨를 으쓱였다.
" 글쎄. "
" ……. "
" 아가씨는 나한테 쭉 아가씬데. "
" 그래도…. "
" 아니면 뭐라고 불러? "
바비의 물음에 대답 대신 고개를 젓자 바비가 피실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예고도 없이 다시 한 번 내 입술에 쪽 하고 닿았다 떨어졌다.
" 보고 싶었어, --아. "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주는 바비의 목소리에 바비가 내게 닿았을 때보다 더 가슴이 빠르게 콩콩거렸다. 굉장히 빠른 속도로 콩닥거리는 박동 소리가 귓가에서 울리고 바비를 바라보던 내 눈이 작게 떨렸다. 얼굴에 열이 오르는 느낌과 함께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해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여전히 바비의 양손은 내 볼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치… 처음부터 그렇게 불러주면 될 걸 맨날 이렇게 놀려. 기분이 좋으면서도 괜히 웃으며 칭얼대는 내 말을 들은 바비가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 어떡합니까, 진짜. "
" …뭐가요? "
" 볼 때마다 이렇게 이쁘게 굴어서. "
바비의 말에 내 손만 꼼지락거리다가 힐끔, 고개를 들어 바비를 바라보았다. 내 행동에 바비가 바람 빠진 웃음을 흘리며 제 이마를 내 이마로 가져다 댔다. 콩, 하고 작게 부딫혔다가 떨어진 바비가 중얼거렸다.
" 오빠 죽겠다. "
그건 내가 할 말인데…. 언제 기분이 안 좋았냐는 듯 간지러운 기분과 함께 다시 한 번 고개를 푹 숙였다.
왠지 얼굴도, 귀도 다 빨개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안녕! uriel입니다 ♡
오늘 올리는 아가씨는 써두긴 전에 써둔 건데, 확인 버튼만 누르면 되는 글인데 노트북이 종일 동생 손에 있었어요 ㅠ_ㅠ 그래서 결국 이렇게 늦은 시간에야 확인 버튼을.. (훌쩍) 아무래도 개학을 한 이쁜이들이 많은 것 같아서 일찍 오려고 마음을 먹었었는데, 오늘은 실패..☆ 그래도 분량은 좀 길지 않아요? 안 긴가? ㅠ_ㅠ 예전에 썼던 아가씨 글을 읽어보고 최근 편들을 읽어보는데 왠지 스크롤이 확연히 짧아진 것 같더라구요, 그래도 예전엔 한껏 자리를 차지하던 엔터를 요즘은 잘 안 치니까!!! 하고 저를 위로하고 있습니다
그렇죠? 그렇다고 해줘요 ㅠ_ㅠ 엉엉..
마이너 사랑해주시는 분들이 늘어나서 좋아요!!!!!!!!!! 아, 여기는 아가씨니까!!!!! 아가씨 사랑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서 좋아요!!!!!!!!!
필력도 한참은 부족하고 작가라는 타이틀을 받기에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제 글을 재밌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늘 좋습니다!
추천도! 댓글도! 조회를 해주시는 것도! 응원도! 사랑도! 정말 모두모두 감사드려요
지인짜 오랜만에 암호닉 정리! 암호닉은 17화, 18화에 새로 신청된 암호닉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조만간 암호닉 정리도 한 번 해야겠어요, 저 왜 이렇게 암호닉 정리를 안 했죠 ㅠ_ㅠ 오늘은 더 늦기 전에 글 올리고! 다음 글이나 그 다음 글 쯔음에, 암호닉 정리를 하도록 할게요 *_*
암호닉은 늘 신청 받아요! 가장 최근의 글에 원하시는 닉네임을 <> 안에 넣어주세요! 혹시나 빠지신 분이 있다면 그건 다 제 눈의 불찰입니다.. 엉엉.. 상처 받지 마시구, 둥글게 둥글게 말해주세요! 꼭 넣도록 할게요! ♡
오늘의 인사도 마이너에서 말씀드린 그 유투버님의 인사로!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신 것처럼 유트루님 맞아요.. 전 이분 말하는 게 참 좋아요 ♡_♡ 그래서 저도 모르게 보고 있는.. 제가 유트루님 조잘조잘을 좋아하는 것처럼 제 이쁜이들도 제 사담을 좋아해 주시려나 ㅠ_ㅠ 엉엉..
무튼! 저와! 여러분은! 모두모두~ 소중합니다! 안녕! ♡
+ 아 헐! J가 누구인지 설명을 안 드렸다! 짝눈에 순둥이는 우리 짜누에요 차누! 사랑해 짜누야!
♡제 사랑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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