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비와 아침마다 운동을 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제 제법 운동을 했으니 아침 운동은 덜 힘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어떻게 이 운동은 할 수록 매일이 더 힘든 거야. 꿀만 같은 잠을 자다가 바비의 손에 이끌려 나온 나는 운동을 하는 내내 바비를 향해 칭얼거렸다. 러닝머신을 뛰면서도 칭얼칭얼. 달리기를 하면서도 칭얼칭얼. 운동이 끝날 때까지 칭얼칭얼.
"힘들어 죽겠어요."
"그래도 하셔야합니다."
"걸을 힘도 없는걸."
칭얼대는 내 목소리에도 단호한 바비의 태도에 결국 칭얼대면서도 체육관에 있는 운동을 한 바퀴 다 돌았다. 지쳐서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바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더는 못 해요."
"일어나십시오."
"못 일어나요…. 일어날 힘도 없어. 완전 게임 오버에요."
"……."
"진짜로, 응?"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바비의 말에 그제야 한숨이 푹 쉬어졌다. 힘들어…. 잔뜩 긴장한 온몸에 힘을 빼고 팔을 위로 들었다. 기지개를 쭉 켜자 옆에서 수건을 가지고 온 바비가 내게로 수건을 내밀었다. 바비가 아래로 내민 수건을 받아 얼굴과 목을 타고 흐르는 땀을 닦아냈다.
"진짜 아무 것도 못 하겠다…. 오늘은 방에서 쭉 잘래요."
"하루 종일?"
"응. 하루 종일. 어차피 오늘 아무 계획도 없는걸."
내 말에 바비가 날 내려다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데이트하자고 말하려 했는데 잘거야?"
데이트? 생각치도 못 한 바비의 말에 땀을 닦다 말고 순간 고개를 들어 바비를 바라보았다. 놀란 내 눈이 동그래졌고, 그런 내 눈을 바라보던 바비가 피식 웃었다.
"아가씨 시험기간엔 공부하느라 못 했고."
"……."
"여행은 갔지만 데이트는 한 번도 못 해봤잖아, 우리."
말을 마친 바비는 땀을 다 닦은 수건을 제 목에 두르며 날 바라보았다. 데이트라는 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도 바비가 금방 말한 '우리'라는 단어에 절로 웃음이 피어올랐다. 우리. 나랑 바비랑, 우리. 생각만으로도 잔뜩 설레는 기분에 얼른 바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앉은 몸을 벌떡 일으켜 바비에게 폴짝 뛰어 안기자 바비가 잠깐 비틀거리다가 피식 웃어왔다.
"땀냄새 나잖아."
"가요, 데이트. 데이트!"
"알았으니까 이거 풀고 말해."
"어디 갈 거에요?"
마냥 좋아서 바비의 말에 대답 대신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자 바비가 조심스러운 손길로 나를 품에서 떨어트렸다.
"그냥 데이트."
"그냥 데이트?"
"길거리에서 손도 잡고 평범하게."
그의 말에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뭐든 다 좋아. 신나서 싱글벙글한 내 얼굴을 보던 바비가 바람 빠진 웃음을 지었다. 그런 바비의 큰 손을 꼭 잡곤 체육관 입구를 향해 바비를 이끌었다. 얼른 가요, 얼른. 가서 씻고 바로 가요.
재촉하는 내 말에 바비가 끌려오다시피 걸음을 옮기며 피식 웃었다. 방으로 향하는 내내 무슨 옷을 입어야 할까, 하는 생각이 머리 속을 어지럽혔다. 별로 오랜만의 외출은 아니었지만 자꾸만 기분이 들떴다. 데이트…. 그것도 평범한 데이트. 바비랑! 그렇게 생각을 할 때마다 마음이 콩닥거리는 속도가 조금씩 더 빨라졌다.
체육관에서 비교적 더 가까운 내 방 앞에 멈춰섰다. 덩달아 걸음을 멈춘 바비를 바라보자 바비가 내 방 문을 열곤 작게 웃으며 말했다.
"씻고 준비하고 있어. 데리러 올게."
"알았어요."
그를 향해 고개를 두 번 끄덕이곤 얼른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바비의 손에 의해 내 방 문이 닫히고, 닫힌 문을 잠깐 바라보다가 문득 드는 생각에 아! 하고 소리를 내며 방문을 다시 열었다. 다시 문이 열리는 소리에 복도를 걷던 바비가 뒤를 돌아 나를 바라보았다. 문틈 사이로 얼굴만 빼꼼히 내밀고 바비를 향해 소리쳤다.
"바비!"
"왜 부르십니까."
"검은 정장 입고 오면 혼나요!"
내 말에 바비가 참 나, 하는 말과 함께 어이가 없다는 듯 웃으며 날 바라보았다.
* * *
반짝이는 귀걸이를 마지막으로 화장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에 꾸민 모습에 배시시 웃음이 지어졌다. 데이트. 데이트! 조금 전 바비가 데이트하자고 말하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내가 바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건 어떻게 안 건지, 때 마침 바비가 내 방 문을 두드렸다.
네! 하는 짧은 답과 함게 앉은 몸을 일으켜 문으로 쪼르르 걸음을 옮겼다. 문을 열자 검은 정장이 아닌 검은 니트차림의 바비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뭐에요."
"뭐가?"
"정장 입지 말랬더니 검은색 니트에요?"
핀잔 섞인 내 말에 바비가 피식 웃곤 내 손을 잡아왔다. 전처럼 손목이 아니라 바로 내 손을 잡아오는 바비에 절로 피실 피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오늘은 차타지 말고 걸어가요."
"추운데 괜찮겠어?"
"괜찮아요."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함께 내려가던 걸음이 동시에 멈췄다. 우리를 바라보던 아빠는 바비와 내가 잡고있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내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빠…. 놀라서 부르는 내 목소리에 아빠가 작게 미소를 짓곤 우리에게 말했다. 잠깐 내 방으로 좀 올 수 있겠나?
아빠의 방 쇼파에 바비와 나란히 앉았다. 아빠가 앉은 위치도, 우리가 앉은 위치도 꼭 저번과 같은 위치였지만 분위기는 저번과 조금 달랐다. 저번에 아빠를 만났을 때보다는 덜 숨막히는 기분이었다. 아빠를 힐끔 바라보자 아빠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나와 바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의 정적 끝에 아빠가 먼저 입을 열었다.
"다 얘기한 건가?"
"아가씨께서 기억해내셨습니다."
바비의 대답에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이 없으니까 짧게 말하지."
"……."
"그냥 몇가지 물어볼 것이 있어서 불렀네."
아빠의 말에 가만히 바닥만 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아빠를 바라보았다. 말을 하고도 잠깐 뜸을 들인 아빠는 내가 아닌 바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순간 드라마에서 흔히 보던 장면들이 머리를 스쳤다. '부탁할 것이 있네. 이정도 돈이면 우리 딸과 헤어져 줄 수 있겠나?' 그리고 함께 내밀어지던 하얀 봉투들.
생각들이 머리를 삼키기 전에 얼른 고개를 내저었다. 겨우 생각을 떨치곤 아빠를 향해 작게 입을 열었다.
"안 돼요!"
"…뭐?"
"그러니까, 하얀 봉투, 어, 그런 건…."
다급하게 말하는 내 말을 알아들은 건지 아빠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우리 딸, 드라마를 너무 본 거 아냐? 평소와 다름 없이 다정한 아빠의 목소리에 떨리는 눈으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그게 아닌가?
그럼 뭔데요…. 울상을 지으며 묻는 내 물음에 아빠가 다시 바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경호가 아닌 다른 일을 해본 적이 있는가?"
아빠의 물음에 바비가 고개를 들어 아빠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해본 적 없습니다."
"그럼 혹시 다른 관심있는 분야는 있는가?"
"……."
"경영이나 사무직 같은 거 말일세."
"잘 모르겠습니다."
"배워본 적은 없지?"
"예."
바비의 대답에 아빠가 물끄러미 바비를 바라보곤 작게 웃었다. 그래. 나이는 어리니까…. 뭐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아빠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작은 노크소리와 함께 방문을 열고 K가 방으로 들어왔다. 아빠의 곁으로 다가온 K는 내게 살짝 고개를 숙이곤 아빠를 향해 말했다. 가셔야 합니다. K의 말에 아빠가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일으켰다. 그런 아빠와 함께 몸을 일으키자, 아빠가 앉아있으라는 의미인 건지 우리를 향해 고개를 저었다.
K가 들고 있던 자켓 안으로 팔을 넣은 아빠가 옷매무새를 매만지며 날 바라보았다.
"딸."
"응?"
"지원이한테 잘해라."
"…에?"
…그런 말은 내가 아니라 바비에게 해야하는 말 아녜요? 나한테 잘하라고? 멍하니 아빠를 바라보자 아빠가 웃으며 몸을 돌렸다. 방을 나가는 아빠를 향해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다녀오세요, 하고 인사를 하자 아빠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와 함께 방을 나가던 K가 고개를 돌려 내게 작게 인사를 하곤 걸음을 마저 옮겼다.
그런 아빠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옆의 바비를 힐끔 바라보았다.
"…방금 우리 아빠 봤어요?"
"봤습니다."
"내가 딸이 아니라 꼭 바비가 아들 같았어…."
딸바보가 아닌가 봐요, 우리 아빠. 시무룩해서 웅얼거리는 내 말에 바비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긴장한 것과는 달리 아빠는 나와 바비에게 별로 특별한 것들은 묻지 않았다. 힘이 빠지는 느낌과 함께 왠지 모르게 아빠에게 서운한 느낌이 들었다. 조금 시무룩한 내 표정을 읽은 바비가 웃으며 내게로 손을 뻗었다. 손가락으로 내 볼을 톡톡 치는 바비와 눈을 마주치자 바비가 씩 웃어왔다.
"이렇게 멍하니 있을 거야?"
"응?"
"가자."
"……."
"데이트 해야지."
아. 맞다. 데이트! 바비의 말에 시무룩한 표정을 풀곤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학교 근처에는 가게가 많은 만큼 거리를 지나는 사람 또한 많았다. 북적이던 사람들 사이로 바로 옆에서 속도를 맞춰 걷고 있는 바비를 힐끔 바라보았다. 이 거리를 바비와 걷는 것도 이상했고, 지금처럼 이렇게 손을 꼭 잡고 걷는 것도 이상했다. 낯선 느낌에 자꾸만 바비를 힐끔이자 바비가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렇게 보십니까."
바비의 물음에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내 웃음에 바비 또한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어디 가지…. 줄줄이 늘어선 가게들을 쭉 훑어보던 중에 맞은편에서 우리와 반대 방향으로 걸어오던 여자와 어깨를 살짝 부딪혔다. 아, 하고 아주 작게 나온 내 소리에 그 여자와 바비의 시선이 모두 내게 닿았다.
"어머. 죄송해요."
"아, 괜찮아요."
괜찮다는 의미로 살짝 웃자 여자 또한 살짝 웃으며 나를 지나쳐갔다. 잠깐 멈췄던 걸음을 다시 옮기는데 내게 닿아있던 바비의 표정이 살짝 찡그려졌다.
"시끄러워서 그래요?"
"네. 사람이 많네요."
그래도 얼굴 펴요. 그렇게 있음 주름 생겨요. 잡지 않은 손으로 바비를 바라보며 바비의 이마를 꾹 누르자 바비가 피실 웃음을 흘렸다.
뭘 할까 주위를 둘러보던 내 시선에 한 커플이 잡혔다. 농구공을 골대 안으로 던져넣는 게임 앞에서 남자는 몸을 풀고 있었고, 그 옆에 선 여자는 남자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오빠!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를 응원하는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바비도 저거 잘하려나? 괜히 궁금한 마음에 그곳에서 시선을 돌렸다.
"오빠."
"어?"
얼레…? 나 뭐라고 한 거지?
바비, 하고 부르려고 했던 내 입은 나도 모르게 오빠, 소리를 뱉고 있었다. 아무래도 조금 전 오빠, 소리와 함께 남자를 응원하던 여자 때문인 것 같았다. 말하고도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곤 바비를 바라보자, 바비 또한 제 대답에 놀란 건지 조금은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아마 어? 하고 자연스럽게 나온 제 반말에 바비 또한 놀란 것 같았다.
순간 당황해서 둘 다 놀란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곧바로 웃음이 터졌다. 소리 내어 웃으며 바비를 바라보자 바비 또한 피실 피실 웃음을 흘렸다.
"이젠 오빠라고 불러도 안 당황하네요?"
"당황한 적 없습니다."
"거짓말."
"진짜야."
"오빠라고 부르면 매번 놀라서 나 빤히 봤었잖아요."
내 말에 바비가 피식 웃었다. 그냥, 혹시나 기억이 난 건가 해서 놀랐었어. 오빠라고 할 때마다.
다정한 목소리로 답해오는 바비의 말에 바비를 잠깐 바라보다가 조금 전 그 농구게임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자리에 있던 커플은 게임을 끝낸 건지 어느새 자리를 뜨고 없었다. 오빠, 하고 바비를 부르는 내 부름에 바비는 이젠 익숙하게 응, 하고 답했다.
"우리 저거 해봐요."
"저거?"
"농구 게임이요."
내 말에 바비의 시선이 농구게임으로 닿았다. 그러지, 뭐. 하는 바비의 짧은 대답에 농구게임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꽤나 신기한 표정으로 농구 게임 기계를 관찰하는 나를 보며 바비가 피실 웃음을 흘렸다.
"신기해?"
"응. 본 적은 많은데 이렇게 해보는 건 처음이에요. 어려워요?"
"그냥 앞으로 오는 공을 골대 안으로 넣으면 됩니다."
고개를 저으며 설명을 마친 바비가 니트 안에 입고있던 셔츠의 손목 부분 단추를 풀었다. 팔을 양쪽 다 살짝 걷어올린 바비는 나를 바라보며 웃었다. 먼저 해보시겠습니까. 물어오는 바비를 향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얼른 기계 앞으로 다가가 섰다.
게임이 시작되고 내려오는 농구공들을 얼른 하나씩 잡아서 골대 안으로 던졌다. 몇 번은 골대 안으로 쏙쏙 들어갔지만, 또 몇 번은 야속하게도 골대를 맞은 뒤 밖으로 떨어지거나 아예 다른 곳을 향했다. 짧은 시간이 지나고 기계에 내 점수가 반짝이자 옆에서 보고 있던 바비가 작게 웃었다.
"잘하시네요."
"정말요?"
"예. 처음인데 이 정도면 정말 잘하신 겁니다."
잘했다는 말에 괜히 기분이 좋아져 배시시 웃었다. 몇 번 더 해보면 점수가 더 높아지려나? 괜한 기대감에 손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다가 바비를 보며 말했다.
"우리 내기해요!"
"내기? 또?"
"이 게임 점수 더 높게 내기!"
"안 합니다."
"아, 왜요."
내 물음에 바비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가씨가 질걸. 당연하다는 듯 한 바비의 표정과 목소리에 순간 마음 속에 숨어있던 승부욕이 꿈틀거렸다.
"아녜요. 누가 알아요? 내가 알고보면 엄청난 게임 천재일지."
"이번엔 뭐 걸고 하게?"
"저번처럼 소원 들어주기!"
그 말에 바비가 피식 웃었다.
"나한테 원하는 거 있어? 전부터 왜 이렇게 소원얘기야."
"에? 그런 건 아닌데, 그냥…."
"그냥?"
"나도 소원권 가져보고 싶단 말예요."
웅얼거리듯 나온 내 대답에 바비가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해요, 응? 눈을 반짝이며 바비를 바라보자 바비가 잠깐 날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하자.
바비의 말에 웃으며 바비를 따라 나도 팔을 조금 걷어 올렸다. 다시 게임이 시작되고, 조금 전보다는 내 표정이 조금 더 진지해졌다. 나를 향해 굴러오는 공을 들어 열심히 골대 안으로 던졌다. 아까 전 게임보다는 더 많은 공들이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게임이 끝나고 나도 모르게 숨을 참고있었던 건지 막힌 숨이 터지듯 내쉬어졌다. 어때요? 칭찬을 바라는 얼굴로 바비를 바라보자 날 바라보던 바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어."
"그쵸. 나 잘하죠. 나 진짜 게임 천재인가 봐요."
농담 섞인 말을 하며 바비의 옆으로 쪼르르 다가갔다. 이제 바비차례! 하며 바비를 팔로 쭉 밀자 바비가 내 힘을 따라 게임기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걷은 팔을 조금씩 더 걷어 올린 바비가 게임을 시작했다. 조금 전 이 게임을 하던 그 남자처럼 빠른 속도로 공을 잡은 바비는 잡는 공마다 족족 골대 안으로 통과시켰다.
멍한 표정으로 바비가 게임을 하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정도 빠른 속도로 공을 넣던 바비의 손이 조금씩 느려졌다. 자석이라도 붙어있는 것처럼 골대 안으로 쏙쏙 들어가던 공들도 하나 둘씩 골대 밖으로 튕겨나오거나 다른 방향을 향해 굴러갔다. 그와 함께 초반의 빠른 속도에 게임에서 질 것 같아 시무룩했던 내 표정도 조금씩 펴지기 시작했다. 얼레, 이길 수도 있겠는데!
짧았던 바비의 게임 또한 끝이나고 우리 둘의 시선은 점수가 나오는 곳으로 향했다. 바비의 점수가 빨간색 글씨로 나타나고, 나보다 조금 낮은 숫자를 보자 나도 모르게 와! 하는 탄성이 새어나왔다.
"나 이겼어요!"
"예. 아가씨가 이기셨네요."
"농담으로 한 말이었는데 나 진짜 농구에 소질있나봐요. 농구를 했어야 했나?"
활짝 웃으며 말해오는 내 목소리에 바비가 다정한 눈길로 날 바라보았다. 승리의 기쁨에 취해 걷어 올렸던 팔을 내리자 바비 또한 제 팔에 걷어올렸던 옷을 내리며 내게로 다가왔다. 마주선 바비를 올려다보자 자꾸만 피실 피실 웃음이 새어나왔다.
"내 소원 들어줘야겠네요, 바비."
"원하는 게 있으십니까."
"아직은 없어요."
어렵게 얻은 건데 나중에 더 아껴뒀다 쓸래요. 내 말에 제 소매의 단추를 다 잠근 바비가 웃으며 내게로 손을 뻗었다. 내 머리를 살살 쓰다듬는 바비의 팔을 조금 당겨 바비의 팔이 내 어깨에 감기도록 하자, 엉거주춤한 자세로 내 어깨에 팔을 두르게 된 바비가 바람 빠진 웃음을 지었다. 다시 익숙하게 내 어깨 위로 팔을 두른 바비가 손으로 내 어깨를 꽉 잡아왔다.
쇼핑도 하고, 이런 저런 가게도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하루가 다 갔다. 해가 뜬지 얼마 되지 않았던 시간은 어느새 저녁 시간을 향해가고 있었다. 해가 지고 주위가 조금씩 어두워지자 거리 위의 사람들은 낮보다 더 많아진 듯 했다. 내게 팔을 건 채로 내 쫑알거림을 듣고 있던 바비가 갑작스럽게 내 어깨를 당겼다. 덕분에 조금 더 바비와 가까워진 상태로 바비를 올려다보며 왜 그래요? 하고 묻자 바비가 작게 인상을 썼다.
"부딪힐 뻔했잖아."
아까도 그렇게 부딪혀놓고. 바비는 아까 오전에 내가 누군가와 부딪힌 것이 신경쓰인 모양이었다. 살짝 찡그려진 바비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다가 배시시 웃었다. 이렇게 챙겨주는 건 좀 웃으면서 해주면 안 돼요? 인상 쓰지 말래두.
꼭 붙은 채로 거리를 걷는데, 종일을 웃고 떠들며 걸어다닌 탓에 굶주린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배 위로 손을 올리곤 바비를 향해 물었다.
"바비, 배 안 고파요?"
"배고프십니까."
"네…. 배에서 또 꼬르륵 소리나요."
그 말에 바비가 작게 웃었다. 마냥 귀엽다는 듯 날 바라보던 바비의 시선을 마주하고 있다가 보이는 익숙한 간판에 바비의 손을 잡았다. 우리 저기 가서 밥 먹어요! 먼저 걸음을 옮기는 내 움직임에 바비가 나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왠지 오늘은 내가 자꾸 바비를 여기저기 끌고다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테이블 위에 놓여진 물잔을 들어 물을 한 모금 꼴깍였다. 맞은편에 앉은 바비를 바라보니 왠지 어색하기도 하고 기분이 좋기도 하고…. 물끄러미 바비를 바라보자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던 바비가 내게로 시선을 옮겨왔다. 그런 바비를 바라보며 배시시 웃었다.
"여기 그거 맛있어요."
"어떤 거 말입니까."
"그, 막 넓은 그릇에 담겨서 나오는 건데, 이름이 뭐였더라…. 하여튼 되게 맛있어요."
"전에 여기 와보신 적 있으십니까."
바비의 물음에 뭐라고 답을 할까 잠깐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약간은 어색한 얼굴로 배시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
"예전에 몇 번 와봤어요. 승윤 씨랑."
"승윤 씨?"
"네. 누군지 알아요?"
"알아."
"……."
"클럽에서 봤던 그 남자. 동물원에서도 봤었고."
무심하게 말해오던 바비가 앞에 놓인 물잔을 들었다. 물을 몇 모금 꼴깍인 뒤 물잔을 내려놓은 바비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왠지 조금 불만이 찬 듯한 바비의 표정에 이상하게도 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이젠 물끄러미 바비의 표정만 바라봐도 바비가 어떤 기분인지 대충은 읽을 수가 있었다.
질투하는 걸까. 살짝 찡그려진 바비의 얼굴을 바라보며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겨우 삼켰다.
주문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종업원들이 우리 테이블 위로 메뉴를 들고 왔다. 금방 요리된 거라 그런지 하얀 김이 오르는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바비를 바라보자, 바비가 작은 접시에 음식을 적당히 덜어 내 앞으로 놓았다. 고마워요. 웃으며 말하자 조금 전보다는 조금 풀린 표정의 바비가 나를 향해 작게 웃었다.
"얼른 드십시오."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곤 옆에 놓여진 숟가락을 잡았다. 한 입 떠서 입에 넣자 입에서 사르르 녹을 것만 같은 그 맛에 절로 미소가 새어나왔다. 완전 맛있어요! 들뜬 목소리로 말하는 내 말에 바비가 피실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맛있어? 그 물음에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에요. 아까 막 내가 맛있다고 했던 거. 진짜 맛있어요, 진짜로."
"많이 드세요."
"응! 바비도 얼른 먹어요. 옆에 이것도 맛있어요."
"예."
"나중에 승윤 씨에게 새 메뉴도 맛있다고 꼭 알려줘야겠다."
내 중얼거림에 밥을 먹던 바비가 숟가락을 멈추곤 날 바라보았다. 또 약간 인상을 쓴 채로 날 바라보는 바비의 시선에 먹다 말고 고개를 들어 바비와 시선을 마주했다.
"…왜 그렇게 봐요? 밥 먹어요, 밥."
"먹을 겁니다."
"……."
"…그 남자랑 지금도 연락해?"
갑작스러운 바비의 물음에 입안에 우물거리던 음식을 꿀꺽 삼켰다. 네, 하는 짧은 대답과 함께 곧바로 말을 이었다. 친구 하기로 했어요. 내 말에 바비가 의외라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물었다.
"친구?"
"네. 친구요. 왜요?"
"그 사람, 아가씨 좋아한 거 아니었어?"
"맞아요."
"……."
"고백 거절할 때, 승윤 씨가 친구 하자고 했어요."
"……."
"아, 갑자기 기억난 건데."
먹던 숟가락을 내려놓곤 바비와 눈을 맞췄다. 그리곤 배시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승윤 씨가 나보고 그랬어요. 나 다른 사람 좋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
"아마 바비 좋아하는 게 티가 많이 났었나 봐요."
"……."
"그 때 난 바비 좋아하고 있을 때였는데."
그 땐 짝사랑, 지금은 바비가 남자친구. 말을 마치곤 웃으며 바비를 바라보자 바비는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깐의 정적과 함께 나와 눈을 맞추고 있던 바비는 별안간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갑작스러운 바비의 웃음에 영문을 몰라 왜 웃어요? 하고 묻자 바비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뭐야…. 왜 웃어요. 응?"
여전히 웃음을 터트린 채로 날 바라보는 바비를 향해 작게 웃으며 묻자 바비가 나와 눈을 맞춰왔다. 내 눈에서부터 코, 입까지 내 얼굴을 구석구석 바라보던 바비가 다시 한 번 피식 웃음을 흘리곤 말했다.
"질투가 났어."
"…에?"
"그 자식이 아가씨를 좋아했다는 것도 싫었고."
"……."
말을 하다 말고 잠깐 멈춘 바비가 들고있던 숟가락을 그릇 위로 내려놓았다. 그리곤 등받이에 몸을 살짝 기댄 뒤 등받이 위로 한쪽 팔을 올렸다. 올린 팔을 굽히고 살짝 쥔 주먹으로 머리를 받친 채로 날 지그시 바라보던 바비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보니까 어쩔 수 없겠구나, 싶어서."
"……."
"그래서 웃었어."
"…어쩔 수 없겠구나, 가 뭐에요?"
내 물음에 고개를 기댄 쪽으로 살짝 더 기울인 바비의 눈이 예쁘게 접혔다. 다정한 목소리의 바비가 잠깐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
"예뻐서."
"……."
"보기만 해도 예쁘고, 하는 것도 예쁘고."
"……."
"이렇게 예쁜데 누가, 어떻게 아가씨를 안 좋아할 수 있겠어."
♡
안녕! uriel이에요!
아가씨로는 오랜만에 옵니다! 막혔던 아가씨가 조금씩 풀리는 것 같아서 열심히 열심히 썼어요 이전 글 소낙비 속의 지원이는 아련함의 결정체인데 이렇게 또 현실 적응 안 되는 경호원 김밥을 쓰려니 뭔가 어색한 거 있죠.. ㅎ_ㅎ
어, 읽다가 느끼셨으려나! 오늘의 지원이는 배려의 IKON!!!! 지원이 정도면 농구 게임에서 절★대 여주에게 질리가 없지만, 여주의 소원권을 위해 은근슬쩍 져주는 지원이 발견하셨나요 ㅠ_ㅠ 쓰면서 전 혼자 설렘.. 전 저런 거 좋아해요 은근히 막 은근은근하게 절 위해주는 거! 못 발견하셨음 말구요 (소금소금)
집에서 지내던 부엉이 습관 못 버려서 방은 되게 깜깜한데 제 노트북 불빛만 쨍하게 빛나고 있네요 꼭 반딧불이 같아..! 빛 보고 벌레라도 오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에 가슴이 두근두근 거려요, 전 벌레 완전 싫어하거든요 ㅠ_ㅠ 벌레 싫어.. 두 번 싫어.. 세 번 싫어 왕 싫어 ㅠ_ㅠ 얼른 올리구 자야겠어요
자주 못 와서 죄송해요, 그래도 늘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마이너와 아가씨! 어느 것 하나 미루지 않고 열심히 올테니까 기다려주세요! 엉엉
암호닉 정리는 다음 편에 올게요! 댓글도, 추천도, 초록글 보내주시는 모든 것들도! 다 감사해요! 어휴 이러니 제게 여러분들은 다들 이쁜이들 ㅠ_ㅠ♡
사랑해요 ♡_♡ 하트!!!!!
아, 저는 괜찮아요! 걱정 말아요! 럽야!♡
+암호닉은 언제나 신청 받고 있습니다! <>안에 원하는 암호닉을 적어주세요! 가장 최근의 글에 신청해주시면 그 다음 글에서 아마 확인하실 수 있을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