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글 "이거, 이건 뭐야?" 백현이 허리부근을 만졌더니 옷 안에 뭐가 자꾸 손에 잡혀. 입을 꼭 다물고 웃기만 하는 변백현 탓에 결국 엘레베이터 안으로 끌고 들어가서 옷을 올려봤더니 파스가 덕지덕지 붙어있었어. 자기가 혼자 붙이느라 그랬던 건지 제대로 붙어 있는 파스가 한 장도 없고 죄다 쪼글쪼글 삐뚤삐뚤하게 붙어있는거야. 한숨을 폭 내쉬고 다시 백현이를 째렸어. "너 내가 허리 꺾는 습관 버리라고 했지." "그러려고 했는데.." "신경을 안 쓰니까 그런 거 아냐. 너 내가 말한 거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 백현이가 가진 아주 안 좋은 습관 중 하나가, 뒤를 돌아보거나 뒤에 있는 걸 가져 와야할 때 몸을 전체를 안돌리고 허리를 휙 돌려서 뒤를 향해. 다리는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 허리만 그렇게 꺾어버리면 상당한 무리가 가는데, 그걸 제일 잘 알면서도 습관이라 그런지 고치지 못하고 있었어. 예전에도 몇 번 그러다가 허리 잘못 꺾여서 고생한 적 있는데 그렇게 고치라고 해도 잘 안되나봐. "..나한테 해달라고 말을 하든지." 씨, 붙여달라하면 누가 안 붙여주냐. 종인이도 있고 자기 밑에 들어온 인턴들도 많으면서. 좀 붙여달라고 하면 될 것 가지고 혼자 이상하게 다 붙여놓고 있어. 내가 툴툴거리면서 열린 엘레베이터 문으로 백현이 손목을 붙잡고 내렸어. "화..났어?" "너 같으면." "응?" "너 같으면 화 안낼거야?" 내 말에 백현이가 입을 꼬옥 다물어. 내가 백현이 같은 상황이었으면 변백현은 눈 뒤집으면서 난리를 쳐댔을걸. 그걸 알긴 아는지 백현이는 잠자코 붙들린 팔목을 얌전히 둔 채로 질질 끌려왔어. 처치실로 끌고가서 침대를 탁탁 쳤더니 변백현이 빠르게 가운을 벗고 올라가서 폭 엎드렸어. 아주, 인상을 써야 말을 들어요. 셔츠를 살짝 올린 다음에 아무렇게나 붙어있는 파스를 다 떼어내고 다시 새 파스를 꺼내서 말끔하게 붙였어. 됐다. 옷을 내려주고 포장지를 돌돌 말아서 쓰레기통에 넣었어. "너 가운도 좀 다려야겠," 내가 문을 열면서 쪼글쪼글한 백현이 가운을 지적하는데 백현이가 대뜸 손목을 붙잡더니 못나가게 꽉 붙들어.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백현이를 올려다봤어. "어딜 그냥 넘어가려고." 그러면서 백현이가 내 손을 질질 끌고 다시 침대 위에 앉혔어. 내가 고개를 숙이고 퍽 웃었더니 백현이는 마음에 안든다는 표정을 지어. 괜히 붉게 달아오른 손을 만지작거렸어. 이건 화상 입은 것도 아닌데. 커피가 뜨거워봤자 얼마나 뜨겁다고, 예전 같았으면 백현이보고 오버하지 말라고 그냥 홱 나가버렸을 일인데 오늘은 그냥 잠자코 앉아있었어. "손이 성할 날이 없어." 백현이의 탄식 섞인 목소리도 은근히 듣기 좋았고, 조심조심 약을 펴바르는 손길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아무래도 마음에 안 든단 말이야, 네 중학교 동창." "아, 맞다." "어?" "다 됐지? 백현아, 나 먼저 가볼게." 서준이, 아까 그렇게 울다가 정신 잃는 것까지 보고 내 손에 엎은 커피탓에 잊고 있었던 거야. 서준이 부모님도 안 계셔서 보호자도 없을 텐데. 백현이에게 통보하듯 이야기하고 나는 처치실을 빠르게 빠져나갔어. 그 때문에 한 쪽 손에만 약이 발린 채였지. 아마 응급병동으로 넘어갔을테니까, 다시 다른 병동으로 트렌스퍼됐을거야. 스테이션으로 가서 환자정보를 검색했더니 역시나, 정신병동으로 옮겨져있다고 떴어. 엘레베이터를 탈 시간도 없이 발걸음을 재촉해서 서준이가 있는 병실로 향했어. 막 도착해서 병실 문을 열었더니 커텐도 쳐져있지 않은 채로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서준이가 보였어. "몸은 괜찮아?" 환자 앞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 안되니까,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지. 사실 뛰어오느라 숨이 차올랐는데. "아까 쓰러져서 얼마나 놀랐는데. 몸이 안 좋으면 말을 하지 그랬어." 보조 침대를 끌어내서 앉으며 물었더니 계속 창밖만 쳐다보고 있어. 얼굴에 핏기가 사라져있고 입술은 바싹 말라있었어. 탈수 증상 있는 거 아닌가 싶어서 자리에서 일어나 수액팩을 확인하는데 서준이가 갑자기 손을 뻗더니 내 손을 확 잡아왔어. "왜, 어디 아파?" 환자들이 손을 덥썩덥썩 잡는 일은 흔했어. 수술실 들어가기 전에 긴장이 된다고 손을 잡는 사람들도 있고, 고통을 참지 못해서 손을 잡는 사람들도 있고 죽음이 다가올 때 보호자가 없는 경우 내가 손을 잡아주기도 했어. 그래서 나는 자연스럽게 잡힌 손을 빼지 않았지. "어쩔 수 없대, 우리 병동에 데리고 있고 싶었는데 사정상 그게 잘 안되나봐. 김종대도 시간 날 때마다 올거고 나도 가끔 놀러 올 테니까 심심해도," 그 순간, 서준이가 서 있던 내 쪽으로 몸을 확 기울이더니 그대로 안겨왔어. "정말, 이야?" 당황한 내가 어, 어? 하고 되물으며 잡힌 손을 빼내려 했고 서준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어. "정말 놀러 올거야?" 당연하지,라고 말하려 입을 떼며 시선을 올렸을 때 나는 병실 문 앞에 선 백현이와 눈이 마주쳤고 백현이는 빠른 걸음으로 나를 향해 다가왔어. 그렇게 다가온 백현이는 바로 서준이의 어깨를 잡아 떨어뜨린 후 나를 돌려세워 자기를 바라보게 만들었어. 얼떨결에 서준이를 등지고 선 나는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백현이를 쳐다봤지. 아무 말 없이 백현이는 침대 위 쪽에 달린 간호사 호출벨을 눌렀고 그대로 내 손목을 잡은 채 병실을 빠져나왔어. 병실을 나오자마자 나는 잡힌 손목을 빼냈어. 마음이 불편했어. 안 그래도 보호자 없이 있어서 신경쓰이는 앤데, 그렇게 힘 빠진 모습을 보고 그냥 나와버렸으니. 게다가 놀러온다는 말에 대답도 못해줬는데. "백현아, 환자야." "알고 있어." "그렇게 대하면 안되는 거 알잖아." 최대한 차분히 말하려고 노력했어. 백현이 마음을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백현이는 병원에서 일어나는 이런 불가피한 일들에 내가 노출되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지만 직업상 어쩔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말을 하지 않는 편이었어. 그리고 항상 적절하게 대처해 나갔는데, 이번에는 아니었으니까. "좋게 말하고 나왔어도 되는 걸 꼭 그렇게.." 뒷 말을 삼켰어. 분위기도 분위기였고 사실, 백현이가 자꾸 말을 아끼는 게 눈에 보였어. "저런 환자들 괜히 자극주면 상태 더 악화된단 말이야. 나, 내 사적인 일로 환자한테 악영향 끼치는 거 싫어." "환자만 환자야?" "적어도 병원 안에서는 이런 행동 다시는 하지마. 원래 안 그랬잖아, 너." 앞머리를 휘적이며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던 백현이가 도착한 엘레베이터에 오르면서 내 손을 잡아 올렸어. 그러곤 주머니에서 연고를 꺼내 아까 바르다 말았던 손을 다시 꼼꼼하게 발라 주곤 커다란 반창고까지 턱 붙여주었어. 내 말에 대답을 하나도 하지 않는 백현이가 미웠지만, 백현이의 썩어들어가는 속을 전부 알고 있는 터라 얌전히 입을 다물었지. "너 허리는 괜," 나도 백현이 허리가 생각나서 괜찮냐고 물으려는데, 그 순간 백현이 주머니에 있던 수신기가 요란하게 울렸어. "..어디야?" "병동인데," 병동이라는 말에 엘레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마구 뛰어서 스테이션으로 달려갔어. 스테이션에서 연신 발을 동동 구르던 종인이가 백현이를 보자마자 뛰어와서 백현이 팔을 덥썩 잡았어. "선배님, 박찬열 환자 아까부터 복통 호소에 구토 증상 보이구요. 또 침대에서 떨어지면서 오른쪽 이마가 찢어진 것 같아요. 혹시 몰라서 시티실 콜하고 수술방 잡아놨어요." "알았어, 잘했어." 종인이가 이렇게 빠르게 말한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백현이에게 랩하듯이 찬열이 상태를 전달했고 백현이와 나는 찬열이가 있는 병실에 뛰다시피 도착했어. 그 와중에도 잊지 않고 칭찬을 하는 백현이가 존경스러울 정도였지. "쌤, 쌤. 얘 왜 이래요? 네?" "잠시만 환자 상태 먼저 볼게요." "야, 박찬여얼..." 며칠 전 부터 찬열이 보호자 노릇을 하던 여학생이 많이 놀란 건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백현이의 팔을 잡아왔고 백현이는 침착하게 청진기를 귀에 꽂았어. 나도 덩달아 놀라서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는데, 애써 눌러 참으며 찬열이 이마를 거즈로 꾸욱 눌렀어. 땀이 줄줄 흘러내리는 탓에 찬열이 얼굴은 피와 땀으로 엉망이 되어있었고 침대 밑에는 구토한 흔적까지 있었어. "종인아, 시티실 콜해서 지금 내려간다고 해. 언제 대기시켰어?" "십분 전 쯤에 시켰어요." "그래. 바로 내려가자. 보호자는?" 백현이 말에 종인이가 옆에 있던 여학생에게 물었고 그 여학생은 손을 덜덜 떨면서 침대맡에서 휴대폰을 집어 들고 전화를 걸기 시작했어. "엄마, 박찬열..엄마.." 그렇게 전화를 걸던 여학생은 상대방이 전화를 받은 건지 엄마아 하고 울기 시작했고 내가 얼른 휴대폰을 건네받아 상황 설명을 했어. 수화기 너머에서도 갑작스러운듯 당황에 물든 대답이 돌아왔고 나는 그렇게 전달만 한 후 수화기를 다시 돌려주고 시티실로 뛰어내려가야했어. "쌤, 쌤...박찬열 왜 그래요? 네?" 내 뒤를 쫓아오던 여학생의 울먹이는 목소리를 듣고서야 아차 싶어서 뒤를 돌아봤어. 설명을 해줬어야 했는데, 내가 정신이 없어서 깜빡했던거야. "촬영실 같이 내려갈래요? 아마 안 쪽에서 출혈이 있었거나 가스가 찼거나 둘 중 하나일 거예요. 심각한 거 아니니까 걱정말고 같이 내려가서 봐요." 내 말에 눈물을 끅끅대며 삼키던 여학생이 손으로 눈가를 비비면서 나를 따라왔어. 시티실에 내려가니 찬열이는 이미 촬영실에 들어가 있었고 백현이랑 종인이가 모니터로 화면을 보고 있었어. 곧이어 백현이가 먼저 촬영실 밖으로 나오고 내가 백현이를 붙잡고 물었어. "어때?" "출혈은 없고 그냥 가스찬 것 같아. 일단 약물로 치료해보고 이마 찢어진 거 먼저 수습해야지." "처치실 잡을까?" "응, 그리고 항생제 줄이고. 부작용일 수도 있어." 알았어.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옆에서 듣고 있던 여학생이 긴장이 풀렸는지 다시 멈췄던 눈물을 터뜨렸어. 으아아앙 하고 울면서 찬열이 손을 감싸잡는데 찬열이는 힘이 쭉 빠져서는 그냥 희미하게 웃기만해. "야아아, 내가 얼마나..얼마나 놀랐는데.." 코도 훌쩍, 어린 아이처럼 우는 모습을 보곤 찬열이는 연신 웃기만 했어. 아까 진통제를 넣었던 게 효과를 보이는지 표정은 한결 편안해보였어. "이마 치료하러 가야하는데, 같이 갈래요?" 여학생이 내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구부렸던 다리를 펴고 일어났어. 히잉, 하고 훌쩍이며 아이처럼 우는 모습을 보니 내 예전 생각이 나기도 하고. ㅡ "자기야, 눈..침침해." "어제도 봉합하고, 오늘 아침에도 하고. 방금 또 하고. 종인이 안 시켜?" "전부 복잡한 거였어..종인이 아직 못해." "찬열이는 간단했잖아." "걔가 종인이한테 좋아라하고 받겠다, 퍽이나.." 그건 그래. 아직도 둘이 초롱이 놓고 으르렁거리던데. 백현이 말에 내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들고 있던 아이스초코를 쪼옥 빨아마셨어. 아, 달다. 찬열이를 수습하고 잠깐 바람 쐰다고 나온 산책이었는데, 날씨가 정말 좋아서 기분도 같이 좋아졌어. 하지만 피곤하다며 오늘도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는 백현이는 정말로 피곤한 몰골이었지. 여느 때처럼 콧잔등에는 안경자국이 선명하게 나있고 눈꼬리는 오늘 따라 더 쳐진 것 같아. "어, 저기 서준이 아니야?" 내가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앞을 가르켰어. 내 말에 같이 시선을 옮긴 백현이가 바로 커피를 왼손으로 옮기며 내 손을 부여잡았지. 나는 잡힌 손을 한 번 내려보고, 서준이 한번 쳐다보고. 실없는 웃음을 흘렸어. "유치해, 진짜."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나는 꼭 잡힌 손을 흔들며 앞으로 걸어갔어. 자기 뒤로 오는 발소리에 뒤를 돌아본 서준이가 반갑다는 듯 웃어보여. 정말 조울증 증세가 있긴 한가봐. 아까는 그렇게 침울하더니 지금은 또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는 걸 보면. "근무 시간 아니야?" "잠깐 산책. 혼자 뭐하고 있었어?" "잠깐 종대랑 나왔다가." 옆에 있던 벤치에 읏차하고 앉는 서준이 맞은 편으로 나랑 백현이가 앉았어. 백현이는 내 손을 잡은 자기 손에 힘을 더 주었어. 그러곤 표정은 별 신경 안 쓴다는 듯 무심했어. "김종대는 어디갔는데?" 아까 그렇게 병실을 나가버리고 마음이 불편해서 김종대를 불렀더니 와서 서준이랑 같이 있어줬나봐. "마실 거 사온다고 편의점 갔어. 오늘 일 언제 끝나?" "나 오늘 네시에서 다섯시 사이에, 어? 김종대 왔네." 김종대가 서준이 뒤 편에서 검은 봉지를 달랑 달랑 흔들면서 걸어오고 있었어. 내가 반갑게 손을 흔들자 김종대는 그냥 씨익 웃고 말아. 지금 상황이 흥미롭다는 듯이. "왔으면 말을 하지. 두개밖에 안 사왔는데." "우리는 이거, 먹잖아." "그러네. 변백현은 하루하루 더 초췌해진다, 어째?" "얘 요즘에 병원에서 살아. 밑에 인턴도 새로 들어오고 응급 봉합 폭탄." "레지던트가 더 바쁜 것 같긴 하더라. 김민석 여자친구는 요즘 매일 전화로 화내." "거긴 결혼 안 한대?" "하려고 하니까 여자쪽에서 답답해하지." 아, 그럼그럼. 내가 고개를 끄덕였어. 나도 결혼 준비할 때 얼마나 막막했던지. 거기다 백현이는 바빠 죽으려고 하고.. 지금 아니면 더 바빠진다그러고. 정말 빼도박도못하는 상황 속에서 나 혼자 싸웠던 기억이 있어. "그나저나아-," 김종대가 이때다 싶었는지 눈을 흘기며 나랑 서준이를 쳐다봐. "옛날 얘기 좀 해볼까아.." 그 말에 고개를 숙이고 땅을 차고 있던 있던 백현이가 고개를 천천히 들었고, 나는 불안한 느낌에 김종대를 의아하게 쳐다봤어. 서준이는 평화롭게 웃고있었지. ㅡ 가끔 댓글로 저 찾아주시던 분들! 다 보고 있었지만 대답을 못해드린 점 죄송해요. ㅠㅠ 저도 제가 언제 올지 몰랐던 터라..★그치만 찾아주셔서 정말 기분 좋았어요♥.♥ 그래요 저는.. 저는.. 전.. 과제의 노예가 되고.. 실습의 노예가 되어.. 초췌한 모습을 숨기고자 매일 아침 의무적으로 화장을하는.. 화장안하고 나갔다가 만난 타과 동기가 저에게.. 화장안하고 다니면 죽여버린다고..ㅠㅠ... 병원침대만 보면 눕고싶어 미치겠는..그런..간호학생이 되어있습니당.. 최대한 많이 오도록 노력할게요. 약속약속!(저번에도 그래놓고 1달 넘게 안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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