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이렇게 어색할수가. 분명 우리 둘만 있는 것도 아니고, 민수형도 있음에도 벤 분위기는 어색하다 못해 얼어가고 있었다. 뒷자리에서 넓게 누우라고 일부러 앞자석으로 왔는데 백미러로 힐끔 거리며 보는 내가 찌질해보였다. 눈이라도 마주칠세라 조금이라도 낌새가 이상하면 고개를 돌리고 딴 짓을 하는 척을 하다가 다시 곁눈짓으로 힐끔거려서 얼굴을 감상했다. 요즘에는 거의 매일보는데도 이렇게나 봐도 봐도 보고싶어진다. 이것도 참 병이지 병이야.
“형, 경수는”
“경수 먼저 가있다던데? 걔 오늘 스케줄 하나밖에 없어서 시간 엄청 비었다더라.”
“경수 일본은 언제간다는데?”
“다음주였나? 기억이 갑자기 않나네.”
도경수. 도경수. 그놈의 도경수. 김종인과 함께 있는 시간에서 빠지지않는 이름. 귀가 따갑다 정말. 나도모르게 조금 인상을 쓰고 김종인을 째려보듯이 보고있었는데 그만 눈이 마주쳤다. 놀라서 표정을 바로 풀고 고개를 돌려 창문에 뺨을 퍽 하고 부딪히니 민수형이 어어, 하시더니 호탕하게 웃으신다. 우으어어- 뺨이 얼얼하게 아프다. 그러다 문득 시선이 느껴져 백미러로 고개를 돌리니 어정쩡한 김종인의 표정이 보였다. 뭐야 저 얼굴? 되게 어정쩡해.
“아 어디더라? 여기었나? 태민아 죽어라먹자 라는 간판 좀 찾아봐”
“죽어라 먹자요? 으음…, 아 저기있다! 저기있어요! 죽어라 먹자!”
“오케이-”
죽어라 먹자가 뭐야 죽어라 먹자가. 촌스럽게 작명센스하고는. 뒤에서 툴툴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하루라도 좋은 말을 하는 일이 없냐 넌. 근데 또 그 모습마저도 잘생겨보여서 입을 다물었다. 눈에 콩깍지가 껴도 단단히 낀거다.
“다 내려 내려!”
안전벨트를 푸르고 먼저 내리니 김종인이 뒤따라 내렸다. 난 기다려줬는데 김종인은 나를 한번도 쳐다보지않고 그대로 그냥 먼저 식당에 들어갔고, 결국 민수형이랑 같이 들어갔다. 이런걸로 조금 속상한것을 보니 나도 기집애가 다 되어간다.
식당은 내가 좋아하는 고기냄새로 가득했다. 하지만 김종인은 고기냄새가 벤다고 짜증을 냈고, 예전에 배웠던 게 기억이 나 손을 뻗으니 뭐냐? 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본다. 마중나온건지 도경수가 오고 있다.
“아니…저…제가 좀 유용한 방법을 알고있어서…….”
“야 됐어 필요없어”
“그.그래도! 명색의 톱스타인데…….”
최대한 기분좋으라고 샐쭉 웃어보였다. 그러자 표정이 더 굳는 것은 내 착각이 아닐 것이다.
“내 마누라처럼 굴지마 역겨우니까.”
그대로 나를 지나쳐가버린다. 내밀고 있던 두 팔이 민망해지고 괜히 얼굴이 화끈해지면서 달아올랐다.
“태민씨 안들어오고 뭐해요?”
“아 네…들어가요.”
결국 도경수에게 이끌려 들어가니 매니저형에게 들었던 단합과 친목의 자리치고는 무슨 에이젼시 전체가 회식하는 분위기로 아주 큰 방에 많은 인원이 자리를 잡고 술을 마시며 고기를 굽고 있다. 역시나 김종인의 표정이 점점 험악해지더니 담배를 피고 들어온 매니저형에게 시비조로 짜증을 붙였다.
“작은 회식 좋아한다”
“야 뭐 어떠냐! 이번 기회에 뭐 그런거지 뭐!”
꽤나 붙임성이 좋은건지 나는 불편한 티를 꽤 내고있는데도 도경수는 내 손을 잡고 다른 쪽 손으로는 김종인의 옷깃을 잡고 막무가내로 앉혔다. 순간 옆에서 김종인의 향수 냄새가 확 풍겨와서 놀라 몸을 떨고는 이따금 엉덩이를 밀며 멀리앉았다. 그런데 그것도 문제였던게 내가 몇번 화장과 코디를 해준 적 있는 다른 모델 박찬열이 나와 엉덩이가 부딪혔고 나를 보더니 웃으며 어깨동무를 한다.
“어어, 왜이러세요…….”
“이게 누구야?! 우리 꽃돌이 코디 아니셔!”
“왜이러세요…….”
“야!! 니들 다 주목해!!! 이 분이 누구신지 아냐?! 어?! 우리 회사 대표 꽃돌이 코디분이시다!!”
“아, 안녕하세요!”
“박찬열 너 취했냐?!”
여기저기에 휘파람 소리가 들려오고 주목이 된 시선이 느껴져서 미칠 것 같았다. 땀이 줄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것이 안색이 분명 새파랗게됬거나 붉게 변했거나 둘중 하나였다.
“꽃돌이씨!! 김종인 전담되었다면서?!”
“아…네….”
“마음고생이 심하셨겠어! 얼마나 어?! 김종인이 괴롭혔으면 이렇게 그새 말라버렸어!! 에이, 이거나 마셔라! 원 샷!!”
“오-!! 원샷!!”
“원샷! 원샷! 원샷을 몬하믄 시집을 몬가요-”
술 잘 못하는데…개미 기어가는 소리로 말하니 에이!! 하면서 여기저기에서 더욱 원샷을 소리를 치고 더욱 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중에서 김종인과 도경수도 보인다. 아아 정말. 아아. 정말!!
“아이씨!”
결국은 박찬열에 손에 들려있던 척 보기에도 큰 잔에 담긴 소맥을 보며 침을 한번 삼키고 그대로 삼켜버렸다. 끊지도 않고 계속 목으로 술술 넘기는 술은 그저 소맥인줄 알았더니 다른 것도 더 섞은 모양인지 흘러가는 식도가 뜨겁게 타오른다. 다 마시고 잔을 크게 소리를 내며 내려놓으니 여기저기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아 머리아파. 찡해져오는 머리가 감당이 안된다. 아 진짜 안되는데. 나 술버릇 진짜 안좋은데.
이미 늦었다.
***
“미안해 솔직하지못한 내가! 으으음- 기적의 세일러문!”
하얗던 얼굴이 잔뜩 붉어져서 이리 저리 조금 길다싶은 머리를 휘날리며 고개를 돌리던 태민이 찬열과 종대 백현이 일어서서 태민과 함께 팔짱을 끼고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다가 이내 소리를 지르고 박수를 친다. 그것을 보는 회사사람들은 금새 웃으며 깔깔거렸고 종인은 여간 마음에 들지않는지 술만 계속 홀짝이며 얼굴을 붉혔다. 그것을 본 경수가 옆으로 다가가 쳐다보니 종인이 입꼬리를 올려보이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종인아 태민씨 싫어?”
“그런거아니야”
“그럼 뭔데?”
“니가 알 필요 없는 애야. 그냥 쓰잘데기없는 애니까 넌 신경쓰지마.”
“……그런거지? 나 신경 안써도 되는거지?”
“그렇다니까”
짧게 입술을 맞붙이니 쪽 하고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근데 왜 너는 항상 그런 표정이야”
“무슨 표정?”
“꼭 좋아하는 여자애 아이스께끼하고 도망치는 남자애 표정.”
“…내가 너 말고 또 누굴 좋아한다고.”
“……그렇지? 너 나말고 다른 사람 안좋아하지?”
“그래”
한번 더 입술이 부딪혔다. 그리고 한참 노래를 부르던 태민이 두 사람을 발견하더니 찬열과 백현을 밀어버렸고 그 바람에 종대가 떠밀려 넘어졌다. 그러고도 낄낄거리며 노래를 크게 부른다.
“야 이씨!”
씩씩거리며 앞머리에 요란스럽게 묶어던 사과머리를 뺀 태민이 고무줄을 바닥에 내팽겨쳤다. 그리고는 쿵쿵 소리를 내며 온몸으로 나 완전 화났어요를 보여주더니 종인에게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야!!”
“…뭐”
“너 이새끼야!!”
“…뭐라고?”
“너 죽일꺼라고 이 개새끼야!”
“너 미쳤냐?”
다짜고짜 종인을 죽일것이라며 으름장을 놓고 소리를 지르고 땡깡을 부리는 태민에 경수도 많이 놀란듯 눈을 동그랗게 떴고 종인은 잔뜩 얼굴이 붉어졌다. 이게 쳐돌았나. 때리려는듯 높게 치켜든 손이 뒤이어 들리는 울음소리에 내려갔다. 잔뜩 서럽게 엉엉 우는 태민의 목소리가 더욱 커지가 어느새 몇 안남은 회식자리가 점점 분위기가 굳어갔고 그 시점으로 백현이 큰소리를 내며 따라 울기 시작했다. 으허허헝 으헝 그리고 뒤이어 찬열이 울고 종대가 울고 어느새 회식 자리가 모두 상가집이라도 되는 듯 울음바다로 변했고, 항상 시크함이 컨셉이라던 크리스마저도 엉엉 울며 콧물을 흘리는 마당에 종인과 경수는 어이가 없는듯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웃는다.
“미영아-!!”
울부짖는 찬열에 끅끅 거리는 민수. 그나마 정신이 아직 남아돌아있던 민수가 오열을 하며 방을 뒹구는 태민을 일으켰다.
“김종인 너 태민이 데리고 들어가라 경수랑 같이.”
“나 죽일거라는 새끼를 내가 왜”
“야 인마! 그럼 어 이 기집애같은 놈을 그냥 떨굴까?!”
“아…씨발, 존나 귀찮게굴어”
“경수야 부탁 좀 한다?”
“네!”
그리 무겁지않은지 아무렇지도 않게 태민을 안아든 민수가 앞장서 맨 뒷 자석에 태민을 태웠고 그 앞 자석에 종인과 경수가 탔다. 그리고 얼마지나지않아 도착한 대리운전기사에게 목적지와 함께 돈을 넉넉히 쥐어주고는 민수는 연락하라는 손동작과 함께 다시 회식자리로 들어갔다.
“일본 언제가는데”
“아 일본? 다음주 월요일 새벽에”
“미리 말하지 그랬냐, 내가 최대한 빨리 비행기표 구해볼께.”
“뭘 따라오려고…어차피 얼마 안있을건데.”
“그래도 가고싶으니까 이러지.”
볼을 아프지않게 꼬집은 경수의 손을 갑자기 낚아챈 종인이 혹시 몰라 달아놨던 커텐을 닫아 운전기사가 못보게 하고는 입을 맞췄다. 쉿. 소리내지마. 경수의 목덜미와 어깨를 애무하고 살짝 깨물자 키득 거리며 웃는다. 그리고 뒷자석에는 언제 깼는지 모를 태민이 입을 두 손으로 막은채 몸을 둥굴게 막고 작게 울음소릴 내고 있었다.
“아 아픈데…읏…아 진짜 아프다니까 흐흐, 아!”
갑자기 뒷자석에서 울리는 벨소리에 두 사람이 놀란듯 작게 몸을 떨었고, 태민이 있는 뒷자석을 물끄럼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계속 벨소리를 울렸고 어느새 윗도리를 모두 벗은 경수가 확인하듯 쓱 훑어보더니 휴대폰을 들었고 타이밍에 맞춰서 꺼졌다. 진동으로 바꿨놓고 조심히 옆에 둔다.
“자나봐.”
종인이 다시 경수에게 키스를 하며 더듬기 시작했다. 한편 우는것을 감추기위해 잔뜩 몸을 궁글게 한 태민의 옆에서 자그만한 진동을 울리며 액정이 반짝였다. [기둥]
***
흐릿한 정신너머로 차갑게 닿는 느낌에 놀라 눈가를 비볐다. 아 뭐야 누가 자꾸 물을 뿌려?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들고는 눈앞에 보이는 꽃밭에 그만 내가 죽은줄만 알았다. 천국인가?! 지옥일지도 몰라! 고개를 홱 드니 그제서야 우리 아파트 단지에 내가 파묻혔다는 것을 알수있었다. 그리고 환경미화원이 자그만한 체구의 내가 묻혀서 안보여서 물을 뿌려댔고. 내가 몸을 일으키자 아저씨가 비명을 지르며 넘어지셨다.
죄송하다고 고개를 조아리고 화단을 빠져나와 흙먼지를 탈탈 털고 휴대폰을 확인하니 9시다. 아이씨! 오늘 인터뷰촬영 있다던데! 12시에 하는 거라 지금 빨리 옷갈아입고 출발하지 않으면 안됬다. 숨이 찰만큼 헉헉거리며 바로 우리집 아파트로 올라갔고 8층에서 멈춰있는 엘리베이터에 비상구를 오르며 3층까지 두칸씩 뛰어올라가 비밀번호 키를 한번에 쫘르륵 누르니 연달아 틀려서 경보음이 울린다. 아놔! 경보음이 끝나고도 1~2분을 기다리고 다시 천천히 여유를 갖고 치니 열린다.
“9시 12분!”
신발을 내팽겨쳐서 벗는데 못보던 신발이 발 코에 걸려 밀어버렸다. 또 술먹고 샀나보지. 현관부터 옷을 차례 대로 벗어 던지고는 흙범벅인 머리카락을 털고 욕실로 뛰어들어가 찬 물로 몸을 씻으니 오들 오들 떨린다.
몸에 거품과 샴푸를 비벼 거품을 내는 것을 동시에 하다시피해서 씻는데 갑자기 머릿속에 무언가가 스쳐지나갔고 깨질듯이 아파왔다. 아! 어제 일들이 하나둘씩 기억이 나기 시작했고 곧이어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까지 기억해버렸다.
「우리 집 호수 뭔지 모른다구여 개새끼야!!」
「이게 진짜 쳐돌았나 야 너 진짜 뒤질래?! 말끝마다 개새끼 개새끼!」
「개새끼보고 개새끼라 그러지 그럼 소새끼라 그러냐? 크흥, 소새끼래…소-새끼!」
「태민씨 가만히 좀 있어봐요…」
「김종인 개새끼야! 죽여버릴꺼야 이 개새끼야!! 웁,우욱- 욱! 우웩-!!」
「이런 씨발! 이게 엇따대고! 아 씨발 주둥이 안다물어?!」
「종인아! 거기다가 버리면 어떡해!」
헐……….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었다. 넌 하나도 기억 못한다. 하나도 생각나지않는다. 는 무슨!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하와 |
장르가 뭐냐구여? 그딴건 음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망가져주신 찬열시 백현시 종대시 감사함당ㅎ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