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 옷도 못 갈아입고 깜빡 잠이 들었었나.
부시시한 앞머리를 쓸어 올리다 창 밖을 보니 노란 햇빛으로 물든 하늘이 보였다. 젠장. 몇 시간을 잔거야.
벌떡 일어나 침대 옆 탁상에 놓인 알람시계를 보니 6시 정각. 피곤에 쩔어서 잔 거 치곤 별로 안 잤는데? 갑자기 벌렁이는 심장을 가라앉아서 다시 침대 위로 몸을 뉘였다.
많이 잔듯한 몸 상태에 눈은 말짱하게 천장을 바라보며 깜빡였다. 아닌가. 설마 다음날 저녁은 아니지? 하늘색 벽지 위에 남색 고래가 그려져있어 한참 바라봤다.
쾅쾅쾅.
"탄소님. 계십니까? 왜 이틀 째 꼬박 연락이 없으신지…."
"…??이틀?"
문 밖으로 들리는 요원의 애절한 외침이 들려 벌떡 일어났다. 다음날 저녁이 맞잖아!! 추한 몰골로 문을 여니 음식을 가지고 온 요원이 보였다. 보스께서 탄소님 끼니를 거르게 하지말라고 제 귀에 못박으셨거든요. 아, 미안해하실 필욘 없으십니다. 전 그저 크림슨 하트의 지시에 따르는 일개 요원일 뿐이니까요. 내 얼굴을 보자 주절주절 말하는 요원에 무거워 보이는 음식 받침대를 대신 들었다. 식판은 작은데 그 위로 쌓아올린 탑같은 음식에 잠깐 휘청했다.
"보스께서 내린 선물은 잘 받으셨지요? 안에 뭐가 들었는지 탄소님께 듣고오란 명이 있었습니다."
"아. 못 보고 그냥 자버렸는데 이거 어떡하죠.."
"이런…."
요원은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뭔가 떠오른게 있는지 자신의 손목에 찬 시계를 보다
"아, 것보다 잊어버린게 하나 있습니다."
급히 주섬주섬 그의 정장자켓 안 주머니로 손을 넣었다.
"어제 선배님들을 만나러 가시지 않으셨죠?"
맙소사. 음식 냄새에 잠시 정신끈을 놓았는데 요원의 말을 듣고 입을 쩍 벌렸다. 하마터면 식판을 잡은 손에 힘을 뺄 뻔 했다.
한 손으로 얼굴을 헤집어 쓸어내렸다. 왜 여기와서부터 계속 정신을 못 차리는거지.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아마 그 곳엔 어제부터 날 기다리는 내 선배들, 크림슨 하트 패밀리들이 있을텐데…. 퇴짜를 맞게 했다니. 요원은 꾸깃꾸깃한 종이쪽지를 내 빈 손에 넘겼다. 붕대를 감은 손가락을 움직여 쪽지를 펼치니 갈겨쓴 필체가 보였다.
'당장 내려와라.'
성깔있어보이는 글. 망했다. 내 첫인상은 망했구나. 종이를 대충 접어 정장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배를 채울 시간도 없겠다싶어 식판을 요원에게 다시 넘겼다.
진짜로…. 진짜로 큰일 났다. 밥을 거르고 바로 엘레베이터를 타러가려고 하니 요원이 내 팔목을 잡는다. 요원의 한 손에 다 잡히는 팔목을 보니 은근 기분이 나쁘다. 남자들과 접촉하는 것이 예민한 나인데 인상이 하마터번 찌뿌려질뻔했다. 비틀어서 빼낸 팔목을 쓸어내렸다. 요원이 머뭇거려서 그를 지나쳐 엘레베이터에 탑승했다. 급하다, 급하다고.그런데 엘레베이터 문을 발을 끼워 막아서는 요원에 답답해졌다.
"드시고 가세요. 드시고 가시거나 거르고 가시거나 늦으신건 마찬가지십니다."
"아니요, 지금 제 윗 분들이 저를 기다리고 계신데 밥이 넘어갈리가요."
"제일 중요한 건 보스의 명령입니다. 명령대로 진행해주세,"
"어찌됐든 어서 가보겠습니다. 보스께는 먹었다고 전해주세요. 요원님 끼니 거르셨으면 이거 드십쇼. 그럼 이만."
급히 요원을 밀어낸 후 문을 급히 닫았다. 그 문 사이로 어쩔 줄 몰라하는 요원의 얼굴이 보였으나 문은 닫혀버렸다. 천천히 층수를 내려가는 엘레베이터에 3면으로 된 거울에 외모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그거야 말로 더 치욕적인 일은 없다. 정장이 앞머리를 보기좋기 쓸어넘기고 있는데 저 바로윗층에서 요원의 살짝 울음섞인 소릴 들었던 것 같다…. 환청이라면 환청이겠지. 움찔했다가 고개를 기웃거리며 품에서 레몬향 향수를 꺼냈다. 손목에 흩뿌리곤 목 뒤 은밀한 곳에 양 손목을 비볐다.
이 정도면 완벽하겠지?
"보스께서 다 먹은 식판 들고 오랬단 말입니다!!!"
외침에도 올라올 생각을 안 하는 엘레베이터의 층수. 결국 요원은 이걸 든 채로 보스에게 돌아갔다간 어찌될지 앞이 막막해졌다. 한 가지 방법 밖에 없다. 먹자. 먹고 뒤지자. 탄소의 방문 앞에 쭈그려 앉아 꼴사납게 음식들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일이 있어 3층 복도를 지나가는 요원 동료들이 이상하게 보고 갔지만 마이웨이였다. 살기 위해서. 요원은 이미 식사를 한지 10분채 지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빵을 집어 먹는 모습이란…. 참 크림슨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란 생각을 한 요원이다.
바다를 탐내는 자들.
Two Hearts
w.그루잠.
1(1/2)#. BOMB-!!!!
엘레베이터가 15층 끝자락에 도착하고 문이 열린다. 저 멀리 복도의 끝엔 흰 난간이 자리잡은게 보였다. 난간의 옆에는 녹이 슨 방문이 보였다. 그쪽으로 구두굽소릴 내며 걸어갔다. 난간 창문이 열려 들어오는 노을 빛에 손을 넣어 쬐자 노곤해졌다. 상쾌한 바닷바람과 태양의 열기는 참 좋은 조합이지. 여유를 즐기다 책임감이 방 문으로 느껴져서 능청은 그만뒀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위협적인 문패가 달린 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방 안에 처음 보인건 킹 사이즈 침대. 하늘색 페인트로 칠해진 넓은 방 안. 와인으로 추정되는 액체 방울들이 하얀 방바닥에 군데군데 붙었다. 보기만 해도 끈적끈적한게 좋지 않다.
깃털같이 새하얀 침대에 누워있던 반듯한 구릿빛 등판의 소유자가 인기척을 느꼈다. 하얀 머리. 야시시한 분위기의 남자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문이 내는 소음에 돌아보는 남자. 잠깐 숨을 참았다. 뭐야 남자들만 있다고 벗고 다녀? 방 안으로 완전히 들어온 나를 아래서부터 끈적하게 스캔한다. 팔을 베고 나를 뚫어져라 보는 남자는 뒷목을 서늘하게 했다. 반나체에 눈을 제대로 두지 못하고 꾸벅 인사를 했다.
"죄송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새로 들어온 일원, 탄소입니다."
허리를 굽혀 단정한 자세로 인사한 후 남자를 마주하니 손끝이 달아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등 뒤로 손가락을 꿈지락 거리다 눈이 마주친 그 남자는 선이 굵다. 붉은 끼가 도는 입술은 젤리마냥 쫀득해보였다. 거기다 피부 색이 햇빛에 그을린 마냥 섹시한 구릿빛을 띄었다. 눈을 내려 의도치않게 보게된 남자의 검은 정장 바지. 그 위로 잔근육의 복근이 선명했다. 이렇게 대놓고 남자의 상반신을 마주하게 되니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 조금, 힘들다.
예상과는 좀 많이 다른 만남. 난 내 얼굴을 보자마자 뭐라도 집어던질 줄 알았다. 근데 생각보다 평화로운 방 안의 분위기에 긴장이 살 풀린다. 그래도 내가 잘못한게 커서 한 소리들을 준비를 하고 왔는데. 침을 소리없이 삼켰으나 꿀꺽. 목울대가 울렁했다. 그는 내가 뻣뻣하게 굳어 서있으니 별 말 없이 얼굴만 빤히 쳐다봤다. 기지개를 피고 몸을 일으킨 남자는 침대 끄트머리에 앉았다.
그리고 정적을 깨는 무표정의 남자의 낮은 음역대가 귓속을 파고 들어온다.
"V. 본명 김태형. 크림슨 하트 보스 오른팔. 이제부터 널 관리하게 될 네 선배다."
이어서 자신이 앉아있는 침대를 손바닥으로 툭툭 친다. 가까이 오라는 뜻? 그에 편안히 몸을 풀어 또각또각 조심히 걸어갔다. 선배가 지정한 자리에서 제일 먼 쪽으로 침대에 앉으니 눈썹을 꿈틀대는 선배. 눈치를 보다 슬금슬금 태형 선배 가까이 앉으니 내 가슴 앞으로 손을 내민다. 길고 잘 뻗은 구릿빛 손으로 옮겨진 시선은 살짝 빗겨가 그의 오목조목한 얼굴을 보았다. 하얀 머리 위로 헤어밴드를 한 남자는 손은 흔들었다.
뭘… 원하는 거지?
"내 허락없인 무기 소유도, 사용도 금지."
그제서야 손을 내민 의미를 알아듣고 멍청한 얼굴을 했다. 정장 속 숨겨둔 칼과 총들을 주섬주섬 내어 선배의 큰 손에 차곡차곡 쌓으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마피아인데 칼과 총이 없으면 이빨없는 호랑이인데. 무슨 생각이야. 뚫어져라 그의 코를 중심으로 그를 분석을 하는데 답이 안 나온다.
태형은 무기들을 잔뜩 손에 가졌지만 무표정을 짓고 나를 본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지 한 쪽 눈썹산이 삐죽 치켜올린 그에 찝찝한 기분이 들었다.
"뭐가…. 마음에 안 드십니까?"
"거기."
"예?"
"안에 있는거. 왜 안 주냐고."
셔츠 안? 셔츠 안에 혹시나해서 넣어둔 소형칼을 어떻게 알았는지. 셔추 단추 사이 틈으로 빼낼려고 한 잠시, 흉기들을 침대에 던지고 내게 바짝 온 김태형에 숨을 멈췄다. 자신의 품으로 나를 훅 당겨 정장마이 안으로 손을 넣었다. 눈이 커져서 허공에 초점이 흩어졌다. 등을 쭈욱 손으로 쓸어내리고 더듬는다. 도대체 뭘 하는거지? 셔츠 안 무얼 찾는 느낌이었으나 움직이면 존나 혼날 것 같아서 가만히 있었다. 칼은 가슴 앞부분에 있는데 왜 등을 확인하는거야.
그런데 그런 뜬금없는 행동을 하고 내게 떨어지고 나서 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 없다."
선배는 몸이 멀어져 내 이목구비를 계속 뚫어져라 보면서 허무한 듯이 말했다. 있어야 될 게 없단 의민가…? 도대체 뭐가 있어야 되지?
다시 내 쪽으로 다가와 등을 계속 쓰는데 배 아래에서부터 느껴지는 이상한 느낌. 내가 선배의 손을 빼내어 경계했다. 잠시 뭘 생각하는가 싶더니 갑자기 이를 환히 드러내며 웃는다.
뭐야. 좀체 알 수가 없는 행동들에 벙해져 그를 쳐다봤다. 그는 하얀 머리칼들을 흐트리며 숨 넘어갈 듯이 웃었다. 그러다 또 이상한 뜻을 가진 말을 한다.
"아, 보스. 보스 참 재밌는 분이야."
"……."
"그치? 재밌어. 재밌다구."
"…그렇습니까."
도통 이게 뭔 소린지. 맥락을 이해하는 것을 포기하고 그저 맞장구만 쳐줬을 뿐인데 남자는 정색한다. 거기에 나도 지지않고 눈을 마주치니 김태형은 고개를 기웃거렸다. 그리고 갑자기 나와 코를 부딪힐 작정으로 훅 다가왔다. 가까이 온 남자에 숨을 멈추자 내 귀에 속삭인다.
오늘은 벌받는 날. 예외는 없어. 보스의 빽으로 들어왔다해도 예의는 지켜야지?
속삭임의 끝으로 귓바퀴를 짧고 깊게 핥았다. 촉촉한데 단단한 무언가가 훑고 떨어져나간다. 설마. 귀에 손을 대니 와인향이 나는 따뜻한 물이 진득하게 손에 묻어나왔다.
점점 겉잡을 수 없이 굳어져가는 얼굴을 감출 수 없다. 그는 내게 떨어져 날 무표정으로 본다. 반응을 즐기는 변태인가. 바다가 출렁이는 소리만 이 방을 가득 채웠다.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 입술을 악물었다. 내 코 끝를 한 번 검지으로 튕겨내고 벌떡 일어난 그는 버럭 소릴 냈다.
"박지민."
그 말을 끝으로 내가 눈치채지 못한 감춰진 방 안에서 뭔가 날아왔다. 그리고 내 안면을 강타했다. 코를 맞고 알싸한 감각에 한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우당탕 바닥으로 떨어진 물건.
벽으로 위장한 문이 열리며 검은 정장으로 무장한 남자가 와인병을 들고 나왔다. 점점 달궈지는 코에 오른손으로 얼굴을 감쌓다. 남자가 내 얼굴로 날린게 뭔가하고 방바닥을 더음었는데. 내 눈을 의심했다.
밀대?
밀대를 던진 남자는 능청스럽게 침대 앞 유리상 쪽으로 박자를 타며 걸어왔다. 박지민은 내 눈 앞에 와인병을 흔들어대며 깝쭉댄다.
"뭐하는거야? 굳이 말해줘야 돼? 치워. 깨끗하게."
아린 코를 부여잡고 일어나 밀대를 주워 들었다. 좆같네. 김태형은 탁자 위 자신의 유리잔을 손사이에 끼워 느긋하게 액체를 돌린다. 아픈 코를 살짝 놓으니 아뿔싸. 뜨거운 액체가 주르륵 인중을 타고 내 손에 묻어났다. 씨발. 코피.
그걸 본 박지민은 씨익 웃으며 와인병을 손 안에서 돌렸다. 병을 한 번 공중에 던져 돌려 낚아채고 내가 들으란 듯이 크게 말했다.
"아무리 찾아봐도 오프너가 없어. 그럼 어쩔 수 없이 깨야겠지?"
와장창. 와인잔에 무식하게 와인병 주둥이를 내리쳤다. 그 힘에 와인잔이나 와인병이나 둘 다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렸다. 사방으로 튄 붉은 색 와인. 김태형의 상체에 액체방울들은 근육의 곡선따라 흘려내렸다. 내 얼굴에 폭발적으로 튄 와인에 턱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것이 코피인지, 와인이지 구분이 되지 않았다.
와인이 튀어도 눈을 감지않고 힘을 줘 내려다 보는 박지민. 속으로 으르렁거리며 눈을 맞췄다. 김태형은 깔끔히 마신 와인잔을 탁자에 내려다 놓고 눈높이를 맞춰 몸을 숙였다.
"예쁜 얼굴이 더러워졌네."
혀를 차는 김태형은 이마에 짧은 키스를 하곤 방을 나가버렸다. 그대로 이 방에 숨막히는 심리전이 스파크를 튀었다. 박지민은 눈을 피하지 않고 깨진 와인잔을 들어 얕게 담긴 와인을 원 샷 했다. 그리고 파열음. 밀대로 깨진 유리 조각들이 굴러왔다. 박지민은 그렇게 엉망진창이 된 방을 나가려다 뒤돌았다. 코피를 흘리는 내가 같잖다는 듯 말을 뱉는다.
"어딜 선배 기다리게 해. 넌 나한테 잘못 찍혔어 새끼야."
방 안이 잠잠하다고 안심을 한 내가 병신이었다. 밀대를 쥔 손에는 더욱 힘이 들어갔다. 모욕감. 그러나 내 잘못이니까 더욱 더 표현할 수 없는 이유모를 짜증. 박지민이 방 문을 열고 나가 복도를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안면근육이 움찔거리고 이 어이없는 밀대가 나를 조롱한다.
방 문 사이로 빼꼼 얼굴을 내민 김태형이 말했다.
"수고해 후배."
소란이 있는 후, 물이 검은 색을 띄고 수면에 달이 뜰 때까지 열심히 청소하는 중이다. 처음엔 얼굴을 벅벅 씻어 분노로 속이 부글부글 끓었지만. 어찌 됐거나 합당했고 나는 잘못을 했다.
어짜피 나는 참아야했고 묵묵히 밀대로 방 바닥을 닦았다.
중간에 방에 김태형과 박지민이 들어와서 침대에 누워도. 와인을 바닥에 떨어뜨려도. 계속 날 쳐다보는 눈길에도 신경쓰지 않고 마이을 침대에 벗어던져 흰 와이셔츠 손목부분을 걷어올렸다. 하루종일 밀대와 물아일체하여 바닥을 광이 나도록 닦아댔다. 마지막으로 남은 탁상 위 유리 조각과 쓰레기들을 맨 손으로 쓸어담을려 하자
어디선가 나타난 김태형이 손목을 잡았다.
"제정신이야? 유릴 손으로 만져서 어떡하게? 지금 손도 멀쩡하진 않으면서."
"내버려두십시오."
김태형의 손을 뿌리치고 붕대감은 손으로 몽땅 탁상을 쓸었다. 유리에 쓸려 손에 상처로 가득해졌지만 무시한다. 헛웃음을 짓던 김태형은 다시 침대로 먼지날리게 누워 나를 지켜본다.
"지민 선배는요?"
"보스 호출. 하던거 계속해."
"할 일 없으십니까."
"지금 내 할 일은 너 관리하는건데."
"……."
민탄소는 쓰레기 냄새가 몸에 배여 인상을 찌푸렸다. 정장 바지 안에서 레몬 향수를 꺼내 뿌린다.
탄소가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가는 모습을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던 태형. 그는 이때다 싶어 침대 위로 던져놓은 탄소의 마이를 집었다. 코 가까이로 가져와 깊게 향을 맡는다. 여러번 킁킁대는 소리에 이어 마지막으로 깊게 숨을 들이키는 태형은 탄소가 열고 나간 문을 흘겨본다. 탄소에게 가까이 갔을 때 풍겨온 달콤하고 시큰한 향이 마이에서 더 강하게 후각을 자극했다.
손을 마이 안으로 넣어 부드러운 옷재질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만지다 못해 부족한지 정장 안쪽에 노골적으로 코를 박는다. 한참 맡다 구체적인 향을 찾은 태형은 번쩍 눈을 떴다.
![[방탄소년단/윤기태형지민호석남준정국석진] Two Hearts-1(1/2)# BOMB-!!!! | 인스티즈](//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82215/82c743c5a0ad4b4df298e34066528da8.jpg)
"레몬?"
첫만남부터 탐색해온 탄소는 굉장히 태형에게 연구대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즐거움. 어제 태형은 탄소가 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크게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지민도 물론이요.
화낼 이유가 없었다. 어짜피 와봤자 귀찮은 일만 시작될건데. 해가 떨어지도록 오지 않는 탄소에 대신 요원이 찾아와 사과를 했다. 시발 걔가 뭐라고 니가 사과해? 라고 하니까 보스 아드님인데 보스가 대신 전하라고 했단다. 보스 아들? 처음 듣는데. 딸이 있는 건 알았는데 아들내미가 있다는건 정말 금시초문이었다. 그것도 우리와 2살 아래. 뭐 아들이면 아들이겠지. 그저 아무 생각없이 잠이나 잤다. 평화로운 나날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었다나 뭐라나. 새 인원이 합류하는 날엔 이제 뻐근한 몸을 움직여야하니 하루라도 더 쉬고 싶었다. 지민은 노는 날이 오늘까지라며 칭얼댔다. 탄소가 오기 전만해도 방 안에 있는 와인을 다 먹고 투정부릴거라며 왈왈 댔다. 귀여운 자식.
그저 그렇게 넘어갈 수 있는 일을 예상 외로 활용하여 오늘 하루 제대로 탄소를 농락하고 시켜먹은 지민. 태형은 살풋 웃으며 마이를 더 끈적하게 만져댔다. 구석구석.
새끼, 안 어울리게 화내는 척은.
그래도 지민덕분에 적어도 한 열흘은 손에 무기대신 밀대를 쥐게 했다. 나도 사실 조금은 화났는데, 걔 얼굴보니까 왠지 모르게 화가 풀리더라. 그 굳어지는 표정이 아주 볼만 했다.
하루종일 표정이 썩은 탄소의 마이 주머니에서 증명사진 하나를 빼냈다. 밋밋한 2D 얼굴을 문지른다. 그리곤 자신의 바지 주머니로 골인.
방 안으로 들어오는 푸른 달빛에 태형은 나른해짐을 느꼈다. 탄소의 체향이 남아있는 마이를 자신의 맨몸에 덮어 야릇하게 부비적댔다.
아, 오늘 달이 참 밝다.
**
가량 2주를 선배들의 텃세에 시달렸다. 노이로제걸릴 정도로 그 방 안에서 밀대로 바닥을 달려댔다. 치우면 치울수록 나오는 쓰레기에 점점 화가 머리를 강타하는 수준.
일부러 내 몸을 더 감출려고 입은 마이도 이젠 익숙하게 집어던졌다. 태형 선배는 그걸 받아서 만지작댔다. 뭘 하는거야.
그리고 뒤에서 느껴지는 눈길도 끊임없이 지속됐다.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면 태형 선배와 항상 눈이 마주쳤다. 그럼에도 꿈쩍도 안 하고 무표정으로 쳐다보는 뻔뻔함에 고개를 내젓는게 일상. 크림슨 하트 패밀리가 되고 나서 이렇게 무기를 못 잡을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총대신 밀대라니. 입술을 꾹 다물고 땀을 뻘뻘 흘려가며 밀대질을 하고 있으니까 뒤에서 반가운 소리가 들렸다.
"그만. 이제 그만해."
내 귀로 그만하란 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밀대를 손에서 놓았다. 우탕탕거리며 쓰러지는 밀대를 발로 깠다. 얼마나 반가운 소리람.
김태형은 침대에서 일어나 내 마이를 들고 방을 나선다. 말은 안 했지만 척하면 척. 그를 뒤따라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훔치며 복도의 어느 문을 열고 들어가게 되었다. 그 곳은 훈련장. 얼굴엔 화색이 돌을려다 오히려 잿빛이 되버렸다. 유도장. 무기없이 오직 맨 몸으로 싸워야하는 훈련.
선배는 넓은 대리석을 밟고 걸어간다. 내 마이를 매트 위로 집어던지고 사물함에서 도복 두 벌을 꺼냈다. 내게 집어낸 흰 도복을 던졌다.
"Nice catch."
태형 선배는 자신의 흰 도복을 수납장에서 꺼내 창가에 두곤 옷을 벗는다. 정장 구두를 벗는 선배. 기분 탓일까. 기분 탓이 아닌거같은데. 남자들만 있는거 알겠는데. 알겠는데 탈의실이 왜 없어. 왜 없냐고!!!
검은 셔츠의 단추를 하나하나씩 풀어나가며 야릇한 눈빛을 내게 보이는 선배에 뇌 회로가 멈춰섰다. …시발?
선배에게서 받은 도복을 떨어뜨렸다. 선배는 내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벗어'라고 입모양을 보였다. 끝까지 단추를 풀어 셔츠를 벗으니 구릿빛 상체가 드러났다.
바지 벨트까지 풀어내는 태형선배에 앞이 막막했다. 그리고 나는 훈련장에 딸린 화장실로 침착하게 도망쳤다.
"허억, 허억…."
그 자리에 계속 있었더라면 나는 태형 선배한테 어떤 꼴을 당했을지. 강제로 벗겨지고 붕대로 감긴 몸이 드러났겠…. 생각만 해도 소름돋는다. 아마 다 들통 났겠지. 그리고 경우의 수는 여러가지다. 짐승들밖에 없는 이 곳에 남겨져서 평생 별 꼴을 다 겪던가. 아님 이때까지 꿈꿔왔던 모든 것들이 유리마냥 와장창 깨지겠지. 거기다 지금 내가 들어온 화장실도 남자화장실. 샤워장도 싹 트여있다. 미치겠네 진짜. 아무도 없는게 신의 한 수이다. 일단 태형 선배가 오기 전에 빠르게 옷을 갈아 입기로 한다. 옷을 풀어해치고 나니 샤워장의 큰 거울에 가슴부터 허벅지 안쪽 그곳까지 모두 빈틈없이 붕대로 감아 놓은 것이 드러났다. 내가 옷을 여러겹을 겹쳐입었던 이유가 붕대로 억압한 가슴을 더욱 더 가리기 위함이었는데. 지금 이 도복을 입으면 아무래도 티가 날까 미칠 정도로 걱정이 된다. 거기다 스킨십이 상당히 많은 훈련이라 다음 장면을 예상하기 어려워 머리가 아파왔다. 결국 도복을 입고 붕대가 보이지 않게 허리끈을 꽉 조였다. 진정. 진정해야된다. 돌아버릴 정도로 심장이 뛰지만 샤워실을 당당히 나갔다.
"남자끼리 뭘 그런걸 부끄러워하고 난리야."
도복을 헐렁하게 입고 바닥에 앉아 나를 기다리는 태형 선배가 보인다. 미치겠다. 잘 파인 쇠골. 단단한 가슴팍이 돋보이는데 왜 기분이 이상한건지. 천천히 파란 매트 위로 몸을 옮겨 자세를 다잡으니 태형 선배도 순순히 일어나 자세를 취한다. 목을 섹시하게 돌리던 태형은 눈빛이 사납게 돌변한다.
"시작."
나는 체력상 딸리니 차라리 빨리 끝내는 게 낫겠다싶었다. 내가 죽기 전에 태형 선배의 명치를 노려 빨리 넉다운시키잔 전략을 세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주먹 다짐이 아닌 계속 상대방을 넘어뜨릴려는 쪽으로 전세가 기우는거다. 그러니까…. 나는 태형 선배 다리를 걸어 넘어뜨릴려고 하면 태형 선배가 이상하게 쉽게 넘어지는 대신, 나를 끌어당겨 같이 넘어진다. 태형은 절대로 먼저 공격을 시도하지 않았다. 척만 하고 힘을 빼 나를 안아 농락시킨다.
그런 탓에 나는 그의 품에 계속 안기는 상황을 맞이한다. 씨발. 또 다시 넘어지고 태형은 나를 안는다. 그 상황에서 선배는 능구렁이같이 계속 입을 놀렸다.
![[방탄소년단/윤기태형지민호석남준정국석진] Two Hearts-1(1/2)# BOMB-!!!! | 인스티즈](//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13020/e182f4b93997c83fd5260e4bfc01b206.gif)
"너 좀 예쁘게 생겼다? 남자 주제에. 키도 작고."
"키 작은 게 죄는 아니지 않습니까."
김태형은 완전 날 가지고 노는거라고.
"보스한테 딸이 한 명있다던데 넌 보스 아들이니까 본 적 있겠지. 어때? 예뻐?"
"선배 집중 해주시겠습니까? 처음 듣는 얘기고, 본 적 없습니다."
또 다. 또 나를 넘어뜨리고 내 위에 올라타 날 내려다 본다. 위험해. 뭔가 이상하다고. 다시 내 손을 잡아 일으키는 태형 선배에 내 몸은 일으켜지고있다.
"그래? 난 봤는데."
"……."
계속 되는 몸싸움 중 갑자기 나를 봤다고 하는 말에 잠깐 멈칫했다. 순간 김태형이 내 손목을 잡고 당겨 휘청, 김태형의 힘놀림에 그대로 매트에 눕혀졌다. 그리고 계속 됐던 패턴. 내 위로 김태형도 같이 넘어졌다. 흰 머리가 내 목덜미에 닿았다. 완전 밀착이 되는 서로의 몸에 내 머릿속은 펑 터지고 말았다. 선배가 도복을 헐렁하게 입은 탓에 몸싸움을 하다 거의 하반신을 제외하고 풀어졌다, 내 코 앞에 몸을 일으키는 그의 가슴이 보인다. 젠장, 젠장, 젠장!!
얼굴로 가까이 다가오는 그에게서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레몬향이 훅 끼쳤다.
"어, 냄새 좋지. 요즘 난 레몬향이 좋더라고. 어때? 죽이지 않아?"
김태형은 자신의 살냄새를 맡으며 눈웃음을 지었다. 이거 내 향수잖아. 레몬향에 까무러쳐 일어날 정신머리조차 챙기지 못했다.
"아. 근데 맡다보면 좀 꼴리더라."
그의 가슴팍이 점점 내 가슴과 가까워지더니 결국 유두가 도복과 붕대를 사이에 두고 닿았다. 그리고 뭉근하게 눌려진다.
"읏,"
그는 대놓고 가슴을 문질렀다. 몽오리가 눌리는 느낌. 이렇게 심한 압박감은 견딜 수 없다. 나도 모르게 몸에 맞춰 신음이 흘러나왔다. 문지르는 동시에 그가 나른하게 내려다보며 머릴 쓰다듬었다.
"나는 말야, 널 처음보자마자 딱 감이 왔어요, 감이."
"키도 남자치곤 작고, 손도 보니까 작아. 거기다 얼굴 선도 여성스럽고. 네 정장 마이에서 나는 향수냄새가 알아보니 여성용인데다가 말야. 근데 등을 쓰다듬었는데 속옷 느낌이 없더라고. 확신이 안 서서 2주 동안 관찰했지. 여기와서 쐐기박을려고 했어. 아니면 아닌건데 뭐야. 존나 여자 맞잖아??"
"계속 안겨지고 내가 네 위에 일부러 넘어지는거 눈치챘을거라 보는데. 너, 정말로 내가 끝까지 눈치 못챌거라 생각한거야 뭐야."
크림슨 하트 비밀병기인 내가 못 알아볼거라 생각했어? 응?
가슴 몽오리를 느낀 김태형은 바람빠지는 웃음소릴 냈다. 몸을 일으켜 내 위에 앉아 내 도복을 풀어헤치자 가슴을 감은 붕대가 시야에 드러났다.
좆같다. 위험한건 언제나 알고 있었는데. 크림슨에 들어와서 기분 탓으로 넘겼던 위험이 눈 앞에 꼬박 찾아왔다. 젠장. 상대가 이런 존재인지는 알 수 없었다. 상대 분석에 실패했다. 능글맞기만 한 싸이코인줄 알았던 태형은 눈치가 빨랐다. 좀 더 이성적이고. 좀 잡을 수 없는 사람. 만나온 남자들보다 몇 십 배로 힘이 셌다. 힘이 빠지는 것도 한 몫해서 몸을 밀어내지도 못했다.
낯선 곳에서 방심하고 밀대로 방바닥이나 닦았던게 잘못이다.
그래. 김태형은 처음부터 내가 여자인 걸 알고 있었다.
"간도 크다. 뒤질려고."
쾅-!!!!
김태형이 붕대를 찢을 기세로 잡던 찰나, 갑자기 굉음과 지진이 크림슨 하트 기지를 흔들었다. 그리고 연이어 계속 되는 폭발음과 흔들림. 깜짝 놀라 정신을 차렸다. 방심한 김태형의 손목을 잡아내려 품에서 빠져나왔다. 순간 아버지가 생각났다. 기지 맨 위에 위치한 보스. 빨리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리 속이 꽉 차버렸다. 김태형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태형이 상황파악이 안 된 나를 일으켜세웠다.
"아무래도 간판 위로 가야겠다."
누군가 기지 내 계단을 빠르게 뛰어내려오는 소리. 복도를 달려 훈련장 문을 벌컥 여는 사람은 박지민.
엘레베이터가 고장났는지 땀에 온몸이 쩔어서 온 박지민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리고 박지민은 다리를 후덜거리며 간신히 말을 이었다.
![[방탄소년단/윤기태형지민호석남준정국석진] Two Hearts-1(1/2)# BOMB-!!!! | 인스티즈](//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82221/702ea32085bbfc18b43f4bbfead7d427.jpg)
"일났다. 라이언 하트."
평화로울 때가 제일 위험한 법.
1(1/2)#- bomb(폭발)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