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린 크림슨 하트 기지에서 벗어나 라이언 하트 소유의 섬, 연회장에서 몇십키로 떨어진 항구 근처에 왔다. 쌔한 새벽 냄새와 철썩거리는 방파제를 덮치는 푸른 바도들을 뒤로하고 긴 리무진을 타고 간 보스 뒤를 따라 검은 승용차를 숨쉬지 않고 장정 5시간동안 운전하는 지민 선배의 뒤, 별로 넓지 않은 뒷 좌석에 태형 선배와 앉았었다. 그래. 앉았었지. 어젯 밤 일이 있고 나서 나혼자 태형 선배가 어색해서 정자세로 오른쪽에 딱 붙어 앉아있었다. 속은 안절부절해죽겠는데 태연해보이는 김태형에 무릎에 딱 올린 손바닥만 애꿎은 땀만 배출해서 축축하다. 내 몸핏에 딱맞게 제작된 검은 정장바지에 손바닥을 슬그머니 닦았다.
그런데 왜 나만 이러는건지 당사자만 제 발 저려서 몸이 굳었다. 태형 선배는 왼쪽에 딱붙어서 창가에 손을 괴고 풀로 무성한 주위풍경으로 시선을 돌렸다. 태형 선배가 내른 차창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풀잎냄새를 나르고 들어오는 바람에 그의 갓 염색한 금빛머리칼이 흩날렸다. 지민선배는 너무 오래된 운전에 지친 나머지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젖히니 우두둑 하는 소리. 아 존나 피곤하다 진짜. 이 차는 자동운전 없냐? 나만 고생하잖냐. 꼭두새벽 1시부터 이게 뭐냐? 해뜨는 거나 보고. 라이언하트, 이 개새끼들!!!! 지민선배는 오른 손으로 검은 셔츠의 윗 단추를 풀더니 기어를 내리고 급 브레이크를 했다. 끼익-. 몸에 잔뜩 힘주고 있던 나는 좀 추하게 앞 석의 머리 받침대에 얼굴을 박았다.
"나 좀 나가서 공기좀 쐬고온다. 별로 안걸리니까 보스한테 꼰지르지 마라."
차문을 벌컥 열고 저 방파목 사이로 자취를 없앤 지민 선배에 차 안은 조용했다. 나 답지않게 왜이래. 민탄소. 이때까지 내가 쳐놓은 장벽을 깨부수고 밀물처럼 덮쳐오는 태형 선배에 잔뜩 기가 죽은 나는 이 사람이 어떤 말, 행동을 할지 무섭고 예측불가였다. 그리고 내 가슴을 받치고 모양을 예쁘게 잡은 검붉은색 브래지어와 세트로 맞춘 팬티가 뻣뻣한 붕대보다 더 무겁고 답답하게 느껴진다. 여전히 밖으로 고갤 괸 태형선배의 머리카락을 슬쩍 곁눈으로 봤다. 예쁘다 색깔. 부드럽고 찰랑거리는 금빛 머리카락에 순간 손을 내밀어 만지고 싶어졌다. 한참 몰래 처다보면서 나도 선배를 따라 염색이나 한번 해 볼걸 그랬나..하고 계속 바라보았다. 그러다 갑자기 내쪽으로 확 고개를 돌린 태형 선배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휙 앞석으로 눈을 돌렸다. 내 얼굴 옆 선을 훑는 태형 선배의 눈빛이 느껴져서 어깨를 움츠렸다.
"민탄소."
꿀꺽. 지져귀는 새들 소리 사이 낮은 소리가 들려오자 침을 혀 밑으로 삼켜보낸 후 태형 선배를 아까 전 일은 없었던 듯이 쳐다보았다. 네. 무슨 일이십니까. 마음관 달리 딱딱하게 나오는 말에 태형 선배는 내게 등 뒤로 바짝 앉으라는 듯 내게 불쑥 다가와 어깨를 잡아 등 뒤 시트로 붙혔다. 강제적으로 바른 자세로 앉게 되자 바로 내 허벅지 위로 머리를 대고 눕는 김태형에 허벅지에 힘이 불끈 들어갔다. 손을 깍지끼곤 배 위에 올려 다리를 열린 창문틀 위로 뻗어 걸쳐올린다. 내 가슴 아래로 보이는 태형 선배의 감은 눈. 그리고 유난히 눈길을 사로잡는 잘 뻗은 코. 매끈한 구릿빛 피부가 어잿밤을 생각나게 해 아찔했다. 보기에도 실크처럼 부드러워서 손에 쥐면 바스스 흩어질 것 같은 금빛 머리카락이 내 정장바지 위로 사르르 흩어졌다. 편안히 숨을 들이키는 태형 선배에 내 배에도 힘이 들어갔다. 태형 선배가 내 허벅지에 누은 탓에 내 손을 어디둬야 될지 몰라 허공에 띄우고 있으니 내 허벅지 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지금만 허락해 주니까 만지고 싶으면 만져."
그 소리에 고개를 숙여 태형 선배 얼굴을 내려다보니 느리게 뜨는 태형 선배의 눈. 그는 손에 깍지를 풀고 오른 손을 올려 허공에 방황하는 내 두 손을 부드럽게 끌어 내려 하나는 자신의 금빛 머리카락, 왼손은 자신의 보들보들한 볼 위로 내려주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음에 나는 굳은 손가락을 서서히 움직혀 비단결같은 그의 머리카락 사이를 빗었다. 부드럽다가도 손가락 사이로 들어오는 머리카락이 내 손끝을 달궜다. 아무리 보고 느껴도 예쁘다. 머리카락을 만지는 내 손길에 기분이 좋은지 편안한 표정으로 입꼬릴 올리는 선배. 아무렇게나 되있는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다 어느샌가 솔솔 들려오는 그의 얕은 숨소리에 머리카락을 만지던 손을 멈추고 그의 콧대를 따라 매만졌다. 혹시나 그가 깰까봐 조심히 종이를 만지듯 못난 곳이 없는 그의 구석구석을 한번 만져보았다. 남자얼굴을 이렇게 만져보고 허벅지를 내준 것도 처음이라 신기하고 떨렸다. 눈가를 꾹꾹 마사지해주다 내려와서 분홍빛을 머금은 도톰한 입술 위로 손가락을 멈췄다.
아, 그러고보니 어제 밤, 이 예쁜 입술이 내 피부 위로 데였던가.
바다를 탐내는 자들.
Two Hearts.
w. 그루잠.
-3# 벽. (부제: 아직, 아직이요. focus-태형과 탄소)
선배의 방을 들어가니 선배는 뒤돌아 그대로 얼굴을 큰 손바닥으로 쓸어내리더니 한숨을 내쉬면서 방 안 쪽 화장실 문을 열었다. 하늘색 빛을 띄던 화장실 전구를 보고 아 갖고 싶단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태형 선배의 등은 만지고 싶을 정도로 매끈하고 섹시한 구리빛을 띄었다. 잔근육까지 눈을 쫓던 나는 그가 문을 닫고 들어가서 물소리가 안에서 들려오자 처음 들어오는 남자의 방을 탐색하기로 했다. 목욕가운을 입고 팔짱을 끼곤 방안을 천천히 둘러보니 방 한 가운데에서 옆쪽으로 붙은 흰 시트의 킹 사이즈 침대. 금방이라도 달려들어 누우면 폭하고 잠이 쏟아질 것 같이 생겼다. 침대 옆에는 전신거울과 책상 하나. 반대쪽 편에는 벽장 안에 옷장이 있었다. 책상으로 가까이 가보니 책상 위 곱게 올려져있는 무광의 작은 사진. 이거 내 증명사진이잖아? 것도 유리 안에 끼워져 있다. 유리를 들어올리기가 쉽지 않아서 포기했다. 왜 선배가 내 사진을 들고 있지?
찜찜한 기분에 그냥 생각하지 않기로 하고 선배의 새하얗고 푹신해보이는 침대에 몸을 풀썩하고 뉘였다. 되게 편하다. 새하얀 페인트가 평평하게 발린 천장을 눈을 껌뻑거리며 보고있자니 좀 심심했다. 심심하기도 했고 몸을 씻어야했는데 마음만 급한 탓에 태형 선배를 귀찮게 했다. 안에서 더이상 들리지 않는 물소리에 혹시 선배가 씻다가 자는 건 아닌지 화장실 문에 가까이 다가가 귀를 문에다 대고 무슨 소리라도 들을려고 애쓴다. 뭐지. 선배 진짜 자는건가. 왜 아무소리가 안들려.. 내가 한눈판 사이에 죽는 거아냐?? 싶어서 문을 열려는 순간.
백금색으로 변한 머리카락의 물기를 털털 털어내며 거의 다 마른 머리를 쓸어 올리고 물방울이 맺힌 몸. 아래만 흰 수건으로 가리고 나온 태형 선배.
안에서 열고 나오는 문이라 부딪힌 나는 발을 아야했다. 괜히 그를 걱정해서 펼친 오지랖에 험한 꼴 봤네. 아픈 발가락에도 불구하고 내 상상과 다르게 멀쩡하게 나온 태형 선배에 마음이 놓였다. 왜 거기있어. 아.. 저 아무소리 안들리길래 걱정돼서요.. 라고 개미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하며 고갤 내렸다. 내 머릴 쓰담아주는 손길에 올려다보니 입꼬릴 올리고 날 내려다보는 태형 선배. 밝은 갈색에서 흰 색으로 물들인 머리가 꽤 손길을 끌었다.
그런데 살짝 시선을 내리자 내게 너무나 가까운 태형선배의 맨몸에 머리엔 노란 신호가 왔다. 조금 위험하다고. 아직은 괜찮다는?
아래만 고작 흰 수건으로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는데 민망했다. 수건 틈사이로 보이는 구리빛 살색에 눈을 돌릴려고 해도 계속 은밀한 곳에 눈이 갔다. 남자를 자청하는 나라지만 실은 여자인 나. 여자인걸 알면서도 이런 차림으로 나온건 내가 그렇게 편하단건가. 하긴 방안으로 들인 것 자체를 별로 신경쓰지 않아보였다. 합리화지만 거기에 조금 안심한 나는 태형 선배가 흰 침대 끄트머리에 앉는 걸 보고 그의 앞에 가서 섰다. 팔을 뒤로 젖혀 몸을 뒤로 살짝 뉩힌 태형 선배는 다리를 꼬고 나를 호기심어린 눈으로 처다봤다. 그 모습에 홀린 것 같았다. 선배는 정말 섹시했다. 내가 남자였다해도 그를 섹시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부탁할게 뭔데?"
그의 말이 끝나자 목욕가운을 속옷이 보이게 어깨에서 끌어내렸다. 드러나는 상반신과 살짝 뜬 분홍색의 브래지어. 허리, 그리고 배꼽까지 내린 목욕가운. 피곤해 보였던 그의 눈이 커지는 김태형. 뒤를 보이게 해서 반밖에 못입은 속옷의 뒷 자크를 보였다. 선배. 제가 아무리 해도 안잠궈지던데 어떻게 잠구는 지도 모르겠고, 도와달라고 할 사람이 선배밖에 없더라구요. 너 원래 속옷 안입지..않나? 뒤로 조금 떨리는 목소리를 들은 것 같지만 나마저도 떨리기에 신경쓸 겨를이 없다. 일이 생겨서요. 훤히 들어낸 몸에 잠시 당황한 듯한 태형 선배가 잠시 고민하더니 침대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등 뒤로 들렸다. 갑자기 민감하고 남의 손길을 탄 적없는 미끈한 등을 그가 검지로 등 근육의 선을 따라 어깨뼈부터 시작해서 슬금슬금 내려가더니 종착지는 척추의 끝. 보일랑말랑하는 골반에 걸친 검은 레이스의 팬티. 가만히 골반을 지분거리기만 하는 선배에 뭐라 말할려고 고개를 돌릴려고 했지만 갑자기 골반을 끌어당겨 내 등이 자신의 상반신을 닿게 하는 몸짓에 끌려갔다. 뜨거운 물로 목욕한 건지 느껴지는 따뜻하고 물기어린 태형선배의 살결에 꼼짝하고 말았다. 스킨쉽. 조금만 더 사이를 좁힌다면 하반신까지 빈틈없이 닿을 것이다. 골반을 잡았던 손이 허리 옆선을 지나 배에 도자기 빗듯 따끈한 살을 느끼며 쓰다듬는다.
신음이 나올 뻔 한 걸 이를 악 물고 참으며 돌발 행동을 하는 태형선배의 핏줄 선 손을 붙잡았다. 잠시만,
"가만히."
내 손을 잡아 내리고 다시 끈적하게 쓰다듬는 선배에 야릇하고 찡한 감각이 아찔하게 스쳐가는 아랫배를 간질여 손을 쥐었다폈다를 여러번 했다.
쓰다듬는 범위가 슬슬 위로 올라오더니 가슴위에 헐렁하게 걸쳐있는 분홍색 브래지어 안으로 가슴 둔덕으로 올라가 바로 유두 밑. 봉긋하게 솟은 가슴의 밑을 놀리며 다시 내려갔다 훅하고 올라오는 손에 숨이 턱턱 막혔다. 거부할 줄 모르는 내 몸은 그저 태형 선배에 소리없이 반응했다. 그는 무릎을 굽혀 내 등을 혀로 밑에서부터 척추를 따라 느리게 핥아올랐다. 부르르 떤 나에 태형 선배는 내 몸을 마주보게하여 턱을 들어올리곤 그대로 내 목을 쪼옥쪽거리며 빨았다. 침대 옆에 있던 전신 거울에 우리가 어떤 자세인지 그대로 적나라하게 내 눈에 보여줌에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거울로 비치는 잔근육이 잘 잡힌 그의 구릿빛 넓은 등은 섹시하다고 생각했다.
몽롱한 기분에 태형 선배의 미끌거리는 어깨를 밀어냈지만 무너지는 다리에 핏줄 돋은 그의 팔이 내 허리를 감아올렸다. 피가 빨리는 느낌에 그의 어깨에 꽉진 주먹을 올리고 살짝 정신이 멍한 상태로 이를 문 입새사이로 무의식적으로 그만..그만.. 개미만한 소릴 흘렸다. 그에 입술을 움직이던 태형은 내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뱉던 소릴 들었는지 갑자기 움직임을 멈추고 내게서 떨어졌다.
그래. 그만하자.
뜬금없이 달아오르던 분위기를 끊고 윗입술을 혀로 훑은 태형 선배는 내가 꼼짝없이 당하다 그의 머리칼을 쥐고 만졌는지 헝클어진 앞머리를 쓸었다. 어리둥절한 이 상황에 거의 벗겨질 듯한 목욕가운을 동여맸다. 태형 선배가 스스로 멈추지 않았다면 잡혀먹힐 뻔 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가 평형심을 잃고 나와 끝까지 갔다면 정말 나도, 내가 쌓아왔던 꿈도 다 무너질뻔 했다. 한편으로 아쉬워하는 내 마음 어느 한 구석에 놀랬다. 어쨌든간에 그가 순순히 물러줬다는 것에 큰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 내가 무슨 생각으로 그의 방에 이 어두컴컴한 시간에 찾아와 도와달랬을까. 그는 내개서 등을 돌려 옷장을 열더니 그 안에서 무엇을 꺼내 와 내 앞으로 내밀었다. 붉은 상자. 나를 쓰다듬고 만지던 손에서 받아들어 여니 검붉은색 브래지어와 같은 색인 팬티. 남자가 여자한테 이런 선물을 주는 건... 무슨 의미지? 의구심을 품고 그의 눈을 올려다 봤다. 꽤 멀쩡해보이는 흥분조차 담지 않은 그는 어깨를 으쓱였다. 붕대로 그렇게 무장하고 사는 건 네 건강에도 안좋고 보는 사람도 그렇던데. 일부로 조용히 구해왔으니까 안심하고. 그러니까 벗어.
그래도 나름 생각해준 그에 잠깐 감동했으나 벗으라는 말을 듣고 동공이 흔들렸다. ....벗으라고? 상자를 들고 멍청하게 서있으니 그가 내 몸을 돌렸다. 부끄러우면 뒤돌던가. 목욕가운을 훅 내려서 그대로 브래지어끈을 풀어 벗겨낸 그의 손길에 휑해진 내 가슴을 황급히 가렸다. 여기서는 안보이니까 내려. 도와달라며. 가슴을 움켜가린 손 위로 가슴부분을 덮는 브래지어 부분을 올리기에 바로 끈을 어깨에 넣어 가렸다. 웃긴 내 행동에 그가 바람빠진 소릴 내며 웃으며 후크를 잠궈주었다. 역시 넌 아까 것보다 이게 더 잘어울리네.
가슴을 제대로 담지못한 브래지어의 앞 부분을 직접 손으로 끌어내려주는 그에 또 움찔했다. 뒤돌아선 나를 끌어 자신의 품에서 못나가게 어깨를 감싸안은 그는 그의 입술자국이 남은 내 목덜미를 아쉽다는 듯 혀를 내어 핥았다. 또 몽글몽글한 무언가 피어나는 듯 내 아랫배를 간질였다. 얇은 살을 핥는 거로는 성에 안차는 듯 내게 입술을 벌리며 다가와 내 입과 부딪히고 내 혀를 찾아 들어왔다. 나를 간접적으로 잡아먹듯 입술을 빨아올리며 혀를 감아올리는 행동에 내 안에서 무언가 흘러나와 아래를 적시는 느낌을 맛보았다.
축축하게. 부끄러움을 뒤늦게 알아차린 뇌는 얼굴을 붉히게 만들었다. 몇분지나지 않아 입을 떼고 그가 침으로 번들번들한 내 입술을 엄지로 훑어서 자신의 입 안으로 넣고 빨았다. 내게 박히는 갈망하는 눈빛이 계속 닿다 그는 눈을 깜빡였고 갑자기 자신의 방 문으로 걸어가 문을 열더니 나를 문 밖으로 밀었다.
"여기까지. 팬티까지 입힐 자신 없으니까 잡기 전에 가라."
문을 매몰차게 닫아버린 그에 나는 멍하게 한동안 노란 조명 밑 복도에 깔린 빨간 카펫을 밟고 서있다 정신을 잡고 계단을 천천히 3층으로 걸어 올라갔다. 손에 붉은 팬티를 들고 괴상한 꼴로. 방에 들어가 본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은 귀까지 홍조를 띄고 있었다. 간밤에 태형 선배가 잠궈준 속옷후크를 풀지 않고 벗어 욕조에 들어가 차가운 물로 계속 씻고 그가 닿았던 부분을 그가 줬던 레몬향 바디워시로 씻어내렸으나 오히려 더 진하게 느낌이 피부속으로 스며들었다.
속옷 후크를 먼저 잠구고 그대로 머리위로 넣어 내리면 되는 것을 급한 정신머리에 생각도 못하고 그에게 의도치 않게 도발을 하고 온 나는 정말 모지리인가보다.
그가 남자인 것을 생각 못하고. 역시나 크림슨 하트에 와서 그를 만난 후로 제정신이 아니다. 미친 것처럼.
*
어젯밤 일이 아직도 선명한데 나는 왠지 모르게 잠시 벽을 허물었었다.
아뿔싸, 내가 뭘 하는 걸까.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언제든 나를 여자라고 밝히고 이 크림슨에서 내쫓을 수 있는 그에게 놀아나는 느낌이 확 들었다. 크림슨에 들어온 이후로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속수무책으로 태형 선배에게 끌려다니는 나. 이러다간 진짜로 태형 선배에게 잡아먹히고 말 것 같다. 정말 일이 잘못된다면 나는 그 결과를 받아들일 자신이 없다. 삶을 잃어버리는 느낌을 겪어본 적이 없기에. 바다를 떠나 헤엄칠 자신이 없다.
물이 샌 듯 넘치게 들어오는 부정적인 생각에 홧김에 바로 옅은 잠을 자고있던 태형선배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잘 가만히만 있다 잠자는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는 나의 행동에 눈을 확 뜨고 창가에서 발을 내려 내 쪽으로 상체를 돌려 지나칠 정도로 차가운 내 눈과 눈을 맞췄다. 자신의 희고 아름다운 앞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쓸어 올리면서 내가 만졌던 입술을 열었다.
"가만히 있다가 왜 그래? 어제 너 때문에 잠 한 숨도 못잔 거 알잖아."
"제 허락없이 허벅지에 눕지 마세요."
"뭐가 문제냐고."
"제 몸에 마음대로 손 대지 마세요."
싫다면? 내게 바짝 다가와 한번도 본 적 없는 김태형의 무서운 얼굴에 마음이 흔들렸다. 너무나도 가까이 얼굴을 마주하는 김태형에 어제가 생각나 갑자기 분하고 부들부들 손이 떨렸다. 미쳤지 내가. 지금 여기까지 여지를 준 건 나였다. 알몸에 딸랑 하나 입고 목욕가운 그거만 걸치고 올라가 김태형에게 도와달라한 내가 미친 년이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할지 생각을 못할 정도로 그를 너무나 신용했다. 뭣때문에 그를 내 뇌리 안으로 들여보낸지 모르겠다. 그 사람의 존재를 안지 고작 몇주도 안됐으면서 경계심을 푼 게 잘못이다. 이때까지 잘해왔으면서, 왜 이러니 나 진짜.
무서울정도로 굳히고 날 쳐다보는 김태형에 나는 동공이 흠칫 흔들렸지만 꿋꿋이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다시 쐐기 박았다.
"질 나쁜 장난은 그만 두세요. 선배라도 이제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
질 나쁜 장난? 그 말을 끝으로 점점 더 무서워지는 김태형의 인상에 차 안 분위기마저도 내 목을 조이는 느낌이라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그저 포커페이스로 그의 대답을 기다릴뿐. 말이 심한 건 알지만 훈련장에서부터 해서 내가 여자란 걸 알고 나서 치는 장난은 어젯밤에 치닫아 이해할 수 없는 이 미묘한 분위기로 몰고 갔다. 언젠간 선을 그어야 할터. 언제까지 선배에게 끌려다닐 순 없었다. 아무리 나를 담당하는 선배라 해도. 내 꿈을 포기할 순 없다. 선배는 바짝 힘준 얼굴근육에 슬슬 표정을 풀어가며 그의 행동과 상반되게 언행을 했다.
"난 네가 해달란 거 왠만하면 다 들어줬고 어제도 내 나름대로 참을 만큼 참았는데."
"후배. 아껴주고 입 닥치고 있으니까, 내가 물로 보여? 잘해주니까 점점 기어오르지? 하긴. 내가 너무 봐줬다."
"남자취급을 받고 싶으면 몸도 남자처럼 하고다녀. 누구 들쑤시지말고."
그는 내가 정리해준 그 예쁜 머리카락을 보란듯이 헤집으며 내게서 아예 눈을 돌리며 아무것도 묻지 않은 입술을 손에다 닦았다. 그가 모르는 내 마음을 후벼파는 말을 속구로 던졌다. 니 필요할 때만 찾는게 나야? 이용하고 버리는 건가 보네.
"보기보다 영악하다, 너."
스트라이크.
그가 나를 상처줄려는 의도로 던진 말이라면 효과는 100%였다. 내 벽의 조그만한 구멍에 정확히 적중해서 쩍 금을 가게 했다. 왜 상처 받았는지도 모를 내 마음에 나조차 혼란스러웠다.
내 손가락 안을 매워서 빛내던 금빛 머리카락에게서 은근히 레몬냄새가 내 손에 배여와 내 손끝을 간지럽히는 듯했다.
그리고 잠시 머물렀다가 김태형이 열어둔 차창 너머로 휙 하고 바람이 건너와 향기를 몰고 공중으로 사라졌다.
차 안으로 차가운 바다가 한번 쓸어간 듯 분위기는 차갑게 식었고 나만이 상처받은 게 아니란걸 향기가 사라짐에 깨달았다. 아, 저 사람도 내게서 가시를 찔렸구나.
고개를 돌리고 밖을 아무말 없이 내다보던 태형 선배는 벌컥 차 문을 열고 나가 지민 선배가 앉았던 운전석에 앉아 쾅 차문을 닫고 시동을 켰다. 차 시동소릴 들었는지 급히 나무들 사이를 내려오던 지민 선배는 이제부터 태형 선배가 대신 운전을 해준다는 생각에 분위기도 모르고 눈이 접히게 해맑게 웃더니 조수석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다. 우리 태형이, 나 대신 운전해줄거야? 라면서 새하얀 미소와 끙끙대며 애교를 보이는 지민 선배를 쳐다보지도 않고 손가락으로 핸들을 피아노 치듯 두드리다 다부지게 잡곤 갑자기 엑셀을 밟았다. 그에 나도 지민선배도 중심을 못잡고 휘청였고 커브길에도 무자기로 기분대로 운전하는 태형 선배에 지민 선배가 어리둥절했으나 평소에도 보기 어려운 아니, 이때까지 보지 못했던 태형 선배의 감정없어 보이는 진정한 무표정을 보곤 입에 지퍼를 잠궜다. 이렇게 험악하게 운전하는 사람은 처음봤다. 지민 선배도 그렇게 부드러운 편은 아니었으나 속도제한 30이라 표지판이 길 거리 가장자리에 있던걸 박고 그대로 운전하는 것에 기겁했다. 폭발적인 속도와 차의 움직임에 거의 조수석에 매달리다싶이해서 차를 타고 온 것 같다. 라이언하트의 연회장에서 조금 먼 호텔로 달리는 차의 길은 험하고도 멀었다. 그리고 마음이 오락가락하며 기분이 수직하강을 달리는 날 시간조차 도와주지 않고 빨리 달려갔다.
갑자기 그를 만질 수 있던 방금 그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정말 그때만 만질 수 있게 허락했다. 그는.
3#-벽. (부제:아직, 아직이요.)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