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가 청소를 하고 태형이 감시하던 시각, 박지민. 그는 술에서 깨어나 정장 셔츠를 갈아입었다. 옷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박지민은 엘레베이터를 기다린다. 바다가 복도의 창문에 넘칠듯 출렁인다. 투명한 바다는 넘을듯 선을 넘지 않는다. 고개를 숙인 지민은 바다소리를 듣는다.
웬만하면 크림슨 하트 기지 맨 위, 보스는 지민을 소환하지 않았다. 그도 지민의 상태를 알아서. 5년 전 일이지만 아직은 견디기 힘들다. 술없이는 마음이 땅으로 꺼질 것 같다. 오늘 요원에게 보스가 호출했다는 연락을 듣고 유리잔을 놓았다. 기를 억누르는 보스의 위치. 저절로 그만 생각하면 고개를 숙였다. 내려온 엘레베이터를 타고 층을 올라간다. 전쟁 이후로 민윤기를 마주하기 버거웠다. 그 냉정한 눈을 보면 숨이 막힐 정도로. 총소리가 난무하던 전쟁터에서 모든걸 울리던 폭발음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세월에 묻어져갔지만 귀를 울린다. 보스를 피하는 지민에 일부러 자리까지 만든 보스.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도착한 보스의 방. 복도를 걸어가 문을 두 번 두드린다. 똑똑. 방 안에서 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회전했다. 벽에 걸린 사진에 꽂힌 나이프를 보던 민윤기.
"들어와."
정신사납게 돌던 의자를 멈춘다. 고급스러운 무늬의 떡갈 나무 책상 위에 민윤기는 나이프를 꽂곤 일어섰다. 보스의 방. 창문을 열어둬 들려오는 서늘한 바람소리. 박지민은 목덜미가 서늘해짐을 느끼고 방 안에 발을 들였다. 보스가 그 날에 대해 말할 것이란 걸 동물적 감각으로 예상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온도지만 그는 지민의 팔에 소름 돋게 만들었다.
"부르셨습니까."
"아직 마무리 못한 일이 있어서."
크림슨 하트 패밀리의 보스란 -탄소를 제외하고- 모두에겐 심해의 거대한 고래와 같다. 심해의 높은 수압처럼 분위기만으로도 그들을 제압한다. 보스에게서 공포를 느끼는 요원들을 본 적이 있었다. 보스들은 하나같이 매정하고 독하고, 어두웠다. 위엄있는 자들의 기는 아래것들을 눌렀다. 의지와 상관없이. 차갑고 얼어붙은 기운. 그 안에 숨겨진 생각을 읽을 수 없다. 크림슨 하트 보스들은 우리의 마음에 숨겨진 두려움을 자극했다.
우리는 그것을 '심해공포증'이라 칭한다.
윤기 이외에도 크림슨 하트 보스들은 그 수식어를 가지고 다녔다. 지민은 현재 보스를 두려워한다. 그 날 이후로 공포증은 지민을 잡아먹었고 그렇게 존경했던 보스를 피해다녔다. 정호석이 죽은 이유가 자신. 또는 보스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제가 한심했다. 하지만 정신을 놓고 있으면 언제나 보스 탓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보스를 무서워하는 이유는 진작에 알고 있었다. 심해공포증이란 말로 포장된 두려움. 보스가 위기의 순간에 제이홉처럼 나를 버릴지도 모른다. 의심은 의문의 꼬리를 물고 불어났다. 의심은 보스를 가까이 하지 못하게 반작용 효과를 주었다.
보스는 식은 땀을 뻘뻘 흘리는 박지민에게 다가갔다. 푸른 자켓 안주머니에서 고래가 수 놓아져있는 손수건을 내밀었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호석의 손수건. 민윤기가 건낸 손수건을 보니 울컥 차올라오는 정리 안 된 서글픈 감정. 고개를 숙여 눈물이 망막에 고인다. 모두가 흩어져버린 그 날 지민은 바다에 몸을 던질려고 했으나 막아선건 '석진'이었다.
그렇게 지민을 잡아준 석진은 그 날, 크림슨 하트를 배반했다.
서로를 사랑하고 길을 걷자고 한 약속. 전쟁 이후 지민의 마음과 함께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직 난 그대로인 척. 전쟁 이후 5년의 시간. 그리고 계속 될 바다의 삶의 시간을 버티기엔 지민의 정신은 그렇게 독하지 못했다. 지민의 강직한 몸뚱이 속엔 여린 영혼이 살고 있다. 곁에 남은 한결같은 김태형과 보스. 지민은 말 그대로 콩가루가 된 크림슨 하트 패밀리 족보에 목을 놓고 울었다.
맨정신으로 살 수 없던 지민은 결국 술에 의지를 하게 되었다. 지민의 마음을 아는 김태형은 같이 자리를 하게 되었다. 5년간 잠잠하게 살았다. 가끔 수면위로 떠오르는 정호석의 얼굴에 그때마다 다 잡을려고 노력했던 지민의 마음은 모래성처럼 우수수 내려 앉았다. 바닥으로 툭, 툭 떨어지는 방울방울. 나무로 된 바닥은 기름기로 인해 흡수치 못하고 표면으로 눈물을 밀어냈다.
지민의 포커페이스를 단번에 무너뜨린 것은 민윤기가 내민 손수건. 바다를 떠난 순수하고 아름다운 정호석의 손수건이였다.
어깨를 들썩이며 소릴 참았다. 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손수건을 손에 꽉 쥐었다. 보스는 내 아픈 손가락을 알면서…. 보스는 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어깨를 강다구있게 붙잡고 말했다. 도망치지 말라는 듯한 보스의 억양에 더욱 더 설움이 올라왔다. 끅끅거리는 넘어가는 숨소리에도 불구하고 보스는 강직하게, 허나 조근조근하게 달랬다.
"J-Hope. 영광스럽게 크림슨 하트를 구하고 떠났다. 제 의지였어. 너와 내가, 모두가 죽인게 아냐."
"……."
"떠난 놈들을 그리워 하지마."
이미 그들은 스스로 적이 되길 원했기 때문이야.
'적'. 적이란 소리에 눈물이 봇물터지듯 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콧물에 숨이 막혔지만 현실이 졸라오는 힘이 너무나 컸다. 전쟁이후 공백기 5년동안 도대체 뭘 한 걸까. 흐느끼는 소릴 내며 손수건을 더 꽉 쥐었다. 고래야 너는 아느냐. 그들의 판단이 옳았는지. 아님 내가 하고 있는 이 짓들이 옳은 것인지 말이야. 보스가 말한 아직 마무리짓지 못한 일은 아마 아슬아슬하게 서있는 나를 다잡는 것일 거다. 적어도 그럴 것이다. 자신의 오래된 동료가 죽었지만 보스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매정하게 호석을 잡지 않고 죽음으로 보냈다. 승리를 거머쥐고 이 자리에 오른 냉철한 남자. 그런 보스는 내게 명령을 내렸다.
"라이언 하트. 5년 이후로 너무나도 잠잠한게 수상해. 조사할 필요가 있어."
쾅-!!!!
??!!!!!
지진처럼 진동이 크게 일어나는 바닥. 폭발물이 내부에서 터지는 것을 온몸으로 보스와 느꼈다. 멈추지 않고 쾅쾅거리는 굉음에 멈칫한다. 지민의 어깨에서 손을 내려 놓았다. 슬픔을 폭격한 소리에 눈물이 멈췄다. 지민은 얼굴을 적신 물들을 벅벅 닦아내렸다.
"아침부터 수상하다 싶더라니."
지민이는 흔들리는 내부에 몸을 휘청이다 민윤기가 중얼거리는 말을 듣곤 눈을 크게 떴다. 크림슨 하트에 침입이라 말이 되는 소리인가. 입술을 악 문 그를 바라봤다. 보스는 그의 손에 든 손수건을 지민의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옷걸이의 푸른 정장 자켓를 내려 입은 후, -보스만 출입가능한- 외부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간다. 완전히 나가기 전, 지민에게 직설적이지 않은 말을 흘렸다.
"V는 15층 훈련장에 있을거다."
지민은 그 말을 듣고 보스의 방에서 뛰어나갔다. 복도를 품위떨어지게 뛰어와 엘레베이터의 버튼을 눌렀으나 내부가 고장난 듯하다. 기지를 흔드는 폭발.
아씨….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다 복도의 끝 난간에 몸을 앞으로 기대니 저 크림슨 기지 밑에서 섬만한 고래가 눈에 띄게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그냥 뛰어 내릴까.
하지만 바다에 빠져 헤엄치는 고래의 꼬리에 맞았다가는 인생 쫑나는 거다. 이 높이에 떨어지면 깊게 바다에 담겨 꼬리를 맞고 바로 즉사다. 뛰어드는건 포기하고 복도를 여기저기 둘러보다 열린 문새로 비상 계단이 보인다. 내려가는 것에 눈이 어두워 바로 엘레베이터 옆에 있는 비상출구 문을 못봤다.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니 까마득하다. 이래선 김태형에게 닿을 수 없다. 무전기도 놓고 온 상태라 마음만 급하다. 에라 모르겠다. 몸이 아작나는게 '적들'과 사단나는 것보다 훨 낫다.
크림슨 내부를 흔드는 폭발이 멈추지 않자 화상을 숙고하고 난간을 탄다. 흔들리는 계단 쇠난간을 타고 마찰음과 함께 쭈욱 밑으로 하강했다.
이때, 민윤기는 보스의 방에 딸린 테라스로 나가 주위를 살핀다. 탄 내와 재들이 공기 중에 떠다니며 기도에 들러붙는다. 쿨럭대며 손을 얼굴 앞으로 휘저었다. 방심할 때부터 알아봤다. 그렇게 내가 경고했거늘. 잿빛 연기로 가득한 간판 위로 작게 욕을 중얼거렸다.
"씨발. 일 똑바로 안 하지?"
바다를 탐내는 자들.
Two Hearts.
w. 그루잠
-1#(2/2) 하극상! Lion Heart.
꼭두 새벽에 크림슨 하트 기지 물자 창고로 들어오던 것들이 있었다. 민윤기는 잠이 얕은 편이라 푸른 새벽부터 외부로 향하는 문을 열고 나왔다. 그 뒤를 따라 검은 정장을 입은 요원. 민윤기는 반타원형 테라스 난간에 몸을 기대 감시한다. 전대 보스와 달리 현 보스는 예민하고 괴팍했다. 빈틈없는 조직에 의심이 많아 보스가 직접 감시했다. 옆에 대기한 요원은 요즘 꿈자리가 시끄러운 윤기를 알고 있다. 민윤기의 얼굴은 오늘따라 더욱 창백하다. 하얀 정장에 동화되는 피부색. 자몽색 머리는 칼처럼 반듯해 그를 더 딱딱해보이게 만든다.
크림슨 하트의 보스는 하늘 위로 운반되는 수하물을 찜찜하게 지켜본다. 수상한 컨테이너. 4시간도 안 자고 일어나는 보스 탓에 옆에서 명령을 대기하는 요원. 어떤 놈들이 크림슨을 침입하겠냐만은. 크림슨에 들어오기전 점검하는 장치가 무려 20가지. 내부부터 분석해서 분자까지 쪼개 분류하는. 20 km 반경부터 현재 기지에서도 감시중. 시스템을 감시하는 보안팀 요원들도 이백 명이 넘는다. 보안쪽은 그 자식이 잘 했었는데. 그리워하진 않아. 이미 없는 걸. 크림슨을 위협하는 존재들은 이미 대지에서 썩어가고 있다. 다시 불꽃이 살아날 일도 만무하지만 0.00001%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런 민윤기는 보안 요원들과 시스템을 믿지 않는다.
"웬 물자 공급이야. 들어올만큼 이번 달은 들어온 것 같은데."
"글쎄요…. 이번건 대지에서 보스께 잘 봐달라고 보내는 선물이라고 하더군요."
졸려하는 요원을 쳐다보곤 고개를 휙 돌려 헬리콥터를 노려본다. 내려오는 큰 컨테이너 여러개. 민윤기는 한 쪽 눈썹산을 치켜올렸다.
"뇌물이잖아. 우릴 뭘로 보고 이깟 선물이나 보내. 지들이 잘하면 알아서 서포트해줄텐데?"
민윤기는 차가운 쇠난간를 매만지며 시간을 끈다. 요원이 고개를 돌려 몰래 하품을 쩍 하자 민윤기가 뒤통수를 내리쳤다. 아! 외마디를 친 요원은 울상을 짓고 머리를 매만졌다.
"몰래하면 모를 줄 아나?"
"죄송합니다. 너무 피곤해서…."
"이자식들이 정신나갔지? 좀 풀어주나 싶으니까 나사가 빠져가지곤. 지금 보안팀 연락해서 내용물 제대로 파악하고 저거 오늘 안에 돌려보내라고. 뭔 일 생기면 목 날려버린다고, 똑똑히 전해."
요원은 험악해진 보스의 표정에 몸을 움추리곤 무전기를 들어 보안팀에게 연락했다. 하지만 그들은 방금 전까지, 컨테이너는 대지에 있을 때부터 검색 결과 별 문제가 없다고 보고했었다. 확인차에 물은 말에 똑같이 돌아온 대답. 보스에게 그대로 전하니 아무 대답이 없다. 반응없는 그는 방으로 돌아가 푹신한 의자에 앉아 펜을 쥐었다.
그만의 헤르츠로 무엇을 감지했을까.
*
한편 바다. 때는 해가 중천에 걸렸을 시각.
평화로이 깊은 바다를 떠있는 고래 위, 크림슨 하트의 기지는 꽤나 조용했다. 고래는 기지를 이고 잠든듯 조용히 물결을 흔들었다. 평화 그 자체. 구름없는 하늘에 태양만 하나. 기지 안 수백 개의 창문 안으로는 요원들이 바쁘게 나다니고 있었다. 그게 일상인 그들은 5년전 시끄러웠을적를 생각하며 평온을 느꼈다. 5년동안 유지되는 평화에 오늘따라 마음을 놓은 그들. 단지 정보자료실의 문만이 굳게 닫혀있었다. 극비사항이라 왠만하면 열리지 않는 문. 타자를 치는 소리만 들리고 식판만이 문사이로 오고간다. 각기 제 일을 하며 바삐 사는 크림슨 하트 요원들. 상반되게 여유로운 김태형과 탄소는 훈련실에서 한참 실랑이를 벌일 때다. 거대하고 잠잠한 크림슨 하트 기지로 천천히 다가오는 잠수함.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 물체가 파도의 균열을 깨지 않고 자연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다. 수면 위로 물을 뱉어대며 위용을 드러내는 잠수함이 올라온다. 파도 물결이 크게 일었으나 긴장을 풀고 있는 크림슨 하트 안 모든 이들은 알지 못했다. 감지 시스템이 돌아갔지만 전혀 레이더에 걸리지 않은 물체였다.
크림슨하트의 기지 전방 0.5 km. 그들은 서서히 파도를 몰고오며 접근했다. 적당거리를 유지한 잠수함은 곧 배의 형태를 찾았다. 뱃머리엔 사자의 모양이 새겨져있다.
덜컥. 위협적인 형태의 배 위 튀어나온 남자. 카키색 머리. 선장실에서 화려한 정장을 입은 카키색 머리 남자가 걸어나왔다. 남자는 눈부시게 크림슨을 비추는 태양의 빛에 크림슨을 아래로 내려다본다. 손등으로 얼굴로 내려오는 눈부심을 막았다. 입꼬리를 비쭉 올려 눈가를 장난스럽게 접는다.
"크림슨 하트."
언제부턴지 인기척없이 배의 아슬아슬한 난간에 팔꿈치로 기댄 남자. 다리를 흔들며 막대사탕을 입술로 빨고 있다. 어두운 눈빛으로 가득찬 어린 눈. 투명한 검정 머리카락은 바람에 날린다.
크림슨 하트의 기지 맨 아랫층을 무심코 본 검정 머리. 훈련장 안으로 매트 위에 쓰러진 어떤 남자 두 명이 보였다.
"아주 남자들끼리 문란하네, 김태형. 그런데 한 명은 누구?"
사탕을 빨던 행위를 멈추곤 너무 먼 거리에 눈을 찌뿌린다.
"보스. 들고 오셨습니까?"
아래에 집중을 분산시켰던 남자는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지 않고 바지 주머니에서 스위치를 꺼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기계를 머리 위로 흔든다.
"당연하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카키색 머리. 그는 난간으로 걸어와 아래를 보고 있는 사탕을 문 남자의 어깨를 손으로 쓸었다. 그제서야 고개를 든 검은 머리는 크림슨 하트의 기지 위 간판을 본다. 간판 위 보스의 방. 반응을 기대한다.
그리고 둘은 손바닥에 올린 스위치를 장난스럽게 보곤 건배하듯 스위치를 꾹 눌렀다.
"쇼타임."
쾅-!!!!
기지 안 폭발음과 진동이 시발점으로 순서대로 터지는 폭탄. 평화를 깨뜨리는 소음에 각층마다 검은 정장의 요원들이 방에서 뛰쳐나오기시작했다. 뭉개뭉개 창문 사이로 피어나오는 회색 연기. 카키색 머리는 비열한 웃음을 보였다. 흔들리는 기지 안. 창문을 통해 보이는 계단 난간을 타고 내려가는 박지민. 15층으로 도착한 지민이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보자 웃음을 슬쩍 지웠다.
민윤기는 근육을 풀고 난간에서 뛰어내렸다. 부시시한 공기. 보이지 않는 간판에 살풋 무릎 굽혀 착지했다. 슬슬 조용해지는 폭발음과 공기중으로 흩어지는 회색 연기들에 천천히 드러나는 커다란 선박. 언젠간 일이 생길거라 예측했지만 제일 방심했을때 치고 들어오니 기분이 더럽다. 그리고 낯선 배와 접촉부분으로 걸어간다.
맑아지는 시야에 어떤 새끼가 도발했는지 보자하고 올려다보니 비열하게 웃는 놈의 모습이 드러났다.
"…라이언 하트."
"오랜만이다. 민윤기."
김남준. 라이언 하트 패밀리 보스.
5년 전 전쟁에서 패배한 놈. 크림슨 하트 패밀리의 하얀 머리, 전 대 보스의 책사. 보스직을 물려받는 계승자는 민윤기로 정해졌으나 이의를 제기한 김남준에 크림슨 하트 패밀리는 분열이 일어났다.
민윤기, 김태형, 박지민, 정호석, 김석진. 그리고 김남준, 전정국. 고래의 심장은 둘로 찢어졌다. 반쪽 자리들은 서로 숨통을 거머쥐기 바빴다.
김남준이 주장했던 불복 이유는 전정국의 아버지가 보스였기에 당연히 전정국이 이어받아야 한다는 것. 전 대 보스의 유언을 뒤집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대립를 넘어서 김남준은 반란군을 세웠다. 전대 보스가 살아있을적, 그의 명령을 받고 키운 어린 전정국을 제 것마냥 휘두른 김남준.
그렇게 우리는 전쟁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 '라이언 하트'라 불렀다. 고래이기를 거부한 놈들은 더이상 용서할 수 없다.
J-hope. 정호석은 중립이었으나 크림슨 하트 패밀리의 소속이다. 크림슨 하트가 전쟁에서 패배할 위기에 처하자 자폭하여 민윤기를 보스로 올렸다. 11명의 해양 마피아 보스들에게 인정받은 전쟁의 결과물. 민윤기는 손을 더럽히고 모두가 머리를 조아리는 바다의 왕의 자리로 오르게 됐다.
패배한 대가로 김남준과 전정국은 대지로 쫓겨났다. 불과 5년 전 전정국의 나이는 15살. 어린 놈이 떡잎부터 좋았다. 잃은 인재는 안타까웠으나 배신자인 그를 바다에서 추방했다. 김석진은 전쟁 중 끝물에 정호석이 자살을 한 후, 갑자기 민윤기를 등지고 크림슨하트 패밀리를 배신했다. 이유를 모르진 않았다.
박지민처럼 김석진은 두려웠다. 심해공포증은 그 둘에게 치명적이었으나 버티는 박지민. 도망친 김석진. 둘은 확연히 다른 사람이었다.
박지민은 김석진의 발목을 잡았으나 그 손을 지려밟고 대지로 떠났다. 크림슨에 남은 사람은 김태형, 민윤기, 박지민. 일곱 명에서 확 준 인원에 박지민은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강심장인 김태형은 여전히 굳건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는 민윤기의 말에 껌뻑 죽는 크림슨 하트 패밀리의 유망주.
패배자들은 결과에 따라 대지에서 썩어가는게 맞는 법.
우리를 대적한 놈들은 가만두지 않는다.
지금 뻔뻔하게 얼굴을 들고 있는 김남준이 벌인 상황은 엄연히 우리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 두 번째 전쟁. 5년 전보다 성장하여 몸집을 불려와 도발을 하는 김남준. 기가 찬다. 민윤기는 내려다보는 김남준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싱긋 웃는 김남준의 옆, 대단히 존재감을 드러내는 남자.
전정국. 세월을 뛰어넘고 엄청나게 성장했다. 5년만에 성인 남자의 티를 내는 얼굴선. 민윤기가 보았던 15살 소년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없다. 꿈으로 가득했던 검은 눈망울에는 먹물마냥 검은 야망이 가득하다. 5년 전 전쟁에서 위험 인물 1호라고 해도 과대평가가 아니였다. 위험하다. 5년 전의 전쟁보다 더 큰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김남준 손아귀에서 새끼고래는 동물의 목을 물어뜯는 야생 사자로 변해버렸다. 고작 5년 전, 소년은 김태형과 맞붙어서 승부를 가리기 힘들었다. 지금은 그 힘이 얼마나 컸을지 까마득하다.
살기 어린 전정국은 막대사탕을 와작 씹더니 민윤기의 앞 바다로 침에 얽힌 설탕 조각들을 혀를 내밀면서 뱉었다. 퐁당하고 가라않는 조각들이 바다를 작게 오염시킨다. 눈살을 찌뿌린 민윤기에 씨익 웃어보이는 검은 사자. 이제 선배들을 따르는 순한 양는 없다. 오직 독으로 가득찬 사자 한 마리가 배 위에 서서 내려다본다.
천상천하유아독존, 전정국.
민윤기는 배 위에서 내려다보는 놈들을 맞서 노려보니 그들 뒤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고래 사냥하러 왔습니다."
그저 정호석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만을 바란다.
1#(2/2)- 하극상! Lion Heart. 완료.
Lion Heart Boss,
전정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