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만의 시간
2부
4.
“뭐야, 무슨 일인데?”
쓸데없이 집요한 박찬열이다. 김종인이 가고 난 뒤로 한참을 그대로 엎드려 있는데 기어코 나를 일으키더니 계속 저 말만 하고 있다. 너, 백현이 닮아 가는 거냐. 눈치로 대충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긴 한데 그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으니 저러는 거지. 호기심 왕성하다 아주? 호기심 천국이야. 궁금한 게 많으니까 공부를 잘 하는 건가. 말이 왜 이렇게 되는 거지? 아, 몰라 몰라. 여기서 변백현까지 있었으면 어쩔 뻔 했어. 아오, 진짜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닥쳐, 좀. 나 지금 심란하다고.”
“냄새가 난다, 냄새가 나…. 야, 근데 걔 표정 완전 안 좋던데? 너한테 뭐 할 말 있어 보이던데 한번 가보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날 훑던 박찬열이 그 표정을 지우고 눈을 멀뚱멀뚱 뜨면서 나를 본다. 그래, 나도 알지. 김종인이 나한테 할 말 있는 것 같은 거 나도 안다고. 근데 그게 내가 기다리는 말이 아니라 나 좀 화났음. 이런 말이라는 것도 알아. 그래서 더 미치겠어. 이게 다 내 몹쓸 수줍음 때문이야! 그러게 왜 미리 말 안했어! 그때 벤치에서 좋아한다고 하는 김에 그냥 그러니까 ‘우리 사귀자’까지 말 했어야 했는데…. 아, 이건 내 실수다. 명백한 내 실수야. 망할!
“안 돼.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뭔 일이 있긴 있네.”
“아, 몰라. 나중에 말 해줄게. 그나저나 너 배터리 하나 나한테 좀 줘라. 충전 해놓고 안 가져와서 지금 폰 꺼지고 난리 났어.”
다행히도 박찬열과 핸드폰 기종이 같은 거라서 배터리를 빌리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기 하다가 갑자기 생각이 났다. 아, 기특해. 역시, 똑똑해 도경수? 간절한 눈빛으로 박찬열을 바라보는데, 배터리 얘기를 꺼내자마자 표정이 똥 씹은 표정으로 바뀐다. 그러더니 나한테 엿을 줘. 아, 거 되게 박하게 구네. 평소 같았으면 엿을 두 개 줬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내가 아쉬우니 그냥 조용히 하는 수밖에.
“제발요. 빌려 주세요, 찬열님.”
“싫은데. 내가 왜?”
“찬열이 형. 좀 빌려줘요! 제발!”
애원 끝에 얻었다. 기분 나쁘게도, 박찬열이 불쌍하니까 하나 던져준다. 이런 표정으로 배터리를 넘겨주었지만 괜찮아. 그래도, 아끼고 아껴서 집에 갈 때까지 버텨야지! 아, 스마트폰은 배터리가 너무 빨리 닳아. 짜증나. 혼자 중얼거리며 핸드폰을 켰다. 왜 이렇게 느려? 부팅도 되게 느리다. 짜증이 난다. 짜증이 나. 얼른 켜져라, 제발? 나 지금 똥줄 타서 미칠 것 같단 말이다. 어? 아, 드디어 켜졌다!
환하게 켜진 액정이 보인다. 문자고, 전화고 되게 많이 와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몇 개 없다. 전화 세 통에 문자 두 개. 카톡은 여러 개지만 그건, 김종인이랑은 안 하니까 패스. 전화 세 통은 모조리 김종인이고, 문자 두 개도 당연히 김종인이다.
[어디야.]
[전화 좀 받아.]
정갈하다. 딱, 그 애 답다고 생각했다. 근데, 문자에서 ‘나 화남’이 느껴지는 건 나뿐인가.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거겠지? 아무래도 말 안하고 먼저 학교 와버린 건 화날 만하다. 그래, 매일 학교 같이 가자고 한 게 누구였는데 갑자기 피해? 전화 했더니 폰은 꺼져있고, 반에 찾아왔더니 잔대. 이 얼마나 어이없는 상황이야? 박찬열이 늘 말하는 역지사지로 생각을 해 보면 나 같아도 몹시 화가 났을 것 같다. 지금쯤 아마 열 받아서 날 뛰고 있었겠지. 아닌가, 좀 슬프려나. 처음엔 화가 났다가, 생각을 거듭할수록 슬퍼 질것 같다. 예전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도 떠오르겠지. 상처 받을 생각부터 하고 있을까봐 그게 걱정이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아…. 나 좀 잘못 한 것 같다.
책상에다 머리를 마구 박았다. 난, 좀 맞아야 돼! 왜 이렇게 생각이 없어? 내 생각만 하는 거 맞구나. 내가, 내 생각만 하다가 또 일을 그르치겠구나! 아, 미치겠다 정말.
一
너무 미안해서 김종인 반에 찾아가려다가 포기했다. 내가 잘못한 거긴 한데, 피한 건 잘못이지만 일단은 내 입장도 들어봐야 되지 않겠어? 아, 그럼 만나는 게 우선인데. 만나기는 또 싫어. 왜냐면, 부… 부끄럽잖아! 상황 설명을 해야 일이 해결 될 텐데. ‘내가, 너한테 사귀자는 말을 하려고 마음을 먹으니까 막상 부끄럽고, 간지럽고, 이러이러해서 피했는데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우리 사귀자!’ 로 끝내야 하는데 아직 용기가 안나. 아오, 사귀자고 못하겠어! 이러는 주제에 김종인을 원망했어. 아, 종인아 미안해 진짜로. 이건 진심이야. 이런 내가 바보 같은 걸 알지만 이게 다 진짜 그 애를 좋아하니까 이러는 거다. 마음이 없으면 부끄럽지도, 간지럽지도 않을 거다. 왜냐면 안 좋아하니까! 근데 난 좋아하니까 이렇게 혼자 찌질하게 구는 거 아냐. 아, 그래 찌질하다. 찌질해 도경수. 경수야 너 왜 이렇게 찌질해? 찌질한 남자였어?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 찌질이. 찌질이만 도대체 몇 번짼지. 이제 그만해야지. 암튼, 쉬는 시간 마다 5반에 갈까 말까 고민하면서 복도를 어슬렁 거렸다. 그러다가, 참 역설적이게도 김종인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보일라 치면 숨었지만…. 게다가, 지금도 그러고 있는 게 함정이지만. 넋을 빼놓고 하릴 없이 우리 반 앞 복도만 왔다갔다 왕복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가 5반에서 나오는 하얀 애를 봤다. 어? 하얀 애? 오세훈? 걔를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얼른 숨었다. 오세훈은 김종인이랑 친하니까 혹시나 그 애가 따라 나올까봐서. 한참을 몰래 살피는 데 뒤따르는 검은 애가 없다. 아, 김종인이랑 같이 안 다니는구나. 뭔가 기분이 좋다. 그래, 같이 다니지 마. 너네 같이 다니는 거, 보기 안 좋다. 진작부터 좀 그러지. 그러면 내가 널 덜 싫어했을 텐데. 그래도 김종인 친구니까 좋게 봐줘야지. 게다가, 전에 한번 결정적인 도움을 준적도 있고 하니까, 인심 썼다! 내가 너 좋게 봐줌!
“너 뭐하냐?”
그러고 있는데, 오세훈이 숨어있는 날 용케 찾아냈는지 앞에 서서 날 내려다본다. 내려다봐? 얘도 키 크네. 근데 그 표정이 여전히 좋지가 않다. 띠겁다? 띠껍다? 뭐야, 아무튼 별로 안 좋단 말이다. 그 눈빛을 보니까 좋게 봐주려던 마음도 싹 사라지려고 한다. 그래서 나도 똑같이 안 좋게 봐주려고 했는데, 내가 워낙 선하게 생겨서 그게 잘 안 된다. 이건, 내 자랑이 아니라 사실이다.
“가던 길이나 가지?”
“너 말이야.”
“왜, 뭐.”
“너 김종인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
점점 더 얼굴을 들이민다. 하얀 얼굴이 가까워진다. 얜 또 뭐야, 징그럽게.
“내가 뭘?”
“걔 오늘 하루 종일 죽상이야.”
“헐….”
김종인이 죽상이라니. 나 때문인가? 나 때문인 거 맞는 거 같은데…. 오세훈의 말에 갑자기 침울해졌다. 맞구나, 진짜 걱정하고 있는 거구나. 지금이라도 달려가서 그런 거 아니라고, 니가 걱정하는 일 없을 거라고 말 해줘야 되는데. 마음은 벌써 5반 김종인 옆에 있는데, 몸은 아직도 여기에 있다. 아, 답답하다. 이런 내가 답답해.
“웬만하면 알아서 좀 잘 해라?”
그러더니, 작게 혀를 차며 가버린다. 어디가? 나 아직 대답 안했는데…. 아, 오세훈 말 때문에 더 복잡해졌다. 그래서 아예 바닥에 무릎을 안고 주저앉아버렸다. 종인아, 미안. 조금만 더 기다려줘. 내가 오늘 안에는 꼭 말하러 갈게. 그나저나, 오세훈 쟤는 뭘 알고 있는 거야? 김종인이 죽상인데 왜 나한테 와서 잘하래? 쟤 뭘 알긴 아는 건가? 이상하다, 이상해.
一
“…….”
요리조리 잘 피해 다닌다고 생각했는데, 일은 점심시간 식당에서 터졌다. 그래, 생각해보면 난 진짜 어설펐는데 오전까지 버틴 게 용해.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면 바로 앞에서 젓가락질을 하는 김종인이 보인다. 그래서 얼른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은 점심시간이었다. 밥을 받아서 백현이, 찬열이가 마주 보고 앉고 찬열이 옆에 내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쓸데없는 장난을 치면서 밥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내 앞자리에 누군가 식판을 턱, 하니 올려놓는 거다. 누군가 싶어서 고개를 들어봤더니, 다름 아닌 김종인. 굳어 있는 그 애의 표정을 보자마자 올라가 있던 입 꼬리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뒤를 쫓아오는 건 하얗고 표정이 썩어있는 오세훈. 알아차렸다. 내가 자꾸 피하니까 김종인이 찾아온 거구나. 왜 식당을 생각 못 했지? 망했어…. 우린 왜 홀수인거냐. 응? 백현아, 찬열아. 말 좀 해봐. 왜 하필 오늘 너네가 마주보고 앉은 거야. 말 좀 해보라고….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나를 보는 눈빛이 너무 따가워서 그냥 조용히 입 닥치고 국이나 퍼먹는 수밖에.
“이야, 떠들썩하고 좋다.”
“변백현, 흘리지 말고 먹어.”
떠들썩하기는…. 여기 떠들썩한 거 너 하나 뿐이야 백현아. 김종인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서 고개를 들어 백현이를 봤다. 신이 났는지 웃는 얼굴로 얘기하는데 칠칠치 못하게 입가에 밥알을 달고 있는 거다. 맞은편의 박찬열이 타박을 주면서도 떼어준다. 찬열이 쟤는 놀릴 거 다 놀리면서 은근히 잘 챙긴단 말이지…. 아, 내가 이럴 때가 아니다. 밥 빨리 먹고 도망가야겠다. 미안한데, 지금은 아니야 종인아. 그럼 도대체 언제냐고? 그건 나도 모르겠어. 하지만 확실한 건 지금은 아니라는 것. 오늘 안에는 할 거야. 그러니까 그런 눈으로 날 좀 보지 말아주라. 다시 고개를 돌렸다. 밥알이 코에 닿을 것 같은 거리다. 근데, 뭐랄까 나를 보는 김종인 눈빛이 화가 난 것 같긴 한데, 예전처럼 그렇게 차가운 눈빛은 아니라서 안심이 된다. 다행이다. 예전 기억까지 거슬러 올라가진 않았구나. 에이, 난 또 뭐라고. 나 혼자 설레발쳤네.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수저를 들었다.
“아, 근데 오늘 급식 너무 구려.”
“이게 뭐냐, 이게. 뭐? 맑은 삼계탕? 어디서 맹물에 말라비틀어진 닭다리 하나를 띄워놓고 삼계탕이래. 아, 진짜 화난다.”
“그치? 나만 그렇게 느낀 거 아니지. 아, 존나 맛없어. 오세훈 너도 맛없지?”
“어, 존나.”
나랑 김종인을 제외한 나머지 셋이서 급식에 대한 불만을 얘기한다. 그러고 보니, 맛도 모르고 먹었네. 아무 생각 없이 먹고 있었는데 쟤네가 말하니까 갑자기 맛없는 것 같아.
“도경수 넌 그게 맛있냐? 안 비려? 완전 비린데, 뭘 그렇게 열심히 먹어?”
“냅둬, 입맛이 좀 독특한가보지.”
“코에 뭐 묻었어.”
차례로 변백현, 오세훈, 박찬열이다. 박찬열의 말에 김종인이 말없이 내 코에 붙어있던 밥알을 떼어간다. 그러면 난 또 고개를 숙이고 밥을 마구 퍼먹고, 김종인은…, 김종인도 대화에 참여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그냥 밥을 먹는 것 같다.
“야, 나중에 영양사한테 따지러가자. 얼굴이나 좀 봐야겠음.”
“따지면 뭐해. 벌써 나왔는데.”
“아니, 그러니까 지금 따져야 다음 달에 안 나올 거 아냐. 아,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걸 넣은 거지? 뭐가 문제야? 영양사 문제 맞아?”
“야, 영양사 욕 하지 마. 그 누나 존나 예쁨.”
“예뻐? 진짜? 너 언제 봤는데.”
“전에 한번 봤는데, 완전 대박.”
진짜 시답지 않은 얘기를 나눈다. 어쩌다가 얘기가 저렇게 흘러가? 식단에 대한 불만에서 영양사 예쁘다? 뭐야 저것들. 뭐, 저런 얘기에 집중을 하고 그래. 그런 세 명을 한심하게 쳐다보다가 수저를 놓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드르륵, 의자가 끌리는 소리에 넷 다 나를 올려다본다.
“나 먼저 간다.”
김종인의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그랬더니, 박찬열은 나를 한번 봤다가 김종인을 한번 보고, 변백현은 왜 먼저 가냐고 묻는다. 오세훈은 내가 가든지 말든지 별 관심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 애는 나를 따라 일어날 것처럼 엉거주춤한 자세를 하고 있다. 그래서 백현의 말에 대답도 못하고 식판을 들지 않은 남은 한 손으로 대충 손을 흔들고 얼른 도망 왔다. 밥도 맛없고, 나 아직 덜 먹었는데, 아 배고픈데! 도저히 김종인을 마주하고 밥을 먹을 자신이 없었다. 그냥 김종인도 감당 안 되는데, 화난 김종인이라니. 아, 진짜 손에 땀나 죽는 줄 알았네. 빠른 걸음으로 식당을 벗어났다. 설마 쫓아올까? 좀 전에 진짜 쫓아올 것처럼 이상한 자세를 하고 있었긴 한데. 궁금해서 슬쩍 고개를 돌려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퇴식구에 식판을 놓고 있는 김종인이 보인다. 헐. 진짜 나 쫓아오려고? 잠시 멍하게 서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냐. 빨리 자리를 피해야지! 이대로 뛰면 모양새도 이상하고, 나 너 피하고 있다고 대놓고 말하는 꼴이니까 그건 안 돼. 그럼, 어디 숨는 수밖에 없겠는데 어디 숨지? 숨을만한 곳이 있나? 그 자리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숨을 곳을 탐색함과 동시에 식당 입구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김종인을 봤다. 헐! 날 봤어. 나한테로 오고 있어! 지금 당장 피해야해. 머릿속에 경보가 울렸다. 얼른 몸을 피해야한다. 김종인이 날 잡아 먹는 건 아니지만, 일단은 도망 가야해. 정신 못 차리고 고개를 돌리다가 화장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무작정 그 곳으로 빠르게 뛰었다. 아까는 뛰면 안 된다고 그래놓고 또 뛴다. 급하니까 나도 모르게 뛰게 되네. 육식동물한테 잡혀먹는 초식동물 같아….
화장실 빈 칸 안에 들어와서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러고 나서야 안심이 되는 거다. 문을 닫기 직전에 화장실에 들어오는 김종인을 봤지만 일단 몸을 피하는 데는 성공했다. 다행이다. 밥 먹고 갑자기 뛰어서 그런지 배가 아프다. 숨이 차고, 배도 아프고, 김종인은 문 밖에 있다. 이게 뭐야…. 피하긴 했는데, 이젠 어떡하지. 만약에 김종인이 안 가고 지키고 서 있으면? 점심시간 끝날 때까지 그러고 있으면? 생각해보니까, 지금이 딱 독안에 든 생쥐 꼴이 아닐까…?
시발, 망했어.
나 혼자 머리를 부여잡고 자책을 하고 있는데,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전화다. 무려, 문 밖의 김종인의 전화. 핸드폰을 쥔 손에 땀이 다 난다. 이마에서도 땀나는데, 손에서도 땀나. 아, 어떡하지? 어떡해. 받아? 말아? 받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조용하던 문 밖에서 그 애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받아.”
“…….”
“얼른.”
그래서, 얼른 통화 버튼을 눌렀다. 솔직히, 좀 무섭잖아….
“여, 여보세요?”
“문 열어.”
문 밖으로는 크게, 들고 있는 핸드폰으로는 작게 김종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직은 안 돼 종인아. 아직은, 황금 타이밍이 아니란 말이야…. 대답도 못하고, 문을 열지도 못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데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빨리.”
무, 무서워…. 하는 수 없이 또 문을 열었다. 끼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자 빈틈 사이로 무표정한 얼굴의 김종인이 보인다. 분명히 조금만 열었는데, 김종인이 열려있던 문을 확 열더니 내가 있는 곳으로 불쑥 들어온다. 그러더니 문을 잠갔어. 뭐, 뭐야? 당황한 눈으로 그 아이를 올려다봤다. 좁아 죽겠는데. 여기, 냄새나는 화장실인데 왜 이렇게 가까이…. 그것보다 밖에 사람 없나? 누가 보면 이상하게 생각 할 텐데! 한 칸에 둘이 들어 가있어. 그것도, 건장한 남자애 둘이! 같이 볼일을 볼 건 아닐 거 아냐.
“아무도 없어.”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 애가 나를 내려다보며 대답한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아….’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다시 그 애를 올려다보는데 표정이 되게 무서워. 오랜만에 보는 차도남 김종인이다. 차도남. 차가운 도시 남자.
“왜 도망가.”
물음표도 아니고, 마침표다. 끝을 올리지 않고, 내렸다고. 그게 더 위협적이고, 뭔가 더 화가 난 것 같아 보이고. 주눅 들어서 몸을 움츠렸다.
“도, 도망 안 갔는데?”
“나 피했잖아 방금.”
그 애가 그렇게 말하면서 점점 다가오기에, 피할 곳도 없는데 뒷걸음질 치다가 벽에 등을 박았다. 그러면 안 올 줄 알았는데 더 다가온다. 헐? 나 더 이상 도망 갈 곳도 없는데. 그만 좀 오라는 듯한 눈으로 올려다봐도 소용이 없다. 성큼성큼 다가온 김종인의 얼굴이 바로 코앞에 있다. 이, 이게 무슨….
“말없이 학교도 혼자 가고, 전화도 안 받고, 문자도 없고, 반에 찾아가도 자고 있고, 왜 그러는데 진짜.”
그래도 두 손으로 안 가둔 게 어디야. 침을 꼴깍 삼키며 가까이 다가온 그 애의 눈을 피하려고 눈동자를 마구 굴렸다. 진짜, 땀난다. 좀 전에는 뛰어오느라 땀이 맺힌 거고, 지금은 긴장해서 땀이 나는 거다. 아, 심장 떨려. 엄마, 나 떨려요. 얘 좀 떨어지라고 좀 해요. 제발.
“내, 내가 언제?”
“말은 또 왜 더듬어.”
아직은 아닌데. 황금 타이밍이 화장실은 아니잖아…. 물론, 니가 나한테 처음 고백했던 곳이 쓰레기장 앞이긴 했지만. 아무튼, 화장실은 좀 아니잖아?
“말 안 더듬었는데?”
나를 보는 따가운 눈초리에 그냥 입을 다물어버렸다. 그래, 인정. 나 말 더듬었어요.
“할 말 있어.”
“무, 무슨 말?”
대답하고 있는 와중에, 갑자기 그 애가 얼굴을 더 가까이 하는 거다. 아까는 코앞이었는데 지금은 더 가까이. 너무 가까워서 얼굴도 잘 안 보인다.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내 어디를 보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 이렇게 가까이 오면 안 되는데…. 팔딱팔딱 뛰는 소리가 들릴까봐 긴장이 된다. 침을 꼴깍 삼키는 소리도 들릴 것 같고. 바짝 얼어붙어서 괜히 시선을 아래로 깔았다. 그러면서 숨을 멈춘 채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긴장된다, 긴장돼서 미칠 것 같다.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으면, 그 애의 콧김이 내 볼에 닿는다. 아, 부…부끄러워.
곧, 김종인이 작게 웃는다. 그러더니 가까이 있던 얼굴이 멀어졌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참고 있었던 숨을 내쉬었다. 그나저나, 넌 왜 긴장 안 해? 나만 이렇게 떨리는 건가? 억울한 눈을 하고 그 애를 보면, 그 애는 좀 전의 차도남 눈빛을 버리고 조금 풀어진 눈으로 나를 보고 웃고 있다.
“나 피하지마.”
목소리도 조금 전과는 다르다. 아, 다행이다. 뭔가 안심이 돼서 바짝 긴장하고 있던 어깨에 힘이 빠졌다. 축 늘어졌다.
“안 피했어.”
거짓말도 잘한다. 도경수. 조금 찔려서 그 애의 눈을 피했다.
“거짓말.”
김종인이 귀신같이 내 맘을 알아채고 대답한다. 그래, 니 생각 내 생각 똑같아. 나 방금 거짓말했어. 이번엔 조금 아니고 많이 찔려서 대답 없이 그냥 눈만 깜빡였다. 민망하잖아…. 그러는데, 그 애의 손이 내 머리를 한번 쓸어넘긴다. 지금 내 머리 쓰다듬은 건가?
“생각해봤어.”
“무슨 생각?”
그 애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내 머리위에 올려져있던 손이 아래로 내려갔다. 김종인이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 조금 몸을 숙여 내 시선을 맞춘다. 지금. 그 애는 나를 바라보고 있고, 나는 그 애를 바라보고 있다.
“니가 나한테 왜 삐졌는지.”
“나, 삐진 거 아닌데….”
“아무튼.”
그렇게 말하면서 뚫어져라 나를 보는 시선. 그 시선 때문에 그저 눈을 깜빡이며 그 애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 이거 왜 이렇게 좋지? 진짜, 좋다….
“내가 사귀자고 말 안 해서 삐졌지?”
그걸, 이제야 알아챈 건가…. 너의 눈치에 박수를 보낸다. 조금 허탈하면서도 내 행동에 이유를 찾으려 생각을 한 끝에 결국 정답을 알아내고만 그 애가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고 말았다. 몰랐는데… 진짜, 둔하구나. 이로써 김종인에 대해 하나를 더 알아간다. 기분 좋은 일이다. 대답 없이 웃기만 했더니 그 애의 표정이 조금 쑥스러운 듯한 표정으로 바뀐다. 그러면서 내 시선을 피하며 입을 우물쭈물…. 아, 귀엽다.
“나는, 말 안 해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귓가에 울리는, 화장실이기도 하고 또 가까이 있으니까 더 크게 울리는 그 애의 낮은 목소리에 묘하게 공감이 된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 애를 바라보았다. 아냐, 여기서 설득당하면 안 돼.
“말 하는 거랑, 그냥 아는 거랑은 다르잖아.”
이번엔 김종인이 설득당해서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놓고 저도 놀라서 다시 나를 바라본다. 진짜, 귀여워. 근데, 이건 양보 못해. 풀어지려는 표정을 다잡았다. 그리고 눈을 부릅뜨고 그 애를 봤다. 그랬더니, 그 애가 작게 한숨을 내쉰다.
“꼭 그 말을 해야 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니가 하면 안 돼? 내가 해야 돼?”
그러니까, 그게…. 도저히 못 알아차리는 니가 너무 답답해서 내가 먼저 하려고 했지. 누가 하든 둘 중 하나만 하면 되는 거니까…. 근데, 막상 마음먹고 보니까 입이 안 떨어지는 데 어떡해. 부끄러워서 자꾸 피하게 되는데 어떡하냔 말이야….
이 수많은 말을 담은 표정으로 그 애를 봤다. 넌, 눈치 없어서 못 알아들을 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난 말 했어. 이왕 이렇게 된 김에 너의 입에서 그 말을 들어야겠다. 꼭, 듣고 싶어. 나는.
그 애가 또 한숨을 내쉰다. 다 알아, 얼마나 어려운지. 나도 다 알아…. 기다릴 수 있다고. 기다릴게. 그런 표정을 짓고 그 애를 보는데도 한참이나 말이 없다. 아, 답답해. 웃긴 건 아는데, 내가 말하는 입장이면 미칠 것 같은데, 들을 입장이 되니까 또 한없이 답답해진다.
“내가 좋아한다고 여러 번 말 했잖아.”
“그래서 손해 보는 기분이야?”
“그런 건 아냐….”
“난 너한테 듣고 싶은데…. 안 돼?”
“…난 니가 말해줬음 좋겠어.”
화장실에서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여기서 양보하면 안 돼. 그럼 평생 김종인한테 사귀잔 얘기 못 듣고 끝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그 애도 전혀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이 좁은 공간에, 둘이서 서로 마주보고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다. 이러다간 진짜 점심시간 끝날 때까지 이러고 있을 것 같아서 머리를 굴리다가 방법이 하나 떠올랐다.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말하는 걸로 하자.”
“…….”
“왜. 넌 나한테 듣고 싶고, 난 너한테 듣고 싶으니까 동시에 하자고.”
“알았어.”
김종인이 고개를 끄덕인다. 오케이, 동의도 얻었겠다. 잠시 숨을 멈췄다가 크게 내쉬었다. 아, 막상 말하려니까 또 떨린다. 으, 간질거려. 미치겠다 아주.
“하나,”
“…….”
“둘,”
“…….”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셋.”
분명 셋까지 세면 바로 말을 하기로 했지만,
“…좋아해.”
그 애의 입에서 나오는 그 말을 듣고 싶어서 나는 입을 꾹 다물어 버렸다. 욕심이 나는 걸 어떡해.
“사귀자….”
김종인이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조금은 떨리는 목소리로 내게 말해왔다. 그러다가, 곧 억울한 표정으로 날 본다.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그 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웃었다. 이제야, 좀 살 것 같다. 김종인이 뚱한 표정을 접고 나를 따라 웃는다.
“아, 졌다.”
그러더니, 내 눈을 한번 보곤 또 다시 쑥스러운 듯 웃는다. 한 손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말해온다. 그 말에 활짝 웃으며 가까이 있는 그 애의 허리를 붙잡고 안아버렸다. 어, 근데 좀 이상해. 분명 내가 먼저 안은 건데 왜 안겨있지…? 예상치 못한 기습 공격에 놀라서 허공에 붕 떠있던 그 애의 손이 어설프게 내 등에 닿았다. 잠시 망설이다가 이내, 내 등을 감싸오는 그 애의 팔이 단단하다. 나를 둘러 안은 그 애의 온기가 따뜻하다.
아…, 좋다.
***
그리고, 저는 죽었슴미다....
여러분 답글은 내일 제정신일때 달아드릴게요ㅠㅠ고마워여 사랑해여
내 사랑 다머거영....
드디어 사귄다!!!!!!!!!!!!!!!
아, 오지게 질질 끌었네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미안합니다. 사과할게욬ㅋㅋㅋㅋㅋㅋ
그나저나, 인티 글잡담에 제 글이 검색이 안되는데 저만 이런겁니까ㅠㅠㅠ
왜 이런거죠ㅠㅠㅠㅠㅠㅠ
흐헣....
우리 5편에서 만나요..
몽글몽글 쏘쏘 낑깡 백토끼 라면 파리채 민트색 순백흑백현 찌롱 까꿍
링세 아이엠벱 블슈 다이트 아가 마가렛됴 긍긍 춥파춥스 일초 딘듀
엨솜 준퍽 바니바니 됴짜 얌냠냠님 기억해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