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는 본부장이 날 좋아한다면
워커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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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로서 취한 직원들을 한명한명 챙기고 마지막으로 대리님까지 택시를 태워 보내고나니 그제서야 나도 취기가 도는 것 같다.
정신력으로 가까스로 버티고 있었는데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자기도 취했으면서 누굴 챙긴다고-."
"…."
"막내라고 다 챙겨줘야되나?"
"ㅎㅎ.."
마주앉은 본부장님을 보고도 ㅎㅎ.하고 웃으며 일어날 생각을 안하자 '일어나-'하며 내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워준다.
일어나서도 계속 정신을 못차리자 본부장님은 이대로 차에 타봤자 멀미 할거라며 날 데리고 편의점으로 향한다.
편의점 앞에 테이블에 날 앉히더니 들어가서 헛개수랑 숙취해소제를 사와 뚜껑을 열어 내 손에 쥐어준다.
가만히 앉아 얌전히 헛개수만 마시고 있는데 괜히 맨정신에는 못 할 말을 해본다.
"있잖아요.."
"네"
"본부장님 왜 저한테 잘해주세요?"
"…."
아무 대답도 안하고 빤히 쳐다보기만 하는 본부장님을 보고있자니 느낌이 이상해서 최대한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렸는데..
사실은 엄청 티났겠지? .. 아니 사람이 질문을 했는데 왜 그렇게 쳐다보기만 하냐고..ㅠㅠㅠ
"아!! 갑시다 이제!!!"
끝까지 아무말 없는 본부장님이랑 더 있기도 뭐하고..
어색해서 일부러 큰소리로 갑시다! 하고 일어나자, 본부장님도 아무렇지 않게 '갑시다~'하고 따라 일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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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류 작업을 하다가 본부장님 의견이 필요한게 있어서 얘기하려고 본부장실 문에 노크를 했다.
똑똑-. 안에서 '네' 소리가 들리기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본부장님이 의자에 등을 기댄채 눈을 감고 있다.
아침내내 이사님하고 통화로 큰소리가 오가는 것 같았는데.. 많이 피곤하셨나.
어떡하지.. 이따가 다시 와야하나.. 혼자 생각하고 있는데 여전히 눈을 뜨지 않은채 '놓고 가요'하고 말하는 본부장님에 쫄아서 '네….'하고 대답하고 뒤돌아선다.
놓고 갈 서류도 아니고... 의견 조율이 필요한 건데... 그냥 이따 다시 와야지, 뭐..
"아."
뒤돌아 나가려는데 '아.'하는 소리에 다시 뒤돌아서 본부장님을 쳐다보면 방금 전 들어온 사람이 나라는걸 몰라서 그랬다는 듯 앉으라고 한다.
"..저 이따가 와도 되는데..."
날 앉혀두고도 마른세수만 하는 본부장님이 불편해서 이따 와도 된다고 해보지만 이내 본부장님도 내 옆에 와서 앉는다.
"또 싸인?"
"아.. 아뇨!! 여쭤볼게 있어서.."
'본부장님 의견이 필요해서요..'하고 서류를 본부장님쪽으로 살짝 밀자 서류를 보기 위해 허리를 숙인 본부장님이 내 곁으로 훅 들어온다.
헙..! 향수 뿌리나.. 스킨냄샌가.. 남들한테 나면 독해서 아저씨 냄새라고 싫어할법한 남자들 특유의 스킨냄새가 진동을 하는데.. 싫지는 않다.
"이거는 저번 회의에서 말한대로 진행하면 될 것 같고-."
"…."
"이 프로젝트는 일단 보류 합시다."
"…."
"무슨 생각해요?"
"아…. 아니에요..! 죄송해요."
본부장님은 집에서는 어떨까.... 뭐 이런 생각 했다는거 알면 변태라고 생각하겠지?
"감히 상사가 말하는데 딴생각을 해요?"
"죄송해요..ㅠㅠㅠ"
"ㅋㅋㅋ이제 여기다 싸인해주면 되죠?"
질문에 답하기도 전에 손을 뻗어 내 손에 있는 볼펜을 가져간다. 펜을 가져가면서 또 손이 스쳤는데 본부장님은 아무렇지도 않아하는데 괜히 나 혼자 설레발 치는 것 같아 애써 아무렇지 않은척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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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장님이 내일 오전까지 넘겨달라고 하신 자료가 있는데 아직 정리가 다 안되서 오늘은 백퍼 야근 각이다... 일찍 들어가서 맥주나 한잔하면서 쉬고싶었는데ㅠㅠㅠ
야근 할 생각을 하니까 아직 2시밖에 안됐는데 벌써부터 피곤하고 우울해서 힘없이 화장실에서 자리로 돌아가는데 외근 나가는건지 본부장님이 급히 내 옆으로 지나간다.
어엇, 다녀오ㅅ... 인사도 다 못했네.
자리에 앉아 이젠 해탈하고 어차피 야근인데 천천히하자~ 심보로 멍하니 컴퓨터 화면만 바라보고 있는데 카톡이 울린다.
메신저도 아니고.. 이시간에 카톡 할 사람이 없을텐데..
[왜 힘이없어요?] - 이준혁본부장님
롸? 날 보지도 못한 것 같았는데 그 사이에 힘없는것까지 캐치했다고..?
[저요??]
[ㅇㅇ]
[야근이에요..ㅠㅠㅠㅠㅠ]
ㅋㅋㅋㅋㅋㅋㅋㅋ답장을 하면서도 웃긴게 메신저에서는 온점까지 붙여가면서 대답하면서 카톡은 또 'ㅇㅇ'이라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사람도 참 알수없는 캐릭터다. 공과사 구분짓는것도 아니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
[네... 팀장님이 자료 부탁하셨는데 안끝나요..]
[ㅋㅋㅋㅋㅋ]
[왜 웃으세요ㅠㅠ]
[화이팅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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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와줄까요?"
"아뇨! 거의 다 했습니다!!!"
"한시간전부터 다했다면서."
"이번엔 진짜!! 진짜 다했어요!!"
"안믿어요."
"네, 사실 조금 많이 남았어요. ㅎㅎㅎ"
"ㅋㅋㅋㅋ."
"이 서류는 이제 지온씨가 갖고 있으면 되는거고-"
"네!"
"이제 됐죠?"
"네 ㅎㅎ."
"진작에 도와달라고 했으면 한참전에 끝났을텐데."
"그래도 어떻게 본부장님한테…."
사실.. 나도 진작에 도와달라고 하고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이유가...
"처음하는일도 아니고. 서류작성만 몇번짼데 아직도 이딴식으로 하는겁니까?"
"회사 놀러다녀요? 언제까지 옆에 붙어서 하나하나 알려줘야 되는데."
"핑계 좀 그만댑시다. 알려주고 도와주는것도 한계가 있어요. 똑바로 좀 합시다."
다른 사원한테 화내는거 내가 다 봤는데 어떻게 도와달라그래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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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끝날때까지 기다려주고 그와중에 일도 도와주고.. 심지어 집까지 데려다줬다.
이거 백퍼... 본부장님이 나한테 마음 있다는건데.. ㅎ...
싫지만은 않은데 그래도 나는 사원이고.. 본부장님은... 나와는 너무 다른 세계 사람같잖아..
근데 뭐 행동보면 관심이 있는건 맞는 것 같은데 그렇다고 나한테 고백을 한것도 아니고. 사실 이전이랑 달라질건 없다.
딱한가지 달라진게 있다면.
"여보세요!"
-씻었어요?
"아직이요. ㅎㅎ"
-그럼 지금까지 뭐했어요?
"방 정리하고.. 그냥 뭐 이것저것…."
-배는 안고파요?
"괜찮아요! 본부장님은요? 저녁도 안드신거 아니에요?"
-오늘은 입맛이 별로 없어서.
"헐..밥이라도 먹고 헤어질걸 그랬어요!"
-배고파요?
"ㅋㅋㅋㅋㅋ아뇨ㅠㅠ"
-ㅋㅋㅋ나도 괜찮아요.
둘이 따로 전화도 할 정도로 더 가까워졌다는거? 이런게 썸타는건가? 헷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