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는 본부장이 날 좋아한다면
워커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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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본부장님 안피곤하세요?"
-괜찮은데. 피곤해요?
"아뇨 ㅎㅎ.
-그럼 그냥 끊으라는건가?
"아뇨!!!!!!"
-ㅋㅋㅋㅋ 소리지를것 까진..
"앗.. 죄송해요 ㅎㅎㅎ"
-뭐하고 있어요?
"집에서 뒹굴뒹굴이요. ㅎㅎ"
-뒹굴뒹굴?
…
침대에 누워서 한참을 통화하다 졸던것 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대로 잠들었나보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전화는 본부장님이 끊은 모양인지 꺼져있었다.
부랴부랴 준비하고 출근해서 회사 엘립레이터를 기다리는데 타이밍 좋게 문이 열린 엘리베이터에는 본부장님이 서있다.
"안녕하세요!"
"어제 피곤했어요?"
"네?"
"코 골던데."
"에?! 진짜요???"
"아뇨, 가짜요."
"아…."
"ㅋㅋㅋ."
실없는 장난을 치면서 어느새 내 옆에 붙어 웃던 본부장님은 다른층에서 회사 직원이 타 인사를 건네자 어느새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인사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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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는 순조롭네.. 생각하고 있었는데 옆팀 최팀장이 저 멀리서부터 씩씩거리는 소리를 내며 화가 잔뜩나서 우리 사무실로 들어온다.
저 꼰대. 오늘은 또 어떤 억지를 부리려고 왔으려나. 오늘의 타겟은 누구ㄹ...
"김지온 어딨어"
...^^ 오늘은 나였구나.
최팀장이 나를 부르는 순간 사무실의 모든 사람들이 날 쳐다보며 위로의 눈빛을 보낸다. 하하..^^ 저 괜찮아요.. ㅎ... 우는거 아닙니다..
날 불러세우더니 내가 작성한 보고서가 어쨌고 저쨌고.. 보고서를 이딴식으로 작성하면 어쩌구 저쩌구.. 그거 다 확인 받은거고 우리팀 사람들은 잘했다고 했는데..
뭐 원래 자기 일 잘 안풀리면 누구든 찾아가서 책임전가하고 화내는 사람이니까 별로 타격은 없다.
그냥 귀찮을 뿐.. 괜히 일 커지게 만들기 싫어서 반성하는 척, 미안한 척 하고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네네-하고 있으니 더 만만한가 갈수록 언성이 높아진다.
오늘은 또 어디서 일이 꼬였는지 평소보다 더 화가나서 간간히 욕도 하네. ㅋㅋ... 이젠 점점 억울해지려는 찰나.
"뭡니까."
사무실 전체가 울리도록 소리를 지르니까 당연히 본부장실에도 들렸겠지.
본부장님이 방 문을 열고 나와 여전히 화를 내고 있는 최팀장 앞에 선다.
나한텐 그렇게 큰소리를 내던 최팀장도 본부장님은 무서운지 갑자기 목소리가 줄어들더니 기어가는 목소리로 '김지온씨가 보고서 작성을 똑바로 안해서..'하고 얼버무린다.
본부장님은 날 한번 쳐다보더니.
"내가 검토 한건데요."
본부장님 한마디에 분위기가 더 싸하게 얼어붙었고 최팀장은 '아…. 죄송합니다-'하고는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후. 저 강약약강. 아주 그냥 뒷통수를 한대 쳐주고싶네.
"괜찮아?"
"네! 뭐.. ㅎㅎ"
날 옥상으로 데리고 온 본부장님이 괜찮냐고 묻는데, 뭐 안괜찮을게 있나.
난 잘못한거 없고 원래 이상한 최팀장이 괜히 꼰대짓 한건데!
난 당당해서 타격받은거 1도 없다니까 '다행이네-'하며 따뜻하게 웃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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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일과 중 마지막으로 본부장님하고 통화를 하는 건 어느새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하루종일 회사에서 보고 전화까지 하면 도대체 무슨 할말이 있냐 싶겠지만.
"샴푸 사러 가야돼요.."
"지금요?"
"네.. 까먹고 있었는데 다 썼어요.."
"지온씨 샴푸냄새 좋은데."
"샴푸냄새요??"
"네."
"어떻게 아세요?"
"옆에 가면 샴푸냄새 나던데."
"앟...ㅎ….."
내 샴푸냄새를 맡았다니. 왠지 부끄러운 기분에 말을 얼버무리자, 본부장님이 지금 갈거냐며 묻는다.
"지금 가야되는데.. 귀찮아요. 편의점은 비싸고.. 마트는 걸어가기에는 조금 먼데.. 음.."
"같이 갈까?"
"마트를요?"
"차타고 가야되는거 아니에요?"
"어.. 그건 맞는데…."
본부장님 집에서 우리집까지 차로 30분은 걸릴텐데 피곤하지도 않은지 진짜로 차를 끌고 우리 집앞으로 왔다.
"마트가 어딘데?"
.
"저는 이거 써요!!"
"샴푸도 엄청 많네."
"본부장님은 샴푸 뭐쓰세요?"
"아무거나요-"
"아…. 아무거나 말구 본부장님도 이제부터 이거 쓰세요! ㅎㅎ"
내걸 고르면서 본부장님 샴푸도 하나 같이 넣었다. 여기까지 같이 와줬는데 이정도는 뭐!
-
아침에 본부장님이 데리러 온다고 했는데.. 너무 일찍 일어났나.
화장도 다하고 옷도 열심히 골라 입었는데 아직 본부장님이 온다고 한 시간까지 1시간이나 남았다 ㅋㅋㅋㅋㅋㅋ
너무 오바했나...
오바한김에 더 오바해볼까....? 어차피 밥도 안먹고 나오는 것 같던데.
시간도 남았겠다, 집 앞 카페에 가서 커피랑 베이글을 샀다. 라떼.. 안마신다고 했으니까 아메리카노...
"본부장님 아침 안드셨죠! 요 앞에 카페 있는데요, 제가 자주 가는덴데 진짜 맛집ㅇ.. 에?!"
?
"여기 왜 다치셨어요?"
혼자 신나서 얘기하다가 본부장님 얼굴을 봤는데 살짝 상처가 있다.
하얗고 멀끔한 얼굴에 유독 붉은 상처가 눈에 띄어서 왜 다쳤냐고 묻자 머쓱하게 '아..'하고 손으로 상처를 가리는 본부장님이다.
어제 집에가서 가구 조립 한다더니 긁혔나.. 나도 모르게 내 얼굴이 따가운 것 같아 인상을 찡그리자 본부장님이 같이 얼굴을 찡그린다.
"내가 다쳤는데. ㅋㅋ"
"아…."
밴드가 있었던 것 같은데... 급하게 가방을 뒤져보는데 밴드가 안보인다.
우씨ㅠㅠㅠ 밴드 맨날 들고 다녔던 것 같은데 꼭 이럴때는 안보인단 말이야.
아. 지갑에 넣어놨다.
지갑에서 밴드를 하나 꺼내 본부장님한테 건네주며 '붙이세요!'했는데 자기는 안보인다며 다시 밴드를 나한테 주면서 붙여달란다.
거울 보고 붙이면 되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뭐.. 붙여줘야지.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또 처음인 것 같은데.. 오.. 샴푸냄새.. 이거 내꺼랑 똑같은건데. 어제 사준 샴푸 그새 뜯어서 썼나보네.
와 근데 그냥 봐도 잘생겼는데 가까이서 보니까 더 잘생겼네. 눈썹도 엄청 진하고..
"…."
"…."
밴드를 붙여주다 눈이 마주쳤는데 본부장님은 이번에도 안피한다.
나도 같이 쳐다보면서 침만 삼키다 '어…. 카페 베이글이 맛있어서요!!! 사왔..어요!!! ㅎㅎ' 하고 딴청을 피운다.
그런 내가 웃긴지 대놓고 웃는 본부장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