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요즘 핫하네."
"뭘 내가 핫해? 이건 내 남편이 핫한 거지.
그리고 핫한 게 마냥 좋은 게 아니라는 건 너도 알잖아."
"그건 그런데, 마냥 안 좋은 것도 아니지.
대중한테 노출되면서 기업 홍보도 되고."
"아 몰라 됐어. 나가.
안 그래도 머리 아픈데 너까지 거기에 짐 얹지 마라..."
*
요즘 인터넷을 아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기사의 주제를 꼽아보라고 하면,
단연 J 전자의 대표인 정재현일 것이다.
나는 그 옆에 붙은 쩌리일 뿐이고...
암튼 나는 그와 그의 기업, 나와 우리의 기업을 위해
21세기에, 2020년에 정략결혼을 하게 됐다.
나와 그는 정략결혼이라고 알고 있지만,
대중과 언론에게는 철저히 운명적 만남으로 위장했다.
서로의 성장을 위해 손을 잡았다는 걸 알면 반감을 살 것이 분명하니까.
"부회장님, 정 대표님 오셨습니다."
"왜요? 정 대표가 날 먼저 찾아올 일이 있나?"
"...그날입니다. 신혼집 들어가는 날.
그래서 데리러 오신 겁니다."
오늘이 그날이었구나.
결혼 전 신혼집에 들어가는 날...
서로 동의하에 하는 정략결혼이지만, 뭔가 팔려가는 기분을 지울 수는 없다.
그런 기분을 지울 수 없게 하는 건 아마도...
"..."
언론의 카메라가 자신을 향하고 있을 때,
대중들의 눈과 관심이 자신을 향하고 있을 때만
철저히 나의 남편이 되어주는 그 때문일 것이다.
(타이밍은 기가 막히게 알아서, 나에게 - 신호를 주듯 - 윙크를 한다거나
입가에 자잘하게 묻은 - 정말 티가 안 나서 멀리서 보면 모르는 - 것을 닦아준다거나
정장 치마를 입고 앉았을 때 정장 웃옷을 벗어 덮어준다거나 하는 행동을 한다.)
나는 그런 그를 알고도 그에게 모질게 대하지 못한다.
우리는 '표면상 부부'였으니까.
*
"오늘도 늦나요?"
"김시민 씨가 무슨 상관입니까?"
"그야...표면상으로는 제가 부인이니까요."
"여기선 그런 연기 안 해도 됩니다.
우리는 일 이야기 말고 할 이야기 없으니까,
앞으론 주의해주세요."
"...알겠어요."
신혼집에 들어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했다.
나는 재택 근무를 하는 날이 많았고,
그는 제품 테스트니 뭐니 회사로 나갈 일이 많아서
집에서 마주치는 일은 이렇게 출근할 때, 그가 퇴근할 때 뿐이었다.
요즘 신제품 출시다 뭐다 해서 바쁜 일이 많다더니,
밤늦게 들어오는 그가 조금 걱정돼서 한 마디 건넸는데
돌아오는 건 한겨울의 추운 날씨보다 차가운 그의 한 마디였다.
"그랬어요?
우리 어린이 친구도 열심히 공부하면
아저씨처럼 될 수 있을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는 그이상 다정할 수 없을 만큼 다정하면서
나에게는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
정략결혼임을, 마음과 사랑이라곤 하나도 없는 결혼임을 알면서
나는 그에게 서운했고, 속상했으며, 화가 났다.
그런 감정을 가지면 안 된다고,
그럴 리 없다고 부정하고 또 부정했지만,
"시민 씨도 볼래요?
우리 어린이 친구가 만든 건데, 제법 잘 만든 것 같죠?"
언론과 대중들 앞에서 보여주는 저 다정한 모습을 보면
나에게 하는게 아님을 분명히 알지만,
나는 그를 좋아하고 있었고
어느새 사랑하고 있었다.
어느날 그가 잔뜩 술에 취해 내 품에 안겼을 때,
"김시민 씨 입니까?
나 때문에 이 늦은 시간까지 깨어있는..."
그러다 결국 술 기운에 못 이겨 완전히 내 품에 가두어졌을 때는
잠시나마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나보다 한 뼘은 더 큰 그를 부축해 그의 침대에 눕히고서
찬찬히 그의 얼굴을 살폈다.
"..."
결국 내 눈이 멈춘 곳은 입술이었고,
그도 시선을 느낀 건지 눈을 떴었다.
놀란 나는 그의 방을 빠져나가려 몸을 돌렸지만
내 손을 잡아 침대에 앉힌 그에 의해 내 행동은 제지 당했고...
어느새 나와 그의 입술은 포개어졌으며
서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품에 가두었다.
아침이 오기 전 눈을 떠 그의 방에서 나와 평소처럼 사무적으로 그를 대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는 그날 밤의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게 1년, 2년...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어느날이었다.
*
[단독] K 그룹 김시민 부회장, 김 회장 뒤 이어 회장직 맡아...
"축하드려요, 회장님."
"축하...그래...회장이 된 건 축하할 만한 일이긴 하지...
근데 너 웬 존대야...그냥 편하게 해. 여긴 둘 뿐이니까."
"그래...근데, 이렇게 되면 더이상 매형...아니지 정 대표랑 관계를 이어나갈 필요가 없잖아."
"음...그건 그래. 나는 회장이 됐고 그쪽은 원하던 투자도 받았고...주가도 엄청 올랐으니..."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회장이 되었고,
그의 기업인 J 전자는 우리 회사의 투자를 받아 신제품을 무사히 출시했고,
그 덕에 주가가 엄청나게 올라 요즘 승승장구 중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성공 중일 때
이혼을 해야했다.
둘 다 원하는 바를 이뤘으니까 더이상 이 결혼 생활을 이어나갈
이유와 명분이 없다.
*
"약속대로...다음달에 이혼하는 걸로 하죠.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나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그에게 건넸고
"저희 부부는 서로를 위해 이혼하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제 아내가 아니게 된 김시민 회장의 앞날을 여러분도 응원해 주세요."
우리는 예정대로 한 달 뒤에 이혼했다.
법정을 나서는 순간에도, 짐을 빼기 위해 함께 신혼집으로 이동하는 순간에도
그는 다정했다.
물론...언론과 대중이 자신을 향할 때만.
"그동안 정말 고마웠어요.
이제 표면상 부부 생활도 끝났지만...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좋은 사업 파트너로 또 만나요.
감기 조심하시고, 잘 지내세요."
"그날은 진심이 아니었습니까?
그래서 이리 매정하게 구는 거예요, 시민 씨?"
"그날이라니요?
저는 모르겠는데요."
4년 전에, 그가 술에 잔뜩 취했을 때.
그가 말하는 그날은 그때임이 분명했다.
기억을 못하는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당신은 내가 그날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했겠지만,
저는 당신보다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 우리는 그럴 수 없는 사이가 되지 않았습니까?
그냥...마지막인데 아쉬워서 질러봤습니다.
불쾌했다면 미안해요.
잘 지내세요, 김시민 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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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렘의 남자들 패러디한 그거 보고...
떠올라서...끄적...네...
토끼 도영이 외전 마지막 쓰는데
마무리 부분에서 자꾸 엎어져서 이거 먼저 올려요ㅜㅜ
정말정말 곧 올라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주시고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이것두 원하시면 재현이 시점이나 뒷 이야기...들고와볼게요잇...
*제 글에서 저장하고 싶은 움짤이 있으신 분은 꼭 말씀해주세영
펌금 안 걸고 글 새로 올릴게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