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화도 잘 안 되는 것 같다 그러고. 요새 너 밥 잘 안 챙겨 먹는 거 같아서. 너 전복죽이면 환장하고 달려들잖아."
"뭘 또 환장까지야... 잘 먹을게."
"아, 물도 갖다줄게. 잠깐만."
"아니, 정말 괜찮..은데..."
죽 한 숟가락을 입에 넣기 바쁘게 김선호는 물을 떠다 주겠다며 부엌으로 홀라당 사라져버렸다. 핑계 아니고, 진짜 입맛도 별로 없고 속도 답답하고 그랬었는데. 이거 먹는다고 또 풀린다. 단순하기 그지없지. 금세 물 떠온 선호가 물컵을 테이블 위로 내려놓으면 괜히 눈치를 힐끔힐끔. 옆에 서있으면서 부담 갖지말고 먹으라고 손짓까지 해댄다.
"네 건 안 사왔어? 나 혼자 먹기 뭐한데..."
"나는 먹고 왔어. 걱정 말고 많이 먹어."
"...그럼, 여기라도 앉을래? 너 그러고 서있으면 내가 못 먹어."
"어, 어어."
침대 구석에 살짝 걸터앉은 김선호를 한 번 보고, 죽을 한 입 떠먹었다. 진짜 다행이지. 죽 아니고 밥이었으면 이미 토하고도 남았다. 누가보면 죽 사오기를 기다려온 사람마냥 한그릇을 싹 비워내니까 구석에 앉아있던 김선호가 벌떡 일어나 간이 테이블을 집어들었다.
"치우고 올게."
"아니, 아니야. 이건 내가 할게."
"그냥 쉬어~ 이거 갖다놓는 게 뭐 어렵다고."
"그니까! 뭐 어려운 일 아니니까 내가 할게. 나 어디 아픈 것도 아니고..."
"내가 너 먹이겠다고 가지고 온 거잖아. 뒷정리도 내가 해야지."
"아니 정말 내가 할,"
서로 테이블 모퉁이를 꽉 붙잡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나때문에 죽 사서 달려온 그 마음이 미안하기도 고맙기도해서 양심상 정리라도 내가하자 싶었는데. 그래서 그러다 양보 않는 김선호에 괜한 오기가 생겨서. 내 쪽으로 더 잡아당겼다가 선호가 더 세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쟁반 위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던 물컵이 결국 엎질러져버렸다. 하필이면, 김선호한테로.
"..."
"..."
"아, 아 나 진짜 괜찮아. 어. 봐봐. 별로 젖지도, 젖..."
"많이 젖었는데..."
"..."
괜찮다면서 보라더니 제 몸을 내려다보는 선호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물은 거의 안 마시다시피 마셔서 남아있는 양이 꽤 됐고, 그게 다 걔한테로 엎어졌으니. 티셔츠는 물론이고... 그냥 배부터 바지까지 흠뻑 잘도 젖었다. 물컵이 쏟아지고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고있는 와중에도 쟁반을 놓는 손이 없었다. 축축하게 젖은 옷을 보고있는 선호를 보다가 다시 쟁반 쥔 손에 힘을 주면 내 쪽을 슬그머니 쳐다본다.
"이리줘. 이건 내가 치울게. 넌 씻고와."
"씻, 뭐?"
"그러고 가게? 내가 억지 부리다 엎은 거니까 그렇게 해줘. 너 그런 채로 보내면 내가 어떻겠냐."
"...알았어, 그럼. 그렇게 할게."
대충 펑퍼짐한 옷을 안겨서 욕실로 들여보내고, 엎어진 물잔이랑 흔적들을 치웠다. 정신없이 치우다 다시 침대에 털썩 앉았을 때 든 생각은.
"미쳤나봐..."
욕실에서 들려오는 물줄기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 지금 김선호보고 뭐라 한 거니. 거기서 물은 왜 엎질러선... 내가 미쳤지 미쳤어. 얘가 지금 얼마나 놀랐겠냐.
혼자 머리쥐어뜯고 난리 치다가 물줄기 소리가 끊기면 급히 머리를 손빗질했다.
"아, 이거."
"뭐야, 이게?"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어디서 웬 봉지를 가져와서 내미는 김선호에 머리를 정리하다말고 받아들었다. 뭐냐고 물으면서 이미 봉지 안에 손을 쑥 넣었다.
"소화제랑 너 좋아하는 간식들. 그건 속 괜찮아지면 먹으라고."
"..."
"내가 오버했나?"
이런 거 챙겨주는 건 반칙 아니야? 봉지에 든 소화제 두 병과 여러 군것질거리를 확인하고 입술을 깍 깨물었다. 어. 완전 오버야 너. 말 한 번 했다고 이러는 애가 어딨어. 누가 전복죽에 소화제에 간식까지 바리바리 싸들고 오냐고.
"그래도, 내 고백 받아달라는 소리로 이러는 건 아니야. 쉬려고 누워있는 애한테 그런 소리 안 해."
좀... 하지. 해보지. 지금 이런 상태면 네가 받아달라고 땡깡부려도, 좋다고 백 번이고 수락할텐데.
미치겠네 진짜. 내 속마음이 튀어나와서 너한테 닿을지도 모르겠다.
... 나 방금. 너랑 그 이상을 꿈꾼 거 같아.
친구도 남도 아니라, 새 선택지가 들어섰나봐.
"뭘 그렇게 빤히 봐. 민망하게..."
난 단순한 놈이라. 네가 전에도 좋았고, 지금도 좋아서. 너랑 연애같은 게 하고 싶어. 그러고 싶어졌어.
*
사족 |
오느른 좀 이른 시간에 왔져? 이제 얘네를 사귀게할 때가 왔나봅니다... 사실 6화 안에 완결 예정이었는데? 분량도 적구 쓰다보니 이게 8화네요. 6화에는 뭐 겨우 고백이었는데 무슨 생각으로 그 안에 끝날 줄 알았는지 모르겠네요^_^.... 아무쪼록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건강 유의하세요! 또 뵙겠습니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