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경기가 있던, 그러니까 재욱과 주리의 오해가 풀린 날도 벌써 일주일이 넘게 지났다. 주리는 학교에 가기 전까지 어색할 텐데 어떡하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아무렇지 않게 말을 걸어오는 재욱 덕에 금방 마음을 열 수 있었다. 주리는 그런 재욱이 고맙기도 하고 이런저런 생각에 멍을 때리고 있으면 옆에서 말을 걸어오는 재욱이었다.
"멍 때리면 얼굴 커진다. 뭔 생각을 그렇게 해?"
"죽는다. 언제 왔어?"
"방금. 관심 좀 가져주지?"
"모를 수도 있ㅈ"
"김주리!!"
주리가 대답하던 중 교실로 들어오는 혜윤에 의해 대답을 하다 말곤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혜윤이 귀찮다는 표정의 영대를 끌고 오는 중이었다. 혜윤은 마주 보고 앉아있는 주리와 재욱을 번갈아 보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와, 난 아직도 너희 둘이 그렇게 지내는 거 보면 적응이 안 돼."
"이제 적응할 때도 됐지."
"아 아무튼 주리 너 오늘 끝나고 뭐해?"
"몰라. 왜?"
"같이 치킨 먹자. 이재욱 너도!"
"야, 다음 주면 시험이야."
"아 오늘만! 응?"
혜윤의 물음에 주리는 재욱을 쳐다봤고 재욱은 주리를 한번 쳐다보곤 고개를 끄덕이자 주리도 알았다며 대답했고 혜윤은 기분이 또 좋아진 듯 방방 뛰며 교실을 나갔다.
종례가 끝나고 재욱과 함께 교실 밖으로 나가니 혜윤과 영대가 있었고 혜윤은 주리를 보자마자 팔짱을 껴왔다. 그런 둘을 보던 영대도 재욱에게 팔짱을 끼려 하자 질색하며 쳐내는 재욱이었다. 치킨집에 도착해 이것저것 주문하고, 음식을 기다리던 중 주리는 도현에게 온 전화에 자리에서 일어나 전화를 받으러 나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자리로 돌아온 주리에 혜윤이 "남친?"하고 물으면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주리에 재욱은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근데 너넨 어떻게 사귀게 된 거야? 성격이 정반댄데."
"음... 내가 얘 엄청 따라다녔지. 중1 때부터였을 걸? 맞지?"
"아마도?"
"근데 고백은 쟤가 먼저 했어 ㅋㅋㅋ"
"진짜? ㅋㅋㅋ"
"내가 한 1년 정도? 쫓아다니다가 얘가 너무 철벽치니까 걍 마음 접으려고 했거든."
"철벽이 어느 정도였길래? ㅋㅋㅋ"
"먹을 걸 갖다 줘도 안 먹는다고 무시하질 않나, 말만 걸어도 째려보고 아주~"
"그 정도로 내가 쳐내진 않았지."
"맞거든--;; 암튼 그래서 한 일주일 정도 내가 잠잠해지니까 얘가 먼저 물어보는 거야. 왜 이제 자기 안 좋아하냐고. 그래서 뭐 나도 이제 나 좋다는 사람 좋아할 거라고 막 얘기하다가 결국 얘가 사귀자 해서 사귀게 된 거지."
"헐..."
혜윤은 입을 틀어막는 주리의 반응에 재밌다는 듯 웃다가 눈치를 보더니 "너넨 어떻게 만났었는지 물어봐도 돼?"라고 물었고 주리는 혜윤의 말에 재욱을 쳐다보았다. 재욱은 뭐 그런 걸 물어보냐고 인상을 썼고 주리는 "근데 진짜 별거 없어."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쟤랑은 그냥 소개로 연락하다가 친해졌고, 그러다가 호감 생겨서 사귀게 된 거지 뭐."
"누가 고백했는데?"
"고백은 이재욱이 했지. 첫눈 오던 날?"
"헐~ 이재욱 너도 은근 로맨티스트구만?"
"뭐래."
"심지어 쟤가 나 입학식 때부터 좋아했었대 ㅋㅋㅋ"
"와... 미쳤네?"
그렇게 옛날이야기들을 하다가 치킨을 다 먹고 나와서 혜윤, 영대와 헤어지고 재욱과 주리는 정류장으로 향했다. 가는 동안 어색한 분위기에 주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누나랑은 요즘 잘 지내?"
"뭐, 그럭저럭. 너 강민아랑 아직도 연락하냐?"
"엉. 왜, 민아랑 전화 한번 시켜줘? ㅋㅋㅋ"
"ㅋㅋㅋ 뭐래. 그냥, 중학교 때 너랑 제일 친했잖아."
"그렇지."
또 한참을 말없이 있던 중 주리는 핸드폰을 켜 버스 시간을 확인하였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내다가 갑자기 궁금한 게 생겼는지 재욱을 보았다.
"근데 넌 나 전학 왔다고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어?"
"난 좋았는데."
"뭐?"
"말했잖아. 난 너 싫어한 적 없어. 그래서 좋았는데."
"..."
"버스 왔네. 가라."
주말이 됐고, 오늘은 도현과 같이 공부하러 도서관에 가기로 한 주리는 일찍 일어나 준비를 하고 공부할 책을 챙긴 뒤 집에서 나왔다. 동네에 있는 도서관에 도착한 도현과 주리는 많은 자리 중 붙어있는 두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아 책을 폈다. 공부를 시작한 지 한 시간이 좀 넘었을까 슬슬 졸리기 시작한 주리는 그대로 엎드려버렸고 도현은 그런 주리가 귀엽다는 듯 웃었다.
30분 정도 잠든 주리는 엎드린 채로 잠에서 깼고 눈만 떠보면 자신을 바라보며 엎드려있는 도현이 있었다. 주리가 몸을 일으키니 도현도 일으켰고 도현은 "잘 잤어?"라며 놀리듯 이야기했다. 주리는 많이 피곤한지 잠을 깨기 위해 뺨을 꼬집었고 도현은 점심시간도 다가오고 주리의 잠도 깰 겸 주리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도착한 곳은 근처 패스트푸드 점이었고, 배가 고팠는지 음식이 나오자마자 먹는 주리였다.
"ㅋㅋㅋ 배고팠어?"
"응. 너도 빨리 먹어. 맛있네."
"ㅋㅋㅋ 그래. 천천히 먹어."
밥을 다 먹고 나와서 소화도 시키고 산책도 할 겸 걷던 도현과 주리는 잠시 쉬어가기 위해 벤치에 앉았다. 이제 12월이 다가와서 그런지 제법 쌀쌀해진 날씨에 양팔을 쓸어내리는 주리에 도현은 그녀를 꼭 껴안았다. 가만히 그렇게 있던 중 주리의 핸드폰에서 울리는 카톡 소리에 핸드폰을 확인하면 혜윤이 단톡방을 만들어서 어제 치킨집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내주는 것이었다. 주리가 웃으며 사진들을 보고 있자 도현도 그녀의 시선을 따라가면 낯이 익은 남자의 얼굴에 잠시 생각하는 듯 허공을 보고는 영화관에서의 만남이 떠올라 표정을 굳혔다.
"이 사람, 그때 만난 사람 아니야? 너랑 싸웠다던."
"어? 아, 영화관에서? 맞아. 근데 얼마 전에 잘 풀렸어. 그걸 기억하네?"
"... 같은 학교야?"
"응. 왜, 표정이 왜 그래?"
"아, 아니야. 잘 풀렸다니 다행이네."
"그치. 내가 괜히 오해했던 거더라고. 아 이제 진짜 춥다. 들어갈까?"
"... 그래."
도현은 공부하면서도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혹시나 그 남자가 주리의 전 남자친구면 어떡하나, 만약 그렇다면 주리가 다시 그 남자에게 마음이 생기면 어떡하나,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가 주리를 보면 주리는 시선을 느꼈는지 도현을 보며 배시시 웃었고 도현도 그녀를 따라 작게 웃곤 '그래. 이미 헤어졌는데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하며 주리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말고사가 시작됐다. 주리는 긴장이 되는 듯 손톱을 뜯고 있으면 옆에서 딱밤을 때리는 누군가에 고개를 휙 돌리면 재욱이 서 있었다.
"손톱 좀 그만 뜯어라. 그리고 이거나 마셔."
말을 끝으로 포도 주스를 내미는 재욱에 주리는 어이없다는 듯 웃다가 고맙다고 하자 재욱은 "시험 잘 봐라."라고 말하곤 자신의 자리로 갔다.
시험이 끝나고 나름 만족한 듯 그제야 한숨을 크게 쉬는 주리에 재욱은 "잘 봤냐?"하며 물었고 "괜찮게 본 듯?"이라며 대답하는 주리에 자기가 준 포도 주스 덕분인 거라며 비아냥거리는 재욱이었다. 주리는 이에 웃으며 중지를 날리고는 가방을 메고 교실 밖을 나갔고 재욱도 가방을 챙기고는 빠른 걸음으로 주리를 따라잡았다.
"그렇다고 먼저 가냐?"
"어차피 같이 가봤자 정류장까지만 같은 길이잖아."
"참나. 그럼 오늘은 너희 동네 놀러 가야겠다."
"우리 동네에 친구도 있었어?"
"응. 너."
"누가 놀아준대? 그리고 내일도 시험이거든--;;"
"그럼 같이 공부하자."
"너랑 공부하면 하려던 것도 안될 듯."
결국, 재욱과 함께 우리 동네로 와 버렸다. 시험 날이라 점심시간 전에 끝난 학교에 밥을 먹기 위해 주리가 좋아하는 떡볶이를 먹으러 왔고 매운걸 잘 못 먹는 재욱은 제 앞에 놓인 떡볶이를 보곤 인상을 썼다.
"이걸 어떻게 먹냐?"
"왜 못 먹어? 얼마나 맛있는데."
주리가 아무렇지 않게 먹는 모습에 재욱은 주리를 따라 한입 먹으면 혀로 전해지는 매운맛에 바로 단무지를 씹었다. 그런 재욱의 모습이 웃긴지 주리는 깔깔대며 웃었고 매운 걸 못 먹는 재욱을 위해 돈가스를 하나 더 시켰다.
"넌 이게 맵냐? 신기하네."
"난 이걸 먹는 너가 더 신기하다. 그걸 다 먹을 수 있어?"
"당연하지. 그러니까 넌 돈가스나 먹어."
그렇게 밥을 다 먹고 나와 시간을 보니 3시가 다 되어갔고 주리는 재욱에게 "뭐 하고 싶은 거 있어?"라고 물었고 재욱은 잠시 고민하는 듯싶다가 문득 중학교 때 주리와 같이했던 게임이 생각나 "피시방?"이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이곤 앞장서는 주리였다.
"아니, 너가 거기서 날 살려줬어야지--;;"
"그 정돈 너가 혼자 해야지. 김주리 게임 못 하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네."
"뭐? 이게 미쳤나? 내가 너보다 잘하거든?"
"일 대 일로 붙어?"
"콜. 진 사람이 이긴 사람 소원 들어주기."
그렇게 시작된 주리와 재욱의 대결, 역시나 주리는 깔끔하게 졌다. 자신만만했던 주리가 웃겼는지 재욱이 미친 듯이 웃자 그를 째려보며 소원이 뭐냐고 묻는 주리였다.
"지금 쓰란 말은 없었잖아. 나중에 쓸 건데."
"참나. 그러시든지."
"실력 더 키워서 와라~"
"너 솔직히 말해. 치트 썼지?"
"뭐래. 그냥 너가 못 하는 거라니까?"
"아, 짜증 나네. 한 판 더 붙어."
"또 뭐 걸게?"
"아니? 그냥 하자^^"
게임을 하고 나오니 벌써 해가 지려는 듯 어둑어둑한 하늘이었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니 평소 같았으면 학교가 끝날 시간이었고 주리는 이제 집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에 재욱에게 정류장 위치를 알려주면 재욱은 집까지 데려다주겠다며 주리를 따라 걸었다.
"큼... 오늘 재밌었다."
"뭐, 나도. 오랜만에 노니까 재밌네."
"이제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뭐?"
"그냥. 너가 나 불편해하는 줄 알았거든."
"뭐래. 이젠 뭐, 그럴 이유는 없잖아."
"그래. 근데 좀 불편하긴 하다."
"뭐가?"
"너가 게임을 너무 못하니까 나랑 상대가 안 되잖아."
"뭐? 죽을래?"
그렇게 웃으며 얘기를 하다 보니 벌써 주리의 집과 가까워졌다. 그 시각, 도현은 학교가 끝나 주리의 집으로 향하다가 자신이 걷던 길과 반대 방향에서 웃으며 걸어오는 재욱과 주리에 걸음을 멈췄다. 오랜만에 보는 그녀의 환한 미소에 두근거리다가도 그 미소가 자신을 향한 미소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미소가 재욱을 향한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굳어지는 표정이었다.
"..."
안녕하세용 덕심이에용ㅎㅎㅎ 오늘 편은 좀 일찍 갖고 왔어요ㅎㅎㅎ 여러분들은 재욱이랑 도현이 중에 누가 픽인가요? 전 도현이...^^ 암튼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