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트/윤두준] 축구부 훈남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던가. 나는 지금 친구에게 제물로 잡혀 강남은 커녕, 태양이 작열하는 학교 운동장으로 질질 끌려 가고 있었다. 우리 학교와 옆 학교의 축구부 사이에 연습 경기가 있다고 했다. 해가 이렇게 뜨거운데 무슨 축구 경기람. 운동장에 도착해보니 우리 학교 축구부 선수들이 가볍게 몸을 풀고 있었다. 대부분 3학년 선배들이었다. 그 중 한 명이 우리를 발견하더니, 가까이로 다가왔다.
"어, ㅇㅇ아. 경기 보러 왔어?"
"네? 아... 네."
두준 선배였다. 우리 학교 유명인인 선배의 이름을 내가 알고 있는 건 당연했지만, 선배가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건 몰랐다. 의외였다. 지나가다 몇 번 마주친 게 다였지만, 나는 선배에 대해 꽤나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대한 이런 저런 소문들 때문이었다. 축구에 소질이 있는 선배는 전교권 성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체대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공부 잘해, 운동도 잘해, 얼굴도 잘생긴 데다가, 매너까지 좋은 그는 우리 학교 공식 엄친아였다. 그래서였는지, 복도에서 그를 마주칠 때마다 나는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이고 황급히 자리를 벗어나곤 했었다.
"오빠 응원해. 알았지?"
"...네."
"확인해본다?"
"...할게요!"
가까이 다가온 반듯한 얼굴을 멍하니 보고 있다가, 들려온 선배의 말에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이랑 이름만 아는 사이 치고는 꽤나 살가운 인사였다. 그 말에 또 주책 없는 심장이 간질거렸다. 확인해보겠다는 말이 진심이었는지, 경기 내내 자꾸만 내가 앉은 쪽을 돌아보는 선배였다. 그러나 눈이라도 마주치면, 긴 팔을 뻗어 손을 휘휘 흔들어오는 것에 얼떨결에 오른 손을 들어 마주 흔들어 보였다. 하하. 눈을 접으며 웃는 선배의 웃음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듯 했다.
여러 번 찾아온 기회에도, 양 팀 모두 점수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발놀림이 조급해지고, 표정들이 답답해졌다. 공이 골포스트를 맞고 비껴나갈 때마다 아쉬운 탄성 소리가 여기 저기서 터져 나왔다. 바로 이마 위에서 내리쬐는 햇살 때문에 자리를 옮길까 일어서는데, 수비 때문에 뒤로 빠져 있던 선배가 치고 들어오던 상대 공격수의 공을 빼앗았다. 빠르게 움직이며 상대 수비수들을 제친 선배가 그대로 다리를 뻗었다. 선배의 발 끝에서 시원한 직선을 그리며 뻗어 간 축구공이 그대로 골대 그물망을 흔들었다. 운동장이 함성 소리로 가득 찼다. 어정쩡한 자세로 일어서 있던 나는 나도 모르게 옆의 친구와 얼싸 안고 함께 소리를 질렀다. 친구의 어깨 너머로, 친구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는 선배가 보였다. 문득 내 쪽을 돌아보며 브이를 그리는 선배의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곧 휘슬이 울렸고, 경기가 끝났다. 많은 학생들이 우르르, 선배 쪽으로 몰려갔다. 멀찍이서 그걸 보다가, 선배한테 갈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던 터였다. 이따가... 이따가, 운동장이 좀 한적해지면 다시 와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하며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듣기 좋은... 또, 어쩐지 포근한 목소리에 이름이 불렸다.
"ㅇㅇㅇ!"
선배가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을 헤치고 내 쪽으로 다가왔다. 쿵. 쿵. 싱글거리며 웃고 있는 선배의 얼굴이 가까워질수록, 아까부터 빠르게 뛰던 심장 소리가 커졌다. 소리가 들릴까 조금씩 뒷걸음질 치는 내 팔을 선배의 커다란 손이 붙잡았다.
"나 골 넣는 거 봤어?"
"네! 엄청 멋있었어요!"
양 엄지를 치켜들며 말하자 또 다시 하하, 소리내어 웃는 선배였다. 뜨거운 햇빛 때문인지 조금 상기된 선배의 얼굴을 보며, 내 얼굴도 지금 저렇게 빨개져 있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응원 열심히 했어? 멀리 있어서 못 봤는데."
거짓말인 걸 알았다. 그러니까, 경기 도중에 잠깐씩 생기던 틈마다 마주치던 시선이 그 말이 거짓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그런 질문을 던진 것은... 구김 없이 반듯한 얼굴이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어딘가 긴장되어 보이는 듯도 했다.
끄덕, 끄덕.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서야 표정을 푼 선배가 나를 잡아 끌었다. 열심히 했으니까, 음료수 사줄게. 나보다 훨씬 고생한 게 선배이니, 내가 음료수를 사겠다고 말을 해보았지만, 매점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입구 테이블에 끌어다 앉혀 버린 선배였다. 왠지 이 상황이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고 테이블 아래로 애꿎은 손만 매만지는데, 뺨 위로 차갑고 미끈한 감촉이 닿았다.
"자, 여기."
내 앞에 차가운 캔을 내려 놓은 선배가 자신의 손에 달린 이온 음료 캔을 땄다. 치익 하는 소리 다음으로, 시원한 선배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 친하게 지낼래?"
"..."
"...앞으로 복도에서 만나면 인사할게."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가 선배에게까지 들릴 것 같아, 체육복 끝자락을 꼭 그러쥐었다.
"...네에."
뜨끈하고, 또 조금은 축축한 손이 정수리에 와 닿았다. 듣기 좋은 선배의 웃음 소리가 햇살 아래 바스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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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육대 풋살 보고 감동 받아서 끄적인 짧은 글.. 운동 잘하는 남자가 그렇게 멋있는 줄 몰랐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