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 11시 경. 여주는 오늘만큼은 계획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밥을 먹자마자 제 방으로 돌아가 책을 읽고 있었고, 꽤 많은 아이들은 소파에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와중에 초인종 소리가 울리고, 마침 화장실에서 나온 한솔이 현관을 확인했다.
한솔) ...택배라는데. 누구 택배시킨사람?
민현) 택배 시킨 사람은 많을 걸. 뭔지를 봐야지.
민현의 말에 한솔이 택배를 가지고 들어오고, 곧 여주의 이름이 적힌 걸 보고 여주의 방으로 향했다. 똑똑. 정확히 노크를 하고 얌전히 기다리던 한솔은 문이 열리자 택배를 내밀었다.
한솔) 택배왔더라.
여주) 우와. 이 집 시스템이 좋네. 방 앞까지 배달해주고. 그런 의미로 여기 젤리.
한솔) 오우. 여기 기사님 우대해주네?
여주) 난 젤리를 안먹어서ㅋㅋㅋㅋ
한솔) 근데 뭐시킨거야?
여주) 아. 이거 내가 시킨 건 맞는데, 내 건 아냐.
여주가 택배를 받아들더니 계단을 내려가고, 한솔은 그런 여주를 따라 내려갔다. 내려오는 둘을 바라보던 밑에 아이들은 작게 중얼거렸다.
승관) 쟨 참 침착해. 이석민이나 김민규였으면 소리쳐서 불렀을텐데. 노크도 정확히 두번.
민규) 야. 스따일이 다른거지 스따일이.
석민) 맞아.
민현) 왜 다시 들고 내려와?
여주) 아 이거 내 거 아냐.
찬) 잘못 온거야?
여주) 아니? 맞게 왔는데 내 거 아냐.
여주가 소파에 기대어 앉아 테이블에 상자를 올리고, 곧 테이프를 뜯어냈다. 열린 상자에 아이들이 고개를 기웃기웃 거렸고, 여주는 물건을 꺼내들었다.
정한) ....털실?
지훈) 뭐지.
석민) 새로운 취미?
여주) 그치. 근데 내 취미가 아니라,
이쪽.
승철) ....나? 나? 나?ㅋㅋㅋㅋㅋ나?
찬) ...낰ㅋㅋㅋㅋㅋ우리?우리?!
여주) 이번 겨울까지 목도리 따는 걸 목표로 하는거 어때.
내 부탁.
여주가 양손으로 든 털 실을 하나씩 승철과 찬에게 주고, 곧 택배상자에서 대바늘 세트를 꺼내 건넸다. 이 상황이 웃긴 듯 아이들은 실컷 웃었고 찬이와 승철은 당황한 듯 계속 웃음을 머금었다.
여주) 저번에 둘이서 계속 나한테 한 말 기억해?
찬) ..슬럼프 온 것 같다는 말?
승철) 너도 그 말 했어?
찬) 응 ㅋㅋㅋㅋㅋ
여주) 그래서 내가 생각해봤는데, 운동 하다가 그런 생각들이 들 때 잠깐씩 해봐. 도움 될거야.
승철) 운동만 하는 것 보다는 좋겠네.
여주) 하면서 생각해도 좋고, 생각을 안해도 좋고. 무슨 의미인지 알지?
찬) 그럼. 고마워, 이런거 진짜 못하지만.. 해볼게.
그럼 난 이만- 책 읽어야해서.
여주가 쓰레기가 가득 담긴 택배 상자를 현관 앞에 둔 뒤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찬과 승철은 자연스레 설명서를 읽으며 대바늘을 들었다.
민규) 뭐라고 말했길래 이렇게-,
찬) 진짜 흘러가듯이 얘기했어. 셋이 그냥 있다가 허심탄회스럽게.
승철) 근데 그걸 기억하는게 여주인거지.
석민) 하여튼, 섬세해.
정한) 왜 없지.
승철) 뭐가?
정한) 여주가 우리한테 흘린거.
정한의 말에 아이들이 눈을 꿈뻑거렸고, 곧 민규의 손짓으로 허리를 숙여 수근거리기 시작했다.
이게 그런 파장을 불러 일으킬 줄은 몰랐지.
원우) 저기서 쟤가 저런 식으로 말한게 화를 불러일으키는거지.
여주) 그니까. ‘너는? 너도 똑같잖아!’ 이런 대사가 화를 일으키는거잖아.
원우) ..근데 저거 책으로도 나온다더라.
여주) 그래? 뭐든 책이 더 재밌긴한데, 이미 아는 내용이라 사고싶진 않네.
원우) 그치. 그건 나도 그렇게 생각해.
명호) 나 한솔이랑 서점갈건데 여주도 같이 갈래?
여주) 아, 나 가고싶은데 그럼 또 책 사고싶어질 것 같아..
명호) 사면 되잖아.
여주) 근데 새 책 산지 얼마 안됐거든. 그거 다 읽지도 못했고.
정한) ‘이건 기회야 기회!’
민현) ‘데려가. 데려가.’
민규) ‘빨리!! 같이 가!’
아이들의 입모양이 명호와 한솔을 향하고, 곧 한솔은 여주를 향해 말했다.
한솔) 그럼 구경만 하고 안사면 되지. 같이 가자.
여주) 아. 그럴까. ..근데 보면 사고싶잖아.
명호) ...음 그럼..
여주) 그냥 안갈래. 다음에 같이가자!
.......
.......
.......
.......
민규) 와 이거봐, 여주야. 치즈케이크 진짜 맛있겠지.
여주) 우왑!!!! 와 이거 여기 어디야?
민규) 그치 맛있겠지!! 이거 배달도 된대. 오늘 시키면 내일 새벽에 문 앞에 두고간다는데 어때 대박이지.
여주) 와 대박. 세상 많이 발전했네. 근데 쪼꼼 비싸다 그치.
민규) ...엉?
여주) 약간 비싸다. 택배비도 붙공..
민규) ...어엉...
여주가 비싸다며 입맛을 다시곤 민규를 지나쳐 소파에 풀썩 앉고, 민규는 머리를 긁적이며 생각했다. 사야되는 걸까, 먹고싶다는 걸까 먹기 싫다는 걸까.
한솔) 여주야.
여주) 응? 왜?
한솔) 이것 좀 봐봐. 티셔츠.
여주) ...예쁘네. 근데 너 이런 스타일 안입지 않아?
한솔) ..어? 아. 내가 입을 게 아니라 내 여동생.
여주) 너 여동생 사주게? 잘어울릴 것 같은데?
한솔) 그치. 너가 보기엔 어때? 예뻐?
한솔의 목 울대가 넘어가고, 여주는 화면을 뚫어졀 쳐다보다가 응. 하고 답했다. 그러다 능청스레 지훈이 다가와 거들었다.
지훈) 여주 너가 입어도 잘어울리겠다.
여주) 그런가? 근데 난 보라색 별로.. 색은 좋아하는데 옷으론 잘 안 입는 색이야.
한솔) ..여주는 검은 색 자주 입지, 그치?
여주) 맞아. 디자인은 괜찮은데 검은 색이면 좋겠네.
여주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가고, 지훈과 한솔은 같이 마주보며 말했다.
지훈) 사줘도 될까?
한솔) ..약간 애매하지?
지훈) ...엄청.
여주가 지수의 방 침대에 걸터 앉아 베란다를 쳐다보고 있을 때, 지수가 여주를 향해 물었다.
지수) 여주야.
여주) 응?
지수) 내 친구가 곧 생일인데 뭘 사줄까? 도무지 말을 안해서 뭐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어.
아이들이 여러 계획들을 펼칠때, 방에 있었던 지수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고로 이 질문은 진정성이 가득한, 진심으로 궁금했다는 거. 지수의 물음에 여주는 고민하는 듯 유리잔을 톡톡 두드리더니 입을 열었다.
여주) 손편지.
지수) ..손편지 받을 때 기뻐?
여주) 응. 그거만큼 기쁜게 없던데.. 근데 남자들끼리 손편지는 좀 그르치?
지수) ㅋㅋㅋㅋㅋ그렇긴 하지.
여주) 그럼 뭐가 좋을까. 평소에 자주쓰는 물건들을 생각해봐. 뭘 자주쓰나. 그거 다 쓰면 이거 쓰라고 주는 것도 좋지.
지수) 으음.. 그것도 좋겠다.
여주) 석민이랑 민규는 항상 선물 줄 때, 사진을 껴서 줬었어.
지수) 너 사진을?
여주) 아니, 정확히는 우리 사진을. 지갑 선물 주면 거기에 꼭 사진을 껴서 줬었어.
지수) 신박하네.
여주) 그치. 아무래도 남자애들이다보니까 손편지는 아닌 것 같고, 안쓰기는 뭐하고. 그래서 그랬던 거 아닐까 싶어.
근데 그 마음이 보이니까 좋더라고.
여주) 그런거 그냥 잘 생각해서 줘봐.
이렇게 고민할 만한 친구면 오빠가 뭘 줘도 좋아할 것 같은데?
지수) ㅋㅋㅋㅋㅋㅋ그럴까. 고마워.
자정 직전, 방학 때문에 틀어진 생활 패턴이었지만 여주에게 주어야 할 것을 못 정한 탓이 더 컸다. 식탁에 모여 앉은 아이들이 하나 둘 이야기를 꺼낼 때, 물을 삼키던 지수의 고개가 기울여졌다. 뭔 얘기 해?
민규) 형. 분명 여주가 케이크를 보고 맛있겠다고 그랬거든? 근데 갑자기 마지막엔 비싸다 그러더니 들어갔어. 이게 사달라는 말일까 아닐까?
지수) ....응?
한솔) 여주한테 티셔츠를 보여줬는데 분명 예쁘댔거든? 근데 검은색이면 좋겠다는데 그 티셔츠는 검은 색이 없어. 그럼 어떻게 해야하지?
지수) .........
명호) 책을 사주고 싶어도, 이미 읽고 있는 책이 있으면 서점을 안간다그러고.
아이들이 고개를 푹 숙여 식탁에 붙이고, 지수는 웃음을 입에 머금은 채 컵을 씻은 뒤 건조대에 올렸다. 지수는 곧 의자를 하나 빼 앉더니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 사.
지훈) 뭘 좋아하는 지 모르는데 어떻게 사.
지수) 그냥 사. 그리고 사진을 넣어.
정한) 웬 사진?
지수) 석민이랑 민규. 너희 여주 선물 줄 때 사진 넣어서 줬었다며.
여주 그거 되게 좋아하던데.
지수) 그리고, 명색의 사진동아리잖아. 다들 여주랑 같이 찍은 사진은 엄청 많을거아냐. 그냥 아무거나 사도 괜찮으니까 사서 사진을 넣으라고.
지훈) ...근데 넌 그걸 어디서 들었어?
지수) 아. 나 친구 생일선물 때문에 물어봤더니 얘기해주던데. 자긴 그게 제일 좋았다고.
다음 날 아침, 여주가 일찍 알바를 가야하는 날이었고, 여주가 준비를 마친뒤 방문을 열자마자 맞이한건,
여주) 이건 또 무슨 상황...
민규) 졸려 죽겠다 여주야...
순영) ...빨리 증정해..
빨리 증정하라는 순영의 말에 맨 앞에 있던 민규부터 여주에게 택배를 건넸다.
민규) ..이거, 저번에 내가 보여줬던 치즈케이크..
여주) ...아, 그때 그 새벽배송 그거...? 그걸 왜..
순영) ...휴대폰 케이스..내가 사진 박아뒀어..
여주) ..응?
한솔) ..이건 지훈이 형이랑 같이 돈모아서 산 티셔츠.. 저번에 보여줬던거랑 비슷한 건데 검은 색이야.
여주) 그 여동생한테 준다던..
한솔) 그건 거짓말이고..
명호) 이거 내가 재밌게 읽었던 책. 취향 맞춰서 책 고르는 건 어려워서 그냥 내가 재밌게 읽었던 걸로 주는거야. 책갈피로 사진 넣어뒀어.
여주) .....아니 다들 아침부터 이게 무슨..
알바 조심히 다녀와..
좀비 마냥 여주 손에 택배를 가득 쌓은 아이들은 다시 자기 방으로 들어가고, 여주는 시간을 확인하고서 천천히 택배를 뜯었다.
책 사이에 끼워져있는 명호와 찍은 셀카를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잘나왔네.
여주가 사진을 슬쩍 다시 끼워두고, 한솔이 준 택배를 뜯자마자 옷 위에 얹어진 사진을 들었다. 아 이것도 잘나왔네.
한솔이의 택배에서 나온 사진도 명호의 책 사이에 끼워두고서 순영의 상자를 뜯었다. 이젠 아예 휴대폰에 프린팅 된 사진동아리 단체사진을 보고 여주는 바로 제 휴대폰 케이스를 바꿔끼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민규의 케이크를 꺼낸 여주가 케잌 밑에 깔려있던 쪽지를 꺼내들었다.
‘받기만 한게 마음에 걸려서. 다들 한마음 한 뜻으로 준비한거야.
항상 챙겨줘서 고마워 여주야.
-가족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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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대소동이었네요~ 아.. 여름 방학도 끝이난다! 명절 잘 보내셨나요! 내일부터 또 다른 일주일이 다가오네요... 너무 싫다 ㅎㅎㅎ 남은 저녁 예쁘게 잘 보내시고! 좋은 꿈 꾸세요- 다음 회에서 만나요!
넉점반의 소중한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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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은 항상 마지막 글에서 받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