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규) 이젠 진짜 못나가.
순영) 무슨 일이 있어도 나가기 싫은 달이지.
8월.
어느덧 7월을 지나 8월에 입성하고, 순영과 민규는 베란다로 비춰지는 햇살을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 햇빛마저도 싫다는 듯 민규가 먼저 몸서리를 치며 거실 안쪽으로 들어오자 순영도 어기적 어기적 그 뒤를 따랐다.
민규) 아. 시원한 냉면 한그릇과 돼지갈비가 먹고싶다.
순영) 오왁. 그거 좋다.
지훈) 난 밥에 돼지갈비.
순영) 근데 돼지갈비 먹으려면 나가야하잖아.
민규) 그니까. 그래서 문제인거야.
소파에 나란히 앉은 셋이 에어컨 바람을 쐐며 담소를 나눴고, 민현은 그런 아이들을 스윽 보다가 소파에 앉아 물었다.
민현) 외식 하고 싶단 말이야?
민규) 외식은 하고 싶으나, 날씨가 미쳤다는 소리야.
민현) 음... 무언갈 감수는 해야하는데 더위는 감수하기 싫잖아.
민규) 그렇지.
민현) 그럼 돼지갈비는 가을에 먹으러가자. 대신 오늘 저녁은 삼겹살 구워먹는게 어때?
민규) 삼겹살 좋지.
지훈) 좋아.
민현은 그 대답에 만족한다는 듯 소파에서 일어나 2층으로 향했고, 거실에 널부러져 만화책을 읽는 원우를 향해 말했다.
민현) 이따 저녁 삼겹살 먹기로 했어.
원우) 오늘 토요일아냐?
민현) 근데 민규가 고기얘기하길래. 돼지갈비 보급형으로.
원우) 오, 좋아.
민현) 애들보면 애들한테 말해줘.
원우) 그래.
민현이 원우를 쳐다보다가 다시금 발걸음을 돌려 3층으로 올라가고, 층마다 느껴지는 온도차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2층은 활짝 열린 순영과 승관의 방을 제외하곤 나머지 방은 죄다 문틈이 보일 듯 안보일 듯 하게 열려있었는데, 3층의 방들은 모든 방이 활짝 열려있었다. 물론 여주는 닫는 파였지만 열어두라는 석민의 말과 들어왔다 가기만 하면 열고 가는 민규 탓에.
3층에 올라가자마자 보이는 정한에 민현은 정한의 맞은 편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뭐해?
정한) 그냥, 컵이 부족한 것 같아서 컵 좀 보고있었는데? 왜?
민현) 애들이 돼지갈비 먹고싶다그래서 외출하려다가, 너무 더워서 그냥 집에서 삼겹살 구워먹으려고.
정한) 좋지, 삼겹살.
민현) 여주는 뭐해?
정한) 방에서 뭘 막 쓰는 것 같던데.
민현) 노트북?
정한) 응. 모르겠네.
정한의 말에 민현은 열려있는 여주의 방문을 노크하더니 마주보며 웃었다. 그러자 여주는 타이핑을 멈추더니 물었다. 왜?
민현) 그냥, 뭐하나해서.
여주) 책 읽은 거 감상문.
민현) 꼬박꼬박 쓰네.
여주) 글쓰는 걸 좋아해. 읽는 것도 좋아하고.
민현) 이따 저녁 삼겹살 먹기로 했어.
여주) 아 맛있겠다. 근데 집에 삼겹살 없지 않아?
민현) 그치.. 사러 나가야하는데. 같이갈래?
여주) 음.. 지금 가야해? 이거 쓰는 거 곧 끝날 것 같은데. 기다릴래?
민현) ..그러지 뭐. 여기서 기다려도 돼?
여주) 그래 그럼.
여주의 말에 민현이 책상 의자에 앉고, 주변을 두리번 거렸다. 본인이 맞춘 가구였지만, 여주의 짐으로 채워지고 나서는 처음 보는 것이니 꽤 생소했던 모양이었다. 뭐, 물론 물건이라고 해봤자 책과 노트 혹은 필기구가 다였지만.
민현은 책상 위에 올려져있는 감상문들을 눈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궁금한 듯 여주를 향해 물었다.
민현) 근데 노트북으로 쓰면서 인쇄는 왜 했어?
여주) ..아. 파일 보관하려고. 거기 왼쪽 책장에 꽂힌 검은 파일에 넣을 것들이야.
민현) 파일 보관하는 걸 좋아해서?
여주) 응. 노트북에 담겨있는 것 보단 종이로 모아두는 걸 좋아해서.
민현) 감상문 쓰면 나중에 읽어보는거야?
여주) 가끔? 사실 주 목적은 읽는 내가 달라진 걸 확인하려고.
같은 책을 읽어도, 재작년에 읽었던 내 감상문이랑, 올해 읽은 내 감상문은 차이가 크더라고. 그걸 알고 나니까 계속 감상문을 쓰게 됐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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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이제 장보러갈까?
민현) 대신 내일 가족회의 시간에 조금 느슨하게 먹어야돼. 동의하면 시키고.
명호) 좋아.
준휘) 그런 건 내일의 우리에게 맡기는거야.
원우) ㅋㅋㅋㅋㅋㅋㅋㅋ난 상관없어.
지훈) 부족하게 먹는 건 싫지만 그래봤자겠지. 삼겹살 먹었으니까 기름진거 없애줘야돼. 시켜.
민현) 무슨 빙수?
여주) 인절미.
민규) ㅋㅋㅋㅋㅋㅋㅋㅋ겁나 단호한데?
여주) 난 새로운거 시도하지 않는 사람이라.
민현) 그럼 맛별로 다섯개 시킬게.
민현이 휴대폰을 토독토독 두드리더니 곧 내려놓고 다시금 젓가락을 들었고, 휴대폰을 스윽 보더니 50분 뒤에 온대. 하고 말했다.
승관) 여유 있네.
민규) 아 잠깐만, 슬슬 고기 자르자.
승관) 아! 볶음밥!
순영) 역시 뭘 알아. 빨리 자르자!!
찬) 밥 몇공기 할까?
승철) 한 프라이팬에 세공기씩하면 될 걸?
여주) 난 별로 안먹어.
민규) 왜!
여주) 빙수 자리 비워둬야해...
순영) 아이 왜그러니, 여주야. 본식 배와 후식 배는 따로 있는거야!
여주) 그럴 순 없지. 위는 한갠데.
순영) 아..
석민) 저번부텈ㅋㅋㅋㅋㅋ 팩트로 뚜들겨 맞는 것 같은뎈ㅋㅋㅋ
이게 뭐야?
민현) 나는 못줬잖아. 저번준가 저저번준가, 애들이 너한테 선물 줬던.
여주) 아.. 에이, 안줘도 되는데. 오빤 특히 더.
...우와, 예쁘다. 책갈피가 이렇게 예쁜건 처음봐.
식사 후, 여전히 열려있는 방문을 통해 발을들인 민현이 내민 건 다름아닌 선물상자였고, 여주가 조심스레 상자를 열자 보이던 건 책갈피였다. 금속 재질의 몸통에 깃털이 달린 책갈피였고, 은빛을 내는 게 참 여주와 잘어울렸다.
여주) 고마워.
민현) 그럼 잘자고, 내일보자.
여주) 그래, 잘자.
민현이 방을 나가고, 여주는 민현에게 선물 받은 책갈피를 한참 들여다봤다. 그러다 명호에게 선물 받은 책에 끼워놓더니 한솔이 줬던 담요를 챙겨 제 방에서 빠져나와 거실 소파로 향했다.
여주) .........
그냥, 이유없이 따듯함을 찾고싶어서 자신의 방을 나온 여주는 어둠이 내린 거실 소파에 앉아 티비를 켜 소리를 줄였다. 담요를 덮으며 몸을 뉘인 여주가 티비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그냥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정한) ...뭐지.
지훈) 왜 여기서 잠든거야.
원우) ..아, 여주 새벽에 티비 보다가 잠든 것 같던데. 내가 아까 아침에 화장실 가다가 티비는 껐어.
지훈) ..아.
아침 당번이었던 3층 아이들이 부엌으로 내려가다 보인 여주의 모습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곧 원우의 말에 지훈은 적잖게 탄식을 뱉어냈다.
정한) ....깨우지 말까?
지훈) 왜?
정한) 바른 생활하던 애가, 무슨 생각으로 새벽에 티비를 보다가 잠들었는지 예측이 안가서.
지훈) .........
정한) 뭔가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서.
지훈) ..그래, 그럼. 애들한테 말해주자.
둘은 곧 부엌으로 들어갔고, 느지막이 내려온 민규와 석민에게 상황을 알렸다. 넷은 조용하면서도 신속하게 아침을 차려내기 시작했다.
민현) 아침은 거르게 하지 않고 싶었는데.
지훈) 그래도 잠은 자게 해야지.
민현) ...그니까.
민규) 이따 일어나서 뭐 찾으면 아주 꿀밤을!
석민) 하지도 않고 밥을 차려주겠지.
민규) 맞습니다..
승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찬) 아. 곧 개강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민규) 야, 아직 보름이나 더 남았어 진정해.
석민) 그래 아침부터 무슨ㅋㅋㅋㅋㅋ
찬) 근데 자꾸 생각낰ㅋㅋㅋㅋ 운동할 때마다, 와 곧 학교간다. 벌써 8월이구나. 입학한게 엊그제 같은데. 계속 이러면서!
승철) 저건 맞는 말이지.
정한) 난 달력 볼 때 생각나던데 ㅋㅋㅋㅋ 삼주 남은 것도 훅 가버리겠구나- 하고 생각하지.
지훈) 그래서 난 달력을 안봐.
정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민규) 저 형처럼 살아야 된다니까 ㅋㅋㅋㅋㅋㅋ
부엌에서 새어나오는 대화소리에 여주가 느리게 눈꺼풀을 올리고, 눈을 여러번 깜빡이더니 쭈욱 기지개를 켜곤 몸을 일으켰다. 부시시한 머리를 대충 정리한 뒤 담요를 갠 여주가 천천히 부엌으로 들어섰다.
민현) 어, 여주야.
민규) 앉아, 밥 덜어줄게.
여주) 아냐 내가 덜어먹을게. 앉아있-,
민규) 안돼. 또 겁나 조금 덜으려고.
여주) ....귀신같은 놈.
여주가 자리에 앉자 민규가 고봉밥을 여주의 앞에 내놓으면서 웃음을 입에 걸쳤다. 많이먹어.
여주) ...그래, 고오맙다. 설거지 내가 할게. 치우는 것도.
정한) 에이 됐어. 안깨운 건 우린데.
여주) 그래도.
정한) 그럼 설거지만 해. 우리가 치울게.
여주) 고마워.
석민) 김여주 약속 잊은 거 아니지?
여주) 그럼. 그건 나도 보고싶은 영화였다니까.
정한) 둘이 어디 가?
석민) 영화보러. 민규는 더워서 안나가고, 둘이 가기로 했어.
여주) 몇시 영화랬지? 11시?
석민) 11시 반. 영화보고 점심 먹고 올까?
여주) 상관 없어.
지훈) 뭐야. 점심도 먹고 들어와?
민규) 그건 아니지. 점심은 먹고 들어오면 안되지.
석민) 그게 왜 안돼?
민규) 야 여주랑 둘이서만 맛난거 먹고온다고!? 안돼! 집으로 와서 다같이 먹어 다같이!
여주) 오늘 저녁에 가족회의 있잖아.
민규) ....그래도! 같이 먹어! 점심도!
여주) 이상한 땡깡을 피우네. 그래 알았다. 대신 그럼 팝콘 먹자.
석민) 그래. 팝콘 좋지.
여주와 석민이 영화를 보러 간 시점, 민규는 원우와 게임을 하고있었고, 지훈은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하는 중이었다. 민현은 제 방에서 노트북을 들고 나오더니 부엌으로 향했고, 부엌에서 물마시던 정한은 그런 민현을 향해 물었다. 뭐하게?
민현) 공부. 카페 가고싶은데 귀찮아서 여기서 하려고.
정한) 나도 좀 해야하는데.
민현) 나 할 때 같이 해. 안그럼 계속 하기 싫어질 걸.
정한) 노트북이나 들고 와야겠다.
정한은 제 방에 올라갔고, 민현은 노트북을 열어 문서를 열어 훑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게임하는 소리가 백색소음처럼 들리고, 정한이 곧 민현 맞은 편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정한) 여주가 왜 오늘 소파에서 잤을까?
민현) 글쎼. 정말 단순하게 생각하고싶은데,
그게 마음처럼 안된다는게 문제지.
민현의 말을 끝으로 타자소리만이 부엌을 가득 채우고, 한참 지나서야 정한은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정한) 며칠전에 지수 방 테라스에서 얘기했는데,
민현) 무슨 얘기?
정한) 여주가 딜레마에 빠졌대.
소중한 사람들과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하느냐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일을 해야 하느냐.
에 대한.
정한) 근데 아무도 대답을 못했어. 넌 어떻게 생각해.
민현) ...나도 대답 못하겠는데. 근데 왜 그런 딜레마에 빠진거야?
정한) 아마 그 날 민규랑 석민이가 알바하느라 시간이 없는 여주랑 놀고싶어 했는데, 여주가 책 읽고 그래가지고 제대로 못 논, 그 날이었거든. 그래서 여주가 알바를 줄여야하나.. 이런 식으로 얘기하다가 나온 말.
민현) ....아.
민현이 옅은 탄식을 내뱉고, 또 다시 정적이 부엌에 자리했다. 시끄럽게 게임을 하는 아이들의 백색소음이 한창 이어질 때 즈음 정한이 중얼거렸다.
정한) 근데 그런 느낌이 들어.
민현) 무슨 느낌.
정한) ..........
여주는 후자를 택했을 것 같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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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에 못올 것 같아서... 늦은 새벽에 두고가요! 꿈나라에 계실 분들고 있겠지만 ㅎㅎ 오늘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항상 여러분 댓글을 보면서 힘을 얻어요! 늘 찾아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벌써 20화까지 써뒀어요, 연휴 동안에. 두둑히 챙기고있으니까 천천히 같이 달려봅시당
넉점반의 소중한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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