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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쨍- 하고 내리쬐는 햇살은 아니였다만, 꽤나 눈부신 것에 얼굴이 자연스레 찡그려졌다. 슬쩍 눈을 뜨고 주변을 슥 둘러보니, 역시 여기. 조선 그대로였다.
"일어났네요?"
흠칫- 하고 놀라며 그 목소리에 옆을 보니, 어젯밤에 좀처럼 보이지 않던 그가 날 보며 인사를 한다.
"뭐예요?"
"응?"
"어제. 뭐하느라 안왔냐구요."
"나 왔는데? 들어오니까 이미 꿈나라셨고, 그 쪽은."
"아 일찍 온다면서요!"
미안하다는 말도, 그 밖에 다른 말도 하지 않던 그가 읏차- 하고 일어나, 아직도 누워있는 내 옆에 다시 앉았다. 내 얼굴을 빤히 보는 그에, 나도 질세라 그 눈을 계속 맞추고 있으니 피식, 하고 웃던 그가 내 눈가에 손을 댄다.
"뭐, 뭐해요!"
"눈곱 좀 떼줄라고요. 정신없이 주무셨나보네."
"아, 아 내가 해요..! 내가..."
"씻고 옷갈아입고 나와요. 저거, 보이죠?"
저거, 하며 가리키는 그 손길을 따라가니 병풍에 걸려있는 고운 색의 한복이 보였다. 저걸로 왜요? 라고 묻기도 전에 그가 답했다.
"들키면 안되잖아요, 여기 우리가 살던 시대도 아닌데."
"....."
"머리 맡에 따뜻한 물 놔뒀어요. 저 물로 씻고, 옷 갈아입고. 오케이?"
"....."
"나 나가있을게요-"
그 밖에 별 다른 말 없이 그가 나가고, 방 안에는 아직도 누워있는 나 밖엔 없었다. 한숨을 푸우우욱 하고 내쉬다가 몸을 일으키고는 머리 맡에 있는 은동으로 된 대야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물에 비쳐진 내 모습이, 하루 새에 폭삭 늙은 듯 하다.
'미래, 그대가 알려줘요.'
왕자. 그는 어젯밤, 잘 들어갔을까.
미드나잇 인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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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타임 리프 기구 위치 추적 1팀
"에이- 어떻게 그게 가능해요."
"진짜라니까? 과거 사람도 미래로 간다니까는."
"아아. 말도 안되는 소리마세요."
한참 바쁘게 일하다말고 잠시 이야기 꽃이 만개했다. 이야기 주제는 과거에서 온 사람이 미래에 현존할 수 있는가. 타임 리프 국제법상, 과거에 있던 사람은 자신이 더 이상 현존하지 않는 미래로 이동할 수 없다. 이는 법률상 뿐만 아니라, 사실상 과학적으로 일어날 수 없었다. 옆에 앉아 잠자코 이야기를 듣고 있던 J는, 이야기에 말도 안되는 소리 말라며 손사래까지 치는 동혁에게 스리슬쩍 메모리칩 하나를 건넸다.
"....?"
"......"
몰래 건네진 칩에 당황하던 동혁이 J를 보자, 그는 아무렇지 않게 뒤쪽을 가리키며 나가자는 눈빛을 보냈다.
.
.
.
.
.
"그 메모리칩에-"
J가 동혁이 사무실에서 나오자마자 익숙한 모국어로 운을 뗐다. 동혁은 어리둥절한 채로 J와 손에 들린 메모리칩만 번갈아볼 뿐.
"-너가 말도 안된다고 한 얘기 다 들어있다."
".... 예?"
"아 한국말 못알아들어? 너나 나나 한국계면서."
"... 아, 그.. 그니까요.. 저.. 뭐가 뭐 어쨌다는건지 지금.."
"그 뭐야, 그 책 알아? '세자 행방불명 사건'."
"..... 그, 그건."
흔히 말하는 동공지진. 동혁의 눈동자가 흔들리자, J는 크게 숨을 들이쉬며 사무실 쪽으로 턱 끝을 올렸다.
"우리 사무실 옆. 타임 리프 1팀, 김지원."
"....."
"걔 그거 읽고 갔어, 거기로."
"조선에요?!"
"어. 자기 눈으로 보겠다고."
"-허."
천재라더니. 진짜 미친건가. 동혁이 낮게 읊조린 말에 J는 그저 웃으며 답했다.
"근데 사실인 모양이야."
"..... 예?"
"어젯밤."
"....."
"1700년대로부터 연락왔거든. 김지원한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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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 다 가려서 좋긴하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면 한복만 입을까. 그가 놔두고 간 한복을 입고 한바퀴 돌아보며 든 생각이였다. 예쁘다, 예뻐. 머리도 어울리게끔 댕기로 쭉 땋고는 방문을 여는데,
"왜 이렇게 안나오-"
"....."
"-나.. 했네."
문 앞에 서있던 지원에 두 눈을 크게 뜨고 올려다보니 내 모습을 보고 당황한듯 그가 헛기침을 하며 뒤돌아섰다. 어, 얼른. 얼른 가요.
왜 그런담. 하며 다시 문고리를 닫고서 그를 따라가는데, 그도 언제 옷을 갈아입은건지 하늘색의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뒷모습이 꽤, ... 멋있어보였다.
"어? 미래!"
세자궁을 나오자마자 들리는 낯익은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어젯밤 보았던 왕자가 날 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와 같이 나온 지원은 그저 이 상황이 뭐냐는듯 날 보고 있었고. 나는 지원에게 괜찮다는듯이 눈을 찡긋이곤 그에 화답하며 손을 흔들며 그 앞으로 다가갔다. 밝은데서 보니 피부가 참 뽀얗다. 부럽네.
"왕자님이 여기는 또 왜 왔대요?"
"어젯밤 내가 본 미래가 진짠가, 싶어서 왔죠. 어, 근데 오늘 되게 예쁘게 꾸몄네?"
".. 응?"
"오늘 예쁘다고. 옷도 잘어울리고 말야. 머리도 땋았네? 미래에서는 댕기 그런거 안해도 된다면-"
"- 누구. 누구십니까?"
지원이 우리 둘 사이로 다가와 그의 말을 끊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자는 아무렇지 않게 지원을 보곤 내 어깨를 감싸며 조금은 능청스럽게 대답했다.
"나? 왕자님."
".....?"
"미래, 대답해줘요. 나 왕자 맞지?"
"... 어, 어. 그럼요. 왕자님 맞아요. 이 분."
내 대답에 눈썹을 들어올리던 그가 다시 왕자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왕자님이시라고?
"그렇다니까. 왜요, 아닌 것 같아서 그래요? 나랑 내 처소라도 가시던가."
"..... 됐고- 그 손부터 떼시죠, 갈 길이 바빠서."
뭔지 모를 신경전이 오가는 가운데, 지원이 그 손부터 떼라며 왕자가 내 어깨에 걸친 손을 가리켰다. 왕자는 순순히 내 어깨에서 손을 내리더니 내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이따 밤에 갈게요, 기다-. 그의 말이 다 끝나지도 않았거늘, 지원이 내 손목을 잡아당겨 그에게서 날 떼어놓았다. 처음으로 세게 당겨진 그 손에 이끌려 막무가내로 그를 따라가다 뒤를 돌으니, 왕자는 그저 미소지으며 내게 손을 흔들 뿐이었다. 아 그나저나 왜 이래 이 양반은?
"아 좀 놔요! 손목 아파!"
세자궁 터를 나오고, 왕자가 시야에서 안보이자 지원은 그제서야 내 손목을 놓아주었다. 아씨 진짜 아파... 하며 손목을 어루만지는데, 그가 날 보며 인상을 쓴다. 왜요, 왜. 무섭게 보지 말고 좀.
"언제봤어요 저 사람?"
"어젯밤에요."
"밤?"
"네. 하도 안와서 왜 안오나 나갔다가 저 사람이랑 잠깐 있었어요."
"....."
뭐 만나면 안될 사람이라도 되나. 그의 눈치를 슬쩍 보다 땅만 바라보는데, 그가 내게 다시 물었다.
"어떻게 왔냐, 그런건 안물었죠?"
"... 네."
그럼 됐어요. 라는 말에도 계속 땅만 바라보고 있으니, 그가 다시 내 손목을 잡아들어올렸다. 엄지 손가락으로 살살 어루만지던 손길과 함께 다시 한번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팠어요?"
"......"
"... 미안해요."
"......."
"... 삐졌어요?"
안삐졌는데요-. 입술은 쭉 내밀고 대답하니 다시 한번 사과하는 그에 대충 고개만 끄덕였다. 얼마나 세게 잡아당겼던지 그가 지금 잡고 있는 손목이 새빨갛다. 맘같아서는 딱밤이라도 먹이고 싶네.
"... 앞으로 나 없는 곳에 함부로 나돌아 다니지 마요."
"..... 네."
"여기 우리 살던 데 아니에요. 알고 있잖아요."
"......"
"돌려보내줄게요. 돌려보내줄테니까, 걱정말고 돌아갈 그 때까지."
"....."
"나만 보고 따라다녀요."
"......"
"알겠죠?"
"........ 네."
"배고프겠다. 밥먹으러가요. 뭐 먹을래요?"
"......."
"돼지국밥?"
"....... 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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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일주일은 왜이리 바쁜건지 모르겠어요 ㅠㅠ 여기저기서 절 부르네요. 아주 행복해요 ^^ (...ㅂㄷㅂㄷ)
오늘은 새로운 인물 넣으려했는데!! 5편에 들어갈 수 있었음 좋겠네요 흑.
날씨가 많이 추워요! 우리 독자님들 옷 따숩게 입으셔요ㅠㅠ 감기 걸리면 안돼요 엉엉♡
암호닉
바나나킥 / 김밥빈 / 초록프글 / 뿌득 / 부끄럼 / 준회가 사랑을 준회 / ★지나니★ / 기묭 / 핫초코 / 쪼매 / 한빈아
♡사랑해요ㅠㅠㅠㅠㅠ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