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웃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울고, 너에게 너희들에게 모두에게 보일 수 있는 얼굴로. 가면을 갈아치우듯이 얼굴을 바꾸고, 표정을 바꾸며 사람을 상대하고. 사람과 얘기하며 사람과의 소통을 이어간다. 언제나 나는 내 얼굴을 감춘채-. 진짜 내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채 너와 너희들과 모두에게 미움받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적당히 조용히 무리에 섞여들어갈 수 있게. 쉽게 말하면 이건 게임이다. 각 사람 한명은 하나의 문제가 되고, 난 그 문제에 맞는 답- 표정을 지으면 된다. 그것은 생각보다 쉬운 작업이라서 이것만 잘해준다면 모든 문제를 풀고 승리할 수 있다. 게임에서 나는 이길 수 있다. 언제나처럼 이길 수 있어야 했다.
"거짓~말."
"응?"
"니가 하는 말 거짓말이란 거 알고 있어. 어차피 지키지 않을 약속 하지마"
답을 틀렸다. 나는 처음 겪는 상황에 잠시 곤혹스러웠다. 내 앞에 있는 이 녀석이, 별 것 아닌 이 녀석이. 내가 승리해오던 게임을 멈추었다. 잠시 스코어는 0:1. 정답률은 99%. 1포인트 하락했습니다. 경고경고- 수많은 알림음, 띵띵-하는 비프음이 머리속을 울린다. 어떻게 알아챈거지? 나는 언제나처럼 다른 녀석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녀석에게도 승리할 수 있어야했다. 이건 내가 이기는 게임이고, 나만이 승리자고, 내가 이길 수 밖에 없는 게임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잠시 머리속을 뒤흔드는 곤혹스런 상황에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승자일수 밖에 없는 이 게임에서 나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한 녀석. 나는 잠시 멍-한채로 녀석을 노려본다. 녀석은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한발, 몸을 들이밀었다. 얼굴을 둘러싸고 있는 가면에 지지직- 금 가는 소리가 들린다. 이기는 게임인데. 분명히. 나의 표정을 바라보던 녀석이 씨익-웃는다. 그리곤 손을 뻗어 가슴을 밀친다. 탁-하는 가벼운 소리. 그와 함께 후드득- 떨어지는 나의 가면. 나의 표정. 내 얼굴'들'. 바닥에 유리조각처럼 떨어진 표정들은 이리저리 일그러지고 깨진채로 날 노려본다. 화난 눈이 날 노려보고, 웃는 눈이 비실비실 웃고 있다. 하품하는 입이 혓바닥을 내보이고. 잔뜩 일그러진 입술에서 짜증이 샘솟는다. 이리저리 갈라진 얼굴들 날 바라보는 표정들. 깨저버린 내 표정들은 날 쳐다보고 있다. 나는 머리를 털어내 애써 내 표정들을 지워낸다. 간신히 생각해낸 얼굴 표정 하나를 억지로 지어낸다.
눈은 웃자. 반달모양으로. 실눈으로 사라지게. 그래. 입은 그래. 입꼬리를 살짝. 조금만더? 조금더? 아니. 너무 올린건가? 내릴까. 그래-내리자. 코는 찡긋. 아니 아닌가. 그래그럼가만히있을까.고개는갸웃?아니그냥있자아니움직일까아니움직이는게좋을까어떻게하지.
문득 앞을 바라보자 녀석이 내 표정을 따라하는지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인다. 모든 근육들이 따로 움직이는 듯한 녀석의 얼굴에. 나도 똑같이 표정을 짓는다.
거울 속 나는 기괴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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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에피소드 중에 하나.
선임이 들었던 가장 가혹한 체벌(?)중 하나는
거울 속 자신과 가위바위보하기.
...이기는게 더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