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괴롭혔던 변백현
2
W. 백빠
“변백현이라고 합니다.”
“…….”
“한나씨.”
그 이름을 듣자마자 내 입가에 띄워져있던 미소가 딱딱히 굳어졌다. 변백현, 이라는 이름을 타인의 입에서 듣는 것은 실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나는 그 소개를 듣자마자 거짓말 하지말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날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옛날의 그것과 너무나 닮아 있었다.
그러니까, 지금 내 앞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남자는 변백현이었다. 아니길 바랬던 변백현이 맞고야 말았다. 언제나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지.
“한나씨, 왜그래? 아는 사람이야?”
딱딱하게 굳은 내 얼굴을 보고 구회장이 물었다. 나와 변백현이 아는 사람 정도였던가? 그런 시시한 단어보다는 깊은 사이였을 것이다. 내가 8년을 수없이 속으로 되새긴 사람이었고 내가 ‘과거’라는 걸 떠올릴 때마다 항상 나타나 날 괴롭히던 사람이었으니.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할 지 몰라 그저 변백현을 쳐다보았다. 날 계속 보고 있던 변백현은 묘하게 미소지었다. 날 알아본게 분명했다. 저 입꼬리에 묻은 웃음기는 그때와 한치의 오차도 없었다. 나는 그 얼굴에 숨이 턱 막혀왔다.
생각해보면 변백현은 그때도 나를 숨막히게 하는 유일한 애였다. 네 목을 조르는 건 나였는데 졸리는 것도 나였다. 그러나 웃긴 사실 하나는, 난 누구도 나와 변백현의 관계에 끼어드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변백현이 내 아래에 깔리지 않는다고 해서 남자친구라던가 내 친구들이라던가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이 개입해 해결해주는 것은 바라지 않았다. 싫어했다. 오로지 변백현은 나만 괴롭힐 수 있으며 나 스스로의 힘으로 굴복시켜보겠다는 그런 쓸데없는 사고 방식이 내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변백현은 마지막까지도 나를 숨막히게 만들었다. 2학년이 끝나기 3일 전, 그러니까 변백현이 이민을 떠나기 바로 전 날 체육시간이었다. 애들은 모두 운동장으로 나간 후였고 변백현과 나는 교실에 남아있었다. 이유는 변백현이 내가 입을 체육복을 빌려오지 않아서, 였다. 변백현은 자기 껄 주고는 자기는 그냥 교실에 남겠다고 했다. 나는 또 내가 수업을 듣는데 변백현이 빠지겠다는게 짜증나서 성질을 부렸다. 미친아, 니꺼 말고. 그러자 변백현은 웃으며 대답했다. 싫어. 생각해보면 변백현은 단 한번도 나를 무서워한 적이 없었다. 항상 내가 널 놀아주고 있는거야, 하는 분위기를 풍겨댔었다. 나는 네게 말했다. 니 존나 짜증나. 변백현은 대답했다. 난 너 좋은데. 그 대답에 당황한 나는 미친새끼- 하며 변백현의 체육복을 챙겨 탈의실로 뛰어갔다. 탈의실에 들어왔을 때 나는 내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있음을 알았다. 그건 내가 전력을 다해 뛰어왔기 때문이라고 치부해버렸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나서는, 어쩌면 내가 변백현을 끊임없이 되새기고 있는 것은 죄책감과 더불어 그때의 심장박동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곤 했다.
나는 그때처럼 18살의 나처럼 심장이 미친듯이 뛰고 있었다. 변백현은 어떻게 나를 보고도 저렇게 덤덤한 얼굴로 있을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변백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나 대신 구회장에게 대답했다.
“아뇨, 처음보는 사입니다.”
“그렇지? 한나, 왜그래. 백현이가 너무 잘생겨서 그래?”
“설마요, 회장님.”
낮게 웃으며 설마요, 대답하는 변백현은 여유로워도 심각하게 여유로웠다. 그 날 체육시간 니가 웃으며 “싫어” 라고 대답했던 그 얼굴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나는 저 여유에 혹시 나를 알아보지 못한걸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나를 알아보았다면 저렇게까지 침착할 수 있을까. 일단 이 상황은 어떻게든 넘어가야할 것 같아 나 또한 최대한 자연스레 웃으며 인사했다.
“죄송해요, 제가 잠시 착각했나봐요. 안녕하세요, 백현씨.”
“착각은. 백현이 잘생겨서 그런거 맞지?”
“에이, 그럼 구회장님 볼 때마다 이랬겠죠.”
“얼씨구. 많이 늘었네, 한나. 아, 그나저나 한나씨가 몇 살이더라?”
“스물 여섯이요.”
“그럼 둘이 동갑이네! 친하게 지내,응?”
구회장은 너털 웃음을 지어보였다. 변백현은 아무렇지도 않게 네, 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애써 올리고 있던 입꼬리가 퍼석해지는 것을 느꼈다. 우리가 친하게 지낼 수 있으려나. 설사 내 앞의 변백현이 나를 기억하고 있지 않다하더라도 그건 불가능할 것이다. 내 기억과 변백현의 기억이 동시에 폭파되지 않는 이상, 둘 중 한명이 그때의 기억을 안고 있다면 결코 불가능 할 것이다. 우리는 그때 무슨 사이였을까. 그 당시 누구보다도 가깝고, 누구보다도 서로에게 각자의 방법으로 불친절했던 우리는.
“다른 녀석들도 여기 소개시켜달라고 아주 난리야. 백현이 너마저도 여길 와보고 싶어할 줄 몰랐다.”
“친구들이 워낙 여기 노래를 불러서요.”
“허허, 그러냐? 니 친구들도 여기 와서 놀으라고 그래. 요즘 걔네들 소문 너무 안좋아. 응?”
변백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앞에 놓여있던 위스키잔으로 입을 축였다. 나는 조금씩 헷갈려오기 시작했다. 지금 너는 날 알아봤으면서도 일부러 모르는 척 하는걸까? 아니면 기억하고 싶지 않아 외면하는걸까. 아니면…… 정말 기억하고 있지 않는걸까. 어쩌면 가명이라는 것이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나도 만약 변백현이 자신을 김철수라던가 박영호라던가 다른 이름으로 소개했다면 그때 그 시절 변백현이란 아이와 비슷했지만 아니었어- 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변백현은 지금쯤 날, 그때 날 괴롭히던 여자아이와 비슷했지만 아니었어- 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르는 일었다.
“한나씨, 지인 소개니까 백현이 여기 회원 되는거 맞지?”
“그럼요, 누구 소개인데요. 성함하고 연락처만 알려주시면 되요.”
“명함 하나 주면 되겠네.”
변백현이 날 아는걸까, 모르는걸까? 만큼 궁금한 게 있었다. 넌 도대체 누구길래 구회장의 친한 동생으로 최상류층들만 다닌다는 이 곳에 소개되었는지. 때마침 그는 내게 명함을 주려 정장 재킷 안 쪽에서 지갑을 꺼냈다. 옛날에 교복 마이를 입고 있던 변백현이 떠올랐다. 그때도 마이 안쪽에서 지갑을 꺼내 일-이만원씩 잘도 주곤 했었다. 그때 뜯은 돈만해도 백만원은 족히 될 것이다. 지금의 변백현은 이만원이 아닌 자신의 명함을 내게 건내왔다. 잠깐 닿은 손가락에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명함에 쓰여있는 낱말들은 소름이 돋다못해 전율을 끼치게 만들었다.
[ 대한그룹 대한미디어 부사장 변백현 ]
나는 명함을 읽자마자 왜 그 시절, 변백현이 쉽사리 내 아래에 깔리지 않았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스물 여섯살의 대한그룹 부사장. …변백현이 재벌집 아들이었을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다닌 학교가 강남 소재의 좋은 고등학교이긴 했어도 대한그룹의 자제가 다닐줄은, 내가 괴롭히는 남자애가 반에서 말 없이 조용한 남자애가 마침 그런 애인줄은, 전혀 몰랐었다. 그럼 역시 내가 변백현을 괴롭힌 것이 아니라 변백현이 나를 놀아준거였나.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불쌍한 애니까 내가 봐줘야지- 하는? 명함의 밑에는 자그만하게 전화번호가 쓰여있었다. 고등학생 때의 변백현의 휴대폰 번호와 뒷자리가 같았다. 그 뒷자리를 기억하는 내가 싫었다.
“한나씨가 잘 좀 해줘. 이쪽 애들 맘 놓고 놀 데가 없어. 소문만 다 나고.”
“…네, 그럴게요.”
“여긴 기집애들이 입단속을 잘해서 참 좋아.”
웃으며 명함을 구겨지지 않을 정도로만 손에 꼭 쥐었다. 입꼬리에 경련이 일었다. 심장 박동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빨라졌다. 손에 땀이 맺혀 명함이 흐물흐물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변백현은 내게 신경도 쓰고 있지 않았다. 아니, 이따금 날 쳐다보고 주시하긴 했지만 나처럼 놀라거나 당황한 눈치는 조금도 없었다. 나는 차라리 변백현에게 대놓고 물어보고 싶었다. 나 혹시 모르냐고, 한에리라고 기억 안나냐고 물어보고 싶을 정도로 속이 바싹 타들어갔다. 그러나 내게 그런 용기는 없었다. 그냥 기도할 뿐이었다. 날 기억하지 못하게 해주세요, 하나님.
“오늘은 여기 오래 있으려고 온 건 아니야. 근처에 얘네 형 생일파티 있어서 잠깐 들렸어.”
“아, 정말요?”
“내일 지들끼리 파티할거라는데 할 데가 없대서. 그래서 여기 소개시켜주는거야.”
“그렇구나. 백현씨, 형 생신 축하드려요.”
내 말에 백현이 웃으며 말했다. 나한테 말하지 말고 내일 형한테 말해줘요. 그리고 덧붙여 농담처럼 말했다.
“내일 오면 잘해주셔야 돼요.”
“그럼, 한나씨가 당연히 잘 챙겨주지. 안그래?”
변백현은 정말로 나를 모르는 것 같았다. 그렇지않고서야 저렇게 편안한 웃음으로 저런 가식 없는 멘트를 칠 수는 없었다. 변백현은 나를 모르는 게 확실해지고 있었다. 만약 정말 나를 모르는게 확실하다면 앞으로 옛날을 떠올리기 좋은 얘깃거리들은 일체 꺼내지 않아야겠다, 라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그럼요, 당연하죠.
그때 누군가 똑똑, 문을 두드렸다. 매니저가 들어와서는 말했다. 두 분 다 가셔야 될 시간이랍니다. 문 밖으로 얼핏 구회장님의 비서와 처음 보는 남자가 서있었다. 아마 변백현의 비서일 것이다. 구회장은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하며 자리에서 일어섰고 백현도 뒤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제야 내 숨통을 쥐고있던 사슬이 조금 느슨해진다. 나도 인사를 하려 자리에서 일어서는데, 구회장이 지갑에서 수표 몇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더니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오늘 나와줘서 고마웠어. 다음부턴 휴일에 안부를테니까 미워하지말구.”
“알았어요. 오늘 생일파티 즐겁게 하고, 담주에 또 와요.”
“당연히 한나 보고싶어서 와야지. 내일 애들이나 오면 잘해주고.”
“그건 걱정말구요. 김비서님, 운전 조심히 해주세요!”
구회장이 그렇게 문 밖으로 나가고, 나는 다행히도 날 기억하지 못하는 듯한 백현에게도 인사했다. 변백현이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신이 내게 준 마지막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백현씨,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
“생일파티 즐겁게 보내시고 내일 봬요.”
억지로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냈는데 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가만히 쳐다본다. 그리곤 옅은 미소와 함께 변백현은 대답했다.
“한나는 별로 안 어울린다.”
“…….”
“내일 보자. 한에리.”
그렇게 변백현은 그대로 뒤돌아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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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 KUNST - LOVE SCENE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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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 이렇게 많은 분이 읽어주실줄은ㅠ_ㅠ 사실 글잡에서 엑소화력이 너무 많이 죽어서 걱정했거든요...댓글 하나도 달리지 않으면 어떡하나..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같이 달려봐여♡
++ 암호닉은 최근 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