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 봐. 응?"
"아, 뭐야아…."
"김탄소, 일어나 봐."
놀아줘. 나는 대뜸 내 허리를 감아오는 손에 미간을 찌푸렸다.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김태형을 밀어냈다. 제발, 나 3일을 달아서 야근했는데. 나는 김태형에게 '저리 가.'하고 투정을 부렸으나, 그럴수록 태형은 나를 꽉 안아올 뿐이었다. 어슴푸레한 빛이 내려앉은 새벽이었다. 결국 나는 잔뜩 찡그린 눈으로 옆에 뒀던 핸드폰을 켰다. 반짝이는 빛에 눈이 부셨다. AM 03:20. 나는 한숨을 쉬며 내게 안긴 김태형을 바라보았다. 푸우- 하고 내뱉는 김태형의 입김에 술 냄새가 진동한다.
"나 잘 거야…."
"나 오늘 고백 받았는데."
대뜸 술에 젖은 목소리로 말해오는 대사에 몸이 굳었다. 잇새로 웃음을 흘려보내던 태형은 '그 여자랑 술 마셨어.'하고 나지막히 말했다. 나는 기분이 나빠져 김태형을 밀쳐냈다. 술 취했으면 너네 집에서 자. 차갑게 말하자 김태형은 웃음을 거두고, 시무룩하게 이불을 만지작거렸다. 안 그래도 부서질 것만 같던 몸이 더 무거워지는 것 같다. 그 여자랑 뭐 했는지 알아? 김태형은 얼굴을 찌푸리는 나를 끌어내려, 제 팔 안에 가두며 말했다. 단단한 가슴팍에 입술이 닿았다. 듣기 싫어, 잘 거야. 말을 하려 입술을 조물거리자 가슴팍으로 소리가 다 먹혀든다.
"응? 맞춰 봐."
곧바로 찾아오는 두통에 나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대답 없는 나를 내려다보던 김태형은 내 손을 잡아들어 제 티셔츠 안으로 집어 넣었다. 그리고 내 손을 꼭 가둔 제 손을 움직였다. 김태형의 심장소리가 손을 타고 그대로 전해져온다. 빠르게 뛰는 심장 박동이…. 그리고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체온이. 나는 숨을 멈추며 김태형을 바라보았다.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순간 머릿속을 맴돌았다. 그것도 잠시, 고개를 흔드는 나를 바라보던 김태형은 곧바로 내 입술에 제 입술을 겹쳤다. 몇 번 입술을 빨아들이던 김태형은, 내 입술을 문 채로 잠들어버렸다. 도대체 키스를 하면서 자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어디에 있을까. 입술을 떼려고 하니 김태형은 내 뒷머리를 큰 손으로 꼭 잡았다.
"움직이지 마아…."
"……뗄래."
"시끄러워. 나 키스하면서 잘 거야…."
역시나 또라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지만 샐쭉 튀어나오는 김태형의 웃음에 심장이 뛴다, 미친듯이. 누군가는 이를 보고 사귀는 사이라고 지칭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 아니다. 그저 내가 김태형의 어장에 돌아다니는 물고기일 뿐.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인 양 움찔거리는 마음의 근원은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교 새터 때였을 거다. 여자 애들이 한바탕 난리가 났었다. 야, 너 들었어? 우리 과에 존나 잘생긴 애 있다며? 날 보는 애들마다 그 소리였다. 사실 별 관심은 없었다. 정작 가고 싶던 대학은 떨어진 터라 반수 준비에 여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여자 애들과 같아지고 싶진 않다는 모난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어찌 됐든 내가 김태형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MT에 가서였다. 아, 김태형이 그즈음 갖고 놀던 여자가 있었기에 여자 애들은 다 떨어져 나가버렸고. 석진 선배, 윤기 선배, 지민이, 그리고 보영 선배, 이렇게 우리 조끼리 모여서 술을 마시는데 그 날따라 술이 잘 들어갔다. 요리 대결에서 우리 조가 1등을 해서 기분이 좋아서였는지, 어쨌든 그 날따라 엄청 무리했었다. 비틀거리는 나를 보영 선배가 다른 선배들 몰래 방에다 데려줄 정도로. 누워 있으니 마냥 어지러워서 찬 바람이라도 쐬야겠다고 생각하고 테라스로 나왔는데, 벤치에 김태형이 앉아있었다. 별로 친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 모른 척을 했다. 김태형도 이쪽을 한 번 쳐다보았다가 모른 척을 하는 듯 했다.
'어, 김탄소 너 왜 임마…. 왜 술 더 마시자니까 들어갔어. 어어?'
'네…? 아, 동현 선배…….'
가만히 방에 누워있어야 했는데 나왔던 게 화근이었는지, 바로 고학번 동현 선배에게 걸리고 말았다. 씨바알, 너 선배 말이 만만하냐? 그것도 성질 더럽기로 유명한 선배에게. 선배는 담배 연기를 한 번 깊게 빨아들이곤, 내 앞에다 훅 뱉어냈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기침을 하자 '어쭈, 이게 선배한테 인상을 쓰네.'하고 비아냥대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연신 죄송하다고 말했다. 동현 선배는 담배 연기를 몇 번이고 빨고 뱉기를 반복하다 내게 대답해왔다. 그럼 술 더 마시러 가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동현 선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죽거리는 표정에 입술을 꾹 깨물 수 밖에 없었다. 새내기라 그랬는지 무조건 참아야 된다고만 생각했으니까. 그치만 더 이상은 한계였는지, 술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미식거리는 속에 나는 고개를 저어버렸다.
'싫다? 너 방금 싫다 그랬냐?'
'아, 아니요. 죄송해요….'
선배는 기가 찬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기가 죽어 다시 사과하자, 동현 선배는 '그럼 술 마시러 가자니까.'하고 빈정대며 말했다. 하필 더럽게 성격 안 좋은 새끼한테 걸릴 건 뭐람. 결국 네에… 하고 동현 선배를 따라가려는데, 누군가가 내 손목을 턱 잡아왔다. 멈칫하고 손목을 잡은 손을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김태형이었다.
'야, 너 뭐해? 왜 안 따라……. 뭐냐?'
'선배, 탄소 아프대요.'
'허, 그래서.'
'제가 대신 마실게요. 탄소 들여보내고.'
동현 선배는 따라오던 내 발걸음이 들리지 않았는지 뒤돌아보았고, 곧 김태형과 나를 발견했다. 다가와서는 한껏 정색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물어오는 선배에게 김태형은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호의도 베풀었다. 나 대신 제가 마시겠다는 호의. 왠지 굳어보이는 김태형을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평소엔 잘생긴 또라이라는 별명도 그렇고, 별로 무섭단 생각이 들지 않았는데. 지금 돌처럼 굳어있는 표정의 김태형은 매우 무서워보인다, 어릴 적 봤던 일진 선배마냥.
'네가 얘 남친이라도 되냐? 씨바, 요즘 것들은 선배한테 선배 취급을 안 해주네.'
'동기 사랑은 나라 사랑이라면서요, 선배가 그러셨으면서.'
'아아, 그래서 존나 고귀하신 동기 사랑을 지금 실천하시겠다? 좆 까라 그래.'
동현 선배가 내 손목을 잡아 제 쪽으로 끌자, 김태형은 내 손목을 잡은 손에 꼭 힘을 주었다. 싫다고 하는데 계속 술 먹이는 거, 추행인데. 선배. 김태형의 입에서 딱딱한 말들이 휘몰아친다. 동현 선배는 추행이란 말에 얼굴이 새빨개져 고성으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이 미친 새끼가 뭐라는 거야! 한순간에 선배들이 모여들어 동현 선배를 말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동현 선배가 앞서 해온 행적들이 있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김태형이 혼날 뻔한 거다, 나 때문에. 결국 석진 선배와 윤기 선배가 동현 선배를 끌고 들어갔고, 상황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뭐야? 뭐야? 하고 물어오는 선배들의 질문에 김태형은 입을 꼭 다물고만 있었다. 여차저차 선배들이 들어가고, 저도 들어가려던 김태형을 붙잡았다.
'저, 저기….'
'……어?'
'나… 왜 도와줬어?'
'…….'
'아, 그게…. 진짜 고마워. 고마운데 그냥….'
'너 쩔쩔매는 게 보기 싫어서.'
김태형은 멍하니 선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들어가서 쉬어, 피곤하다.'하고 남자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때 멍하니 서서 김태형을 계속 지켜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심장 부근도 만져보았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쿵, 쿵 뛰는 심장이 이상해서였다. 그 때부터였을 거다. 내가 대학 생활 내내, 아니, 지금까지 김태형을 바라보았던 건. 동기끼리 다 같이 듣는 수업에도, 소모임도, 그리고 술자리까지. 김태형이 있는 곳이면 늘 따라갔고, 부러 그와 친해지려고 노력했던 것도. 김태형이 짜놓은 시간표를 받아서 최대한 맞춰 수강 신청을 했던 것도. 그 날의 심장 박동으로부터 흘러왔던 일들이다.
그리고… 장장 7년을 이어왔던 숨바꼭질도. 김태형은 나와 연인만큼이나 밀착된 생활을 하면서도- 절대 내가 원하는 말은 해주지 않았다. 내가 다가가려고 하면 김태형은 언제나 멀어졌고, 지쳐 포기할 때쯤에 다시 가까워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내 입술을 물고 잠든 김태형을 바라보았다. 그 때 네가 없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 조심스럽게 입술을 떼어냈다. 다행히 완전히 잠든 모양이었다. 나는 김태형의 잘 뻗은 콧날을 손가락으로 쓸어보았다. 언제쯤 끝이 날까.
"태형아."
"……."
"끝이 어딜까."
우리가 끝난다면 어떻게 될까. 아니, 어떻게 끝내야 할까. 연인이라면 헤어지자는 네 글자로 관계를 끊을 수 있을 텐데. 우리는 연인도 아니니까. 절교를 해야 하나. 참아온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지친다고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김태형이 여자친구를 만드는 것을 보면서도, 그래서 미친 듯이 힘들어하면서도, 지친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아니, 그럴 땐 김태형이 언제든 나를 위해 여자친구의 관계를 끊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나. 어찌 됐든 지친다고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이제 슬슬 지쳐간다. 목이 마르다. 아직 오아시스는 멀었는데.
"태형아, 우리…. 우리……."
"……."
"끝낼까."
참아왔던 말을 입 밖으로 뱉어보았다. 왠지 어색해서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니, 어색하기보다 울음이 날 것 같아서. 나는 결국 베개에다 눈물을 찍어냈다. 그래, 내 주제에 끝을 찾는다는 것은 너무 잔인한 일이다. 그리고 내 7년은 어디에서도 보상 받을 수 없다는 사실 또한 그렇다. 갑작스레 눈 앞의 김태형이 미워져서 뒤돌아 누워버렸다. 결국 오아시스를 찾지 못하고 사막에 버려진 사람은 죽기를 기다릴 수 밖에 없다, 목마른 관계가 끝맺음 날 때까지. 정말 명백한 사실임에도 보지 않았던 건 그만큼 내가 김태형을 좋아하니까. 김태형의 콧날을 만지던 느낌이 손길에 그대로 남아있다.
나는, 죽기를 기다린다.
@
안녕하세요, 오즈입니다'-'♡
메리 미를 연재하다가 일도 생기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늦게 오다보니 결국 새 얘기를 들고왔져요...☆
예전에 불맠으로 썼던 [방탄소년단/김태형] 숨바꼭질 인데요. 소재가 넘나 없어서 가족 대려와써오...
어떤 독자 분이 장편으로 써도 넘나 좋았을 소재라구 하셔서 쪄봤습니다. 포스터도 만들었어요!
다음 편부터 태형이는 나쁜 남자 냄새 폴폴, 탄소는 짠내 퐁퐁이겠지만! 사이다도 들고 올 예정이에요.
그리고 제 본글이 불맠이었으니 스페셜 편도... 소근소근 그러니까 기다려주새오 읽어주셔서 고마워오♥
암호닉 신청은 언제나 환영이에오 우리 가족이 되오 저도 분량에 있어서만큼은 김혜자 선생님을 닮을게오!